현재 진행형의 작가 최인석 “사람 이상의 가치는 없다”
황순원 탄생 100주년 기념 「소나기」 이어쓰기 가을하다 사람의 별 다시 소나기 지워지지 않는 그 황톳물 헤살
제가끔 서 있어도 나무들은 숲이었어 그대와 나는 왜 숲이 아닌가
아버지의 방, ‘영원한 어린이의 벗 강소천’ 별을 가슴에 품고 평생 연필로 시를 쓰다 괜찮다 괜찮다! 가난한 청산도, 고난도, 절망도
가장 문학적인 인물, 여성 내 시의 세 가지 신비 숨은 집 비평과 독서
“격동기, 단절과 극복의 언어”를 남긴 8명의 문인 재조명
현재 진행형의 작가 최인석 “사람 이상의 가치는 없다”
글 최민석 ㅣ 소설가. 1977년생
소설 『풍의 역사』 『능력자』 『쿨한 여자』 『시티투어버스를 탈취하라』,
산문집 『청춘, 방황, 좌절, 그리고 눈물의 대서사시』 등
최인석 ㅣ 소설가. 1953년생
소설 『내 영혼의 우물』 『인형만들기』 『혼돈을 향하여 한걸음』 『나를 사랑한 폐인』 『구렁이들의 집』 『잠과 늪』 『새떼』 『내 마음에는 악어가 산다』 『안에서 바깥에서』 『강철무지개』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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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를 만나고 돌아온 날, 나는 나이듦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1953년 생인 최인석 선생은 한국 나이로 예순 셋이다. 그러나 예전에, 즉 소년 시절에 가지고 있었던 예순이라는 나이의 개념과 그가 실제 로 살고 보여주는 예순이라는 개념은 큰 차이가 있었다. 인생의 몇 년 선배라는 — 정확히 말해, 상당히 좋은 뜻으로 — 느낌밖에 들지 않았다. 아, 나도 곧 저 자리에 있겠구나. 선생도 불과 몇 년 전에 나의 자리에 있었겠구나 하는 생각이 줄곧 자리했다.
1. 아날로그와 디지털의 공존
대선배를 만나러 가는 길에, 시간 약속을 잘못했다. 낭패가 아닐 수 없었다. 조금 늦는다고 하니, 아이폰 사용자들의 전유물인 iCloud 메시지로 “네”라는 심플한 답이 돌아왔다. 몇 십 년 째 살고 있다는 둔촌동은 신록이 우거진 곳이었다.
“담배 피슈?”
아뇨. 전 끊었습니다.
“난 작년 7월에 전자 담배로 바꿨어.”
선생은 처음 보는 특이한 디자인의 전자 담배를 꺼내 물었다. 오래된 영국식 파이프 담배처럼 생긴, 아날로그 형태의 디지털 산물이었다.
2. 공간의 가치
● 요즘은 어떻게 지내시는지요?
“다음에 쓸 작품을 위해 취재 중이에요. 불과 얼마 전에도 단편 하나 썼으니까 사실 시간이 많이 지난 것도 아닌데 괜시리 많이 논 듯 여겨지네.”
● 그럼 지난 겨울인가요?
“아니지, 봄호에 발표했는데, 이번에 마감을 굉장히 늦게 했거든. 2월 중순이었던가? 허허(큰 웃음). 편집자들에게 미안한 일이지만……. 나는 구상 과정에서 장소를 정하는 경우가 많아. 예컨대 창신동이다, 고덕동이다, 어떤 세탁소, 은행나무, 무너진 축대. 이런 게 작품에 쓰이지 않더라도 이런 것들을 봐야 뭔가 그림이 그려지면서 이야기들도 하나씩 구체화돼. 인물도 마찬가지야. 어떤 인물에 대한 구상이 거의 끝났다 할지라도, 그 인물을 그저 한국에 놓았을 때와 둔촌시장 골목에 놓았을 때 거기서 파생되는 연상과 상상이 천양지차야. 그래서 많이 돌아다녀야해. 취미 중에 하나가 돌아다니는 거지. 얼마 전에는 창신동에 자주 갔어. 개발되기도 하고 아직 개발되지 않기도 한 빈민굴을 배경으로 한 30~40년에 걸친 이야기를 구상하고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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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럼 이야기의 얼개는 짜지 않으신 건가요?
