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은 투고된 작품을 나누어 각 3편씩을 뽑아 모두 9편을 가지고 본격적인 논의를 하기로 하였다. 투고자의 정보를 알 수 없도록 이름과 주소, 학교명을 가린 채 진행한 이 첫 번째 작업에서 우리들은 우연히도 3편을 일치시킬 수 있었다. 시를 보는 눈이 서로 다를 줄 알았는데, 논의를 해갈수록 비슷한 점이 많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가운데 2명이 공동으로 뽑은 1편을 한 분이 추천하여 모두 4편을 가지고 최종 심의를 하였다.
「우선 앵무새 혀 사용법」외 4편을 응모한 분의 표제시는 앵무새의 혀를 펜으로 전환하는 비유적 기법이 매혹적이었다. 한 사물을 다른 사물로 대체하는 시의 기본기를 잘 알고 있는 분이었다. 다른 시「말」에서도 “혀끝에 속력이 있다는 사실을 발견한 건”이라는 느닷없는, 그러면서도 상상이 가능한 낯선 진술이 마음에 들었다. 긴 호흡을 통한 긴장의 유지와 균일한 작품성이 장점이었다. 그러나 메시지 전달이 명확하지 않다는 한계에 부딪혔다.
「인력」외 4편을 응모한 분의 시는 행간이 좋았다. 짧은 호흡의 시지만 언어가 행간을 신선하게 뛰어다닌다. 수준 높은 인식이 존재한다. “한 바퀴를 다 회전하는 손잡이는 없다 딱 반 바퀴 돌고 다시 반 바퀴를 되돌아 문이 열리면”이라는 식의 진술이 그렇다. 다른 시 「트랙」은 시간에 의해서 구축되는 인간의 운명을 비유하고 있다. 시간이 지나고 보니 “던진 것과 놓친 것에는 별 차이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는 인식에 공감했다. 그러나 간혹 건너 뛴 행간을 되돌아 가야하는 불편함이 있었다.
결국 우리들은 「다음날로 가는 새벽」외 4편을 응모한 분의 작품 가운데, 섬세한 요리의 상상력으로 죽음을 응시한 「동물적인 죽음-Melting pot」와 「가로등 밑」을 당선작으로 뽑는 데 합의하였다. 우선 이 분의 시는 잘 읽혔다. 시행을 따라가면서 심상이 그대로 떠올랐다. 그러면서도 은유가 깊었다. 특히 주목한 시는 「가로등 밑」이었다. 정황묘사가 세밀하고 트릭과 능청, 기대 배반의 말부림이 좋았다. 한마디로 시 읽는 재미가 있었다. “비둘기 한 마리가 차에 치었는데/ 바나나껍질 옆으로 날아가 같은 포즈로 누었다”라는 표현들이 그랬다. 공부를 쉬지 않으면 대성할 분이다.
올해 대산대학문학상 소설부문에 응모한 작품은 총 307편으로 예년과 다름없는 문청들의 문학에 대한 뜨거운 열정을 느낄 수 있었다. 심사위원 셋이 3주에 걸쳐 나누어 읽고 총 10편의 소설을 본심에 올려 논의하였다. 본심에 오른 10편의 작품은 다음과 같다.「이티를 위한 치킨」,「그의 여름」,「의자」,「강에서 만난 여자들」,「세 번째 날개」,「물거품이 되기 전에」,「부담」,「세 번째 파일」,「말락에 관하여」,「쿠키, 쿠키, 쿠키는 달린다」, 이상이다.
예심을 거치며 느낀 점을 하나만 얘기하자면 젊은 세대가 아직은 경험하지 못해 이해하기엔 벅찬 삶의 균열을 다루는 작품이 많았다는 것이다. 발상은 기발하였으나 주제의식을 확장시키는 데에는 버거운 작품이 많았다. 마치 너무 큰 옷을 입고 있거나 계절에 맞지 않는 철 지난 옷을 입고 있는 사람 같았다. 특히 부부가 겪는 상실이라든지, 살인을 모티브로 삼은 사건의 전개를 다룬 작품이 많았으나, 신선함을 주는 작품은 전혀 없었다. 소설은 ‘어떻게’, ‘무엇을’ 쓰는가 하는 것보다도 ‘왜’ 쓰는가, 혹은 ‘왜’ 써야만 하는가 하는 간절함과 절심함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을 느끼기 바란다. 이는 작가에게는 동기이자 독자에게는 작가의 주제의식으로, 소설에서 가장 성스럽게 다루어져야 할 미덕임을 잊지 말기를 바란다.
