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산문화재단 웹진

글|김다은_소설가. 추계예술대학교 문예창작과 교수. 1962년생

소설 『당신을 닮은 나라Ⅰ, Ⅱ』『훈민정음의 비밀』『이상한 연애편지』『러브버

그』『사인사색』『위험한 상상』『푸른 노트 속의 여자』, 칼럼집 『발칙한 신조어

와 문화 현상』, 서간집 『작가들의 연애편지』『작가들의 우정편지』 등

지난 크리스마스 시즌에 실시한 취업포털 잡 코리아의 설문 조사에 따르면, 가장 받고 싶지 않은 선물 1위가 ‘책’이었다. 보석이나 옷보다 순위가 뒤질 것이라는 정도는 예상했지만, 아예 책을 선물로 받고 싶지 않다니! 작가로서는 만감이 교차할 수밖에 없었다. 어쩌다 사람들이 책 선물을 싫어하게 되었을까?

수년 전, K교수의 연구실에 들렀을 때, 그가 데리다 번역서 한 권을 내밀었다. 번역자로부터 받은 책이라며. 필요하면 가져가서 보라고 했다. 받아서 들춰보니, K교수에게 보낸다는 번역자의 ‘혜존’도 들어 있는데다가, 구입하려면 상당한 거금을 지불해야하는 책이었다. 그 이유를 묻자, 그는 “적어도 나에게는 필요 없는 책이다. 왜 이렇게 책을 뿌리는지 알 수 없다. 더 필요로 하는 사람에게 주고 싶다”고 했다. 연구실을 나오면서 소설가인 나도 막 뿌린 책이 없나 돌이켜보게 되었다.

작년 여름, 프랑스의 한 국제학술대회에 갔을 때이다. 전 세계 교수들과 작가들이 모인 자리였던지라, 자연스럽게 자신의 저서에 대해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그 중에서 시인이자 교수인 S가 자신의 시 세계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했다. 물의 표면에 대한 자신의 심미적인 관심과 바위를 물처럼 표현하는 이유와 시어들의 특징들을 설명한 뒤, 흥미 있으면 사서 직접 읽어보라며 시집 한 권을 꺼내 보였다. 그의 시 세계에 설득당한 뒤라, 나는 기꺼이 돈을 주고 샀다. 마찬가지로 우리나라에서라면 공짜로 건네주었을 책 한 권을 나도 그에게 팔았다. 우리는 서로 마지막 잔돈까지 잘 챙겼다.

이 두 가지 경험을 한 뒤에, 나는 새 책이 나올 때마다 일방적으로 보내던 기증 명단 리스트를 폐기했다. 진정으로 책을 드리고 싶은 친지나 책이 도움이 될 만한 사람에게만 선별해서 보냈다. 그 결과, 예기치 않은 반응이 나타났는데, 왜 자기만 빼놓느냐고 볼멘소리를 하는 사람이 나타난 것이다. 받고 싶지 않은 선물 1위가 책이지만, 주지 않으면 당장 섭섭한 인간관계로 들먹이는 이들이 있었다. 관계를 망치지 않으려면, 몇 명이 되건 구별 짓지 않고 뿌려야 할 판이었다.

우리 사회에서는 책은 공짜로 주고받는 것임이 너무 당연시 되어 있다. 그러다보니 밥 한 끼를 사면 고맙다는 말을 듣지만, 책 한 권을 주고는 그 소리를 듣기가 쉽지 않다. 사람들이 책 선물을 싫어하는 이유는 독서 습관이 없어서가 아니라, 공짜책 때문에 책의 가치가 하락된 때문이라는 생각은 너무 비약일까. 더구나 다른 선물을 보낼 때 보이는 정성스러움이 책을 보낼 때는 실종되는 것이다. 선물책의 대부분은 베스트셀러거나 서점에서 대충사서 보내는 경우가 많아서, 책 선물을 건네는 사람의 의도나 감정이 제대로 전달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수천만 책 더미 속에서 한 권을 빼들어, 마치 읽으라며 강요하듯 포장지만 싸서 건넨 식이다.

내가 인상 깊게 받은 책 선물을 몇 가지 소개하려고 한다. 첫째, 오에 겐자부로의 『죽은 자의 사치』로 중고 책이다. ‘삶과 죽음에 대한 사색이 너무 인상 깊어 보내드리고 싶은데, 신간을 구하기 힘들어 어쩔 수 없이 줄친 책을 보냅니다’라는 메모를 적어 보내왔다.

둘째, 대학 스승이 번역한 에밀 벤베니스트의 『일반언어학의 제문제』로, 학업 중인 제자에게 사인을 해서 건네준 것이다. 셋째, 제자가 신춘문예 등단을 해서 가지고 온 『신춘문예 소설 당선 소설집』이었고, 넷째, 유학 간 제자가 보내온 밀란 쿤데라의 불어 소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이었고, 다섯째, 마약이나 중독을 막기 위해 평생 애써온 박상규 교수의 『행복 사중주』, 여섯째, 암으로 죽어간 친구가 죽기 전에 남긴 <월간 NEXT> 잡지 한 권이었다. 인상 깊게 받은 책 선물의 공통점은, 선물을 주는 자가 분명한 의도와 진심을 전달했을 때였다. 그 책을 선정한 이유와 그 책을 사면서 당신에 대해 어떤 생각을 했는지 한 구절만 적어 넣어도, 그 책은 평생 잊지 못할 선물이 되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