“거의 짜 놨어. 그래서 창신동 쪽을 둘러본 거고. 얼마 전부터는 성남 구시가지를 몇 번 드나들었고. 내가 스무 살 무렵에 성남의 ‘별나라 달나라’라 불리던 곳으로 봉사활동을 간 적이 있어.
그때 그 동네 이름이 ‘별나라 달나라’였어. 달동네, 라는 속칭이 생기기 전의 일이지. 70년대 초그쪽이 몹시 가난한 동네였어. 집에 거적때기가 달려있고, 집안에 변소도 없는 동네. 성남대단지 사건이 벌어진 곳 근처였을 거야. 그 동네에 공중변소가 쓸 만한 게 없어서 우리가 지었어.이번에 가니 그 동네 입구는 완전히 유흥가, 먹자골목이 되어 있더라고. 어마어마한 사람들이 떼로 밀려다니고. 외국 노동자들 많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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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서 『강철 무지개』의 노동자들 국적이 그렇게 다양한 건가요?
“이미 현실이야. 창신동도 그렇고, 내가 요즘 돌아다니는 동네들, 무심코 걷다보면 주변에서 들리는 얘기 소리가 중국말인 경우가 많아. 옛날 ‘별나라 달나라’라고 불리던 성남의 동네들, 아무리 작은 마당이라도 거기 이층을 올리고 삼층을 올리고, 그렇게 집을 늘리고 방을 만들어서 거기에 세를 놓고 살아. 그렇게 만든 방에 제3세계 노동자들이 들어와 사는 것 같아. 이런 동네를가보아야 비로소 이 나라가 어느새 이런 식으로 바뀌어 가고 있다는 걸 짐작이라도 할 수가 있어. 신문 방송에서 볼 때는 그저 그런가 보다, 하고 넘어가기 쉽지만.”
3. 희곡과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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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철무지개』는 상상이 굉장히 구체적이에요. 예컨대, 서울 익스프레스 사옥을 묘사한 문장은 이렇게까지 하다니, 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구체적인데…….
“쓸 때 그렇게 구체적인 장소와 건물을 알고 있을 때 훨씬 자유스러운 건 사실이야. 아까도 얘기 했지만 한 인물을 창신동에 세웠을 때와 청담동에 세웠을 때, 굉장히 다르거든. 내 상상이나 연상부터가 달라져.”
● 영화적 서사를 짠다는 느낌도 듭니다.
“플롯이 연극적이라는 말은 꽤 들었어. 만약 전두환 시절에 검열이 없었다면, 연극을 계속했을지도 몰라. 검열 때문에 너무나 갑갑해져서 다시 소설을 쓰기 시작했으니까.”
● 검열 때문에 소설로 돌아오신 셈인가요?
“소설은 사후 검열이었거든. 적어도 출판은 할 수 있었어.”
● 그토록 좋아했던 연극인데, 선생님에게 희곡이란 어떤 의미인가요?
“이렇게 얘기해볼까. 요즘 디지털 시대라고 하지. 음악이건 영화건, 물론 문학도 마찬가지고, 모
든 게 디지털, 00 01의 기호로 바뀌어 파일 하나로 변형되어 버려. 하지만 연극은 디지털 파일로 변형시킬 수가 없어. 물론 카메라로 찍어 그걸 파일로 만들 수는 있겠으나, 기계로 찍는 순간이미 그건 연극이 아니야. 직접 극장에 가서 봐야 해. 문자로 이루어지는 시, 소설을 1차원이라고 한다면 연극은 아마 수백 차원은 될 걸. 그 밀도, 그 강도, 그 원시적이고 물질적인 힘, 빛과공간 그리고 배우들의 몸뚱이들이 밀고 당기고 부딪치면서 만들어내는 그 입체적이고 총체적인중량감……. 오직 연극만이 가진 매혹적인 것들이지.”
