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인응모작들을 포함한 새로운 세대의 시를 읽을 건 언제나 가슴 설레는 일이다. 거기에는 신인들에 대한 기대와 함께 한국 시의 다양한 미래가 펼쳐져 있기 때문이다. 하여, 기대를 뛰어넘는 좋은 시를 만났을 땐 기쁨도 배가되지만, 기대에 미치지 못할 경우에는 아쉬움도 그만큼 클 수 밖에 없다.
예심과 본심을 거쳐 선자들의 손에 최종적으로 모두 5인의 작품들만 남게 되었다. 다시 여러번 돌려가며 읽은 결과, 먼저「그늘의 깊이」 외, 「눈의 여왕」 외, 2인의 작품들을 제외하였다. 이들 2인의 작품들은 대부분이 자기 고백적인 작은 읊조림에 머물러 있을 뿐, 시의 울림이 개인의 창을 넘어 세계로 건너가지 못했다. 고립된 언어와 소통의 부재를 극복할 방법과 새로운 언어에 자기 목소리를 담으려는 도전 의지가 부족해 보였다. 대산대학문학상은 일반 신인응모제도와 크게 다를 바 없지만, 대학시절의 문예활동과 습작으로 단련된 더욱 빛나는 상상력과 실험정신을 요구하고 있음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시계의 시제」 외, 「붉은 혀가 비릿하다」 외, 「수달의 집」 외, 3인의 작품에 이르러 길고 지루한 논의가 이어졌다. 먼저 「시계의 시제」 외는, 건조하지만 단단한 어조의 직관이 돋보였다. 시의 형식과 언어의 운용에 있어서도 오랜 습작의 흔적이 엿보였다. 하지만, 시편 곳곳에 돌출하는 잠언투의 말들이 눈에 거슬렸다. 그 잠언투의 말들이 세계에 대한 새로운 해석인지, 시의 흐름을 방해하는 모호한 습관인지 다시 생각해보기 바란다. 덧붙이자면, 「시간의 시제」 외에서는, ‘그이의 시간에 세 들기로 결심하고/시계바늘 돌려 보증금 5분을 지불했다//시계를 두고 간 건 시제(時制)를 두고 간 것’(「시간의 시제」중에서)이라고 말할 때, 그렇게 직관과 객관의 경계를 긴장하며 아슬하게 건널 때, 빛난다.
「붉은 혀가 비릿하다」 외는, 투고한 작품들의 수준이 고르고 작품의 완성도도 높았다.「붉은 혀가 비릿하다」에서, ‘비리게 야위어가는’ 늙은개에 대한 세심한 관찰과 응시의 능력은 이미 예비된 시인으로서의 재능을 짐작케 하였다. 「우산꽃」의 간결하지만 그림같이 선명한 상상력이나, 「고래방송국」이 보여주는 고래의 역동적인 이미지를 포착하여 삶의 극적 형식으로 풀어내는 솜씨도 만만치 않아 보였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들 중 어느 한 작품에서, 기성의 시에서 가져온 듯한 시구를 지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미 다른 시에 있는 시구라면 그것의 출처를 밝히는 것이 옳고 이를 소홀히 한 책임은 응모자에게 있다는데 선자들의 의견이 일치하였다.
오랜 논의 끝에 「수달의 집」 외를 당선작으로 뽑기로 하였다. 강이나 하천의 어느 수풀 짙은 물가에 있음직한 「수달의 집」은, 수달의 일상을 통하여 시와 생태적 상상력이 어떻게 적절하게 만날 수 있는지를 잘 드러내 보여주는 시편이었다. 함께 응모한 「나무의 방」도 마찬가지, 어느 숲속 한 나무의 몽상을 통하여 식물적 상상력에 깃든 언어의 울림을 섬세하게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이들 시에서도 아쉬움이 있었다. 치열한 언어의 자각없이 점점 산문화 되어가는 신세대 시의 유행이 부분적으로 엿보이는 것이 그것이었다. 「카프카의 도서관」에서 보이듯, ‘책갈피에서 나는 소멸의 냄새들’이나 ‘나는 『변신』의 고레고리의 삶을 떠올리는 것이다’ 등의 진부하고 관념적인 표현들도 눈에 거슬렸다. 그럼에도 우리가「수달의 집」 외를 당선작으로 선정한 것은, 분명하게 자기만의 시를 담아가려는 개성적인 목소리와 사물을 해석하는 독특하고 발랄한 상상력에 끌렸기 때문이었다. 최종심까지 올라 아쉽게 밀려난 낙선자에게 보내는 격려와 함께, 당선자에게 진심으로 축하드린다. 앞으로 더 크게 다가올 시의 파도, 더 큰 시의 관문을 넘어 대성하길 바란다.
