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문학의 얼굴
한국 여성문학의 선구자 ... | 김일주
문학과미술의만남
꽃을 위한 노트 ... | 김명인 양화선
주인공의 여로를 따라서
식민의 현실과 민중의 생 ... | 하상일
대산초대석
한굴세대의 자유롭고 너 ... | 이수형
대작 에세이
단색주의 문화 ... | 윤흥길
가상인터뷰
"가쁘던 숨결은 식 ... | 이승하
기획특집
젊은 작가들이 말하는 우 ... | 김수이
나는 '후루꾸' 다 ... | 최금진
흙으로 만들어졌다 ... | 손홍규
여전히 가난하거나 가난 ... | 한유주
시론
2010년 2월, 요즘 말의 ... | 이윤기
기획특집
트램블린 위에서 ... | 윤고은
대산칼럼
문학 소통의 '대중화'와 ... | 김수이
나의데뷔작
광휘는 사라지고...빈 들 ... | 이진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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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늘을 향한 시선 ... | 이청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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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집이 익어가는 시간 - ... | 김언
특별기고
나의 아버지 김동인을 말 ... | 김광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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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반 웃고 당신이 반 ... | 전성우
나의사진첩
작은 아씨들 ... | 은희경
삼국유사
딸 농사 잘 지은 진평왕 ... | 고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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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경 유리창에서의 짧은 ... | 이승수
詩샘
詩샘 - 「나만의 기린」 ... | 김혜순
단편소설
소년처럼 ... | 정미경
글밭단상
소재주의에 관한 변명 ... | 최두석
가장 받고 싶지 않은 선 ... | 김다은
시소 위에 앉기 ... | 이수명
내 이름을 불러주세요 ... | 이오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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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은 싫어요 ... | 김남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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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생과 증여가 탄생시킨 ... | 김영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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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 전 동독은 총리 욕 ... | 전철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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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인의 아해가 그라운드 ... | 박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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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문학의 버팀목 김남 ... | 이승철
우리시대의 화제작
패배자들을 위한 생.존. ... | 정기선
원작 대 영화
영화를 위한 소설은 없다 ... | 이대현
이 계절의 문학
한 무명작가의 기염과 인 ... | 이영경
해외문학기행
간극과 간극 그리고 암전 ... | 전진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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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가 성장 소설에 상응 ... | 김숭희
지옥의 끝에서 들려오는 ... | 정진석
번역서 리뷰
스페인으로 간 '한국어의 ... | 김현균
4·4조 운율로 옮긴 셰 ... | 조광순
번역후기
두 공역자의 5년에 걸친 ... | 유영난
한국학의 현장
전통 연희사를 넘어 근현 ... | 이토 요시히데
세계의 화제작
생존과 존엄을 위한 아프 ... | 정은진
신간도서
새로나온 책 - 『그리고 ... | 운영자
재단 소식
재단소식 - 한국문학 번 ... | 운영자
기획특집_ 나는 '후루꾸' 다

글ㅣ최금진_시인. 1970년생

시집 『새들의 역사』 등

▲  © 운영자
 
 
 
 
 
 
 
 
 
 
 
 
 

 
 
 
 
 


가구 중에 6가구는 저축을 한 푼도 하지 못하며, 아이 하나를 양육해서 대학까지 보내는데 드는 비용은 2억이 넘는다. 도시근로자 가구당 평균 월수입은 313만 원이며, 주택을  마련하는 시기는 평균 53세이다. 소득 상위 10%에 속하는 사람들이 지출하는 교육비는 하위 10%에 속하는 사람들의 8배이다. 대충 내가 기억하는 몇 가지 통계가 이렇다. 여기에 소득의 양극화, 교육의 양극화, 문화의 양극화 등등 각종 양극화의 꼬리표가 아무 데나 다 따라서 붙고 있는 것이 오늘날의 현실이다. 