이후 우리는 잠시 휴식을 취했다. 그러다 선생은 “아, 맥주 마시면서 해야겠네. 목이 타”하며 나가자고 했다. 맥주를 파는 카페를 찾는 와중에 선생은 “오. 저기다”하며 한 곳을 가리켰다. 멀리서 보니 카페 간판에 ‘BEER’라고 쓰인 것처럼 보였으나, 가까이 가서 보니 ‘DEEP’이었다. 아쉬움을 간직한 채 십분 가량을 더 헤매다 겨우 맥주를 파는 카페에 자리를 잡았다.
4. 플롯과 인물
역시 맥주를 파는 카페에 오니, 우리는 좀 더 편안한 기분이 되었다.
● 한 문장 속에 생각의 발전을 많이 담으시는 것 같아요. 문장 안에서 끝없는 예시가 나오거든요.
“글쎄. 난 잘 모르겠는데(웃음). 신경 쓰는 것이라면, 생각이 담기지 않은 문장을 쓰지 않으려고노력한다는 정도. 사람들이 흔히 말하길 ‘후’ 불면 날아갈 것 같은 문장은 쓰지 않으려고 해.”
● 소설을 읽다보면 문장의 라임과 의미의 전복에 신경 쓴다는 인상을 자주 받는데요. 예컨대, 『강철무지개』에는 “그들의 시간은 같지만 서로 달랐고, 서로 다르지만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들은 고용될 때 마다 어김없이 폐기되었고, 그러나 폐기될 때마다 어김없이 다시 고용되지는 않았다”(39~40쪽 중) 같은 문장들이 나오잖아요. 소설 쓰실 때 많이 신경 쓰는 것은 어떤 부분인가요?
“인물과 플롯. 여기에 가장 공을 들여요. 시간도 많이 걸리고. 그럭저럭 명성을 얻은 작가의 작품들 가운데에도 인물과 플롯이 어긋나 있는 경우가 적지 않아. 인물과 플롯으로부터 서사가 나오는 것인데, 그게 어긋나면 서사 또한 억지스러워지게 마련이거든.”
이어 모옌과 옌롄커, 필립 로스와 솔 벨로 등의 작품에 대한 짤막한 얘기들이 오갔다.
“보통 우리가 이야기가 겉돈다고 하잖아. 그러면 틀림없이 이야기나 플롯 혹은 인물 관계 중에무언가 균열이 있다는 거야. 예컨대, 이명박과 박근혜라는 두 인물을 놓고 로맨스 소설을 떠올려 봐요. 상상이 돼? 안 되거든. 무슨 말이냐 하면, 플롯과 인물 설정, 그리고 서사의 관계가 서로 제약하고 풀어주면서 서로 변화하고 간섭하고 발전한다는 거야.
5. 살아야하는 이유
단 한 병의 맥주 덕인지, 태생적인 소설가여서 그런지, 작품 이야기가 나오자 선생은 활기를 띠며 대답하기 시작했다.
● 현실적 문제에 관심을 많이 가지고, 작품을 써오셨어요. 혹시 다음 작품으로 관심 가지고 있는 현실적 주제가 있으세요?