올해는 총 362편의 작품이 응모되었다. 열의로나 작품 수준으로나 대학 문사들의 축제이자 신인등용문으로 손색이 없었다. 한 심사위원은 올해 응모작들이 대체로 예년보다 수준이 고르고 높다고 평가했다. 한편 대학생들이 문학에 접근하는 자세가 의외로 보수적이라는 평가도 따랐다. 사유의 전복이나 과감한 실험을 내세우는 작품보다 안정적이고 익숙한 주제와 소재로 접근하는 작품이 많았다. 이는 문학사를 한창 수용해가는 입장에서 비롯한 경향이라 여겨졌다. 그 가운데에서도 비교적 제 목소리가 또렷하고, 대학생다운 패기가 돋보이는 작품 9편이 본심 테이블에 올려졌다.
「상이허(傷而虛)」는 독순술(讀脣術)에 밝은 화자를 내세워 청각, 촉각, 시각을 새로이 보게 하는 설정이 매력적이고, 은유적인 글쓰기를 통해 풀어내는 관념이 눈길을 끌었다. 「인 더 박스」는 자판기에 사람이 직접 들어가서 일하고, 사람이 자판기로 변하는 환상을 통해 기능인으로 전락한 현대인을 간결하게 풍자해낸 솜씨가 인상 깊었다. 「하와이안 코코넛 브래지어」는 만난 적 없는 아버지를 찾아나서는 대학생 이야기를 제목만큼 유쾌하고 산뜻한 어법으로 그려내 이채로웠다. 복어 독으로 아버지를 잃은 화자의 성장기를 섬세하게 그린 「복어」는 상처에 반응하는 예민한 감수성이 돋보였다. 「세르비아 행 버스」는 후반부의 퇴행에도 불구하고 편견과 차별이 만연한 우리 사회를 이방인의 시선으로 직접 겨냥한 시도가 외려 신선하고 통쾌했다. ‘루저’들의 세계를 인도 여행기에 실은 「긴 것들의 푸람」역시 안정된 문장으로 구축한 서사라든가 세계를 따뜻하게 포용하는 시선이 남달랐다.
마지막까지 선자들의 손에 남은 작품은 「세계지도를 황단하다」, 「오래된 책상은 오래된 생각을 담는다」, 「개가 떠나는 시간」이었다. 이들은 앞서 논의한 작품들의 성과를 고르게 나누어 가진 가운데 각기 양보할 수 없는 개성을 지닌 작품들이었다. 또한 세대의 정체성을 어떤 방식으로든 정직하게 개진한 작품들이기도 하였다.
「세계지도를 횡단하다」는 다단계판매업에 나선 가족의 이야기를 유머러스하게 그려내고 있다. 심각한 얘기를 유쾌한 필치로 그려내는 방식이 요즘 트렌드이기도 하지만 그 태도나 자질이 생득적이라 할 때 이 작가의 장점은 더욱 돋보였다. 그러나 이런 자질이 문장에까지 올랐는가 하는 지적에 이르러서는 유보적이었다. 「오래된 책상은 오래된 생각을 담는다」는 오래된 책상을 두고 여러 화자가 담담하게 풀어내는 삶의 내력에 귀 기울이게 하는 묘한 매력이 있다. 그러나 이야기가 한 발 더 깊이 들어갔으면 하는 아쉬움이 끝까지 남았다. 「개가 떠나는 시간」은 편의점 아르바이트생이 유기견을 기르며 겪는 이야기이다. 소재로서는 새롭다고 할 수 없으나 작가의 개성적인 어법에 힘입어 대학의 풍속도와 젊은 세대의 현실이 실감나게 전달된다. 다소 사변적인 대목들이 아슬아슬하면서도 작가의 언어적 감수성을 엿보는 데는 유감없다. 심사위원들은 「개가 떠나는 시간」의 작가가 제 문학을 시원하게 밀고나갈 패기 넘치는 신인이라는 데 동의하고 기꺼이 올해의 수상작으로 결정했다. 문학의 장도에 동참한 당선자에게 축하를 보낸다.