 
글을 써서는 가정 경제에 어떤 도움도 되지 못한다는 ‘뻔한 진실’은 관두고서라도, 앞으로  내가 벌어들일 수 있는 수입과 저축액과 연금에 대한 ‘불편한 진실’ 앞에 서면 나는 기가 죽는다. 노후에 보트를 한 척 사서 낚시를 즐기고 싶은 가당찮은 희망은 뒤척이다 잠드는 이불 속에서나 가능한 것이다. 그러나 별로 아픔도 못 느낀다. 그런 것에 좌절하고 골골 앓아 누울만한 형편이 못된다. 가령 의료보험 민영화라도 된다면 그나마 병원도 가지 못하게 될 날이 올 것이다. 부지런히 일을 해 놓지 않으면 안, 되, 는, 것, 이, 다.  

 
1. 당신들의 잘못이 아니다.
 
궁극적으로 내가 현실에 불만이 많은 사람이며, 그것은 외부의 억압이나 결핍 때문이 아니라 스스로 느끼는 피해망상 같은 것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자. 쉴 새 없이 주위를 의식하는 불안증세가 그렇고, 지나치게 소심한 성격이 그렇고, 타고난 능력에 비해 바라는 것이 많은 과욕이 그것을 반증한다. 그러니까 모든 갈망과 절망은 나의 열등한 환경에서 기인한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자. 누군가 내 밥그릇을 대신 챙기고 있고, 나보다 못한 그들이 권모술수를 잘 써서 성공하고 있다는 음모론을 믿는 것은 나만 고달픈 일이다. 그건 사회생활에서의 인간관계를 매우 어렵게 만드는 것이다. 세상이 매우 합리적인 시스템에 의해 합당하게 굴러가고 있다고 믿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울화가 치밀어서 못 산다.
 
혁명당이라도 되어야 하는데, 이 나이에 산을 타고 숨어 다니며 굶기를 밥 먹듯 하다가 눈 덮인 산에서 죽어갈 순 없다. 그러니까 나만 손해 보고 있고, 나만 불공평한 대우를 받는다고 생각하는 것은 혼자 속으로만 간직할 일이다. 집에 돌아와 라면을 끓여먹고 텔레비전을 보면서 창문을 열어놓고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어둠을 바라보며 혼자 생각할 일이다. 절대 입 밖에 내서는 안 되는 일이다. 사람들 사이에선 잠정적인 규율이라는 것이 있다. 가령, 내가 몸이 아프다는 시늉을 하더라도 어디까지나 그들이 베푸는 친절은 그들이 베풀 수 있는, 혹은 견딜 수 있는 수준에서나 가능한 것이다. 그 이상을 요구하거나 원하게 되면 관계가 매우 요상해진다. 내가 아픈 건 나만의 문제이지 절대로, 절대로 그들과 공유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그들은 좋은 가정에서 태어났으며 반듯한 표준어를 쓴다. 그들은 양복을 입으며, 고급양주를 마시며, 희고 가늘고 긴 손가락으로 담배를 태운다. 중학교 때까지 호롱불을 켜고 공부했던 얘기는 그들에게 잠시 낯설고 재미있을진 몰라도 그들은 호롱불 아래서 깜빡깜빡 졸며 영어단어를 외우던 나의 표정, 나의 생각 따위엔 관심이 없을 것이다. 할머니가 아픈 허리를 돌려 누우시며, 불 끄고 어서 자라고 재촉하는 말 속에 묻어나는 검은 그을음을 본 적이 없을 것이다. 이것을 소통의 부재라고 해야 하나. 계층 혹은 계급 간 단절이라고 불러야 하나. 자유와 평등의 민주주의 사회에서 벌어지는 당연한 차이라고 해야 하나. 


