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69명의 응모작 중 심사자들의 눈길을 제일 먼저 잡아 끈 작품은 이태상(전북대)의 「21세기를 걷다」였다. 제목만큼이나 참신한 기법으로 현대 도시의 일그러진 표정을 모던 보이답게 쾌활하고 제재바른 언어로 읽어낸 그의 시는 특히 3연에서 “아스팔트 도로 위에 파란 불을 받고 과속중인 자동차 운전석은/푸른 궤적을 남기고..../나는 파랗게 얼어버렸다.”에서 그 속도감이 절정을 이룬다. 그러나 전체 응모작 중 가장 발랄한 현대성(근대성)을 성취한 이 시는 같이 응모한 다른 두 작품의 어이없는 ‘낙후성’ 때문에 당선권에서 탈락하고 말았다. 「모텔촌 사랑」의 진부한 시적 메타포, 그리고 「가을은 그렇게 떨어졌다」의 케케묵은 정서는 도저히 같은 사람의 동일한 상상력의 소산으로 보이지 않는다.(참고로 대산대학문학상은 응모규정에 밝힌 바대로 3편 이상 5편 이내의 작품을 당선작으로 내게 되어 있다.)
이병일(명지전문대)의「곰팡이」또한 뛰어난 시적 형상이었다. 심사자들은 「21세기를 걷다」 다음으로 이 작품을 당선작으로 만들어보기 위해 기운을 집중해 읽었으나 결론은 ‘아니다’였다. 전자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이 작가도 섬세한 서정과 결 고운 음역을 넘나드는 아름다운 작품인 「곰팡이」를 받쳐줄 만한 다른 시적 역량이 없었다. 게다가 「곰팡이」도 후반부에 이르면 “......어머니의 지극정성” 등 작품으로서의 심각한 균열을 노정하고 있거니와 특히 그의 시의 비유들이 치명적인 결함을 안고 있음에도 그 자신이 그것을 전혀 모르고 있는 것 같아 더욱 안타까운 생각이 들었다. 그 비유들이란 대체로 이렇다. “아낙의 치맛자락이/어머니 가르마 같은 산길을 오를 때” “그리움이 영그는 푸름이 짙어가는 하늘 아래/ 어머니의 치마폭은 솜털처럼 부드러운 살결 같았다” “중공군 병사처럼 그칠 줄 모르는 굵어진 빗줄기” 등등. 도대체 지금이 어느 시대인데 “가르마 같은 산길”인가! 하나마나한 낡은 비유들과 이른바 ‘시적’이라고 잘못 알려진 일체의 장식적 수사를 확 걷어낼 때 그의 시는 새롭게 태어날 것이다. 우리가 어쩔 수 없이 시에 비유를 쓰는 것은 사물의 살아있는 존재 그 자체에 즉(卽)하고 싶어서이다.
박옥경(경희사이버대)의 「연꽃, 젖이 불어」는 기성의 어떤 시도 뛰어넘는 통 큰 상상의 전복이 있으며 “초록의 윤기로 드러난 속살/수 천년 후에도 견딜 씨앗 잉태하느라/어느 새 젖이 퉁퉁 불었다”는 언어 형상은 그 자체에 아직 드러난 바 없는 미지의 큰 세계를 함축하고 있을뿐더러 그 가이없는 세계를 들어올리려는 언어 형식의 발이 바지런하면서도 섬세하게 약동하고 있음을 본다. 그러나 같이 응모한 「상형문자....」와 「축제」등이 앞의 작품에 비해 너무 '범작(凡作)'일 뿐만 아니라 생기가 떨어지고 별다른 매력을 발산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결정적인 흠이었다.
봉하연(서울예대)의 「틈」「그리운 식탁」「집으로 가는 길」등은 강렬한 매혹은 없으나 수더분하면서도 낮은 숨결로 이른바 상처받은 여성 화자의 내면을 시적 공간으로 환치시키는 데 성공하고 있다. 아직 볕보다는 어둠이, 희망보다는 아득한 절망이 행간에 도저하나 “혼자 돌아가는 초침” 소리의 고독 속에서도 “식탁 위로 흐르는 더운 김처럼” 사람살이의 더운 입김 또한 어쩔 수 없이 스며나오고 있음을 그의 시는 예감케 한다.
장시간의 토론 끝에, 심사자들은 이미 읽은 작품을 수십번도 더 읽어가면서, 성에 차진 않으나 그런대로 특유의 내면 공간을 갖춘 봉하연의 작품을 당선작으로 미는 데에 즐거이 합의했다. 그렇게 하는 데는 응모작 5편이 모두 고른 성취를 보여주는 것이 큰 힘이 되었다. 합당한 행운을 차지한 당선자에게 축하를 보낸다.
