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문학적 장면을 가지고 나타날 것인가. 한 시인의 출현이라는 것이 단지 그의 개인적인 것에 그치지 않고 시단과 문학사의 의미 있는 표정이 되는 것임을 생각해볼 때, 그리고 그것이 더욱이 젊고 도전적인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하는 것일 때, 이 기대는 더 커질 수밖에 없다. 따라서 새로이 막 도래한 어떤 장면 앞에 멈추어 서게 될 것인가, 하는 설레임은 작품들을 읽고 심사하는 내내 이어졌는데, 그래서인지 심사는 논의에 논의를 거듭하게 되는 장고 속에 치러졌다.
올해 시부문은 총 283명이 응모하였다. 응모작들 대부분은 이미지의 탄생이나 이의 감각적 포착, 언어의 기쁨들을 적절하게 감지하고 있어서, 무엇이 시가 되는 것인지를 잘 이해하고 있는 것으로 느껴졌다. 다만 한 가지 지적하고 싶은 것은 응모자들이 선배시인들의 영향에 많이 눌려 있는 점이다. 영향이라는 것은 물론 받지 않을 수 없는 것이고, 받는 것이 받지 않는 것보다 정신적으로 풍부해질 수 있는 것이지만, 문제는 영향의 단순한 배치가 아니라 그것이 확장과 변전을 넘어 탈환의 가능성을 얼마나 보여주느냐 하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최근의 몇몇 젊은 시인들의 어법이나 이미지가 생경하게 감지되고 있는 작품들을 대했을 때 아쉬움이 컸다. 출처를 들고 다니기보다 출처를 뚫고 나가야 할 것이다.
그리고 논의가 길어진 원인 중의 하나는 응모자의 작품들이 각각 수준이 고르지 않다는 데에도 있었다. 한두 편의 작품이 잘 생겼어도 나머지는 다시 태어나기 위해 좀 더 기다려야할 것 같았다. 따라서 작품들의 고른 완성도와 개성을 겸비한 최후의 1인을 찾기 위해 고심해야만 했다.
1차 심사를 거쳐「중력」외 4편,「불의 리듬」외 4편,「몸 없는 집」외 4편,「폭력의 역사」외 4편,「낙타가 타들어간다」외 4편,「당신을 암기합니다」외 4편을 2차 심사에 올렸고, 이 중「불의 리듬」외 4편,「몸 없는 집」외 4편,「폭력의 역사」외 4편을 놓고 최종 심사에 들어갔다. 논의는 쉽지 않았다. 셋 모두 완성도와 나름의 개성을 갖추고 있다고 판단되었고, 나름의 미흡함이 느껴졌다.
「불의 리듬」외 4편은 물질적 상상력의 기하학적 구성이라는 독특한 전개 방식이 돋보였다. 응결과 도약, 밀폐와 전진, 구상과 추상의 대면과 교차가 인상적이었다. 이 힘의 균형이 장점이라면, 또 한편으로 이 균형을 무너뜨린 속살을 보여주어야 하는 것이 앞으로의 과제일 것 같았다. 잠긴 문이 스스로 열리는 지점까지 더 나아간다면 피가 돌고 힘이 붙을 예사롭지 않은 솜씨로 보였다.
「몸 없는 집」외 4편은 오래 들여다본 언어들과 삶의 풍경들, 단정하고 깊이 있는 성찰로 매편마다 차분한 전개를 하고 있어서 눈길을 머무르게 했다. 언어로 내밀한 호흡을 해온 오랜 내력이 느껴졌다. 앞으로 이 호흡이 좀 더 출렁이면서 위태로움을 무릅쓰고, 가파른 자유를 향해 스스럼없이 나아가기를 지켜봐야할 것 같았다.
당선작으로 선정된「폭력의 역사」외 4편은 거침없고 활달한 언어들이 쏟아져 나와 전투를 치르는 언어의 전쟁터를 방불케 했다. 언어의 물욕, 언어의 사심, 언어의 돌출과 이물감이 사물들을 느닷없이 헤집고 벌려놓는 장면들이 신선했다. 언어가 사물들의 위태로움을 편들고 부유하는 것은 언어가 스스로 사물이 되고 사물의 잉여가 되는 생생한 현장이기도 했다. 비록 이 과정이 함께 수록된 시들에서 이미지까지 부서지고 해체되는 무차별성으로 종종 인도되지만, 이러한 위기와 모험에까지 두루 격려를 보낸다. 새로운 시인의 탄생을 축하하며 큰 시인으로 성장해나가길 기대한다.