응모작들은 전반적으로 등장인물이 적었고, 주변에서 소재와 주제를 취한 일상극이 많았다. 극 전개는 사실적인 구성과 우화적인 발상의 작품들이 비슷하게 섞여 있었는데, 학생 작가에게 기대한 좀 거칠어도 날것인 세상읽기나 개성은 잘 보이지 않았고, 미흡한 구조를 뛰어넘는 참신한 주제의 희곡도 알찬 구조의 희곡도 만나기 어려웠다. 심사위원들은 현실에 대한 관찰의 깊이가 크고 주제를 풀어내는 구조의 완결성을 갖춘 작품을 선택하려고 하였으며, 거친 언어와 자극적인 상황들, 말장난들이 여과 없이 대사로 쓰인 글은 심사에서 제외했다. 무대언어는 욕설조차도 미학을 가지고 있어야한다.
응모작들 중 일차 선정한 작품은 「점바기 설화」, 「곯다 곯은」, 「신에게 가는 길」, 「자유로울 수는 없나요」, 「계단」, 「초록별의 전설」, 「TV쇼」이다. 「점바기 설화」는 극 진행이 깔끔하나 고부갈등을 바라보는 시선과 해결책이 구태의연하였다. 「곯다 곯은」은 소재와 극전개가 신선하고 진중하나 너무 큰 이야기를 짧은 희곡에 담는 무리함이 있었다. 「신에게 가는 길」은 인물들을 구체적으로 바라보는 작가의 시선이 엿보였다. 「자유로울 수는 없나요」는 낱말에 대한 의미를 다시 상기시키는 언어에 대한 사유가 있었다. 그러나 감옥이라는 설정은 극적이면서도 인위적인 쉬운 설정이었다. 「계단」은 자신이 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대사만이 아닌 상황과 사건을 통하여 잘 전달하고 있었다. 계단을 뛰어내리는 게임을 설정하여 긴장감을 고조시키고 그 의미를 가중시켰다. 이 작가들이 더 나은 개성 있는 희곡을 써내길 바란다.
최종 지지를 받은 작품은 「초록별의 전설」과 「TV 쇼」이다. 이 중 한 작품을 고르는데 심사위원들은 고심했다. 「TV 쇼」는 현실을 차갑게 바라보는 힘이 있다. 무력하고 할 일을 갖지 못한 인물들의 폐인 된 모습이 희극적으로 재밌게 묘사돼 그들의 풍경을 다각도에서 바라볼 여지를 준다. 그러나 대사들이 주변에서 나누는 농담의 차원을 넘어서지 못해 그 이상의 의미를 찾기 어려울 수 있었다. 「초록별의 전설」은 간결한 문장과 은유들로 연극적인 상상력을 만들고 있다. 그러나 자칫 우화라는 설정 안에 현실이 외면당하고 은유에 그칠지 모른다. 인물들의 적응방식이 절망이자 희망이라는 이중의 의미를 띠고 있으나 소외된 자들의 깊은 절망감에는 이르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초록별의 전설」을 선택한 것은 상황설정의 매력과 대사를 고민하고 다듬은 작가의 진득함이 보여서이다. 앞으로 정진함에 대사의 힘과 주제의 치열함이 더해지기를 바란다.
어떠한 공모전이던...주최측이나 심사위원의 입장에서 보면 ‘당선자 없음’이라는 결과가 가장 곤혹스러운 상황일 것이다. 이번 심사에 불가피하게 이 ‘ 단어’를 사용할 수밖에 없음을 매우 유감으로 여긴다.
올해는 35편의 작품이 응모함으로서 작년에 비해 편수는 줄지 않았으나 작품의 수준이 현저히 떨어졌는데 그 이유가 무엇인지 나 자신도 매우 궁금하다. 어차피 ‘시나리오’란 영화와 절대적 불가분의 관계가 있을지언대 현재 한국영화계의 침체상황이 반영된 것이 아닌가 하여 현장영화인으로서 마음이 가볍지는 않다. 작년에 대학생다운 패기와 상상력이 전체적으로 부족하다는 심사평을 썼지만, 이번에는 아예 시나리오의 기본문법에도 미치지 못하는 작품이 대부분이었다는 점에서 매우 큰 실망감을 감출 수가 없다.문학적 표현이 좀 부족하더라도 영화적 상상력이 풍부하다거나 영화적 상상력이 부족하더라도 문학적 기본기가 되어 있으면 장래의 가능성을 믿어보겠지만, 불행히도 이번에는 그 어떤 작품도 이 두가지 경우에 해당되지 않았음을 밝힌다.
