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 361편의 응모작들 중, 본심에서 논의하기로 결정한 작품은 9편이었다. 대개가 문장이나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솜씨는 고른 수준을 유지하고 있었지만 ‘대산 대학 문학상’에 걸맞은, 신선함이나 패기, 개성 같은 점들을 염두에 두지 않을 수 없었다. 작품의 완성도만으로 보자면 한 편만 선택하기는 쉽지 않았던 심사였다고 말해야 할 것이다. 9편 중에서도 특히 논의의 대상이 되었던 응모작들은 다음과 같다.
「펭귄은 어떻게 달에 가게 되었나」는 필력이 느껴지는 작품이었다. 그러나 나와 윤과 펭귄의 관계가 자연스럽게 읽히지 않고 또한 필연성 같은 면도 부족하다는 평이었다. 응모자가 많이 쓰는 설명적인 문장을 소설 속에서 어떻게 더 효과적으로 사용할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을 조금 더 해보기를 당부한다. 마지막 짧은 단락은 본심에서 이야기 나누었던 소설들 중 가장 매력적이었다.
「바스락거리는 몸」은 문체나 한두 문장만으로도 이야기 및 단락을 끌고 나가는 힘이 인상적이었다. 이 소설을 읽고 나면 정말 ‘재미있는 일이 생길 것’ 같은 즐거운 기대가 든다. 그러나 기성 젊은 작가의 개성이 이 소설에서 크게 눈에 띈 점이 못내 아쉬운 점으로 남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응모자가 아직 스스로 발견하지 못한 듯싶은, 자신만의 신선한 글쓰기 방식을 갖고 있는 점이 분명히 있다. 그 개성을 발견하고 넓혀가기를 바란다.
「미순이」는 한 심사위원의 거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은 응모작이었다. 한 장애인의 인생을 필력 있는 전라도 방언으로만, 그것도 유쾌한 파노라마로 그려낸 점은 다른 응모작들에 비해 단연 눈에 띄었고 그만큼 개성적인 데가 있었다. 그러나 이야기는 있되 소설에서 필요한 구조가 빠져 있다는 느낌이 컸다.
「아무것도 아닌, 기울어짐」은 당선작과 끝까지 논의를 할 수밖에 없었던, 아쉬움이 크게 남는 응모작이다. 그러나 마지막까지 망설인 이유는 뜻밖에도 이 소설은 독자의 기대를 전혀 배반하지 않거나,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이야기나 인물의 행동 같은 패턴들이 이미 독자에게 읽힌다는 점에 있었다. 그것을 클리셰하다라고 표현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정확한 문장이나 개성은 높이 평가하고 싶다. 첫 단락은 기억에 오래 남을 만큼 아름다웠다. 신인다운 풋풋함도 살아 있었다. 이런 작품이 ‘젊은 소설’이다, 라는 느낌도 들게 했다. 지치지 말고 계속 정진하기 바란다.
올해로 제10회를 맞는 대산대학문학상 수상작으로 조우리의 「개 다섯 마리의 밤」을 선정했다. 이 소설은 문장이나 구조, 내용이 매우 안정돼 있었다. 습작을 많이 해봤을 뿐만 아니라 이 응모자가 책읽기의 시간, 경험 또한 만만치 않게 갖고 있을 거란 짐작을 하게 했다. 글쓰기를 진정으로 좋아하는 사람이 쓴 소설이 이런 것이겠지, 라는 생각도 갖게 한다. 다만 우리가 이 소설을 두고 오래 이야기를 나눈 데는 이런 이유가 있었다. 소설의 도입부에서 사람들은 버스를 타고 어디론가 간다. 그것이 희망버스인지 아닌지, 그런 목적으로 가는 것인지 아닌지 분명하지 않다. 문장도 이야기도 그렇다. 장점으로 보자면 어딘가 모호하고 불분명한 것, 다 말하지 않는 것, 흐릿한 안개에 쌓인 듯 한 여운, 여백을 주는 소설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혹자는 명확한 이야기나 개연성이 결여되어 있다고 느낄 수 있다. 심사위원들은 앞의 이유로, 그 모호함을 개성과 장점으로 여기고 당선작으로 선정했다. 담담하고 여운이 오래 남는, 놀라울 정도로 매끄러운 소설이다. 앞으로의 작품이 무척 기다려진다. 당선을 진심으로 축하드린다.
