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싱한 시단의 뒷물결
대학생은 사회 전체에서 가장 젊은, 전위에 서 있는 세대다. 그 에너지는 시대가 앓을 때 함께 앓고 곪았을 때는 과감하게 떨쳐내는 힘으로 분출하곤 한다는 사실을 우리는 역사에서 여러 번 경험했다. 문학에서도 마찬가지로 대학생문학이란 한 시대의 문학의 전위요 첨병이라고 말해도 될 것이다. 4.19를 기점으로 한 대학생 문학은 곧 그 세대의 문학이요 동시에 그 시대의 문학이라 해서 크게 어긋나지 않는다. 80년대를 시작하는 대학생 문학 또한 그러하였다.
한 시대의 내면은 문학으로 가장 잘 투영된다. 특히 시는 곧 그 시대의 환부며 성감이라고도 할 수 있다. 전위에 속한 세대의 내면 세계를 들여다본다는 것은 흥분과 동시에 찬탄을 준비해야만 할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한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문학 축제가 대규모로 이루어진 것은 아마도 근래 처음인 듯하다. 마치 기다렸다는 듯 많은 작품들이 접수되었다. 예심과정 없이 세 사람의 심사위원들이 접수된 작품을 셋으로 나누어 1차로 10여 편씩 추천, 다시 읽고 합평하기로 하였다.
일차 과정상의 소감은 접수된 작품들이 고른 시적 수준을 보여주고 있지는 못하다는 의견이었다. 시라고 하는 문학 장르가 요구하는 기본적인 문법이 지켜지지 않은 시들이 의외로 아주 많았다는 점을 지적할 수 있다. 개인적인 푸념에 머물거나 도덕적 당위를 드러내는 것쯤으로 시를 오해하고 있는 작품들이 많았다는 것이다. 일반적인 문법을 단순히 도치시킨 공허한 시들도 많았다. 그러나 일단 합평에 올려진 작품들의 수준은 기대 이상으로 높았다. 문예창작 전공의 확산 결과인지는 몰라도 전문적인 수련의 흔적이 역력한 작품들이 상당수라는 데 의견을 같이했다.
최종 합평에는 다섯 사람 - 주광혁(강릉대), 정지현(서원대), 이현숙(대진대), 김태헌(단국대), 최영오(협성대), 박경아(동국대) - 이 올랐다 그중 심사의 기준이 되는 완성도와 표현력 등등에 비추어 이내 최영오와 박경아의 작품으로 압축되었다. 두 사람의 작품을 두고 오랜 시간 토론을 거쳤다. 박경아의 시는 세련된 언어감과 완결성이 돋보이는 단아한 시들이다. 그리고 보내온 시들이 모두 고른 수준을 유지하고 있어 믿음직스러웠다.「정물화」를 그려내는 미묘한 시선의 집중력은 유닉크하고도 마력적이다.「초대」에서 "혼자 누워 천장만 바라 봐 왜/거미는 모서리에서 출발할까"와같은 관찰의 깊이는 좋은 시인의 자질을 갖춘 결과라 할 만했다. 그에 비해 최영오의 시들은 완결성 면에서는 전자에 미치지 못했다. 그러나 생각의 굵기나 말에 대한 왕성한 소화력이 큰 장점이다. 텔리비전 프로그램을 실명으로 등장시킨「放生」이나「아버지의 무덤」같은 작품에서 느껴지는 '농경'과 '도회' 사이를 왕래하는 정서적 긴장도 숨은 개성이다. 무엇보다도 시에 드러난 진솔한 마음이 자칫 재치에 빠져버리는 젊은 세대 시인들의 소재주의와 구별되어 믿음직스럽다. 두 사람의 장단점 사이에서 결국 정신적인 근기와 실험성 쪽을 택하기로 합의했다. 박경아에게는 좀더 정신적인 활기를, 최영오에게는 산문으로 빠져버리기 쉬운 사고의 정제를 주문하고 싶다. 나머지 작품들도 모두 입상권에 손색이 없는 작품들이었음을 밝히며 계속 정진해줄 것을 당부하고 싶다. 그만하면 시단의 뒷물결은 아주 싱싱했다.
우선 우리를 놀라게 한 것은 응모된 작품편수이다. 신인작가들을 뽑는 신춘문예나 기성 문예지에 응모되는 양을 웃돌면 웃돌았지 모자르지 않았다. 양만 그런게 아니라 투고된 작품의 수준 또한 그에 못지 않아서 그중 한 두편을 선하는 일이 쉽지 않았다. 젊은 대학생들의 문학에 대한 열의를 느낄 수 있는 좋은 기회였음을 뿌듯한 마음으로 밝혀둔다.
