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무명작가다. 등단 5년째, 더 이상 내게 청탁하는 출판사는 없다. 첫해 이후로는 단 한 건도 없었다. 발표되지 못한 작품들은 점점 한물간 소재의 쓰레기가 되어가고 있었다. 어떻게든 더 늦기 전에 발표하자. 결국 나는 공모에 응모하기로 했다. 별로 알려진 이름도 아니지만, 쪽팔리니 가명으로 할까? 당선을 고려해 조카 이름으로 하자. 지난번에 어떤 작가를 보니 그게 꽤 모양새가 좋더라고.
나는 애지중지하던 장편을 공모에 보냈다. 그리고 한 달. 두 달. 기다림에 지쳐가던 어느 날 엄마 친구가 주선해준 맞선자리에 나갔다. 일반적으로 소설가는 결혼상대로 별로일 텐데, 상대여자는 내가 소설가라서 좋다고 했다. 고마운 말이지만, 소설가 따위나 좋아하는 여자가 매력이 있을 리 없다. 시큰둥해진 나는 평소에 하던 대로 행동했다. 역시나 그녀에게선 그 후 연락이 없었다. 엄마와 나는 다시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왔다.
석 달째, 이제 슬슬 당선의 윤곽이 드러날 때가 됐다. 공식발표를 하기 전 당선자에게 먼저 연락하겠지? 나는 핸드폰을 쥔 채 잠이 들곤 했다. 늘 여분의 배터리를 충전시켜뒀다. 내가 예상하는 통보날짜는 2월 12일에서 15일 사이, 그때가 아니면 꽝이었다.
중절모가 나타난 건 2월 8일이었다. 그날도 나는 카페에서 글을 쓰고 있었다. ‘현대의 걸작도 미래로 가면 쓰레기 취급을 받을까’하는 주제로 머리를 굴리던 중이었다.
“결과 기다리고 있죠?”
나는 모니터를 노려보다 고개를 들었다. 중절모를 쓴 사내가 있었다.
“안절부절 할 것 없어요. 행운이 터질 테니까. 2월 15일에.”
낯선 얼굴이다. 내겐 대중의 관심은커녕 이젠 친구도 드물었다. 게다가 공모에 투고한 건 엄마도 몰랐다.
“날 알아요?”
“잘 알죠. 전 미래에서 왔으니까.”
미래?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하지만 나는 현실감각과 상상력이 뛰어난 작가답게 무슨 말이든 받아칠 자신이 있었다.
“그래요? 이거, 반갑네요.”
나는 악수를 청하며 옆자리를 내줬다.
중절모는 한 시간 가량 떠들었다.
“전 24세기의 ‘Fortune 4 Doom’이라는 회사에서 왔습니다. 현대로 치면 점집 같은 거죠. 24세기엔 일종의 오락으로 길흉을 점치는데, 복고붐에 편승한 거라 언제 사라질지 모르지만, 어쨌든 저희 회사는 과거 사람들의 샘플을 토대로 행운지수 통계를 만들었습니다. 행운지수란 유전자와 환경지수를 기반으로 하지만, 현대의 사주팔자와 비슷한 체계입니다. 말하자면 자신과 흡사한 유전자나 환경지수를 가졌던 과거인 샘플을 보며 그날의 길흉을 점치는 겁니다. 운명, 철학, 예술에 무관심한 미래엔 단지 오락일 뿐이지만, 그 근거로 쓰이는 저희 통계엔 오류가 없습니다. 실제 일어난 일을 기반으로 만드니까요. 저는 2010년에서 2015년 사이의 샘플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샘플의 길흉을 확인하러 가끔 과거에 들르죠. 당신도 그 샘플 중 하납니다.”
SF에 정통했던 난 단박에 모든 걸 이해했다.
“길흉이란 것은 행운지수로 볼 때 +99면 대박, -99면 최악입니다. +면 일단 길한 날이죠. 행운지수는 일종의 게이지로 행운이 하나하나 쌓이는 체계, 즉 그날의 +와 -요소의 총합을 나타냅니다. 가령 2010년 2월 8일 오늘 당신의 행운지수는 +23으로 매우 좋은 편입니다. 무엇보다 저를 만난 게 행운이죠. 샘플이라고 꼭 직원이 방문하는 건 아니니까요. 과거로 가는 덴 꽤 많은 비용이 들거든요. 저를 만난 게 행운지수로 +30. 하긴 당신 입장에선 미래를 알게 된 거니까 굉장한 행운이죠.”