비록 당선되지는 못했지만 응모자들, 그리고 본심에서 이야기 되었던 작품의 응모자들에게는 정진을 바란다. 응모작의 수준이 심사위원들의 기대치를 넘었던, 그런 즐거운 심사였다.
어언 십년 째를 맞이하는 올해 대산대학문학상 희곡 부문에는 모두 74편의 작품들이 들어왔다. 작년에 비해 11편이 늘어난 것으로 봐도 희곡에 대한 관심이 부쩍 높아진 점과 그 열기를 짐작할 수 있다. 응모작들의 작품경향은 대부분 현실사회의 문제와 관련이 깊었다. 정치적인 이슈와 화제에서부터 88만원 세대를 살아가는 대학생들의 고민과 갈등을 담은 희곡들에까지 분포는 다양했지만 유독 자살과 죽음에 관한 이야기들이 많았다는 것은 그만큼 이 시대의 젊은 청춘들이 느끼는 우리 사회에 대한 좌절과 절망이 크다는 사실을 시사해준다고 하겠다.
1차 가택심사를 거쳐 최종적으로 심사위원들의 손에 남겨진 작품은 「궤도를 이탈하여」, 「물에 녹는 물고기」, 「아버지가 방으로 돌아가신다」, 「몽골 익스프레스」, 「삼미약국」, 「섬」, 「과일 바구니」 등 모두 일곱 편이었다. 두 명의 심사위원들은 일곱 편의 희곡 중에서 「물에 녹는 물고기」, 「아버지가 방으로 돌아가신다」, 「삼미약국」을 중심으로 서로의 의견을 교환하였다.
「삼미약국」은 지방 소도시의 약국에서 벌어질법한 일상적인 생활의 풍경들과 인물들의 내밀한 사연을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고 세련되게 풀어나간 작품이다. 무엇보다 이 희곡이 품고 있는 장점은 절제된 문장구사력과 더불어 잔잔한 정서를 통해 표출해내는 세상을 바라보는 작가의 물기 어린 시선일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연민이 자칫하면 우리가 주변에서 흔히 발견할 수 있는 익숙한 감상으로 흐르기 쉽다는 점에서 선뜻 당선작으로 밀기가 망설여졌다.
「물에 녹는 물고기」는 사랑의 현상적인 외피에 감춰져있는 본질, 이를테면 사랑의 뜨거움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언뜻 보면 두 남녀의 밀고 당기는 유치한 연애 이야기 같은 이 희곡에 심사위원들이 기꺼운 호의와 지지를 보낸 것은 자신의 직접적인 경험이 바탕이 됐을 듯싶은 글의 진정성 때문이었다. 그런데 그러한 미덕이 아이로니컬하게도 결국엔 이 작품을 자신의 경험 테두리 안에만 가두어놓는 한계로 작용한 것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심사위원들 간에 가장 논란이 됐던 작품은 「아버지가 방으로 돌아가신다」였다. 이 작품은 극의 배경이 되는 시간과 공간이 철저하게 계산된 희곡이다. ‘문’으로 압축되는 상징과 은유가 해독 불가에 가까운 난해함을 던져주었지만 오히려 그 모호함이 특별한 매력으로 다가왔던 독특한 작품이다. 그러나 미궁을 헤매는 듯한 미스터리 구조가 마지막에 가서도 완전히 해소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심사위원들은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
글의 분량이 장막에 가까운 「물에 녹는 물고기」는 단순한 구조 속에서도 시종일관 팽팽하게 이야기를 끌고 가는 작가의 역량을 고려할 때 이번 기회가 아니더라도 곧 연극 현장에서 만날 수 있으리라는 기대감이 있어 일단 제외됐고 논의의 초점은 「아버지가 방으로 돌아가신다」와 「삼미약국」 두 편으로 모아졌다.
