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손가락은 아홉 개다. 아홉이라는 숫자는 내게 늘 어떤 결핍을 환기시킨다. 처음부터 아홉이었다면 그처럼 느끼지는 않았으리라. 하지만 아버지도 본래 열 개의 손가락을 지녔다. 열에서 하나가 결락된 상태. 그것이 아홉이다. 아버지의 손가락이 아홉이 되었던 날 뒤로 당신의 손을 빤히 들여다 본 적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무 때고 당신의 손이 눈앞에 생생하게 떠오르곤 했다.
초등학교 5학년 무렵이었다. 초여름 햇살은 만연했고 타맥장이 따로 없이 들판 곳곳 보리를 수확하는 곳이라면 어디나 타작마당이었다. 보리를 베고 탈곡기로 낟알을 떨어내는 사람들 무리에 아버지도 있었다. 고무신 밖으로 드러난 발등이 검게 그을려도 그 시절에는 햇살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학교를 마친 뒤 돌아왔던 나는 저 멀리 들판에서 일하는 어른들을 외면한 채 동무의 집 마당에서 따갑다싶은 햇살을 목덜미로 고스란히 맞으며 놀이에 열중했다. 흙먼지가 풀풀 날렸고 들판을 건너 온 실바람에는 까끄라기들이 섞였다. 이따금 고개를 들면 노령산맥이 눈 속으로 성큼 들어와 앉았고 푸른 하늘이 비단처럼 부드럽게 동자 위를 쓸고 지나갔다. 아늑했다. 형용사가 문장의 사치가 되지 않는 건 바로 그 낱말이 아니고서야 감정을 표현할 말을 달리 찾을 길 없는 오직 그 한순간뿐이다.
나는 누군가의 전언을 받고 집으로 돌아갔다. 느이 아버지 손가락이 잘려버렸어야. 그 말이 귓가에 는질는질 매달렸고 종내는 어떤 환청처럼 귓속을 맴돌다 심장까지 파고들어왔다. 불행을 전하는 말들은 왜 그토록 냉정할까. 나는 절로 떨리는 두 손을 내려다보았다.
축 늘어진 팔 아래 내 감각의 촉수들이 힘없이 매달린 채 건들거렸다. 나는 반사감각을 확인하는 사람처럼 주의 깊게 손가락 하나하나를 까딱거려 보았다. 열 손가락 모두 무사했다. 밤이 깊었고 이따금 개 짖는 소리만이 고요한 어둠을 찢어발겼다. 어쩌면 풀벌레 소리 개구리 소리가 드높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게 그 시간은 영원처럼 아득한 침묵이었다. 그 순간 나는 오로지 등 돌린 세계를 볼 수 있을 뿐이었다. 세계의 등은, 광활하고 어둡고 무서웠다.
신작로에 불빛이 비쳤다. 아버지는 왼손으로 오른손목을 움켜쥔 채 발소리도 없이 걸어왔다. 그 뒤를 그림자처럼 어머니가 따랐다. 겨우 손가락 하나를 잃었을 뿐인데 아버지는 육신을 잃은 사람 같았다. 먼지처럼 가벼워보였다. 아버지는 마당에 선 나를 보고 잠깐 걸음을 멈추었으나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말로 할 수 없는 말들. 그날 아버지가 입 밖으로 내보내지 않았던 말들은 그 뒤로 줄곧 나를 괴롭히는 문장이 되었다. 나는 오래도록 그 문장을 완성하기 위해 노력했으나 단 한 번도 마침표를 찍지 못했다. 불면의 밤들이 지속되었다. 그 문장 역시 나로 인해 잠들지 못했으므로 불면의 문장이었다. 그날 밤은 꿈조차 난수표처럼 해독이 불가능했다. 땅에 목숨줄을 대고 사는 사람들. 그들은 자연과 더불어 사는 것인가, 자연에 종속되어 사는 것인가. 목숨을 잃지 않기 위해 그처럼 손가락이든 무엇이든 하나씩 떼어주어야 한다면 사는 게 대체 무슨 의미인가. 이런 의문이 비로소 그날 밤 싹을 틔웠다.