수많은 작품 속에서 우리가 최종적으로 숙고한 작품들은 김재영(한국외대)의「반환점」, 장지훈(고려대)의「마스타베이션」, 김애란(한국예술종합학교)의「노크하지 않는 집」, 이정은(추계예대)의「독어(毒魚)」, 김명호(원광대)의「호루라기 불다」였다.
「반환점」은 심사위원들 사이에 가장 논란이 많은 작품이었다. 연변이라는 공간을 이처럼 세밀하고 현실감 있게 다룬 작품은 기성작가들 중에서도 흔치 않다는 평이었다. 연변에서는 양쪽 다 이방인인 북한 여자 혜순과 남한 남자 지훈의 삶 또한 구체적으로 잘 드러나 있었으며 이야기가 사소설을 벗어나 민족성을 읽어낼 수 있었다는 점에서도 높은 점수를 얻었다. 그러나 응모기준의 80매 내외를 넘어서서 200매 가까운 분량이라 일단 그 자격에 제동이 걸렸다. 너무 능란해 오히려 신선미가 떨어지는 것이 단점일 정도로 잘 쓴 작품이었는데 아쉽다. 「마스타베이션」은 이야기를 이끌어 가는 화자의 초점이 흐트러져 있다는 게 단점으로 지적되었으며「독어(毒魚)」는 전문가라고 여겨질 만큼 낚시에 대한 묘사가 정확했다. 낚시를 인생해 비유해 아포리즘을 유발해내는 솜씨등을 높이 샀으나 이야기를 엮어 가는 과정이 너무 차분해서 패기가 느껴지지 않았던 점이 아쉬웠다.
위의 세 작품을 먼저 뒤로 돌리고 나니 「노크하지 않는 집」과 「호루라기 불다」가 남았다. 이 두 작품 중 「노크하지 않는 집」을 당선작으로 정하는 일은 매우 순조로웠다. 「호루라기 불다」는 법정소설이다. 투고된 작품 중에서 법정소설이라는 점이 이색적이기도 했지만 부분부분 서툴기도 했다. 호루라기는 내가 여기 있다는 것을 알리고 타자에게 구원을 요청하는 장치로서 충분한 역할을 했으나 앞서 말했듯이 표현이 문제가 된 부분이 몇 군데 있었다. 재산싸움으로 인하여 파괴 되어 가는 가족 간의 갈등이 우리에게 너무 익숙하다는 점도 단점으로 지적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탁기에 들어가 자살을 하는 어머니, 밤늦은 지하철 안에서 만난 여자의 핸드폰 끈에 달려있는 호루라기를 불고 싶어 쫒아 가다 성추행범으로 몰리는 장면등 끝까지 서사를 탄탄히 이끌어나간 점을 사서 먼저 가작으로 선택했다.
「노크하지 않는 집」은 매우 참신한 작품이다. 단편소설로서 단점도 거의 없다. 한집의 똑같은 방에 세 들어 사는 사람들은 이름이 없는 사람들. 1호 2호 3호....여자들로 지칭되는 사람들. 그들은 변별점이 없이 기호화 되어 있는데 그것이 현대인의 위치를 상징적으로 암시하는데 중요한 장치가 되어 주었다. 가장 가까이 살지만 서로를 알지 못하는 익명성으로 인해 저질러지는 일들은 시시하게 떨어져버릴 수도 있는 이 작품에 에너지를 발사한다. 똑같아 보이는 것을 시시가각 다르게 묘사해나가는 속도감 있는 문장은 이 작품의 후광노릇을 톡톡히 해냈다. 그 추진력에 의해 단숨에 읽게 되는데 다름을 구분해냈다고 느끼는 순간 다시 똑같이 만들어버리는 대목이 압권이다. 당선을 축하드린다.
응모작품들의 전반적 수준은 상당히 높았다. 특히 몇몇 희곡은 당장 무대에 올려도 되겠다 싶은 수준이었다. 시나리오 부문은 상대적으로 수준이 낮았는데, 이는 시나리오가 희곡에 비해 응모 편수가 적은데다 좀더 전문적인 이해와 기량이 요구되는 장르적 특성 때문이 아닌가 여겨졌다.