기성작가의 솜씨를 빼 닮은 안정감 있는 노련함에 손을 들어줄 것인가 아니면 불투명하고 흐릿하지만 그 속에서 자신만의 색깔과 목소리를 선명하게 각인시킨 실험정신과 패기에 높은 점수를 줄 것인가를 놓고 심사위원들은 오랜 시간동안 심사숙고했다. 그러나 각각의 희곡이 품고 있는 미덕과 장점만큼이나 그 결함과 단점도 뚜렷해서 좀처럼 결론이 나지 않았다. 토론을 거듭할수록 어느 한쪽으로 의견이 모아지기는커녕 두 작품이 당선작이 되기에는 미흡한 점들이 계속해서 눈에 들어왔다.
쉽게 가닥이 잡히지 않자 심사위원들은 처음으로 되돌아가서 중심논의에서 배제했던 1차 심사를 통과한 나머지 작품들을 다시 정독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 인물의 설정이 명확하지 못하고 극구조가 느슨해서 주제의 집중력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한쪽에 밀쳐놓았던 작품 한 편을 새롭게 꺼내들게 됐다. 그 희곡이 바로 「섬」이다.
「섬」은 앞에서 언급한 몇 가지 결함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결함을 충분히 상쇄시킬만한 미덕도 함께 갖추고 있는 작품이다. 고시원의 방들을 망망대해에 떠 있는 섬에 비유하고 있는 이 작품은 그 섬을 거쳐 간 수많은 사람들의 얼굴을 떠올리게 한다. 그 얼굴들은 문명화된 사회에서 고립되고 소외된, 그리하여 캄캄한 밀실에 외롭게 버려져있는 현대인의 자화상에 다름 아니다. 또한 전망 없는 세대를 살아가는 꿈을 잃어버린 청춘의 일그러진 초상이기도 하다. 뿐만 아니라 압축과 상징을 통해 암담한 현실의 공간을 과거와 미래가 교차하는 환상의 공간으로 확장시킨 뛰어난 상상력도 일품이었다.
「아버지가 방으로 돌아가신다」와 「섬」은 작가가 고심해서 열심히 쓴 흔적이 드러난 작품들이다. 그리고 두 작품 모두 작가의 비극적인 세계관을 은연중에 표출하고 있다. 그러나 그 중에서 굳이 한 편을 선택하자면 희망의 빛이 새어 들어올 만한 작은 틈새를 열어놓은 「섬」에 표를 던질 수밖에 없었다. 아픔과 슬픔으로 버무려진 고단한 삶의 역경을 헤쳐 나갈 수 있는 힘은 늘 그렇듯이 미래를 끌어당기는 단단한 희망에서 나오는 것이므로.
십 년의 역사를 거쳐 이젠 예비 작가들의 확실한 등용문의 하나로 어엿하게 자리매김하고 있는 대산대학문학상은 희곡 분야에서도 그동안 문정연, 김지훈, 지경화 같은 능력 있는 극작가들을 배출하면서 한국문학과 연극 현장에 신선한 자극과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 현장에서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는 선배들을 거울삼아 후배들 역시 조금 더 분발해서 한국문학과 연극의 새로운 길을 개척해나가는 훌륭한 작가로 성장해주기를 부탁드린다.
총 47편의 응모작 중 내 나름의 1차 심사를 끝내고 18편을 골랐다.
C 群 (5편)
「낙화」- 안정감 있고 특별한 흠은 없지만, 내용이 너무 익숙해서 안정감이 장점으로 느껴지기 어렵다. 또한 tv 드라마 50분 정도의 분량이라 기본 응모 조건에 모자라지만, 진부함 속에서도 노비와 주인아씨의 성격이 잘 잡혀있어 애틋한 사랑이 느껴졌다.