본심을 진행하던 중 유독 눈에 띄는 작품들이 있었다. 다른 작품들과는 달리 플롯이 안정되어 있어서 이대로만 진행된다면 두 작품들 가운데 당선이 유력시되었다. 허나 완성도에 있어 가장 뛰어난 작품을 내려놓을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었다. 소설에 어떤 일정한 패턴이 읽혔기 때문이었다. 이미 여러 곳에서 이러한 소설쓰기를 보아온 터였다. 한 심사위원은 이름과 학교를 가리고 심사를 하는 와중에도 단번에 이들이 어떤 학교 문예창작학과 학생들인지 알아맞히기도 했다. 현재 가장 중요한 문학적 성과를 거두고 있는 작가의 창작패턴을 그대로 베낀 느낌이었다. 이는 다른 심사 자리에서도 자주 출몰하는 얘기이다. 소설은 위에서도 말했듯이 왜 쓸 수밖에 없는가 하는 작가의 문학적 당위성이 가장 중요하다. 선배들의 창작패턴을 답습하고, 기존 작가의 개성 넘치는 소설쓰기를 그대로 따르는 문청이라면 굳이 꼭 소설을 써야하는 것인가, 되묻고 싶다. 문학에 대한 절실함과 간절함을 치부처럼 안고 사는 많은 문청들에게는 새로운 상처가 될 수 있는 일이다. 지양하기 바란다.
최종 당선을 놓고 논의된 작품은 「물거품이 되기 전에」, 「의자」, 「이티를 위한 치킨」, 「그의 여름」이상 네 편이었다. 심사위원들은 최종심에서는 단점이 많은 작품을 걸러내는 방식을 취하고 최종 남은 두 편 중에서는 장점이 많은 작품을 당선작으로 뽑는데 합의했다.
「의자」는 주제의식에 대한 작가의 집중력이 돋보였으나, 전개과정과 결말의 도출이 너무 진부하다는 의견이었다.
「그의 여름」은 작가가 소설쓰기에 이미 좋은 수준에 도달해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주제의 모호함이 아쉬웠다.
「이티를 위한 치킨」은 작가의 개성이 훌륭한 작품이다. 발랄하면서 톡톡 튀는 서사전개와 문장력은 심사위원들로 하여금 끝까지 미련을 붙잡게 만든 좋은 장점이었다. 열심히 정진하여 후에 다른 지면에서 좋은 문학적 성과를 이루기 바라며 아쉬움을 접는다.
올해 대산대학문학상 소설부문 당선작은 「물거품이 되기 전에」이다. 심사위원들은 끝까지 두 편만 놓고 고민을 한 것이 아니라 본심에 올라온 작품 전체를 놓고 다시 처음부터 논의하는 과정을 여러 번 반복했다. 습작기를 지나는 대학생 신분이라는 것을 감안하여 소설의 완성도보다는 소설에 대한 열정과 절실함, 간절함이 깃든 작품을 고르는데 주력했다. 「물거품이 되기 전에」는 소설을 대하는 작가의 진진한 태도와 그 동기가 주제의식으로 승화되어 독자에게 건네는 좋은 질문이 일품이었다. 가독성 좋은 문체도 소설에 대한 집중력을 높여주는 장점으로 읽혔다. 좋은 작가로 성장하길 기대해 본다.
올해 제12회 대산 대학문학상 희곡 부문 응모작품 수는 총 67편이었다. 응모작품 수에 있어서는 작년과 대동소이하다. 작년은 가족 또는 연애 이야기가 주류를 이루었다면 올해는 좀 더 다양한 소재의 이야기와 실험성 있는 작품들을 만날 수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가족 이야기와 연애 이야기는 대학생들의 주된 관심사로 작용하고 있었으며, 전반적으로 많은 작품들이 희곡적 언어가 최종적으로 물질화되는 “무대”를 고려하지 않은 듯 하여 아쉬웠다. 이는 희곡을 읽거나, 연극을 보는 것에 익숙하지 않은 환경에서 기인한 것 같다.
좋은 희곡을 쓰고 싶다면 검증된 희곡과 연극을 부지런히 찾아 읽고, 보기 바란다. 그것만이 좋은 희곡을 쓸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예심을 거쳐 본심에서 최종적으로 논의된 작품은 「어떤 잡담」「진짜 거짓말」 「산 넘어 그곳에」「시에나, 안녕 시에나」 등 이었다.