올해 대산대학문학상 소설부문은 총 334명이 응모했는데, 그 어느 해보다도 흥미롭고 유니크한 작품이 많아 읽는 재미가 컸다. 신선한 발상과 폭넓은 상상력은 기성작가들보다 훨씬 뛰어났고 무엇보다 안정되고 다양한 화법이 흥미진진했다. 주제를 사회적 문제로 확장시키려는 시도가 이루어진 값진 작품들이 유난히 눈에 띈 점도 긍정적이었다. 기시감을 주는 작품들보다는 서툴고 미숙할지라도 자신만의 스타일을 축조해내려 애쓴 흔적들이 엿보이는 작품들이 적잖이 섞여 있어서, 심사위원 모두 만만찮은 양의 작품들을 읽고 검토해야 했음에도 지루할 새가 없었다.
심사위원들은 작품의 완성도와 문장력, 대학생이 쓴 작품에 걸맞게 패기와 실험정신이 돋보이는 작품들을 위주로 우수작을 골라냈다. 「3년째 문학상 심사를 맡고 있다」 「씨에스타」 「주꾸미」 「이누이트의 책장」 「벽」 「시안, 쥐와 함께 잠들다」. 우수작으로 올린 6편 모두 장단점이 뚜렷했기에, 심사위원들은 서로의 동의를 구하면서 한 작품씩 가려낼 수밖에 없었다.
「3년째 문학상 심사를 맡고 있다」는 제도권 문학을 직격하는 언어유희가 볼만했으나 그 이상이 없었다.
「주꾸미를 아는지」는 당당히 밀고나가는 어처구니없는 이야기 자체도 흥미진진했지만, 설화와 밑바닥현실과 학문사회를 넘나들며 풍자와 해학을 뿜어대는, 장대한 스케일과 야심찬 비판력이 가상하고 반가웠다. 하지만 조각조각으로 존재하는 천들을 이어 한 장의 커다란 천을 만들어내는 퀄트 작업과도 같은 이야기 구성 능력이 당선작으로 올리기에는 다소 떨어졌다.
「벽」은 ‘골목을 공유하는 총 일곱 가구’ 앞에 어느 날 시멘트벽이 세워지면서 시작되는 얘기다. 대단히 절제된 표현이 돋보이는 작품으로 우리 시대 벽이 상징할 수 있는 소통의 문제를 잘 형상화한 작품이었다. 그러나 벽이 상징하는 것이 공권력이든, 소통이 가로막힌 소통 부재 현상을 형상화한 것이든, 그것이 또 벽이라는 상징성에 갇혀 버리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새로운 서사를 펼쳐내지 못한 한계라고 할까, 특히 결론 부분의 한계와 도식이 매우 안타까웠다.
「시에스타」는 가족소설이라고 할 수 있는데,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어떤 무력감을 잠으로 표현한 부분이 좋았고 엄마의 생명력을 ‘망고’에 빗대어 표현한 부분이 흥미로웠다. 그러나 설정 자체가 지나치게 비현실적이고 집 안에 끊임없이 개미가 들끓는 설정, 아픈 아버지가 소파에 붙어 있다는 설정 등이 식상했고 무엇보다 작가가 이 상황에 대한 대안을 갖고 있지 못하다는 점에서 아쉬웠다.
결국, 최종 남은 두 작품은 「이누이트의 책장」과 「시안, 쥐와 함께 잠들다」였다.
두 작품은 시소 양끝처럼 극단에 놓인 작품이었다. 심사위원들을 어느 작품을 수상작으로 결정할지 여러 번 고민하고, 반문하고, 의견을 조율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누이트의 책장」은 ‘잠’이라는 소재를 독특한 감각적이고 독특한 상상력으로 ‘그럴 듯하게’ 풀어낼 줄 아는 능력이 돋보여 심사 초반 높은 점수를 받았다. 청년 이누이투들이 잠에 매진하는 이유가 에너지 소비를 최소한으로 줄인 데 있다는 설정이, 오늘날 무기력한 소비 계층으로 전락할 수밖에 없는 청년들의 초상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듯해 값졌다. 문장과 시점이 안정되어 있었고, 과장하지 않고 담담하게 개연성을 획득하는 법을 잘 터득한 듯했다. 책으로 이글루는 쌓는 마지막 장면은 아름답기까지 했지만, 읽는 내내 말랑말랑 젤리를 먹는 느낌이었다. 끝까지 읽고 났을 때 한 봉지나 되는 젤리를 다 먹고 난 뒤처럼 입안이 너무 달고 달아, 신인답지 않게 일찌감치 독자의 구미를 눈치 빠르게 터득한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불러일으켰다.