「사람이 사랑을 멀리하네」- 퇴계와 기생 두향의 정신적인 사랑 얘기를 아름답게 다루었지만 시각적인 영화라기보다는 읽기 좋은 글 같다, 또한 두 주인공의 장점만 보여주고 있어서 감정의 기복이 안 생기는 흠이 있다.
「人터뷰」- 건전하고 착한 시나리오라는 건 명확하지만 그만큼 예측이 가능해서 호기심을 자아내지 못하여 집중력을 떨어뜨린다. 하지만 세상을 위해 건강한 작품을 쓰고자하는 작가의 의도는 높이 사고 싶다.
「copy cat」- 표절 공화국이란 별칭이 어울릴 정도로 저작권에 대한 국민들의 인식도, 표절에 대한 처벌도 가볍기 만한 우리 사회에 꼭 필요한 내용을 다룬 점이 좋았다. 하지만 서스펜스가 아니었다면 다소 무리한 설정들이 뒤로 숨고, 진지한 주제가 더 부각될 수도 있었을 텐데 아쉽다.
「낱말 속의 지진」- 의도도 좋고, 고민과 성찰의 노력도 엿보이나, 이런 점들이 시각적으로는 잘 드러나는 것에 비해 주인공들의 대사는 미숙하다. 분량도 장편으로선 많이 모자란다.
B 群 (7편)
「조선여인」- 주인공 캐릭터가 확고하고 대사가 힘이 있어 탄탄하게 나아가다가 화재 후 3년 뒤의 전개부터 그 힘이 나약해짐을 느낀다. 화재로 자신의 죽음을 가장한 후 새로운 길을 떠나며 마지막을 장식했다면 남존여비 사상에 희생된 아까운 여인의 비애가 더 살아나지 않았을까 싶다.
「공중정원」- 아이디어가 기발하고 훌륭하다. 자살을 부정적인 시각으로 몰아가다가 삶의 반전을 배치하는 구상은 무척 매력적이다. 하지만 그 신선한 발상의 옷을 입은 내용전개는 자연스런 기승전결의 곡선을 그리기보다는 순간순간 새로운 정보를 알려주며 다시 직선을 그리는 느낌이다. 비현실적 설정이 다소 작위적이지만 반복된 삶을 드디어 끝낸 두 주인공이 담담히 이별하는 장면은 너무나 현실적이어서 아름다웠고 그 전까지 지배했던 비현실성을 눈 녹듯이 마무리했다.
「생각하는 방」- 주인공이 고아원에서 겪은 일들은 밀도감 있고 섬세한데 비해, 경마장 회상이나 현재 친구들과의 장면은 지나치게 가벼워서 이질감이 느껴진다. 그러나 아동학대를 다룬 주제의식은 높이 사고 싶다. 끝내 아쉬운 건, 주인공이 경마장 시절, 남주영을 위해 증언해주지 않았던 이유가 부족했다. 어린 시절 고아원에서 익힌 생존방식이 성인이 된 그녀를 비겁하게 만들었다는 설정이 확연했다면 큰 흠이 메워졌을 것이다.
「미스터리로맨틱코메디」- 신선하고 재기 있다. 주인공이 안나에게 사랑을 느낀 자신 때문에 당황해서인지, 그녀가 범인일거라 생각해서 피하는 건지가 모호했다. 게다가 범인이 과장이란 사실도 의외였다. 과장의 성격이 제대로 부각된 적이 없었기에 반전이라기보다는 생경스러움에 가까웠다. 더 욕심내자면, 부장을 감금하고 노래를 부르던 과장을 주인공이 설득할 때 주인공다운 편집증적인 관찰의 결과물이었으면 싶었다. 이런 흠에도 불구하고 소재와 주인공 설정이 독특하고 매력적이므로 앞으로 많은 기대가 된다.
「소년은」- 어린 시절, 자신의 잘못으로 엄마가 강도에게 성폭행을 당하고, 식물인간이 된 사건을 목격한 소년이 사춘기를 맞이하며 겪는 혼란과 결벽증, 엄마에 대한 불결함과 죄책감 등을 예리하게 잘 표현했으나 단편 정도의 분량으로 끝났다.