이번에 응모된 작품들의 장르는 대체로 소소한 주제를 다룬 휴먼드라마가 많았는데, 스케일이 작은 이야기가 많아진 것은 비상구가 막힌 20대의 심리적인 현실과도 무관하지 않으리라 여겨진다. 내가 시나리오 심사에서 가장 중요하게 보는 것은 이야기의 개연성과 주제의 명확성이다. 어떠한 이야기라도 개연성이 결여되면, 공감과 설득력이 저하될 수 밖에 없는데, 거의 모든 응모작들이 개연성에서 취약함을 드러냈고 주제를 응집하고 표현하는 힘이 많이 부족하였다. 아주 당연한 이야기이겠지만 시나리오를 잘 쓰기 위해서는 문학적 소양이외에 영화라는 매체의 속성에 대해 이해하는 것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종이 위에 써있는 문장들이 시각적인 이미지와 청각적인 사운드의 힘을 빌려 스크린에 입체적으로 표현될 때 관객에게는 어떤 효과를 유발하는지에 대해 예측하려면 당연히 영화문법에 대해 많이 알아야 함에도 불구하고 응모자들 대부분이 영화에 대해 잘 알지 못하고 시나리오를 썼다는 인상을 강하게 받았다.
영화를 공부하는 젊은 학생들로부터 어떻게 하면 시나리오를 잘 쓸수 있느냐는 질문을 많이 받는다. 내가 그들에게 했던 대답을 다시 반복하자면... ‘많이 읽고, 많이 보고, 많이 생각하고, 많이 써라’ 너무 단순한 충고 같지만 더 나은 방법을 알지 못한다. 수없이 넘쳐나는 책과 영화들 가운데 무엇을 읽고 무엇을 볼 것이냐는 각자의 취향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어떤 분야이던 기본기가 제일 중요한 초석임을 잊지 말았으면 좋겠다. 청춘기에는 조급함을 버리고 우물을 깊고 넓게 파는 작업이 필요하다. 그래야만 오래토록 마르지 않는 샘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나도 직접 시나리오를 쓰는 감독으로서, 매번 영화를 만들 때마다 시나리오 집필이 가장 괴롭고도 힘든 공정이고, 이는 시나리오를 집필하는 대부분의 감독들의 공통된 증언일 만큼 시나리오는 쉽지 않은 분야인 것만은 확실하다. 그렇기 때문에 시나리오 작가의 꿈을 품고있는 젊은 대학생들의 더 큰 패기와 열정, 성실함이 요구되는 것이다. 내년도에는 응모자들의 더욱 큰 분발을 기대하며 올해의 아쉬움을 이만 달래고자 한다.
응모작은 총 9편, 작년보다 적었다. 양적인 축소 탓인지 눈에 확 띄는 글도 잘 보이지 않았다. 대체로 작가론 또는 작품론들인데, 산이 거기 있어서 오른다는 식으로 대상에만 주목하여 주변을 바라보는 시야가 확보되지 않은 글들이 주종이었다. 그래도 기중 읽을 만한 글 세편을 비교적 어렵지 않게 찾아내긴 했다.
소설집 『자전거 도둑』을 중심으로 유니크한 소설가 고(故) 김소진을 해명한 「아들의 아버지 되기」는 잘 쓴 작가론이지만 왜 지금 그가 거론되는지에 대한 자각이 부족하다. 한마디로 비평의 생명인 현재성이 결여되었다고 할까. 그러고 보면 오이디푸스콤플렉스와 연관하여 분석한 내용도 아주 참신하다고 하기 어렵다.