타협하지 않고 끝까지 밀어붙이는 패기가 돋보인 「시안, 쥐와 함께 잠들다」는 길들여지지 않은 상상력이 압도적인 작품이었다. 상상력이 끌어올린 이미지를 의심하고 않고, 의문하지 않고 벼랑 끝까지 밀고 나가는 뚝심에 심사위원들은 한 목소리로 높은 점수를 주었다. 합성피혁 공장의 현장성을 쇳내 나게 살려낸 점, 허기지고 그늘진 공장 노동자들의 삶을 들여다보고 어루만지려 애쓴 시선 또한 장점으로 작용했다. 접착기를 사랑하는 시안의 고백들, “어울리든 어울리지 않던, 뭐든 올려놓기만 하면 접착기는 척척 합쳐내잖아. 나는 그때마다 몸이 부르르 떨려. 접착기가 납작하게 직물을 누르고 응고시킬 때마다, 둘을 하나로 합쳐 뱉어낼 때마다 다리가 저려와(…)” 같은 부분들은 울림을 주기에 충분히 사실적이고 문학적이었다. 그러나 중반 넘어, 접착기에 대한 집착이 지나쳐 시안이 접착기의 컨베이어벨트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장면은 지나치게 잔혹하고 작위적이라는 지적이 있었다.
심사위원들은 적당히 서사 안에 안주하는 작품을 제외하고 강렬하면서도 솔직하고 거친 작품을 택하기로 합의했다. 길고 고단했던 만큼 의미 있었던 심사를 거쳐 제11회 대산대학문학상의 주인공이 된 당선자에게 진심어린 축하의 박수와 격려를 전한다.
올해 제 11회 대산대학문학상 희곡 부문에 응모한 작품은 모두 74편이었다. 투고숫자로만 보면 작년과 같다. 내용은 주로 문학의 영원한 테마 중의 하나인 가족 이야기와 남녀 간의 사랑이야기가 주를 이뤘다. 특이할 만한 점이 있었다면 최근의 어두운 사회상이 반영된 탓인지 납치와 감금으로 이어지는 인질극이 심심찮게 눈에 띄었다는 정도이다. 그러나 작품의 수준이 전반적으로 평이해서 그 많은 희곡 중에서 이거다 하는 느낌이 오는 단 한 편이 없어서 심사위원들은 고심할 수밖에 없었다.
예심을 거쳐 최종적으로 논의 대상에 오른 희곡은 「미완성 도미노」, 「기억을 그리는 여자」, 「버찌가 열리기까지」, 「플라스틱 스튜디오」, 「무화과꽃 피면」, 「달무리」 등 모두 여섯 작품이었다. 그 중에서 「플라스틱 스튜디오」는 발상은 좋았지만 독백에 의존하는 설명적인 대사와 조금은 유치한 장면설정 때문에 전체적으로 서투른 작가의 솜씨가 드러난다는 이유로, 「무화과꽃 피면」은 작품이 품고 있는 주제를 마지막 결말부에 가서 무화과꽃을 통해 의도적으로 연결시키려는 작위적인 구성이 믿음이 가지 않고 거슬려서 먼저 제외되고 남은 4편으로 초점은 모아졌다.
「미완성 도미노」는 수수께끼 같다. 미궁 같은 세상에 내던져진 존재의 고독을 형상화시킨 것일까? 마치 막막한 우주를 향해 위태롭게 한 발을 내딛는 인간 개체의 비극적인 운명이 감지되는 이 불가사의한 작품은 도미노를 통해 무대를 압축적으로 상징화시킨 만만치 않은 장점을 품고 있어서 여타 희곡에 비해 단연 신선해보였다. 그러나 급작스러운 사건 전개와 명료하지 않은 상황 설정이 작품을 이해하는데 방해가 되었던 것도 부인할 수는 없겠다. 공연으로 올렸을 때 관객과의 소통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점이 부담으로 작용했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한 결함에도 불구하고 이 작가가 쓴 다른 작품이 참으로 궁금해지는 것은 어인 일일까?
제목부터가 심상치 않은 「기억을 그리는 여자」는 시적인 대사와 캐릭터를 구축해서 형상화해가는 힘이 돋보인 수작이다. 군데군데 작위적인 부분이 눈에 거슬리지 않은 것은 아니었지만 그 또한 희곡 자체의 문제라기보다 작가가 의도한 연극적인 허용처럼 다가와서 외려 작품 전체를 처음부터 끝까지 재밌게 읽을 수 있게 하는 풍만한 매력으로 느껴졌다. 소설의 유형에 예술가 소설이 있듯이 예술가 희곡이 있다면 바로 이런 작품을 일컫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묘한 흥미를 끄는 면이 있었던 반면 너무 일반화된 이야기를 정형적인 틀에 맞추어 풀어나가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의구심도 배제하기는 힘들었다. 장점이 큰 만큼 아쉬움이 많이 남는 작품이었다.
