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그날이 왔다. 예나가 몇 달 전부터 기다려 온 세계길거리음악축제가 열리는 날이다. 시내 가운데 큰 길을 막아 차 대신 사람이 넘쳐나는 축제, 잔디 광장에서 포장마차 골목길까지 구석구석 음악이 흐르는 축제. 여러 나라에서 초대받아 온 가수, 밴드, 합창단, 연주팀들이 곳곳에 넘쳐나는 축제가 오늘 열린다.
엄마가 함께 가자고 했지만 예나는 친구들과 같이 가는 게 좋았다. 약속장소인 분수대에는 벌써 하늬와 민정이가 와 있었다. 하늬는 반짝반짝 보석 머리띠를 했고 민정이는 찰랑찰랑한 스커트를 입었지만 빨간 구두에 빨간 가방을 멘 예나가 가장 눈에 띄었다. 예나가 가방에서 안내 책자를 꺼냈다.
“예술극장 앞은 안데스민속음악단, 조은은행 앞은 호주 원주민밴드, 화방 거리는 오슬로소년합창단, 그리고……”
“샴고양이 공연은 어디야?”
요즘은 텔레비전, 라디오, 버스, 가게, 어딜 가도 무얼 봐도 샴고양이 노래가 나온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잘 나가는 가수 샴고양이도 오늘 공연을 한다.
“샴고양이 공연은 여섯 시 우체국 앞이야.”
우체국 앞은 상가들이 몰려있는 사거리여서 가장 붐비는 곳이다. 최고 인기 가수라 역시 제일 좋은 장소에서 공연을 할 모양이었다.
“우린 뭐부터 볼까?”
민정이가 안내 책자를 살피며 물었다.
“내가 가수들 공연 줄 쳐놨으니까 거기 다니자.”
“난 민속음악도 좋은데.”
사물놀이반에서 장구를 치는 하늬가 말했다. 예나가 손을 저었다.
“이거저거 다 볼 시간 없어. 한 군데 집중하자. 응?”
“그래. 하늬야. 지금 아니면 언제 외국 가수들 공연을 보겠어?”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지만 하늬는 못내 아쉬운 표정이었다. 브라질 타악기 밴드와 일본 북춤 공연을 놓치고 싶지 않아서였다. 그래도 어쩔 수 없다. 예나와 민정이, 하늬는 셋이 팀을 만들어 가수가 될 계획이었다. 작년부터 셋이 노래방을 다니며 춤과 노래를 연습하고 있다. 가수가 되려면 다른 가수들 공연도 많이 봐야 한다.
“빰 빠빠빠바! 두둥 두둥 둥! 챙! 챙! 피릴릴리!”
멋진 제복을 입은 여자 군악대 수십 명이 줄을 맞춰 큰 길을 지나갔다. 여기저기 놓여 있는 스피커에서 아나운서의 목소리가 들렸다.
“많이 기다리셨죠? 멋진 공연으로 보답하겠습니다. 제3회 세계길거리음악축제의 화려한 공연을 시작합니다!”
높은 건물 위에서 펑펑 하얀 연기 기둥이 솟아올랐다. 밤이 되면 불꽃도 쏘아 올린다. 작년에도 그랬다. 사람들 함성소리가 가라앉기도 전에 여기저기서 음악소리가 들려왔다.
큰 길에는 무대가 다섯 개 있다. 골목까지 합치면 무대는 모두 이십 개, 오늘 하루 공연만 칠십 번이 넘는다. 세계 어디에 내놔도 부끄럽지 않은 진짜 축제다. 그래서인지 여기저기 외국인들이 많았다. 아침부터 맥주병을 들고 음악에 맞춰 춤을 추는 외국인도 있었다.
예나와 친구들은 먼저 미국 재즈밴드 공연을 봤다. 흑인 아줌마가 남자처럼 낮고 굵은 목소리로 노래를 불렀다.
“노래 진짜 잘한다.”
“영어도 잘 하고.”
“그래도 못생겼잖아.”
예나가 친구들에게 용기를 주었다. 아무리 노래를 잘 해도 못생기면 텔레비전에 나올 수 없다. 텔레비전에 못 나오면 삼류가수다. 그걸 아는지 모르는지 뚱뚱한 흑인 아줌마는 들썩들썩 신나게 노래를 불렀다.
라디오 교통방송국 앞에서는 신인 남자 그룹이 춤을 추고 있었다. 노래는 물론 녹음이었다. 예나가 땀투성이로 춤추는 남자들을 흘겨보며 말했다.
“아무리 열심히 해도 우리 오빠들은 못 따라올 걸!”
“맞아. 맞아.”
예나와 민정이, 하늬는 인기 최고 남자 댄스 그룹 A4B5의 열성 회원이었다. 신인 남자 그룹 정도에 눈 돌리는 건 A4B5에 대한 배신이다.
아일랜드에서 온 여가수가 공원 잔디밭에서 그랜드피아노를 치며 노래를 불렀다. 꿈속에서 들려오는 노래 같아 자꾸 눈을 감고 싶었다. 콧수염을 기른 인도 가수는 멋진 여자 코러스를 여섯 명 데리고 왔다. 사람들은 인도 아저씨보다 미녀 코러스를 더 좋아하는 것 같았다. 캐나다의 아카펠라 중창단을 구경하던 사람들이 박수를 치며 박자를 맞췄다.
공연은 계속 되었다. 예나는 꿈을 꾸는 것 같았다. 구름을 딛고 걸어 다니는 것 같았다.
‘이런 곳이 천국일 거야.’
예나 얼굴에서 웃음이 떠나질 않았다.
밥도 먹지 않고 돌아다녔지만 못 본 공연이 더 많았다. 네 시가 넘어가자 배가 고파서 쓰러질 것만 같았다. 지금 쓰러지면 억울하다. 죽어도 이번 축제의 절정, 샴고양이의 공연을 보고 죽어야 한다. (중략)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