「무단투기」- 독특한 소재였으나 분량이 장편 길이에 못 미친다. 다 읽고 나면 별 내용 없었던 거처럼 허무하지만 묘한 매력이 남는다. 범인을 잡기 위한 과정이 단순하고 긴장감이 없어서 밋밋한 점이 아쉽다.
「선생」- 교생의 마음이 모호하다. 교사로서의 의욕인지, 세영에 대한 이성적 호감인지...후자에 더 치우쳐 보여 주제가 흐려진다. 하지만 가정 내 성폭력과 방관자인 엄마. 상처받는 딸을 다룬 작가의 의도는 값지다.
A群 (6편)
「장학퀴즈」- 장안의 화제였던 장학퀴즈를 중심으로 권력에 대한 남자들의 암투와 다양한 부자지간을 통해 많은 것을 보여주려고 했던 만큼 흥미롭고 다채로웠지만, 등장인물이 많은 탓에 산만한 느낌도 들었다. 중기가 형을 다치게 한 장본인임을 알게 된 인동이 중기를 용서하는 계기가 형만을 편애하는 자신의 아버지와 연관 지어서 이해하는 식으로 풀었다면 설득력이 더했을 것 같다. 인동의 형이 식물인간으로 누워있다가 생을 마감하는 설정도 꼭 그래야만 했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 쉽게 간 느낌이다. 장점도 많지만 단점도 섞여서 총점이 높지 않은 셈이라 아깝다.
「엄마로소이다」- 상당히 매력적인 꼬마 아가씨 덕분에 47편 중 가장 속도감 있게 읽힌 작품이었다. 그만큼 안일한 설정과 연결고리를 지녔다는 뜻도 되지만 어린 딸과 주변 인물과의 대화는 매 순간 빛이 났다. 하지만 후반부로 갈수록 극을 신바람 나게 이끌어 온 리듬감이 사라지며 굳이 다루지 않아도 될 얘기들에게 친절을 베푼다. 그렇지만 꼬마의 캐릭터만으로도 훌륭한 평가를 받을만하다. 정말 유쾌했다.
「레몬타임」- 응모작 47편을 통틀어 가장 매력적인 제목이었다. 작가의 설명대로 김승희 시인의 시에서 빌려왔다고 해도 내용과 절묘하게 어울리는 제목이라 칭찬하고 싶다. 별일 아닌 것 같은 얘기를 시종일관 차분하게 풀어가며 그 위에 궁금증이란 고명을 살짝 얹어놓은 느낌이다. 깊이를 거부한 채 소소하게 풀었다는 이유가 경쟁작한테 밀린 정도라고 말하고 싶다.
「비겁한 암살자」- 지문과 대사가 군더더기 없이 간결하면서도 힘이 있다. 대단하다. 하지만 주인공 강우의 행동에 무리함이 보인다. 장 선생을 죽이고도 죄책감에 힘들어하지 않던 강우가 복수를 꾀하며 각하를 죽이려고 시도하는 설정이 그렇고, 각하를 처음 만나는 술자리에 몸수색도 거치지 않고 권총을 지닐 수 있었다는 점도 현실감이 떨어진다. 또한 김 부장은 왜 장 선생도 죽이고 각하도 죽였는지 설명이 더 필요했다. 등장인물들이 장준하, 박정희, 김재규라는 건 누구나 알 수 있다. 그래서 논픽션이란 느낌을 풍기며 팽팽한 긴장감을 주지만 극의 결말과 달리 실제로는 장준하와 박정희의 죽음엔 4년이란 시차가 있기에 이런 모순을 깨닫는 순간 시종일관 생생한 긴장감을 주던 설정들이 빛을 잃으며 매력이 반감된다. 실화와 역사를 다룰 땐 더 신중해야 한다.