3백40여 편의 응모작 가운데 집중적인 논의의 대상이 된 작품은「나의 착한 남자 친구」,「馬中적토 人中아빠」,「부패」,「반시대적 고찰기」,「난봉일기」, 「피어싱」 등이었다. 김하영(전남대)의「나의 착한 남자 친구」는 안정된 어조로 자신이 잘 아는 이야기를 무리없이 풀어가고 있다는 것이 강점이나 지나치게 사적인 차원에 머물고 있다는 것이 지적되었다. 김준희(중앙대)의「馬中적토 人中아빠」역시 안정되고 숙련된 솜씨에서 나온 작품이지만 작품 안에 머물고 있을 뿐 울림이 약했다. 신한진(고려대)의「부패」는 기성의 냄새가 많이 나고 모호하다는 점이 문제였다. 이지영(계명대)의「반시대적 고찰기」는「호밀밭의 파수꾼」을 연상케 하는 작품인데 좋은 출발에도 불구하고 요설이 지나친 듯 하며 마무리가 불투명하다.
이인실(계명대)의「난봉일기」는 오늘날 농촌의 현실을 잘 알고 쓴 작품이다. 농촌의 ‘현실’을 다루고 있긴 해도 과거의 농촌소설이 가지고 있는 리얼리즘과는 다른 화법으로 ‘오늘, 여기’의 현실을 충실히 반영하고 있는 소설이다. 소나기가 쏟아지는 듯한 힘찬 화법과 요즘의 젊은 세대의 소설에서 발견하기 힘든 ‘전통적’ 골계를 발견할 수 있어서 반가웠다.
고은주(동국대)의 「피어싱」는 ‘요즘의 젊은 세대의 생각과 세태’를 반영하고 있다는 점이 흥미롭다. 응모작 가운데 이른바 ‘엽기성’을 가진 작품들이 적지 않았는데 문장의 기본, 소설의 기본이 잘 안 되어 있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었다. 이 소설은 그 중에서도 가장 흠이 적은 작품에 속한다. 신선하고 감각적인 문체와 참신한 발상, 조만간 모습을 드러낼 새로운 경향을 배태하고 있는 문제작이다.
이렇게 하여 전혀 다른 성향의 작품 「피어싱」과「난봉일기」두 편을 최종심사의 대상으로 올려놓고 진지하게 논의한 결과 두 편의 우열을 가리기 힘들다는 결론이 나옴에 따라 공동 당선으로 결정하였다. 정진을 바란다.
올해로 2회째를 맞는 대산대학문학상 희곡부문 응모작들의 수준이 고르고 높은 편이어서 반가웠다.
아쉬웠던 점이 있었다면 관념어가 남발되고 있었다는 것이다. 희곡이란 몸의 언어여야 한다. 관념적인 대사를 행동어와 영상어로 승화시킬 수 있어야 한다. 논리적인 설명보다 함축된 정서와 의지가 실린 언어계발에 힘써야겠다.
본심에서 논의된 작품은 「야화모텔살인사건」,「빨래」,「동석(同席)」,「램프의 요정」등 네 편이었다.
이진경(중앙대)의「야화모텔살인사건」은 사건을 종합적으로 끌고가는 구성력이 돋보였고 연극성도 있었으나 작가의 독창적인 시각이 빠져버린 느낌이었다. 또한 대사의 정제가 더 필요한 작품이었다.
추민주(한국예술종합학교)의「빨래」는 노래극의 형태를 띤 작품이었는데 노래와 대사가 유기적으로 조직되어 있지 않았다. 노래극의 가사에는 인물의 의지와 정서가 간결하면서도 묵직하게 녹아있어야 하는데 그렇질 못했다. 또한 극적 반전과 갈등을 작가가 작위적으로 설정해 놓아 자연스럽게 몰입하기가 어려웠다. 그러나 쉽지 않은 소재를 힘있게 끌고나간 활력은 격려받을 만 했다.
김효동(한서대)의「동석(同席)」은 극적 사유가 관념적이었으나 삶에 대한 진지한 통찰이 매력적인 작품이었다. 불교의 선문답을 연상케 하는 정신성과 소재의 신선함이 눈에 띄었다. 허나 극이 지니는 방향성이 없어보였다. 방향성이 없다보니 결과물이 없어보였다. 작가가 이야기를 시작해 놓고 책임지지 않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남상욱(동국대)의「램프의 요정」은 가벼움의 미학으로 일관한 작품이다. 가벼움에도 불구하고 이야기를 경쾌한 행보로 수용 해체시켜 나갔으며 농축된 의미가 담겨있다. 현대 사회의 기호성과 익명성을 남녀의 예정된 이별을 통해 상징적으로 표현하고 있었으며 젊은 날의 고뇌를 동시대적인 감수성으로 드러내고 있었다. 극적 흐름도 유려했고 ‘일주일간의 계약 동거’ 라는 상투적일 수 있는 소재를 오히려 신선하고 밀도있게 휘어감아 올리고 있었다. 당선작으로 뽑기에 부족함이 없는 작품이었다.