아버지의 손가락이 아홉이라는 사실은 도처에서 목격되었다. 손가락 하나가 잘려나간 낡은 목장갑을 헛간 구석에서 발견했을 때라든지 변색한 장지갑에서 흘러나온 장애인증을 우연히 볼 때라든지 누군가와 대화를 하면서 오른손을 자꾸만 상대방의 시선 바깥으로 옮겨두려는 아버지의 무의식적인 행동에서라든지. 그러나 그보다 더 자주 그리고 끈질기게 그것은 내 의식에서도 발견되었다. 육중한 철문을 닫으면서 그 틈으로 손가락을 집어넣고 싶다는 욕망을 맹렬하게 느낄 때 낫 혹은 칼과 같은 절단도구를 손에 쥐었을 때 알 수 없는 흥분을 느끼면서 나는 내 의식 깊숙이 자리 잡은 손가락을 본다. 어쩌면 아버지의 잘려나간 손가락은 내 안으로 옮아와 이미 오랫동안 거주했는지도 모른다. 아버지는 손가락을 잃었으므로 손가락을 잃었다는 사실을 의식할 수 있었다. 그러나 나는 내 영혼을 잃었으므로 영혼을 잃었다는 걸 의식할 영혼이 없는 탓에 아무 것도 알지 못했다. 내가 영혼을 잃은 까닭은 그것이 나의 손가락이 아니어서라는 걸 나는 안다. 내 손가락이었다면 영혼을 잃는 일은 없었으리라.
그리고 얼마 뒤 동네의 한 아이가 새끼손가락을 잃었다. 얼굴에 버짐이 피어난 아이였다. 두 팔과 두 다리가 가느다랗고 새까만 아이였다. 그 아이는 호기심이 왕성했다. 아이는 경운기 벨트에 손가락을 댔다. 그리고 경운기 구동부에 아이의 손가락이 빨려 들어갔다.
그 뒤로 나는 그 아이가 웃는 걸 보지 못했다. 그 아이의 부모들이 웃는 것 역시 보지 못했다. 농민들의 사상은 대지에 뿌리를 두고 있다. 아니 그들의 감정도 그곳에 뿌리를 두고 있다. 그들은 마치 대지에서 불쑥 튀어나온 존재들인 것만 같았다. 그들의 자식들도 마찬가지였다. 불행한 점이 있다면 우리의 대지가 그다지 비옥하지 않다는 것이었으리라. 그 아이의 손가락도 내 가슴에 들어왔다. 누군가는 위로의 말끝에 아이의 호기심을 탓하기도 했다. 하지만 아버지는 아이의 호기심을 나무라지 않았다. 할 수만 있었다면 아버지는 그 아이를 꼭 끌어안고 눈물도 흘렸으리라. 그 아이는 장성하여 마을을 떠났다. 어떤 표정으로 떠났는지 나는 알 수 없다. 다만 아이가 추슬러 품에 안고 떠났을 그 영혼마저 여위고 지쳤으리라는 건 눈으로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나는 이방인처럼 내 안에 들어와 사는 손가락을 몰아내고 싶었다. 그것은 어떤 사물보다 실제적이었으며 어떤 관념보다 추상적이었다. 나는 그것의 존재를 느꼈으나 눈으로 볼 수 없었고 꺼내어 만질 수 없었으나 존재를 의심할 수는 없었다. 마치 가난처럼. 가난은 구체적이면서 추상적이다. 누구도 가난을 목격하지 못했으나 가난의 존재를 부정하지 못했다. 누구도 인정하고 싶어 하지 않았으나 누구나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그래서 나는 빈곤과 자발적 가난을 구분할 수 있는 사람들이 부럽다. 그이들의 여유로운 정신이 부럽고 감히 가난을 자발적으로 획득하겠다는 발상조차 경이롭다. 빈곤하지 않은데도 가난이라 이름 붙일 수 있는 관념을 발명해낸 그이들이 못내 부럽다. 가난하기에 울어야 했던 부모를 지켜보며 살았다 해도 나는 그이들이 부럽다. 가난한 사람들을 경멸할 수 있는 고귀한 정신들도 부럽고 가난한 사람들에게 자발적 가난을 강요할 수 있는 무심함 또한 부럽다. 가난한 이들이 단 한 번도 그이들을 경멸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아버지는 굳이 잃어버린 손가락을 찾으려 애쓰지 않는 듯했다. 