「붉은 낙화」- 중년과 노년의 사랑을 그린 수작. 선자와 덕원의 관계가 아릿한 여운을 남긴다. 하지만 미자의 급격한 변화가 어색했으며, 모친이 일본군 위안부였단 설정이 이 잔잔한 극의 분위기 속에 굳이 필요했을까 싶다. 또한 덕원의 성격이 남자치고는 순정파로만 묘사되어 설득력이 부족하다. 하지만 이런 단점들에도 불구하고 아주 탄탄하고 좋은 작품이라 여겨진다. 정말 대학생이 썼을까 의문이 들 정도로 그 나잇대 대사들이 생생했다. 당선작이 되지 못한 이유는, 「블랙 아웃」에 비해 영화 대본다운 영상적 상상력이 부족했던 탓이다.
「블랙 아웃(black out)」- 지문의 문장력이 좋고 세밀하여 읽는 내내 상황과 공간이 머릿속에 쉽게 그려지며 끝까지 호기심과 긴장감을 늦추지 않는다. 소외된 계층에 대한 시선과 애정도 높이 사고 싶다. 캐릭터도, 구성도 수준급이다.
하지만 이 대본을 영화화하자는 투자사는 찾기 어려울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을 당선작으로 뽑은 이유는, 투자를 받을 수 있는 가의 여부는 중요하게 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부끄럽지만, 영화화 된다는 것이 결코 훌륭한 대본이라고는 말할 수 없는 게 우리나라 영화계의 현주소다. 그러기에 무엇보다도 응모작들이 대학생들의 작품이란 점을 중시해서 흥행성과 오성을 떠나 글 쓰는 이가 갖추고 있어야할 소양과 기초 실력, 그리고 영화라는 매체에 대한 이해와 자세를 엄중하게 살폈다. 간단히 요약하면,
1. 소재가 신선하고 관점에 개성이 있는가 2. 다루는 내용이 의미가 있는가 3. 구성의 완성도와 문장력
이 세 가지에 무게를 두었다.
그러므로 당선작을 비롯한 결선 작들은 유행에 휩쓸리지 말고, 자신만의 소중한 시각과 개성을 다듬어나가길 바란다. 기대하겠다.
올해 평론 부문 응모작은 작년보다 두 배 이상 늘어난 24 편이었다. 그리고 그 중에는 읽는 이를 즐겁게 긴장시키는 수준급의 글들이 적지 않았다. 심사위원들이 응모작을 나누어 읽은 뒤 만난 최종심에서 집중적으로 거론한 작품은 다음 4 편이다.
「소설에 대한 소설에 대하여 - 최제훈의 『일곱 개의 고양이 눈』」은 장르소설의 문법을 빌린 대상 작품을 메타소설의 관점에서 접근한 글이다. 안정된 문장력에 작품을 분석하는 능력도 수준급이며 끝까지 집중력을 잃지 않는 미덕이 있다. 하지만 논지를 전개하는 과정에서 모리스 블랑쇼에 지나치게 의존하고 있으며, 엄밀한 논증 없이 비약하는 문장 구사 방식 또한 약점으로 지적되었다.
「그림과 조각으로 승화한 소설 - ‘체온을 지닌, 소설 언어의 음악에 가까운 울림 ’-
신경숙의 『외딴 방』과『엄마를 부탁해』를 중심으로」는 다소 장황한 제목이 보여주듯이 할 말은 무척 많지만 미처 정돈이 덜 된 글이다. 핵심적인 논제와 연관된 기본 개념을 정확히 이해하고 엄밀하게 구사하는 것은 이 글의 뚜렷한 장점이다. 그러나 기존의 평가를 가감 없이 추인한 상태에서 사후적으로 맥락을 추정하고 의미를 부여하는 서술 방식이 문제다. 견실한 학구에 어울리는 비평적 감식안을 갖추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미궁으로 가는 길 - 이제니, 『아마도 아프리카』 」는 유려한 에세이 비평이다. 이제니의 『모퉁이를 돌다』에 대한 섬세한 해석에서 출발하여 시의 존재론, 비평의 본질론으로 한 발 한 발 착실하게 전진한다. 표면적 전언을 따라가는 데 급급하지 않고 시가 탄생하고 소멸하는 순간에 대한 내밀한 공감을 보여주고 있으며, 그것을 설득력 있게 표현하는 문장도 갖추고 있다. 과도한 신화적 비유를 자제하고, 기성 평론가의 것이 아닌 자기만의 개성적인 화법으로 밀고 나갔더라면 더 좋은 글이 되었을 것이다.