‘진정한 사랑이란 무엇인가?’를 속도감 있게 탐색하고 있는 「버찌가 열리기까지」는 하나의 상황을 몰고 가는 대사의 숙련도가 기성작가 못지않은 뛰어난 작품이다. 그러나 대사에만 의지해서 극을 끌고 가다 보니 중반부 이후로 희곡이 급격하게 지루해지는 한계를 노출하고 있다. 대사뿐만 아니라 공간의 구조와 소품 등을 좀 더 입체적으로 활용하는 방법을 고민해본다면 작품 자체에 훨씬 더 싱싱한 탄력성이 붙을 것으로 기대된다. 또 장막희곡을 무리하게 줄이려고 애 쓴 흔적도 옥의 티처럼 여겨졌다.
한 편의 시극과도 같은 「달무리」는 대학생 작가가 썼다고는 믿어지지 않을 만큼 인생을 통찰하는 작가의 어른스러운 시선이 빼어난 작품이다. 작품의 완성도에 있어서도 여느 희곡보다 한 단계 높은 수준과 깊이를 보여주었다. 다만 우리에게 잘 알려진 모범답안과도 같은 익숙한 희곡에 너무 젖어있는 듯한 인상이 짙어 새로운 길을 열어가야 할 신인작가의 작품으로 적당한가 하는 우려의 목소리도 제기되었다. 너무나 당연한 말이겠지만 작가는, 특히 신인작가는 기성의 시각에서 벗어난 자기만의 개성적인 목소리를 통해 자신의 작품을 독자나 관객에게 각인시켜 나가야 하기 때문이다.
「버찌가 열리기까지」와 「달무리」 중에서 오랫동안 고민하다가 조금 더 습작기를 많이 거친 것 같은 믿음을 던져준 「달무리」로 당선작을 결정했다. 젊은 나이답지 않은 예스러운 조숙함은 작가가 노력하기에 따라 얼마든지 자신만의 개성으로 승화시켜 나갈 수 있으리라는 기대를 품게 해주었기 때문이다. 앞으로 심사위원들의 기대가 헛되지 않았음을 증거하는 훌륭한 극작가로 성장해주시기를 부탁드린다. 또한 단막의 분량을 아주 많이 초과한 응모작은 공정성과 공평성의 원칙을 지키기 위해 안타깝지만 당선권에서 제외시켰음을 알려드린다.
덧붙여 이 자리를 빌려 작품을 읽은 전체적인 소감과 함께 희곡을 쓰려는 분들에게 몇 가지 당부와 조언을 드리고 싶다. 우선 소재의 획일성을 탈피해달라는 것. 이번에도 응모작의 대부분이 가족과 남녀의 연애 이야기에서 글감을 빌려왔는데 그러한 소재가 나쁘다는 뜻이 아니라 자신이 하려는 이야기를 통해 남들과 다른 어떤 차별화된 인식을 이끌어내려는지가 중요하다는 것. 원론적인 말이겠지만 모든 창작은 무엇을 쓸 것이냐 만큼 어떻게 쓸 것이냐가 중요하고 궁극적으로는 왜 쓰느냐는 질문과 맞닥뜨릴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다음으로 인물의 형상화가 관념적이고 추상적으로 흐른 작품들이 많았다는 것. 인물은 주제를 끌어내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그 자체가 목적이면서 주제라고 할 수 있다. 그러하기에 생생하게 살아 움직이는 구체적인 인물을 만들어내기 위해서는 각고의 노력이 필요하고 한 인물에 쏟는 작가의 애정과 고민이 깊을수록 그 인물의 두께와 부피가 커질 수밖에 없다는 점을 명심해주셨으면 한다.
마지막으로 많은 작품들이 지나치게 산만한 설명적인 대사로만 이루어져 있다는 것. 설명적인 대사들은 극의 긴장감을 떨어뜨리고 애써 구축했던 캐릭터를 훼손하는 결과를 불러오기 마련이다. 시와 소설과는 달리 희곡의 경우 무대를 상징화시키지 못하면 대사가 많아지고 그때부터 설명을 하기 시작한다는 점을 유념해주셨으면 좋겠다. 극단적인 예이겠지만 한 편의 희곡은 대사 없이 그 밖의 요소들만 가지고도 충분히 쓰여 질 수 있다는 점을 주의 깊게 살펴봐주시기를.