 
2. 할머니의 무신론을 생각한다
 
할머니 성함은 박계수(朴桂樹. 1907년생). 할머니는 왜 저승사자도 탐내지 않을 여든셋 나이에 자살을 했을까. 어쩌다 나는 아버지 없는 집에 태어나, 어머니 없는 유년 시절을 보내고 서둘러 대책 없는 어른이 되었을까. 아버지 성함은 최재호(崔在虎. 1940년생). 내가 세살 때 돌아가셨으니까 서른셋에 요절하셨다. 삶이라는 게 선택이 주어진다면 누가 감히 슬픔을 무릅쓰고 치욕스런 부끄러움과 소외와 멸시를 선택하겠는가. 아버지의 사촌들은 모두 마흔이 되기 전에 죽었고, 할아버지는 알코올중독자에 건달이어서 늙은 할머니를 쉴 새 없이 두들겨 팼다. 당연히 내 아버지도 마흔이 되기 전에 죽었고, 나는 아버지가 술을 먹고 뛰어든 그 강물 근처엔 지금도 차마 가지 못한다. 이것을 가난이라고 해야 할까. 운명이라고 해야 할까. 몰락한 가계를 궁상맞게 읊조리고 있는 나를 누가 두려워하겠는가. 그들은 한 번도 내 과거를 묻지 않았다. 아니, 나도 철이 들면서 그런 시시콜콜한 얘기를 하는 것이 얼마나 그들에게 부담을 주는 것인가를 알게 되었다. 그들은 한 번도 죽음을 생각해 본 적이 없는 자들이었다.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워진 나의 얼굴을 보여주는 것만으로도 그들은 괴로워했다. 그리고 황망한 눈으로 어이, 그만 하지, 하고 손을 가로저었다. 피차 웃는 얼굴로 이야기하고,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함께 밥을 먹어주고, 함께 운동을 하고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집으로 돌아오면 될 것을 뭣 하러 재미도 없는 과거사를 다시 이야기할 것인가. 그런데 왜 나는 그런 얘기들을 기억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왜 다른 건 다 잘 잊고 살면서 도무지 잊혀지지 않는 것들이 있는지 모르겠다. 무허가 우리 집을 허물기 위해 시청 사람들이 드나들던 기억하며, 고모들과 어머니의 칼부림을, 어머니의 울음을, 왜 기억하고 있어야 하는지 모르겠다. 할머니는 절을 신봉하고 부처를 섬겼으나 말년엔 아무것도 믿지 않으셨다. 내가 예수에 미쳐 살던 학창시절, 나는 할머니의 무신론을 악하게 생각하였으나 지금은 얼마든지 이해할 수 있다. 전능하신 신은 어느 누구편도 아니다. 그저 방치하기만 한다. 그리고 그 방치된 환경에서 지독하게 잘 살아남는 행복한 그들이 있는 것이다. 신은 아무것도 돕지 못한다. 주말이면 로또복권을 사고, 새해엔 소원을 빈다. 하지만 기적은 일어나지 않는다. 


 
3. 나는 날마다 거울을 보며 웃음을 연습한다.
 
나도 그들이 웃는 것처럼 자신만만하게 웃는 연습을 한 적이 있다. 거울을 보고 하얀 치아를 내놓고 아무 의심도 없는, 아무 거리낌도 없는 커다란 웃음을 말이다. 그러나 왜 나는 웃을 때마다 불안한가. 왜 아무도 내 속을 들여다보는 이가 없는데 나는 웃을 때마다 긴장하고, 긴장할수록 내 웃음은 어딘가 일그러지고, 일그러진 웃음은 영락없이 잡종인 게 들통 나는 것일까. 


 
4. 내가 아는 지식은 모두 ‘후루꾸’

내가 좋아했던 여자애는 피아노를 쳤다. 나도 피아노를 치고 싶었으나 그건 우울한 저음의 내가 부를 수 없는 다른 음역에 속한 악기였다. 적어도 내겐 그랬다. 그렇게 많은 건반을 두드려야 소리가 나온다면 그 많은 규칙과 그 많은 기술을 익혀야 다룰 수 있는 거라면, 피아노는 나와는 아무 관련이 없는 악기가 되는 것이다. 피아노를 배울 만한 시간, 피아노 학원을 다니라고 권해줄 만한 보호자, 피아노씩이나 들여놓을 문화적 환경이 없는 사람에게 피아노는 아득히 먼 계단에 덩그러니 세워져 있는 사물에 불과하다. 내가 교회에 가서 밤마다 몰래 똥땅거리며 열등감을 갖고 피아노를 연습하고 있었을 때, 그 여자애는 클래식 기타를 배우고 있었다. 내가 다시 생일선물로 무리하게 요구한 싸구려 기타를 배우고 있었을 때, 나는 대학을 떨어졌고, 여자애는 서울의 모 대학교에 철썩 붙어서 나와는 전혀 다른 길을 걸어갔다. 기타를 생각하면 나는 망연자실 어둠 속을 흘러 다니는 안개가 생각난다. 안개가 끼는 호수를 걸어가 그 애의 집 근처를 서성인 것이 몇 번이었던가. 중간고사 기말고사를 포기하고 밤마다 그 애의 방에 불이 꺼지는 것을 바라보던 것이 몇 번이었던가. ‘후루꾸’, Fluke. 나는 후루꾸다. 내가 알고 있는 건 어딘가 어색하고, 어딘가 부족하다. 