“그럼 오늘 길흉이 +23인데, 당신을 만난 게 +30이면 현재 +7 초과란 말이군.”
내가 똑똑하게 말하자, 중절모는 웃었다.
“계산이 빠르군요. 맞아요. -7을 기록할 일이 아직 남았단 뜻이죠.”
중절모의 말은 틀리지 않았다. 그날 밤 집으로 돌아가던 나는 놀이터의 고딩들에게 습격당해 지갑을 뜯기고 두들겨 맞았다. 또한 공원근처의 악명 높은 홈리스 무리에 붙잡혀 지갑이 없다는 이유로 한 번 더 린치를 당했다. 남아있던 그날의 -는 바로 그것이었다.
그나저나 돈을 뺏기고 얻어터졌는데 겨우 -7이라니. 그럼 중절모와 만나 생긴 +30은 얼마나 큰 행운이란 말인가. 하긴 미래를 안다는 건 굉장한 일이지. 나는 흘러내리는 코피를 핥으며 실실 웃었다.
하지만 그 웃음은 오래가지 않았다. 오히려 얼마 못가 불안과 기쁨에 뒤섞여 덜덜덜 떨기 시작했다. 중절모는 헤어질 때 이렇게 말했기 때문이다.
“이것만 말해두죠. 당신의 2월 15일 행운지수는 +88. 제 담당에선 최고치입니다.”
+88이라니! 그럼 대체 얼마나 좋은 일이 벌어진단 말인가. 역시 당선인가? 하긴 상금만 1억이다.
드디어 2월 15일이 됐다. 전날까진 아무런 연락도 없었다. 다음 주가 공식발표니 늦어도 오늘까지는 연락이 와야 한다. 평소와 달리 나는 아침 일찍 일어났다. 엄마는 부지런한 아들이 기특했는지 반찬을 많이 차렸다. 내일모레면 마흔인 아들을 위해. 하긴 아버지가 사고로 죽은 뒤 엄마와 나는 오순도순 잘도 살아온 편이다. 성공만이 행복의 조건은 아니잖아? 게다가 내가 능력이 없으니 상대적으로 집 소유주인 엄마의 위상은 칠순을 넘겨서도 사라지지 않고 있었다. 어쩌면 이 모두가 소소한 행복의 조건이 아닐까.
괜히 들뜬 나는 아침부터 일상과 삶에 대해 통찰했다. 그날 무슨 일이 벌어질지 전혀 알지 못한 채.
밖에 나가자 엘리베이터가 집 앞에 멈춰있었다. 오, 이것도 행운인가? 역시 +88이군. 나는 괜히 호들갑을 떨었다. 하지만 그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말이 씨가 됐다고 할까, 소소한 행운은 계속 이어졌다. 신호등은 내 앞에서 파란불로 변했고, 버스는 기다릴 것 없이 딱 맞게 도착했다. 노약자석은 비어있었고, 그날따라 노인들은 아무도 내 앞에 얼쩡대지 않았다.
그뿐이 아니었다. 내가 버스에 오르자, 하늘은 기다렸다는 듯 소나기를 퍼붓기 시작했다. 행인들은 갑작스러운 비를 피하느라 허둥지둥 뛰어다녔다. 그때만 해도 나는 비웃듯 창밖을 바라봤고 상황을 즐겼다. 하긴 이런 것도 행운은 행운이지, 내심 비아냥거리며. 하지만 웃음도 잠시, 나는 버스의 덜컹거림과 함께 점점 어떤 불안이 엄습해오는 걸 느꼈다. 그리고 복선과 암시에 강한 작가답게 한순간에 모든 걸 눈치 챘다. 마치 유레카처럼. +88의 의미, 행운지수의 측정방식, 아침 반찬, 일상의 행복, 정확한 타이밍에 나타난 엘리베이터, 신호등, 버스, 소나기…… 그렇다. 이 모든 게 다 +88에 포함됐던 것이다. 그럼 자잘한 행운이 너무 많았잖아!
버스에서 내리자, 기가 막힌 타이밍에 비가 그쳤다. 나는 단 한 방울도 젖지 않았다. 이것도 +88에 포함되겠지? 오늘 행운의 총합을 갉아먹겠지? 해도 해도 너무하는군. 한숨이 절로 나왔다.