희곡 한 편을 써 냈다는 자체만으로도 이번에 응모한 대학생들은 희곡작가로서 모두 훌륭한 재능을 갖추고 있다고 봐야 하리라. ‘열정이 곧 재능’이라는 말처럼 문제는 누가 더 끈질기게, 오랫동안 글을 붙잡고 있느냐에 달려있는 듯하다. 쉬지 않고 부지런히 글을 쓰는 사람을 당할 자는 없다. 이번에 아쉽게 뽑히지 못한 분들도 여기서 실망하지 말고 정진한다면 조만간 어느새 작가가 되어있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이 풍진 세상에서 희곡을 쓰고 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우리는 이미 한배를 타고 있다는 사실을 늘 기억해주셨으면 좋겠다.
올해는 작년에 비해 응모작 수가 현저히 줄고, 수준 또한 차이가 났다. 수준 미달인 작품들도 줄었지만 눈에 확 띄는 작품들도 보이질 않았다. 오히려 이런 점이 심사를 어렵게 만들고 당선작을 내는데 고심하게 되었다.
총 26편의 작품 중 1/3에 해당하는 9편을 내 나름의 예심으로 골라내었고, 그들끼리의 차이가 확연히 드러나지 않아 결선 작을 따로 추리지 않았다.
「라이어」
이번 응모작 중 최고의 제목이다. 무리 없이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전개가 장점이지만, 익숙함이 단점으로도 작용했다. 주인공 어라희가 50억 예치 고객도, 사랑도 포기하고 고향을 떠나기로 마음먹는 클라이맥스가 급작스럽다. 등장인물 선영의 이름을 주현으로 잘못 쓴 부분들이 섞여있어 성의가 부족해 보인다. 준우와 결혼하고 싶어 하는 선영이 그의 할아버지를 아버님으로 부르는 것도 작가의 실수로 보인다. 하지만 주제 의식이 좋고 기본기가 있는 솜씨다.
「날개」
시나리오 구성은 좋으나, 현실적인 상황에 대한 설명이 너무 부족하여 그 부분에 대한 궁금증이 가혹한 현실의 세 남매에 대한 관심보다 더 무게를 갖는다. 언니 보은이 가출하기 직전 상황이 어땠는지, 아버지는 어떤 사람이며, 세 남매가 그에 대해 갖고 있는 실망과 기대는 무엇인지도 풀리지 않는 의문이며. 또한 갑자기 나타난 아버지의 등장과 그 영향이 단 한번도 언급되지 않아 막내의 꿈이었나 싶을 정도다. 어른이 부재한 가정의 빈곤을 직시한 작가의 의욕은 좋으나 그 문제를 설득력 있게 받쳐줄 상황들이 생략되어 아쉽다.
「중추완월」
사극임에도 대사들이 자연스러우며 주석을 세심히 달아준 작가의 성의가 돋보이는 작품이지만, 줄거리가 직선적이며 이분법적이라 흥미가 덜했다. 가장 아쉬운 건 클라이맥스다. 성문은 왜 연옥에게 초본을 맡겼을까? 이미 연옥이 문수의 감시 속에 있다는 것을 잘 알면서 자신은 물론이고 사랑하는 연옥마저 위험에 처하게 만들었을까? 물론 문수가 연옥의 품에서 성문의 초본을 발견해야 이야기가 술술 풀리지만 그러기에 그 설정은 더 많은 고민이 필요했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맞춤법에 오자가 없고, 한 컷의 영상으로 상황을 압축해서 보여 주는 지문과 해설이 단연 돋보이는 작품이다.
「유진」
연쇄살인마의 딸이 가질 수 있는 자기혐오와 불안감을 잘 표현하였으나, 아버지의 탈옥 이후 묘사되는 살육에 대한 지나친 표현이 할리우드 호러 영화를 떠올리게 한다. 즉, 섬세하고 독특한 심리극이 상투적인 장르 물로 변해버린 느낌이다. 연쇄살인마인 아버지에 대한 인물 설명이 부족한 점도 이 작품을 평범하게 만든다. 유진과 현수의 사랑 이야기가 굳이 필요했을까? 대신 유진의 심리와 그녀를 살인마 취급하는 주변의 냉정함에 더 집중했다면 싶다.
「나쁜 소년들」
왕따와 집단 괴롭힘으로 학교를 등진 소년들이 부모의 냉정함으로 어떻게 망가지는가를 보여준다. 이들에게 따듯한 시선을 갖고 있는 작가의 마음이 반어법적인 제목으로 표현된 듯하다. 종우, 은혁 모두 같은 상처를 안고 있지만 다른 방식으로 분노를 표출하고 있다. 작가는 ‘모든 문제아 뒤에는 문제 부모가 있다’ 고 말하지만, 무척 공감이 가는 말이지만, 그렇기에 가해자인 기찬의 부모에게 제일 비중을 둬야하지 않았을까? 그래야 도미노 식으로 이어지는 폭력의 연쇄성이 결국 부메랑처럼 돌아온다는 경종을 제대로 울릴 수 있었는데 아쉽게도 그 부분은 전혀 언급이 안 되어있다. 클라이맥스인 학교 총기 난사 장면은 눈요기를 신경 쓴 느낌이다. 진중한 주제가 무게감을 잃는다.