‘미래파’ 시인 장석원에 한편의 시를 통해 접근한 「‘태양의 연대기’론」은 작품과 대결할 줄 아는 자세가 돋보인다. 설명되지 않는 아름다움을 해명하려는 욕구가 비평의 출발이라는 점에서도 그렇지만 분석도 꽤 재미있다. 그러나 이 글의 부제 가 가리키듯, 상동성(相同性)에 지펴있는 게 문제다. 그래서 결국 비평이기보다는 감상에 가까워져 버렸다. 그리고 글의 제목을 잘 붙이는 훈련이 필요하겠다. 제목은 용의 눈동자라는 점 또한 명심하기 바란다.
황정은의 소설 『百의 그림자』를 토론한 「정치적 인간의 탄생」은 제목부터 현재성이 생생하다. 최근의 논쟁을 배경으로 이 특이한 소설에 접근해간 안목은 단연 돋보인다. 그런데 실제 내용은 그리 새롭지 않다. 그저 최근 비평의 행보를 뒤따라간다는 느낌이다.
안타깝지만 이번에는 당선작을 내지 못하게 됐다. 비평이 분발해야겠다. 내년을 기대한다.
작년부터 일반 동화 공모전에서는 좋은 원고 찾기가 점점 힘들어지는 추세이다. 응모 분량 자체가 줄어들었다기보다, 빼어난 작품은 드물고 초보적 습작단계의 글이 대거 투고되는 양상이다. 이에 비해 대산대학문학상 동화부문 응모작은 문학적 수련 과정에서 비평을 거친 작품들이라서 그런지 오히려 일정한 문학적 질을 갖추고 있었다. 심사과정에서 대학생다운 발랄한 상상력을 발견할 수 있었던 점은 즐거웠으나, 젊은이다운 패기와 도전 정신을 끝까지 밀고나가지 못한 채 대부분 구투의 형식을 답습하는데 그친 점이 아쉬웠다.
두 심사위원이 응모작 전체를 나누어 읽고 총 5편을 본심에 올렸다. 각각 장점과 단점이 명확한 작품들이라 상대적으로 단점이 큰 작품을 먼저 제외하기로 했다.
「우리 누나」는 착하고 예쁜 동화였다. 생명을 소중히 여기는 아이의 모습이나, 재혼 가정의 자녀가 성씨로 인해 갈등하는 문제 등 주제는 충분히 공감이 갔지만 소재를 다루는 방식이 다소 지루하고 도식적이었다. 「소리 없는 하루」는 독특한 분위기가 돋보이는 개성적 색깔의 작품이었으나, 전체적으로 감상성이 작품을 지배하고 있어 제쳐두게 되었다.
남은 세 작품 「채널 8번」, 「숨은그림찾기」, 「아빤 몰라도 돼」는 어느 작품을 뽑아도 무난할 만큼 강점이 있었다. 「채널 8번」은 문장과 구조가 동화답고 안정적이었다. 고달픈 아이들의 현실을 단선 처리하여 극명하게 조명한 점, 위험에 처한 아이들이 구제되는 장면을 상상으로 처리한 부분도 자연스러웠다. 그러나 따뜻한 감성이 큰 힘인 반면, 서사의 새로운 매력을 보여주지 못하고 안정을 추구하는데 머물러 참신함이 덜했다. 「숨은그림찾기」는 대학생다운 발랄한 상상력이 돋보이는 작품으로, 유머러스한 진술이 동화 읽는 맛을 더해주었다. 독창적인 시각과 자유로운 서술 능력이 뛰어나지만, 인물과 사건이 내적 리얼리티 속에서 유기적으로 엮이지 못했고, 문제를 낭만적으로만 다루었다는 지적이 있었다.
마지막으로 「아빤 몰라도 돼」는 다른 작품에 비해 문제의식, 진술력, 주제의 구현에서 고루 탄탄하였다. 현실에서 단절된 아버지와 아들을 인터넷 게임으로 소통하게 한 발상이 색다른 재미를 주고, 서로의 사랑을 확인하고도 도망칠 수밖에 없는 상황을 제시해 충격을 주는 한편, 가족이 무엇인지 새삼 곱씹어 보게 하였다. 함께 보낸 다른 한 편의 작품이 내적 설득력이 치밀하지 못한 점이 지적되었지만, 수정보완이 쉽게 이루어질 수 있는 지엽적 문제라 이견 없이 당선작으로 합의할 수 있었다.
당선자에게 축하와 격려를 보낸다. 아울러 동화창작의 꿈을 가진 다른 응모자들도 실망하지 말고 더욱 정진하길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