「어떤 잡담」은 부조리극의 일종으로 현대인의 불안을 내면화시킨 작품으로 읽혔다. 발상이 참신한 점이 강점으로 꼽혔으며, 연극적으로 설정된 카페 안에서 극을 끝까지 이끌어가는 인물들의 능청스러운 대사의 힘도 좋았다. 그러나 극의 완성도 측면에서 다소 아쉬웠으며, 서사가 모호하고 관념적인 것도 문제가 되었다. 몇 가지 문제점들을 고쳐 낸다면 무대화 했을 때 재밌게 볼만한 작품이다.
「진짜 거짓말」은 작품 서두에서도 밝혔다시피, 몇몇 유명한 작가들의 인터뷰를 참고해서 쓴 작품이라서 그런지, 극중 인물들의 대사가 신뢰할 만하였고, 생각하고 곰곰이 되새겨 볼만한 대사도 많은 것이 강점이었다. 무엇보다 현대인의 허구적 윤리의식을 조롱하듯 끊임없이 서로를 속이면서 미끄러져 가는 이야기 전개와 순간순간 경쾌하고 명쾌하게 진행되는 극의 진행이 재밌게 읽혔다. 그러나 극이 전체적으로 평이하고, 결말 부분이 극의 전체를 뒤집을 만한 극적 반전으로 작동되기엔 너무 작위적으로 느껴졌다.
「산 넘어 그곳에」는 어린 소녀를 중심으로 한 한 가족의 상처와 소외, 상실을 사실주의로 드러내고 덜어낸(해소) 작품이다. 작품의 완성도와 서정적인 문장력 등이 다른 여타 작품들보다 단연 돋보였지만, 통속적이고 상투적인 이야기와 이야기 전개에 있어서 어디선가 본 듯한 틀이 못내 아쉬웠다.
「시에나, 안녕 시에나」 이 작품은 극의 진행 방식이 현실과 비현실의 교차와 병치로 이루어져 있으며, 아이인 시에나와 아이의 또 다른 자아인 시에나(성인)가 무대 위에 동시에 존재하면서 내면의 상처를 언어로(대사) 심리화 또는 이미지화시켜가는 독특한 서사방식을 차용하고 있다. 참신한 개성, 극의 긴장감, 변용되면서 반복되는 극적 상황, 분열된 극의 이미지를 시종 지탱하고 있는 메타포적인 언어들, 한 편의 언어극을 읽은 듯한 이 작품은 희곡적 글쓰기가 언어적 사유의 진지한 발현이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읽기에 따라 불친절해 보일 수 있는 주제와 상황 설정은 아쉬웠다.
네 편의 작품을 놓고 심사숙고한 끝에, 자기만의 희곡적 개성으로 연극적 신뢰성을 인정받은 「시에나, 안녕 시에나」를 당선작으로 선정하기로 하였다.
고루한 이야기일수도 있지만 신인 극작가들에게 “연극”이 바라는 것은 자기만의 상상력과 개성적 언어로 무대를 차별화 시켜달라는 것이다.
이번에 응모한 모든 예비 극작가들에게 진심어린 애정을 보내며, 문운이 있기를 바란다.
올해 문학평론 부문 응모작은 총 18편이었다. 엉뚱하게도 영화나 시나리오에 관한 글들이 섞여있어 제하고 보니 15편 남짓이었다. 두 사람의 심사위원은 1차 검토를 거쳐 10여 편을 제외했다. 대개 작품의 줄거리를 따라가는 데 치중하고 있거나 비평의 대상이 된 텍스트들을 논증 없이 매도하는 부류들이었다. 물론 아예 요령부득인 경우는 논외다. 문학평론은 작품 뒤를 마냥 졸졸 따르는 것이어도 곤란하지만 작품에 대한 기본적인 경의를 상실한 채 근거 없는 비난으로만 일관하는 것은 더 큰 문제다. 문학평론의 기초는 무엇보다도 작품에 대한 진지한 사랑에 있다. 이를 망각한 비평은 궁극적으로 자기모멸에 이를 수밖에 없음을 유념해야할 것이다.
당선권에 든 응모작은 4편이었다. 김성규, 이이체, 이영광, 황병승의 시와 김훈의 소설을 함께 다룬 「지금-여기, 잠깐 솟아오른 희망을 위하여」와 박민규의 소설을 비판적으로 검토한 「길 없는 시대의 걸음」, 김영하, 문진영, 장강명의 사회성에 천착한 「장편소설 속 20대 인물과 사회와의 관계에 대하여」, 전석순, 박민규 등의 작품을 대상으로 이른바 루저(loser)문학의 향배를 점검한 「그럼에도 불구하고, 2.7g의 루저들」이 그 목록이다.