「기억의 그늘」
요즘 시나리오에서 많이 보이는 양상이지만 등장인물 이름이 중성적인 경우가 많고 특히 기존의 관념으로 볼 때 성별을 반대로 짐작하게 하는 이름도 많다. 이럴 경우 반드시 성별을 기입해주길 바란다. 주인공인 상연과 여운. 몇 장을 넘길 때까지 성별을 알 수 없어 몰입이 힘들었다. 여고생 상연의 캐릭터는 무리 없이 설득력을 지니지만 남교사인 여운은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 많다. 28세인 남자로 보기엔 지나치게 순진해서 비현실적인 느낌이 들고, 무엇보다도 그가 왜 자꾸 모래시계를 이용하여 기억을 지우는지 이해하기 힘들었다. 자신도 의식하지 못하는 건지, 괴로우면 습관처럼 기억을 지우는 건지 모호했다. 차라리 ‘새 시대 정신과’ 설정이 빠졌다면 더 현실적이 되며 이야기가 힘을 갖지 않았을까? 난봉꾼인 아버지와 무기력한 어머니를 둔 어른스러운 여고생이 현실감이 떨어지는 개인주의적 성향인 남교사를 만나 그를 성장시키고 떠나는 이야기로 풀었어도 충분히 매력적이었으리라 짐작된다. 판타지가 섞이면서 오히려 방해가 되었다. 하지만 밀도 높은 대사도 많아 보는 이를 집중시킨다.
「해도 될까요?」
딱히 흠잡을 것도 없고 딱히 내세울 것도 없지만 묘한 매력이 있다. 친구 같고 애인 같은 젊은 엄마가 재혼을 하게 되어 마음의 혼란을 겪는 중학생 영하의 심술과 의젓함이 혼재하여 재미를 주고 있으나, 여자 친구와의 첫 관계 후 마음의 방황을 하는 이유가 애매모호하게 표현되어있다. 관객에게 많은 걸 제공하려는 작가의 의도일 수 있으나 자칫하면 싱겁게 보일 수 있는 위험도 있다. 이야기 전개가 전체적으로 귀엽고 산뜻해서 호감이 간다.
「내게 온 노숙 소녀」
처음부터 끝까지 한결같은 톤으로 수월하게 읽힌다. 그만큼 예상을 벗어나지 않는다는 뜻이다. 전개 방식에 있어서 절실함과 치열함이 보이지 않는다. 잘 닦인 아스팔트길을 사뿐사뿐 걸어가는 느낌이다. 미라가 자살을 결심하게 되는 경위가 약하며, 젊은 나이에 급작스런 암 선고를 받은 지석이 자신의 상황을 받아들이기도 전에 소아암 환자들을 보고 측은해하는 것도 공감하기 힘들다. 버킷 리스트를 작성하게 되는 연유도 순식간이라 그의 마음을 따라가기 버겁다. 지석이 6개월 시한부라는 고백을 듣고도 미라는 별 반응이 없는데 그녀답지 않다. 이런 식으로 극의 전개와 밀도가 헐겁지만, 작가가 말하고자하는 바가 긍정적이고 건전하여 점수를 샀다. 물론 지석과 동료들, 미라의 가족들 모두 선하고 단선적인 캐릭터라 기승전결의 기복도 약하고 부족한 점이 많지만, 희망적인 주제를 추구하는 작품이라 격려해주고 싶다.