희곡의 경우 마지막까지 논의의 대상이 된 작품은 문정연(한국예술종합학교)의「사육제」, 한숙희(한국방송통신대학)의「소나무 아래 잠들다」그리고 이승환(대전대)의「목 잘린 자들의 대화」였다. 이 가운데 「소나무 아래 잠들다」는 간결하고 깔끔한 구성이 돋보이는 작품이었으나, 간결한 것이 힘을 발휘하기 위한 최소한의 내적ㆍ외적 공명(共鳴)이 부족했다는 것이 결함으로 지적되었다.「목 잘린 자들의 대화」는 발상이 재미있고 상상력이나 극을 이끌어가는 솜씨 또한 눈에 띄는 수준이었으나, 각 인물의 이야기들이 아무런 필연성 없이 나열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현실적 환기력이 부족하여 작가가 결국 무슨 얘기를 하고자 한 것인지 모호하다는 점이 결함이었다. 「사육제」는 다른 응모작들의 수준을 현저히 뛰어넘는 성취를 이룬 작품이었다. 인물구성이나 이야기 배치 등 단단한 플롯, 능란한 대사, 적절히 구사된 알레고리 등을 통해 주제를 흥미롭게 전달하고 있다는 점은 이 작가의 재능을 입증하는 데 부족함이 없었다.
시나리오의 경우에는 박민혜(중앙대)의「벌레」와 성주현(동아대)의「눈」이 마지막까지 경합했다. 「벌레」는 인물이나 이야기 구성, 대사 구사에서 일정한 수준은 성취하고 있었으나, 이야기 자체의 진부함, 인물 구성이 작위적이고 그들의 행태 또한 자연스럽지 못하다는 점 등이 치명적인 결함이었다. 「눈」은 발상이 신선하고 발랄했으며, 그 발상을 설득력 있는 인물과 이야기 가운데 흥미롭게 전개시키면서 만만치 않은 주제의식을 유지해내고 있다는 점이 돋보였다.
결국 「사육제」를 당선작으로, 「눈」을 가작으로 뽑는 데 심사위원들의 견해는 어렵지 않게 일치하였다.「사육제」와 관련해서는 근래에 현실주의 작품이 퇴조하는 일반적인 경향에 대한 얼마간의 우려가 있었으나, 엄격히 보면 그것은 작가 자신의 몫은 아니었고, 「눈」의 경우에는 사소하지만 결코 소홀히 해서는 안 되는 사실성(예를 들면 주민등록증이 발급되는 나이에 대한)에 실수가 있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이 있었으나, 두 작가의 재능은 그런 우려나 의구심을 덮고도 남을 만하다는 데에 심사위원들은 의견을 같이했다.
어느 분야든 대학문학상에 거는 기대가 있겠지만 그것이 남달리 큰 분야는 아무래도 평론일 법하다. 창작의 성과들이 다양한 원천에서 나오고 있는 데 비해 비평활동의 주된 근거지는 역시 대학이라고 해도 좋겠기 때문이다. 평론 쓰기는 상당한 지적 수련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젊은 패기나 문학에 대한 열정만으로 일정한 수준에 도달하기는 어렵다. 그럼에도 지식의 세계에 눈뜨면서 사회현실을 자신의 삶과 맺어서 사고할 것이 요구되는 대학생에게, 문학평론에 대한 도전은 젊음의 의미를 시험할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된다. 심사자들로서는 이번 심사가 우리 대학생들의 지적 삶의 한 단면을 확인하는 기회이기도 했다.
전체 응모작 30편 가운데 소설을 다룬 것이 14편, 시가 10편 그리고 문학일반론과 외국문학이 각 3편이었다. 학생들의 문학 공부 경력이 다양한 것처럼, 이 응모작들의 수준도 차이가 났고 아직은 여러모로 미숙한 경우가 많았는데, 그런 가운데서도 평론이 무엇인가에 대한 나름대로의 감을 가지고 써낸 좋을 글들도 여럿 되었다. 미숙한 경우의 몇가지 유형을 든다면, 작품의 내용을 따라잡는 데 그치고 있거나, 기존 해석들의 틀을 답습하거나, 충실한 읽기 없이 섣불리 재주를 부리려하거나, 이론적인 틀을 무리하게 작품에 부과하려 하는 등이 눈에 자주 띄었다. 역시 비평에 있어서도 타성에 젖지 않으려는 정신과 깊이 생각하는 습관이 갖추어질 때, 비로소 젊은 비평의 도전이 실다운 내용을 얻을 것이다.