「지금-여기」의 경우 전반부의 시 분석이 인상적이었으나 김훈의 『남한산성』으로부터 무리하게 전망을 추출하려 든 점이 걸렸다. 필자의 주관적 주장이 작품의 실상과 본의를 훼손하거나 지나치게 들어 올린 경우라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는 단련된 문장과 명쾌한 논술이 장점이다. 그러나 루저 문화에 대한 사회비평적 시선으로 문학작품을 제압하고 있는 형국이었다. 「장편소설 속 20대 인물」또한 유사한 문제점을 지니고 있는데 안정되고 세련된 논술에도 불구하고 필자가 미리 설정한 문학사회학적 구도 안에서 작품이 압사당하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작품과 직접 대결하기보단 수많은 주석과 전거에 의존하는 방식도 걸렸다.
결국 심사위원들은 「길 없는 시대의 걸음」을 놓고 고민했다. 문학과 사회를 포괄하는 문제의식이 살아있고 자기공부에 있어 일관된 방향이 엿보인다는 점이 미덕이었다. 고정불변의 기성질서를 미지의 것으로 낯설게 만들곤 하는 박민규의 작품세계를 긍정과 부정을 가로지르는 새로운 비전의 시도로 파악하면서 오로지 작품 자체의 예민한 목소리에 귀를 열고자한 점은 신뢰를 주기에 충분했다. 그러나 부정확하고 거친 문장들이 심심치 않게 눈에 띄는 데다 역시 박민규를 대상으로 쓰인 기왕의 대산대학문학상 당선작들이 이룬 성취에 견줄 때 손색이 없지 않다는 점이 걸렸다. 특히 『삼미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을 문학의 정치성에 대한 낙관론의 소산으로 과잉 단순화하는 등의 대목이 심사위원들을 머뭇거리게 했다.
격론 끝에 「길 없는 시대의 걸음」조차 제외함으로써 아쉽지만 올해는 당선작을 내지 않기로 결정했다. 응모자들의 정진을 바란다.
단편영화를 여러 편 만든 감독도 장편영화 시나리오를 처음 쓰는데 어려움을 겪곤 합니다. 그런데 전공자도 아닌 대학생들이 이 정도 완성도의 장편시나리오를 써낸다는 것에 대해 많이 놀랐습니다. 일반 시나리오를 심사할 때와 별반 차이를 못 느꼈기 때문입니다. 이는 비단 긍정적이기만 한 것은 아닙니다. 한국 영화산업이 전문화가 덜 되었다는 의미이기도 하고, 젊은 대학생들의 고유한 성향이 반영된 시나리오를 발견하기 어려웠다고도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대상작으로 선정된 「해도 될까요?」는 초중반의 느슨한 드라마 전개와 단조로운 서사, 개성이 흐릿한 캐릭터들이 개선되어야할 점이라고 여겨졌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단점들에도 불구하고 모티브를 끝까지 힘 있게 밀고 나가, 시나리오를 다 읽고 나면 잔잔한 감동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16세 소년의 성에 대한 관심과 혼란과 이해를 선정적으로 치우침 없이 심도 있게 표현해낸 것 같습니다. 시나리오의 앤드에서 소년이 눈물을 보일 때, 왜 사람은 몰랐던 인생의 비밀들을 처음 알게 되었을 때 환희가 아니라 알 수 없는 슬픔을 느껴야 되는 것인지 생각해보게 됩니다. 소년의 눈물은 미묘한 울림이 있습니다.
대상작 말고도 주목을 끌었던 작품들은 「덧니」「춘앵전」「내 여행자의 이름」등이 있습니다. 「덧니」는 우선 안정된 문장력이 돋보였습니다. 그러나 성소수자의 문제를 다소 낭만적으로 포장해서 표현하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춘앵전」은 성실한 자료조사가 신뢰감을 주었습니다. 그러나 결말 부분이 작위적으로 느껴졌고, 소재의 특별함에 의존하여 모티브가 애매해진 것을 간과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내 여행자의 이름」은 독특한 소재와 분위기가 흥미로우나 기성 특정영화의 영향아래 있는 것 아닌가 염려도 되었습니다. 다소 드라마가 산만하고 밋밋하며 모티브가 관념적으로 흘러버린 경향이 있습니다.