「힙스터의 정치학-그녀에게 쇼파르를 허하라 」는 발랄한 문화 비판이다. 이 글은 김사과 소설에 나타난 독특한 인물형을 ‘힙스터’로 호명하고, 정치적 급진성을 문화적 소비로 대체하는 이 최신판 포스트 휴먼의 출현이 갖는 문제적 맥락과 문학적 가능성을 타진한다. 작품 분석이 소략하고 논리적 비약이 더러 있지만, ‘88만원 세대’와 ‘강남 좌파’ 사이의 빈 공간을 포착하는 예민한 시대 감각과 이를 자기 식으로 개념화하려는 도전적인 패기는 이 글만의 고유한 미덕이다.
마지막 두 편의 글 모두 당선작으로 손색없는 수준을 보여주었지만 심사위원들은 ?힙스터의 정치학?의 손을 들어주기로 했다. 이 글이 보여준 발랄한 패기와 가능성이 대학문학상의 취지에 좀 더 어울린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당선자에게 축하를 보내며 앞으로 더욱 정진하여 한국 평단의 개성적인 목소리로 성장하기를 기대한다.
이번 응모작들을 읽어보니 동화 하면 보통의 사실적인 이야기와는 다른 무언가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쓴 작품들이 많았다. 그래서 판타지 또는 환상을 동원하려고 애를 썼지만, 성공적인 형상화에 이른 작품은 매우 드물었다. 어른이 경험하는 일상의 현실세계에서 만날 수 없는 인물(존재)이 등장할 때는 자연스러움이 있어야 하고, 그럴 만한 이유가 작품 내부에 구성되어 있어야 한다. 그런 존재가 등장하는 것이 작품 내적 원리에 따라 자연스럽게 이루어져야 하고, 다른 주요 인물과 주제에 긴밀하게 연결되어야 한다. 그런데 응모작들은 아직 습작기의 작품인 탓이 크겠지만 대개 그런 필연성과 자연스러움이 결여되어 있었다.
어린이 독자의 감수성으로는 보통 환상 또는 초현실의 존재라 일컬어지는 이질적인 존재나 이질적인 세계를 아무런 의심 없이 받아들일 수 있다. 그러나 그 이질적인 존재나 세계는 좀 더 현실세계를 잘 아는 아이나 어른의 눈으로 보더라도 수긍하고 빨려들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 필리파 피어스의 「학교에 간 사자」나 린드그렌의 「엄지 소년 닐스」를 다시 읽어보자. 사자가 학교에 나타난 것이 어째서 자연스러운지, 아이의 침대 밑에서 엄지 소년이 나타나는 것이 왜 필연적인지 살펴보자. 오카다 준의 「지우개 도마뱀」에서는 왜 교실에서 한 아이에게 도마뱀이 나타나 말을 걸어도 조금도 이상하지 않은지. 아니 이상하고 신기하면서도 응당 그래야 할 것처럼 보이는지.