그리고 아버지는 소나무 전지작업을 하다 까마득한 허공에서 지상으로 다시 곤두박질쳤다. 목뼈에 금이 갔고 왼쪽 팔은 더 이상 머리 높이로 들어 올릴 수 없게 되었다. 나는 수술을 앞두고 잠든 아버지의 얼굴을 지그시 들여다보았다. 사람은 저마다 우물이다. 사람은 저마다 얼굴 깊숙한 곳에 미지의 수원을 지녔다. 거기에서는 맑은 물 대신에 짠물이 솟아나온다. 그런 게 인생이라고 아버지는 잠든 채 말하는 듯했다. 병실은 고요했다. 우주가 창조된 뒤로 이런 적막은 얼마나 자주 되풀이되었던 것일까. 나는 아버지의 오른손 집게손가락이 붙었던 자리를 ― 지금은 허공이 되어버린 그곳을 쓰다듬었다. 손가락이 사라진 크기만큼 아버지의 오른손 범아귀가 늘었다. 그러니까 살아야 한다. 우리가 스며든 만큼 세계는 우리에게 자리를 내준다. 아버지는 손가락 하나만큼 세계를 당신에게 허용했던 것이다. 손가락이 잘려나간 단면에 새살이 돋아 굳어 맨들맨들해진 걸 본다. 거기서부터 또 다른 세계가 시작되었다. 그렇게 아버지는 여태 살아왔던 것이다. 나는 치누아 아체베의 문장에서 그걸 보았다. 사람은 흙에서 태어나 흙으로 되돌아간다. 부족민의 장례를 치르며 그들은 흙으로 되돌아간다고 말하지 않았다. 치누아 아체베는 이런 식으로 말했다. 이곳에서는 사람이 흙으로 만들어졌노라고. 아체베는 죽음을 보면서 존재의 덧없음을 떠올리지 않았다. 그는 오히려 존재의 근원을 상상했다. 흙으로 돌아가는 이유는 흙으로 만들어졌다는 걸 확인하는 과정이다. 나도 이런 문장을 하나쯤은 완성해야 한다.우리는 가난하게 태어났다. 그러나 이 문장은 미완성이다. 내 문장에는 사연이 없다. 마치 내가 여전히 열 개의 손가락을 지녔듯이. 나는 아직 아무것도 잃지 않았다. 팔도 다리도 그리고 내 모가지도 안녕하다. 외려 내 혀는 더욱 교활해졌고 내 심장은 여전히 양생되는 중이다. 불편을 좀 더 잘 인내할 수 있게 되었으며 불의에는 더더욱 둔감해졌다.
수술을 마친 뒤 아버지는 가출했다. 당신은 세계를 벗어나지 못했다. 그저 집에서 나갔을 뿐이다. 그리고 여러 해가 지나 돌아온 아버지는 이런 의미의 말을 했다. 가진 게 없는데도 무언가를 잃을까봐 두렵다고. 나는 말로 할 수 없는 아버지의 말이 형태를 이루는 걸 보았다. 아버지는 시인이 아니다. 무식한 농사꾼일 뿐이다. 평생에 걸쳐 그 한 줄의 시를 쓰기 위해 대지에 피땀을 뿌렸던 것인지도 모른다. 사람은 저마다 한 행의 시다. 우리가 목숨 하나로 이 험난한 생을 견디듯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 줄이면 충분하다. 아버지가 두렵다고 말하는 순간 나도 무언가가 두려웠다. 아버지의 공포가 내게 전염되었고 어쩌면 나는 그처럼 전염되어 공포를 앓는 순간을 기다렸는지도 모른다. 나는 가출했다 돌아온 아버지의 손을 들여다보았다. 손 역시 바라보는 게 아니라 들여다보는 것이라는 사실을 그때 깨달았다. 아버지는 여전히 손가락 하나가 부재중이었다. 아버지는 어디에서도 그 결락을 메울 수가 없었다. 지금까지 나를 하나의 문장으로 이끌었던 힘은 삶의 의지와 죽음의 공포가 아니었다. 그것은 바로 삶의 공포와 죽음의 의지였다. 잘 죽기 위해 오늘의 공포를 견딘다. 가난하게 태어났으므로 가난하게 죽기 위해 나는 여태 잃어버린 하나를 찾아 헤매는 중이다. 그래서 나는 다만 당신의 집게손가락은 투명해졌을 뿐이라고 믿는다. 세계가 관통할 수 있도록 내버려둔 것이라 여긴다. 그래서 나 또한 그 손가락이 오래도록 내 안에서 자맥질하도록 내버려둘 생각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