영화는 기성의 문화예술 장르에 비해 고답적인 형식으로부터 자유롭습니다. 동시대적인 소통을 추구하고 끊임없이 새로운 원천을 찾아 해맵니다. 이에 시나리오를 창작하는 젊은 세대들의 새로운 감수성과 경향들은 영화발전에 큰 동력이 됩니다. 대산대학문학상이 발굴한 신인작가들이 그 역할을 충분히 해낼 수 있으리라 기대합니다.
대산대학문학상 심사를 하게 되는 입장에서는 아무래도 투고된 원고에서 대학생 특유의 패기와 실험정신을 기대하게 된다. 더구나 요즘 대학생 세대들은 이른바 창작 동화의 부흥기라 일컬어지던 2000년 전후에 어린 시절을 보낸 이들이 아닌가. 이들에게 십여 년 전 동화의 부흥을 잇는 새로운 감수성과 상상력을 기대해 보게 되는 것은 그리 터무니없는 일만은 아닐 테다. 그러나 투고된 원고들의 전반적인 수준은 기대에 못 미쳤다. 새로운 관점과 참신한 기법으로 ‘동화’하면 갖게 되는 일반의 통념을 깨트릴 수 있는 작품을 기대했지만, 막상 들어온 작품들은 ‘동화스러운’ 것을 흉내 낸 정도에서 머무른 작품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뻔한 잔소리 같지만 어린이가 읽는 문학 작품이라고 해서 이야기가 갖추어야 할 요건을 대충 얼버무릴 수는 없다. 사실적인 이야기든 공상을 기반으로 한 이야기든 공감이 가는 인물 설정과 필연적인 사건이 정교하고도 자연스럽게 어우러져야 우리는 그것을 비로소 동화라 부를 수 있다. 그런 조건을 충족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어린이가 겪는 현실을 꼼꼼하고 예리하게 살피는 관찰력과 작품을 구성하는 능력, 동화장르가 가지는 특성에 대한 정확한 이해가 필요하다. 피상적인 눈으로 어린이의 일상을 바라보는데 그치거나 상상력을 발휘한다는 미명 아래 작품이 지니고 있어야 할 구성 요건을 허투루 다룬다면 그것을 훌륭한 동화라 부르긴 어려울 것이다. 동화작가란 그 누구보다 변덕스럽고 요구 조건이 까다로운 독자를 상대로 글을 쓰는 작가라는 것을 새삼 되새길 일이다.
우선 70편 가까운 응모작을 두 심사위원이 나누어 읽었다. 그 가운데 2차 심사에서 거론할만한 작품을 선별해보니 모두 여섯 사람의 작품이 남았다. 이들 작품에서는 무엇보다 자신만의 이야기를 하고 싶어 하는 의지가 엿보이는 점이 좋았다. 습작기 특유의 미숙함을 조금씩 안고 있기는 하지만 독창적인 자신 만의 이야기를 펼치려 한다는 점에서 일단 점수를 주고 싶은 작품들이었다.
「최고의 파트너」는 할머니의 캐릭터를 인상적으로 그린 작품이다. 기존 동화들이 대개는 손주들을 헌신적으로 돌보는 할머니를 그렸다면, 이 작품은 손주의 시선을 통해 자신의 노년을 외롭지 않게 가꾸려는 할머니의 삶을 그렸다. 문장이 깔끔할뿐더러 이야기 구성 또한 안정적인 느낌을 주었다. 함께 보내온「한글교실」은 「최고의 파트너」보다는 이야기가 덜 다듬어져 흥미가 덜 했지만 다루는 소재 자체가 특이했다. 이처럼 선뜻 다가가기 어려운 노인의 소외 문제나 다문화 가정의 문제들에 대하여 관심을 갖는 태도는 장려할만하다. 다만 이런 소재를 다루다보면 자칫 주제 의식에 얽매여서 이야기가 정해진 틀에 갇힐 염려가 있으니 앞으로도 그 점을 계속 유의하면 좋겠다.
「땅거미」는 이른바 공상성을 가미한 저학년 동화다. ‘땅거미’란 말을 실마리로 하여 현실에서 공상으로 공상에서 다시 현실로 이야기를 전개해 가는 솜씨가 일품이다. 이 작품은 자연의 섭리를 거스르며 사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가 하는 교훈을 던져주는 동화라 할 수 있다. 그 교훈이 겉으로 드러나지 않고 이야기 속에 잘 녹아 있어 믿음을 주는 작품이다. 그런데 함께 보내온 「원격조종 자동차」는 「땅거미」에 비해서 이야기가 부자연스럽게 읽힌다. 작가가 말하고 싶어 하는 바가 앞으로 도드라져 이야기로 충분히 승화되지 못한 탓이다.