 
5. 종말 혹은 혁명을 생각한다.

양극화가 극으로 치닫고 있는 세계적인 빈부격차 현상은, 세계 곳곳의 기상이변 현상과 통하는 것이 있으며, 이 두 가지 사례는 최근 대두되고 있는 종말론으로 귀결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자본주의적 가치에 대한 신뢰가 무분별하게 자연 환경을 파손했고, 혁명 혹은 종말이 아니면 정화되기 힘든 인간세계에 대한 환멸이 말세론을 부추기고 있는 것은 아닐까. 세상이 어려울 때마다 위대한 영웅들이 나타나 바른 길로 이끌어 주던 시대는 가고 없다. 영웅은 죽었고, 우리는 밤하늘 별을 보면서 어떤 별자리도 그려내지 못한다.
 
혼 돈과 무질서 속에서 신음하는 사람들은 있지만 그들의 얼굴은 보이지 않는다. 그 얼굴들은 생활에 쫓겨 일터로, 가정으로, 서둘러 달려가고 있기 때문이다. 물질과 인간의 가치에 대한 인식의 전환이 절실히 요구되고는 있지만, 성장과 분배를 놓고 무엇이 우선인지를 고민하는 것은 달걀이 먼저인지 닭이 먼저인지를 고민하는 것과 같다. 자본주의적 가치에서는 이윤추구만이 우선시 될 뿐이기 때문에 평등이나 자유와 같은 이상적인 가치는 무시되어진다. 그러므로 분배는 형식에 그친다. 유태인들의 율법에는 ‘희년’이 있어서 땅의 소유는 50년이 지나면 원래의 주인에게로 돌려주어야 한다. 하지만 한 평의 땅도 가지지 못하고 평생 남의 땅만 딛고 다니는 사람들에게 국가의 영토가 무슨 의미가 있을까. 종말 혹은 혁명을 생각해 본다. 약한 자를 구원해 주러 인간 세상에 오신다는 미륵이나예수의 재림을 기다려본다. 자살이 아니면 해탈이다, 해탈이 아니면 혁명이다, 나는 그렇게 중얼거려본다. 

오늘은 토요일. 로또복권 추첨일이다. 설레고 흥분된다. 솔직히 1등만 되면 난 글을 안 쓸  것이다. 건물 하나 사서 월세나 받아먹으며 살 것이다. 보트나 한 척 사서 낚시나 다니며 살 것이다. 욕하지 마시라. 그깟 돈도 안 되는 시 나부랭이에 목숨 걸고 지금까지 왔는데 나는 벌어 놓은 게 없다. 가난이 뭐 자랑인가? 부모가 겪은 가난한 경험들을 우려먹고 아직 젊은 놈이 너저분하게 신세한탄이나 늘어놓는 것이 잘하는 짓인가? 이런 글 쓰고 싶지 않다. 럭셔리하게 나도 높은 자리에 서서 아는 소리해 가며 점잔 떨고 싶다. 지금이 어떤 시대인데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는 가난에 대해 쓰라니. 참 어이없다. 가난이 뭔 자랑인가? 가난한 시인, 이런 허접한 꼬리표 정말 사양한다. 가난이 뭔 벼슬인가, 가난이 뭔 상품인가? 새해가 밝은 지도 한참 지났는데 고작 나 같은 작자의 가난을 들춰서 피차 무슨 이득이 있다고. 나같이 푼돈이라도 감지덕지 얻어 쓰려는 자에게 뭔 청렴결백에 옥구슬 굴러가는 소리를 들어보겠다고. 빈핍한 삶조차도 후루꾸인 나에게 뭐 나올 게 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