“뭐, 아직 결정된 건 없어. 사랑이지. 그보다 더 현실적인 주제가 어디 있겠나. 공간적 배경 가운데 하나를 만화방이나 라면가게쯤으로 할까 생각 중이고. 오랜 기간에 걸친 사랑 이야기랄까. 대강 고교 시절부터 오십대쯤까지? 사랑이라는 게 꼭 지고지순해서도 아니고, 사랑의 본질을 탐구해보겠다는 것도 아니고, 그저 인간이 품는 욕망 중 가장 끈질긴 것 가운데 하나가 사랑이 아닌가 싶고……. 사랑으로 인한 욕망과 열망, 선망, 집착, 희생, 배신감, 원망, 원한, 나아가서는 증오…… 이런 것들, 거기에서 비롯되는 어리석거나 무모한, 또는 희생적인 행동…… 인간이 이런 것들에 어떻게 휘둘리고 어떻게 변하는지 긴 시간에 걸쳐 살펴보고 싶어서. 시대적 배경은…… 박정희 시절부터 김대중이나 노무현 시절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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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단편집 『목숨의 기억』 중, 첫 소설 「그림자들이 사라지는 곳」은 이야기 전개 방식이 흥미로워요. 추상적이면서도, 도대체 무슨 말을 하려는 걸까 하는 느낌이 들거든요. 이런 걸 좋아하시는 건가요? 아니면, 자살에 대해 생각해보신 적이 있어서 이런 걸 쓰신건가요?
“하하(웃음), 인간이라면, 누구나 한두 번쯤은 생각해보지 않을까. 아마 자살을 처음 생각해본 건 고등학생 때였던 것 같아요. 실은 「그림자들이 사라지는 곳」이 내 체험과 죽은친구의 체험이 섞여 있는 소설인데, 등장인물 가운데 하나는 실존인물이라 할 수도 있어. 삼십 무렵에 자살했지. 삶과 죽음, 어떻게 살 것인가, 이런 문제, 고교 시절부터생각을 시작했어. 그 무렵부터 신앙과 상관없이 성경을 두 번이나 완독했어. 신이 실존하는지 궁금했거든. 신이 실존하는 경우와 그렇지 않은 경우 살아가는 방식이 달라야 할 것 같아서. 근데, 좀 더 머리가 크고 보니까 세상에 신이 기독교적 신만 있는 게 아니더라구. 신들이 너무 많아. 암튼 읽기 시작했으니 이번엔 불교다, 하고 불경을 읽기 시작했는데…… 이건 정말 끝이 없어. 게다가 어찌어찌 영문판 바가밧기타가 손에 들어왔는데, 그 역시 읽어댔지. 해석이 되건 안되건, 이해가 되건 안 되건. 그러다 종교나 신에 대한 관심이 역사에 대한 관심으로 변했어. 역사를 가진 인간이야말로 다름 아닌 신이다, 뭐 이런 생각을 했던 것 같아. 역사책을 닥치는 대로 읽어댔는데……. 그래서 얻은 결론은, 신은커녕 인간은 짐승이라는 것. 아주 간단히 야만에떨어지고 만다는 것. 그 후론 마르크스를 읽기 시작했고.”
● 그럼, 살아야하는 이유는 뭘까요?
“사람들이지. 내가 만난 사람들, 사랑한 사람들. 마누라, 친구, 자식놈. 물론 증오가 살아가는 힘이 되기도 해. 하지만 사람끼리의 따뜻한 교감이 훨씬 큰 힘이 되지. 따뜻한 사람들을 만난것이야말로 내가 이 세상에서 한 가장 좋은 경험이었어. 사람 이상의 가치는 없다, 그게 요즘 나의 이데올로기야. 그 밖에 살아서 경험한 좋은 일이라면 좋은 책들. 좋은 책 읽을 때 정말 황홀하지. 니체의 몇 마디, 장자의 한두 줄, 칸트의 한두 단락……. 너무 외교적인 수사가 돼버렸나(웃음). 하지만 사실이야. 이놈의 세상에 그나마 그런 게 있다는 게 얼마나 다행인지.”
● 열 손가락 깨물어 안 아픈 데 있겠습니까만, 선생님 작품 중 특히 애착이 가는 작품이 있다면요?
“없어. 하나도 애착 안 가. 그저 덤덤할 뿐. 속히 다 잊어버리고 싶어. 하지만 글이라는 게 염무웅 선생님이 말씀하셨지만, 한번 써놓으면 당사자는 까맣게 잊고 있는데도 어디서든 나타나는거라더군.”