「내 마음 속 달 토끼」는 여자 아이들 간의 성적 끌림을 그린 작품이다. 소재 자체만으로 보면 신선한 작품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소재의 참신성에 견주어 이야기 전개가 그리 자연스러운 것 같지는 않다. 이는 작가가 이야기에 지나친 개입을 하고 있기 때문에 생기는 문제가 아닌가 한다. 「울보 아빠」는 교통사고로 죽은 아이를 화자로 하여 자신의 죽음을 슬퍼하는 아빠와 영적으로 이별하는 과정을 그린 작품이다. 발상도 상투적일뿐더러 이야기를 끌어가는 방식도 감상적이고 낡은 느낌을 준다.
「씨앗에 담은 마음」 은 숨이 막힐 정도로 학교생활을 고통스러워하는 주인공이 어느 날 갑자기 초능력을 갖게 되면서 벌어지는 사건을 그리고 있다. 주인공이 초능력을 갖게 된 과정이 갑작스러울뿐더러 그 초능력 때문에 벌어지는 사건들과 그 사건의 결말이 지나치게 작위적이고 안이하게 느껴진다. 함께 보낸「눈동자」또한 답답한 작금의 교육 현실을 SF형식을 빌어 풍자한 작품인데, 소재나 주제가 이미 많이 다루어져 식상한 느낌이 들고 무엇보다 알레고리가 너무 도드라져 있어 작품을 읽는 재미가 덜했다.
「말하는 민들레 편지」는 상상력 자체는 기발한 작품이었다. 발명이 취미인 할아버지가 도시에 사는 손자에게 자신의 머리카락으로 만든 민들레꽃을 날려 보내는데, 그 민들레꽃에서는 할아버지의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얼핏 보아서는 황당한 이야기임에 틀림없는데, 그런 설정을 차분하고 설득력 있게 풀어가는 과정이 좋았다. 낭만적인 결말이 다소 맥이 빠지긴 해도 뭔가 신선함이 느껴지는 작품이다. 「문제집 통신 Q&A」 역시 신선한 발상과 짜임새 있는 이야기 구성이 눈에 들어왔다. 그러나 이 작품 역시 결말이 무난하게 마무리되는 것이 흠이라면 흠이다. 참신한 발상에 비해서 ‘~습니다.’로 일관하는 문체 또한 매끄럽게 다가오지 않았다. 이야기를 전개하는 과정에서 군더더기를 좀 더 덜어내고 문장을 더 다듬는다면 훨씬 깔끔한 작품이 될 것 같다.
「아빠에게 말할 수 있는 것」은 간결하고 함축적인 문장이 우선 인상적이었다. 곰살 맞은 아빠에게 기대었던 여자 아이가 아빠와 떨어져 살게 되면서 차츰 겪게 되는 심리적 변화 과정을 문체의 묘미를 살려 담담하고 깔끔하게 그린 작품이다. 신체 변화를 주인공의 성장을 상징하는 장치로 설정한 것이 다소 낯익긴 해도 그 어떤 작품보다 인물들의 심리와 형상을 잘 살렸고, 이야기를 안정적인 구도 속에 요령 있게 담아내고 있는 점이 돋보였다. 반면 함께 보내온 「망고 향기 비누」는 「아빠에게 말할 수 있는 것」보다는 구성이 다소 산만하고, 이야기가 충분히 전개된 느낌이 들지 않았다.
심사위원들은 「최고의 파트너」「땅거미」「말하는 민들레 편지」「아빠에게 말할 수 있는 것」을 놓고 작품이 지닌 장단점을 검토한 끝에 최종적으로 「아빠에게 말할 수 있는 것」을 당선작으로 뽑기로 하였다. 동화 작가로서 갖추어야 할 표현력과 감수성이 네 작품 가운데 가장 믿을 만하다고 판단하였기 때문이다. 당선의 과정이란 어쩌면 우리 인생에서 작은 한 개 관문을 통과하는 것에 불과할지 모른다. 이 작은 관문 앞에서의 기쁨과 좌절이 모든 분들에게 한층 더 단단한 작품을 쓰게 되는 계기로 작용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