「내 이모」
주인공 13세 소녀의 캐릭터가 당차고 매력적이다. 쉽게 볼 수 없는 인물이다. 가난한 가족 때문에 괴로워하면서도 마음으로 모두를 품는 조숙함이 유쾌한 분위기 속에 순간순간 숙연함을 자아낸다. 이 작품을 당선작으로 결정하기까지 많은 고민이 있었다. 당선작으로 뽑기엔 부족함이 보여 올해엔 당선작을 내지 말지 그래도 이 작품을 당선작으로 낼지 결심이 서지 않아 여러 번 읽어보았다. 이야기 구성이나 등장인물들 면면은 개성과 힘이 느껴지나 지문이나 해설의 문장이 거칠어서 기본기가 부족하단 인상을 준다. 게다가 맞춤법과 띄어쓰기의 오자가 여러 군데 드러나 몰입해서 읽기가 힘들었다. 극 속에 나오는 코스모스 詩나 즉흥 랩 가사들은 높은 점수를 받을 만하나 시나리오는 대사만 공들이면 되는 게 아니다. 진정한 실력은 지문과 대사에서 발휘됨을 마음속에 새겨두길 바란다. 또한 맞춤법은 글의 품격이며 그 수준을 알 수 있는 바로미터라고 여기기에 이번 공모전에 응시한 다른 작품들에도 같은 조언을 하는 바이다. 저자의 눈에는 절대 보이지 않는 오자들이 반드시 있다는 사실도 개인 경험으로 잘 안다. 하지만 여러 번 읽고 검토했는데도 놓친 오자가 아닌, 틀린 맞춤법이나 등장인물의 이름을 혼동해서 쓰는 등의 무성의한 실수는 자신이 쓴 글에 대한 무관심과 무책임함처럼 보여 읽는 이도 기운이 빠진다. 그럼에도 「내 이모」에게 최고점을 준 이유는. 소재가 신선하고 작가의 개성도 보이며, 또한 소시민의 삶을 따뜻하게 지켜보는 작가의 시선 때문이다. 등장인물 모두 지극히 현실감을 주면서도 매력을 풍겨 읽는 이에게 그들을 응원하게 만드는데 이것 또한 작가의 역량이리라. 하지만 마지막에 혜리와 유리와의 만남이나 그 후의 에필로그는 꼭 필요했을까? 주인공 소녀 혜리는 여전히 조금은 냉소적인 매력을 지닌 채로 남아있었음 하는 바람이다. 고민 끝에 당선작을 낸 만큼 다음 작품을 기대해본다. 응원하고픈 애정이 없었다면 고민도 적었을 테다.
평론부문 응모작은 고작 10편, 작년에 비해 흉년이다. 문학작품을 대상으로 삼지 않은 논설 비슷한 에쎄이도 한편 껴묻어 있으니, 실제로는 9편에 지나지 않는다. 그래서 그런지 질적으로도 높지 않다. 왜 지금 그 작가/그 작품/그 현상 들이 문제로 되는지를 진중히 의식하지 못한 평범한 리포트 비슷한 글들이 많았다. 느닷없이 주관적인 감상문들도 없지 않았다. 다시 강조컨대 평론의 생명은 살아있는 문제의식이다. 9편을 통독하고 2편, 「몰락하는 주체들과 해방구들: 동시대 작가 2인의 이색(異色)적 작품 통해 대면하는, 점멸중인 인간 존재지위와 치열한 몸부림」과「독학자 그리하여 이행하는 자의 산문: 배수아와 이행하는 말과 이야기들」을 골라냈다. 골라내긴 했으되 제목부터 난감하다. 요령부득의 긴 부제를 거느린 전자나, 설명이 지나치다 못해 제목과 부제가 중복된 후자나, 글쓰기 훈련이 부족하다는 느낌이 들던 것인데, 그래도 본문은 다르니 다행이랄까.
문장력이 유려한 후자도 그렇지만, 현학적 문체를 끈덕지게 구사하는 전자 또한 읽을 만했다. 어느 작가 또는 어느 시집/단편집을 대상으로 한 손쉬운 접근이 대부분인 터에 이른바 주체가 최근 젊은 소설에서 어떻게 해소되고 있는지를 분석한 전자는 문제를 구성하려는 노력이 나름으로 진지하다. 그런데 문제의식에 비해 논증은 허술했다. 배명훈과 이장욱의 단편, 단 두 작품이 이 거창한(?) 주제를 감당하기도 어렵거니와, 그 해석도 적실한 듯싶지 않다. 아마도 외국이론들에 너무 의존한 탓일지도 모른다. 요즘 더욱 거세지는 해외문학파적 유행이 정말 골친데, 텍스트가 비평의 알파요 오메가임을 다시 강조하고 싶다.
이에 비하면 배수아의 장편들을 분석한 후자는 안정적이다. 난해한 배수아의 소설세계를 섬세한 문체로 점검해 나가는 솜씨가 만만치 않다. 정치적 자유로 환원되지 않는 다른 자유의 표현에 기초한 새로운 언어의 탐색에서 배수아 문학의 요체를 간파한 후자는 그렇다고 포스트모더니즘으로 경사하지도 않는다. 오히려 배수아의 외출은 리얼리즘만이 아니라 포스트모더니즘으로부터도 감행되고 있음을 명쾌히 지적함으로써 배수아의 급진성을 정확히 짚어낸 것이다. 물론 이처럼 간명한 파악이 지닌 문제점이 없지는 않으나 배수아 속에서 길을 잃은 평론들이 적지 않음을 염두에 둘 때, 본질을 꿰뚫을 줄 아는 눈매야말로 비평가의 미덕이다. 다만 시야가 제한된 게 문제다. 배수아의 앞과 뒤, 그리고 옆이 부재한다. 더구나 해석만 있지 비판이 없다. 분석과 평가가 결합될 때 비평이 완성된다는 점을 명심하기 바란다.