6. 현재 진행형인 일상과 미래형인 남은 인생
● 소설가로서 이건 하지 말자, 혹은 하기 싫다고 여기신 것은요?
“자기 세계에 갇히는 것, 어떤 것에든 갇히는 것. 당대가 강요하는 것, 흔히 말해, 윤리의 문제,계몽의 문제, 형식의 문제, 이런 것이 주는 제약도 받아들일 때는 지극히 신중해야 할 것 같아.사실 백 사람의 작가가 있다면 백 사람의 미학이 있어야 하는 거야. 아무리 정당하고 천만의 당위를 지닌 이데올로기라 할지라도 그것이 실천으로 강요된다면, 나아가 비평이나 평가의 기준,또는 지침이 된다면 그것은 검열 장치에 지나지 않아. 검열은 인간이 만든 최악의 감옥이야. 누구나 검열이나 분서갱유를 사악한 범죄로 생각하지만, 사실은 오늘날에도 분서갱유는 꾸준히,은밀히 혹은 공개적으로 벌어지고 있어. 국가 권력이, 자본이, 시장 권력이, 그런 권력의 앞잡이들이 자유주의적 또는 진보적 먹물인 척, 운동화 끌고 머리 헝클고 예술가인 척 따라다니면서 그런 짓을 감행하고 있어. 이런저런 계기가 생길 때마다 멍청한 금서 목록을 내거는 저 유치한 극우들이야 말할 필요도 없고.”
● 인생관은 무엇인가요?
“아, 이건 오랜만에 만나는 고색창연한 질문이네. 옛날엔 좋은 세상을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어. 하지만 이젠 그런 거 없어. 인간에 대한 신뢰를 잃어버렸어. 그저 최대의 즐거움을 누리며 살자는 것, 그게 요즘 인생관이야. 그렇다 하여 나쁜 사람이 되자는 것도 아니고, 나쁜 놈들과 어울려 놀아나자는 것도 아니야. 즐겁게 살자는 것뿐.”
● 마지막으로 한 말씀 덧붙이시죠.
“모든 출판사, 모든 잡지사, 모든 신문사는 어떤 명분을 내걸고 어떤 역사를 지녔건 근본적으로는 다 장사꾼들이야. 기억할지 모르지만, 체 게바라 초상이 프린트된 티셔츠가 대유행이었던 때가 있어. 거기 인쇄된 체는 무엇일까? 이미 상품이야. 뭐든지 상품으로 만드는 것이 오늘날의 장
사꾼들이야. 만일 누군가 코뮤니즘을 상품으로 만들어 이익을 남기고 그래서 커다란 회사를 만들어냈다면 그는 유능한 장사치일지언정 그가, 또는 그 회사가 코뮤니스트는 아니야. 마찬가지야.
내 생각에 작가에게 가장 큰 특권은 자기 자리를 가진 사람들이라는 거야. 그런데 단 하나 조건이 있어. 자기 자리를 스스로 만들어야 해. 어떻게? 자기 생각을 꾸준히 얘기함으로써. 남의 생각이 아니라 자기 생각을. 이놈의 세상의 주장, 자기 책을 사주는 사람들, 또는 잡지사, 출판사의 생각이나 욕망이 아니라 자기 생각.우리 다 알잖아. 이 나라에 장용학이라는 자리도 있고, 황석영이라는 자리, 현기영이라는 자리도 있다는 것. 어떤 출판사나 어떤 신문사하고 바꾸겠어, 그 자리를? 하늘에 별이 있다면 인간에게는, 특히 작가에게는 생각이 있고 자리가 있다, 하고 말하면 그건 좀 과장이라 하겠지?”
돌아오는 길에 그가 언급한 별이란 무엇일까 생각해봤다. 일견, 그 말은 문학이 도달할 수 있는궁극적인 기쁨, 만족감, 성취욕이라는 뜻으로 보였다. 하지만, 곱씹을수록 그 말은 단지 기쁨이나 만족감과는 다른 차원의, 작가로 하여금 계속 쓰게 만드는 근원적인 동력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