카페에 들어선 나는 본격적인 고민에 빠졌다. 공모당선을 위해선 +50은 필요하다. 1억이니까. 게다가 재기의 발판이 될 테니까. 자잘한 행운들에 더 이상 행운지수를 낭비할 순 없었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맞은편 글래머의 스커트가 말리는 등 행운은 이어졌다. 섹시한 허벅지. 젠장, 쳐다보면 안 돼. 쳐다보면 +3 정도는 날아갈 거야. 나는 눈을 질끈 감았지만, 한 번 더 보고 싶은 본능에 그만 눈을 뜨고 말았다. 다행히 글래머는 자리를 뜨는 중이었지만, 그때 동전이라도 줍는지 허리를 숙이며 치마 속 힙라인이 드러났다. 아찔한 뒤태. 아마 +5 정도는 날아갔을 것이다.
오후가 되어도 공모에 대해선 아무 연락이 없었다. 나는 쓰고 있던 소설마저 원망스럽게 바라봤다. 너무 잘 써지는 소설마저 행운으로 보여 불안했기 때문이다. 결국 나는 카페를 나섰다. 하지만 행운은 끝날 줄 몰랐다. 가령 차에 치일 뻔 한 노인네를 도와줬더니, 자신은 엄청난 부자라며 수표를 내민 일도 있었다. 그것 말고도 성스러운 햇살, 떨어진 지폐, 여배우와의 우연한 만남 등등 자잘한 행운은 셀 수 없이 많았다. 지친 나는 집에 돌아가기로 했다. 더 이상 쓸데없는 행운이 없도록. +88을 공모 당선에 올인하도록.
버스를 타려다 혹시 또 제시간에 올까 꺼림칙해 택시에 올랐다. 하지만 그나마도 미터기가 고장 난 택시였다. 훈훈한 택시기사는 오늘 손자가 태어나는 날이라며 공짜로 태워주겠다고 했다.
아무래도 액땜이 필요하다 생각한 나는 계속 머리를 굴렸고, 놀이터와 공원근처를 얼씬거리기로 했다. 몇 대 맞고 돈이라도 뺏겨 -7씩 벌충하기 위해. 아무래도 -가 늘어나면 총합유지를 위해 +도 늘어날 테니까.하지만 +88은 만만치 않았다. 아무도 내게 시비를 걸지 않았다. 불량고딩들의 아지트인 화장실에서 담배를 피워도, 악명 높은 홈리스의 벤치에 보란 듯이 누워있어도, 아무도 나를 건드리지 않았다. 내일모레면 마흔인데, 나는 그만 울고 싶은 지경이 됐다. 집에 돌아오자, 엄마는 한심한 아들을 따뜻하게 반겼다. 엄마가 잘 대해주는 것도 행운이란 생각이 들었지만, 이젠 화낼 힘도 없었다. 그때 문득 그런 생각이 스쳤다. 혹시 미래엔 예술의 가치가 없는 게 아닐까. 오늘 닥친 자잘한 행운들이 미래엔 공모 당선보다 더 큰 가치가 있는 건 아닐까. 중절모가 말한 ‘결과’가 공모 당선이 아닌 건 아닐까. 하긴 24세기를 어찌 알까.
전화가 걸려온 건 침대에 누워 상심하고 있을 때였다. 하지만 상대는 출판사가 아니라, 뜻밖에도 지난달 맞선을 봤던 여자였다. 그녀는 쇼킹한 소식을 전했다. 다짜고짜 공모에 당선됐으니 축하해달라며.
“당신, 글 썼어?”
이런 젠장. 나는 건성건성 축하해준 뒤 허무하게 침대에 누웠다. 행운의 2월 15일은 아직도 세 시간이나 남아있었다. 여분의 행운이라도 즐겨볼까? 지금이라도 -를 벌충하러 다닐까? 불행을 늘려야 행운이 온다. 어쨌든 오늘 행운지수는 +88이니까. 다시 공원이라도 가볼까? 아니, 더 안타깝도록 엄마한테 놀이터에 가보라고 할까? 엄마가 두들겨 맞는 게 더 큰 불행이 아닐까?
부질없다. 결국 나는 다 관두기로 했다. 차라리 이걸 소재로 소설을 쓰자 생각한 게 불과 몇 분 전이다. 중절모는 내게 대박 소재를 던져준 건지도 모른다. 한물가지 않은 신선한 소재. 그게 +88의 행운일지도 모른다.
지금 나는 책상에 앉아 모니터를 노려보고 있다. 쓸 얘기는 많았다. 완성될 때까지 오늘밤은 끝나지 않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