두 글을 놓고 머뭇거렸지만, 이론의 간섭으로부터 자유로이 텍스트와 씨름하여 치밀한 문체로 독자적 논리를 구축할 줄 아는 후자의 가능성을 더 높이 평가하여 당선작으로 삼기로 하였다. 축하한다.
올해 응모작들은 어린이 주인공을 1인칭 화자로 하여 쓴 사실(寫實)적 경향의 작품이 많았다. 대화와 사건을 엮어나가는 솜씨는 무난했지만 서로 다른 사람이 쓴 작품이라는 것이 잘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소재나 문체가 흡사했다. 아이들 사이의 갈등, 어른들의 몰이해, 부모의 갈등으로 인한 아이의 고민 등이 자주 다루어지는 소재였다. 또한 간결한 문장을 추구하는 것은 좋은데 그러다 보니 문장의 호흡이나 문체적 특징이 약해서 문학적 향기가 부족했다.
사실 어떤 면에서 동화 창작은 소설 창작보다 어렵다. 어린이 독자의 눈높이에 맞추면서도 깊이와 참신함을 보여 주어야 하기 때문이다. 동화에 막 입문했을 뿐 경륜을 쌓지 못한 대학생이 쓴 작품이라는 것, 그리고 문예지에 발표되는 동화의 일반적인 수준을 고려하면 상당수의 응모작이 수준에 올랐다고 평가할 수도 있겠다. 39명이 응모해 지난해에 비해 응모 편수도 늘었다. 두 명의 심사위원이 나누어 읽고서 일차로 7명의 작품을 골라 꼼꼼히 검토하고 의견을 나누었다.
「백만원짜리 원피스」는 집안 형편이 어려워졌으나 원피스를 백만원짜리로 아는 친구들의 오해를 풀어주지 못하는 주인공의 심리가 잘 표현된 작품이다.
「아름, 다운, 우리」는 세 마리의 뱀을 기르는 아이의 심리가 자연스러우면서도 생생해서 눈길을 끌었다.
「말할 수 없는 범인」은 물건을 훔치는 모범생 웅이와 이를 목격한 ‘나’의 상황과 이로 인한 갈등을 섬세하게 드러낸 점에서 가능성을 보여 주었다.
「둥근 저녁」은 빚 때문에 어려워진 생활과 가족 갈등을 견뎌내는 아이의 상황을 리얼리즘 정신으로 과장이나 왜곡 없이 접근한 작품이다.
「난 도깨비야!」는 재개발로 쫓겨날 처지의 아이가 자신이 처한 난관을 도깨비에 의탁하는 것이 동화다운 발상이었다.
「언제나 웃게 해주는 약」은 발명품을 소재로 한 소동을 다루면서 슬그머니 웃음을 울음으로 전복해 그 의미를 새겨보는 점이 흥미로웠다.
이 작품들이 모두 1인칭 어린이 화자를 내세운 데 비해 유일하게 동물을 의인화한 작품인 「티모를 찾습니다」는 죽음을 앞두고 주인을 떠난 고양이가 어린 생명을 매개로 주인과 다시 나누는 교감을 실감나게 표출하였다.
이 일곱 편의 작품은 각기 장단점이 있어 선뜻 어느 작품을 선택하기가 쉽지 않았다. 제목은 작품에 대한 인상, 작품의 의미 구성을 좌우하는 중요한 요소인데, 제목이 내용을 너무 직접적으로 지시해주는 등 작품을 들어올리는 힘이 약했다. 제목의 효과를 충분히 살릴 수 있도록 적실한 제목을 붙이는 것도 중요한 창작 역량이다. 두 사람의 심사위원이 각기 더 압축해 추천한 작품은 「아름, 다운, 우리」 「언제나 웃게 해주는 약」 「티모를 찾습니다」 세 편이었다. 그중에서 공통적으로 좋은 평가를 받은 「언제나 웃게 해주는 약」을 당선작으로 뽑기로 합의하였다. 안정적인 다른 두 작품에 비해 「언제나 웃게 해주는 약」은 활달한 어조와 과장된 상황, 그러면서도 전복적 상상력으로 웃음과 울음의 의미를 짚어보는 주제의식 등에서 신인다운 패기와 의욕이 앞서 있었다.
더 많이 읽고 쓰고 아이들 현실에 진정성 있게 다가갈 때 작품도 일취월장할 것이다. 응모자들의 노고에 박수를 보내며, 모두들 자신에게 열려진 내일을 잘 포착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