모두 서른 명이 보낸 60편 가까운 응모작을 두 심사위원이 나눠 읽었다. 각기 추천한 작품을 합하니 일곱 사람의 작품이 2차 검토 대상이 되었다. 환상적인 요소가 들어간 작품은 위와 같이 판타지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거나 상투적인 설정과 이야기 전개에 머무른 경우가 많아 대부분 일차 검토를 통과하지 못했다. 「돌멩이」는 이사를 가서 헤어지게 된 친구와 나누는 대화가 생동감있고 친구와의 우정이 은근하며 깊게 표현된 점이 좋았지만 구성이 단조로웠다. 아울러 함께 보낸 「하늬의 노래」가 상투적인 환상 동화여서 좀 더 수련이 필요하다고 보았다. 「나는 불쌍하지 않아」는 아이들의 자존심과 삐딱한 심리를 잡아내는 솜씨가 있었으나 이야기 흐름이 매끄럽지 않고 덜 다듬어져 있었다. 좀 더 집중력을 갖고 교훈적인 이야기에 빠지지 않도록 유의한다면 좋은 작품을 쓸 수 있는 감수성과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초대가수 현숙이를 아세요?」를 보내온 응모자와 「어둠 속에서」를 보내온 응모자의 작품들은 모두 구성이 안정되어 있고 문장도 잘 다듬어져 있었다. 「초대가수 현숙이를 아세요?」는 나이트클럽 가수인 어머니를 이해하는 과정을 다루었는데 어머니의 삶과 아이의 삶의 관련성이 피상적이고 이야기가 단순한 것이 약점이었다. 「어둠 속에서」는 친구와 함께 유괴되어 성폭행을 당한 여자아이의 독백 형식으로 씌어진 작품이다. 표현의 수위를 조절하면서도 상황의 폭력성을 생생하게 드러냈다. 첨예한 주제에 부딪혀보는 작가의식의 치열성이 돋보였는데, 이런 상황을 재현하는 것이 어린이 독자에게 어떤 의미일지에 대해서는 더 숙고해보길 권한다.
「솟대」는 솟대를 만들어온 할아버지의 삶을 건우와 친구들, 선생님이 만나고 알아가는 과정을 다룬 작품으로 전통적인 아동소설의 형식이어서 호감이 갔다. 시점이 한 인물에 국한되지 않고 선이 굵은 것이 강점이지만 오래된 동화 같은 낡은 느낌을 극복할 만한 개성이 부족했다. 「해피 버스데이 투 미」는 재혼해 사는 아빠의 집을 왕래하는 아이의 이야기다. 문장이 깔끔하고 대화도 간결하면서 잘 정리되어 있어 역량이 믿음직했으나, 상황이 다소 작위적이고 아빠에 대한 감정이 풍부하게 드러나지 못한 것이 약점이었다. 단문 위주의 서술은 간결한 맛이 있지만 문장 호흡의 고저 강약이 제한적일 수밖에 없는 부정적인 면도 있음을 지적하고 싶다.
「우유 도둑」은 우유 당번이 된 아이가 우유가 먹기 싫어 자기 반 우유를 감추면서 벌어지는 사건을 다루었다. 매우 평범하고 사소한 소재이지만 이야기를 꽤 흥미롭게 끌어갔다. 이는 일차적으로 문체의 힘 때문인데, 밀착해 포착된 아이의 심리가 구성의 묘미와 맞물려 돌아가는 데서 응모자의 재능을 엿볼 수 있었다. 함께 보낸 「리스폰」 또한 깔끔한 단편이면서 엄마에게 조종되는 아이의 삶이란 주제를 컴퓨터 게임을 매개로 무리없이 소화했다. 하지만 두 편 다 소재나 주제가 이미 많이 다루어져 온 익숙한 것이고 다루는 방식도 썩 새롭지는 않다는 점에서 아쉬움이 없지 않았다.
심사위원들은 「우유 도둑」 「해피 버스데이 투 미」 「솟대」 「어둠 속에서」를 놓고 각 작품이 지닌 장단점을 충분히 검토한 뒤에 「우유 도둑」을 당선작으로 뽑기로 합의하였다. 아이의 마음에 가 닿는 감수성에서 「우유 도둑」이 약간 앞서 있었고 작품의 밑바탕에 따뜻한 유머 감각이 깔려 있는 것도 볼 만한 개성이었다. 앞으로 치열한 현실 탐구와 꾸준한 노력으로 뚜렷한 작품 세계를 갖춘 작가로 성장하길 바라며, 정진해온 다른 응모자들에게도 새로운 기회의 문이 열리기를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