최종심에 올라온 2편의 작품 「요단강, 그 사이」,「파랑새 퍼즐 맞추기」 중 「요단강, 그 사이」를 당선작으로 뽑는데 심사위원 전원 이의가 없었다.
2편 모두 1인칭 심점으로 극을 구성해가는 투성을 지니는데, 이는 한국 영화계의 혈실 속에서는 이례적인 일이다. 한국 영화가 언제부터인가 작가의 관점이나 나레이터가 전무한 볼거리로 전락한 사실을 감안한다면, 이번 대산대학문학상 본심에 오른 2편의 시나리오는 고무적이다.
서현정(한국방송통신대)「파랑새 퍼즐 맞추기」는 소녀의 시선으로 현실을 인식하는 구성력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그러나 21세기 대중사회의 속성을 깊이있게 해부해내는 능력과 영화적 재미에 있어서 「요단강, 그 사이」가 단연 빼어났다.
성주현(동아대)의「요단강, 그 사이」는 세속 도시의 속을 들여다 보는 작가의 언어가 상당한 참신성을 갖추고 있는 대신, 완성된 영화적 구성으로서는 보기 힘든 결함이 있다. 당선작으로 머물지 않고, 각 인물간의 관계를 좀 더 종합적으로 연결시킨다면 영화제작자들에 매력있는 작품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총 17편의 응모작 중 우리가 합평 대상으로 삼은 것은 모두 5편이었다.
5편 중 가장 눈길을 끈 것은 장형준 외 2명(창원대)의「카프카와 그의 친구들」이다. 우선 3명의 공동 집필이라는 점도 눈길을 끌었고 보르헤스를 본받은 과감한 발상, 실제적인 읽기를 뒷받침해주는 단단한 지식, 힘 있는 논리 전개와 정확한 언어 구사 등이 주목되었다. 하지만 이야기는 큰데 분량은 적고 여기서 비롯되는 문제들이 현저히 나타났기 때문에 이 글은 가장 먼저 제외되었다. 김중의 시를 분석한 박은애(순천대)의「거울 속에 존재하는 모순, 공포로의 회상」은 상당한 공부를 바탕으로 한 글임은 인정되었으나 글의 목표에 비해 아직 힘겨워 하는 모습이었다. 이세주(동국대)의 김종광론 「고백, 그리고 소설쓰기」는 5편 중 평론으로서 가장 온당한 모습을 하고 있는데 부분적으로 돋보이는 대목들이 적지 않지만 전체적으로 더 정돈되고 다듬어져야 한다. 고은해(연세대)의「새로운 소설의 공간」과 김성현(서울대)의「시간이라는 이름의 마약」은 짜임새 있고 격조 있게 잘 만들어진 글이라는 점에서 단연 돋보였다. 그러나 전자는 허구 이론과 시뮬라시옹 이론을 백민석 소설 독해와 연결시키는 방식에 무리와 혼란이 있고 이 연결이 오히려 백민석에 대한 열린 읽기를 방해하는 면이 있다. 후자는 기형도론이라기보다는 기형도를 자료로 삼은 수필에 가까우며 논지가 다소 도식적이라는 약점이 있다.
응모작들의 대체적인 공통점 중 우려되는 것은 비판의식 없이 텍스트를 그대로 따라가기만 한다는 점, 그리고 비평 행위 속에 자기를 거는 자세가 빈곤하다는 점이었다. 전자의 측면에서는「고백, 그리고 소설쓰기」가 부분적으로 예리한 비판의식을 보여주었고, 후자의 측면에서는「시간이라는 이름의 마약」이 자기를 일관되게 실을 줄 알았다. 수상작을 내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강조할 것인지를 선택해야 했다. 「시간이라는 이름의 마약」을 선택하는 이유는 이 글이 자기를 거는 자세를 갖추었다는 점과 짜임새 있고 격조 있게 잘 만들어졌다는 점을 함께 고려했기 때문이다. 대학생 문학상에서 우리가 기대하는 핵심적인 것은 새로운 가능성이지만 그 가능성은 그냥 생기는 것이 아니라 비평의 기본적 미덕 위에서 어렵게 피어나는 것임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이 점은 수상자 역시 예외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