30편의 응모작들을 나누어 읽은 심사자들은 일차적으로 5편의 작품을 선별하여 작년 12월 11일 대산재단 사무실에서 만나 집중 논의하였다. 박은미(연세대)의「'지금-여기'의 존재론 - 한강론」, 국영은(이화여대)의「가벼움을 향한 변증법적 성장 - 최승자론」, 양승현(명지대)의 「'광장'을 바라보는 양안적(兩眼的) 시선」, 이종호(성균관대)의 「삶의 재구성, 활력, 여성성 - 공선옥론」, 양기민(한양대)의 「새로운 문학의 변이, Djuna」가 그것이다. 이 다섯 가운데 양승현과 양기민의 작품은, 전자는 '광장'에 대한 그간의 논의에 대한 정리에 그쳐 평론의 격을 갖추지 못하고 있는 점에서, 후자는 새로운 유형의 문학의 의미를 옹호하려는 의도가 제대로 뒷받침 받지 못하고 있는 점에서, 우선 고려대상에서 제외하였다. 최종적으로 남은 세 작품 박은미의 한강론, 국영은의 최승자론, 이종호의 공선옥론은 글의 성격은 서로 약간씩 다르지만, 주제에 대한 집중력, 논리의 일관성, 문장력, 작품 읽기의 훈련 등이 상당히 갖추어져 온전한 평론작품으로 손색이 없다.
박은미의 작품은, 한강의 소설을 전체적으로 고려하는 가운데 작품들을 적절하게 동원하고 논의하며 인간 사이의 소통의 문제에 천착해 들어가는 끈질김이 돋보였다. 땅을 떠난 예술가적 인물을 거론하며 주제로 바로 직핍해들어가는 시작에서부터, 땅에서의 만남에서 가능성을 시사하는 마지막 대목까지, 치밀하게까지 여겨지는 논리구사와 작품 읽기가 병치되어 신뢰감을 준다. 문장의 안정감과 명확함도 높이 살만하다. 한가지 아쉬운 점은, 작품에 대한 해설의 차원을 벗어나려는 의식도 노력도 찾기 어렵다는 점인데, 이것은 최종 검토대상에 오른 다른 작품들을 포함하여 실상 거의 모든 투고작들의 공통된 결함이기도 하다.
국영은의 작품은, 최승자의 시를 면밀히 읽는 나름대로의 독법이 흥미롭다. 최승자 시에 나타난 절망과 허무의 문제를 말하는 것 자체는 전혀 새롭지 않으나, 시에 나타난 육체 이미지를 동원해서 일관되게 해석해나가는 뚝심이 만만치 않아 보인다. 대개 단문으로 이어지는 문장도 군더더기가 적고 뜻하고자 하는 바도 비교적 명쾌하다. 그러나 "절망적인 현실을 직시함으로써 그것을 극복한다"는 주제부터가 너무 진부하여, 쉽사리 이해되는 반면 사고의 여지를 별로 주지 않는 점이 큰 한계라고 해야겠다.
이종호의 작품은, 공선옥의 소설에서 주체의 문제를 고찰한 평론으로 앞의 두 글들에 비해서 이론을 좀더 표나게 동원하여 작품 해석에 활용하려고 한다. 공선옥의 소설들을 '파편화된 주체'와 그 재구성이라는 틀로 해독하려는 노력에 그나름의 힘이 느껴지고, 광주와 여성이라는 널리 인정된 이 작가의 두 주제에 이같은 독법으로 접근하여 어느정도 새로운 기여가 가능하였다. 이론화에의 욕구가 앞선 나머지 구체적인 작품 분석과 이어지는 부분이 다소 취약하고, 그 때문에 투박하고 추상적인 주장이 생경하게 드러나는 한계에도 불구하고, 공선옥의 소설을 이만큼 이론적으로 풀어내기도 쉽지 않을 성싶다.
이상 세 작품을 가지고 논의한 결과, 심사자들은 상대적으로 더 치밀하고 완성도가 높은 박은미의 작품을 당선작으로 하는 데 쉽게 합의하였고, 이어서 나머지 두 작품의 각각의 장단점을 두고 잠시 망설였으나, 덜 세련되긴 했지만 도전의식이 더 돋보이는 이종호의 작품을 가작으로 추천하는 데도 곧 합의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