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련한 향기―이것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아버지에 대한 기억이다. 원고지가 여기 저기 흐트러져 있는 아버지 방에서 나는 독특한 냄새, 노란 손으로 내 얼굴을 쓰다듬으실 때 나는 묘한 냄새는 내 기억에 아버지의 향기로 남아 있다. 내가 성장한 후에서야 아버지 방의 향기는 찌들어 있던 담배 냄새였고 손에서 나던 향기는 담배 진으로 노랗게 물든 손가락에서 나는 냄새라는 걸 알게 되었다.
나는 1943년 12월생이고 아버지는 1949년 초여름부터 중풍을 앓다 돌아가셨다. 어린 시절 너무 짧은 기간을 함께 했기 때문에 아버지에 대한 추억은 작고 단편적인 것들뿐이지만 그 추억은 내가 사는 동안 내내 함께 하며 인생에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이 크다.
짧은 기간 동안이지만 나는 아버지로부터 듬뿍 사랑을 받은 것 같다. 어린 시절 아침에 일어나면 아버지의 방으로 가는 것이 내가 제일 먼저 하는 일이었다. 아버지는 내 눈에 낀 눈곱을 혀로 핥아 떼어주곤 했다고 어머니나 누나는 말하지만 내 기억에는 없다. 내가 뛸 수 있게 되자 아버지는 집에서 약 50미터 떨어진 가게에 가서 하잘 것 없는 것을 사 오라는 심부름을 시키고 나서, 내가 갔다 오는 과정을 내내 대문 밖에서 보다가 숨이 차게 뛰어 온 나를 품에 안아주거나 목마를 태워 주곤 했다. 어린 내가 뛰어갔다 오는 것을 보는 것만으로도 즐거우셨던 것 같다.
아버지는 우리들과 장난하기를 좋아했다. 누나들에게 주워 온 아이들이라며 약을 올리고 건포도를 염소 똥이라고, 어머니를 껍데기라고 부르는 등의 농담을 많이 하셨다. 집에 있을 때는 목말을 태워주는 등 나와 많은 시간을 보내셨다. 아버지가 들어오는 소리를 듣고 내가 현관으로 마중을 나가면 “나 요술 부린다”하면서 군밤이나 다른 먹을 것들을 옷 속에 감추었다가 양복소매 사이나 바짓가랑이로 흘려 떨어뜨리시던 생각이 난다.
아버지는 정원 가꾸기를 좋아해서 직접 전지가위를 들고 가지치기를 하셨다. 또 아버지는 불면증이 심했는데 대개 밤에 원고를 쓰다 보니 아침에 아버지가 일어나 요비링으로 부르기 전에 방에 가서는 안 되었다. 아버지는 아침을 늦게 드셨고 매일 외출을 하셨지만 일찍 집에 돌아오셨다. 집에 찾아오는 손님도 별로 없었으며 일들은 대개 전화로 짧게 해결하셨다.
해방이 되어 집필활동이 자유로워지자 아버지는 야심적인 시도를 시작하셨다. 『삼국지』보다 더 규모가 크고 자랑스러운 ‘우리 민족의 삼국지’를 쓰겠다고 사료들을 모으기 시작하셨다. 그것이 「을지문덕」이었는데 아쉽게도 집필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병을 얻게 되어 두루뭉술하게 마감하셨다.
1949년 6월경이었다. 전차 운전사가 아버지를 집으로 모시고 왔다. 우리 집은 전차 종점인 왕십리역에서 한 정거장 전인 하왕십리 역에서 내려야 했는데 종점에서 사람들이 다 내렸는데도 안 내리고 앉아 계셨다고 한다. 다 왔다고 내리라고 해도 못 알아듣고 다른 말만 하여 주머니를 뒤져 주소를 확인한 후 집으로 모시고 온 것이었다. 이때부터 아버지의 회복 불가능한 병이 시작된 것 같다.
아버지는 워낙 과묵하신 분이고 농담 이외에는 별 말씀이 없으신 분이었다. 처음 몇 달 동안은 멀쩡하셨으나 외출하는 빈도가 완연히 줄면서 가끔 뜻 모를 말씀과 행동을 하셨다. 그 해 말이 되자 말씀도 어눌해 지고 오른쪽 팔, 다리를 잘 쓰지 못하게 되어 완전히 방에 눕게 되셨고 식사를 비롯하여 대소변까지 모든 생활을 가족들이 도와야 했다. 일제시대에 누나들에게 한글을 가르치면서 그렇게 기뻐하셨다던 분이 내가 초등학교 1학년 전반기에 우등상장을 받아 보여 드려도 못 알아 보셨다.
병은 차츰 악화되었고 이부자리 속에서 뜻 모를 말씀만 가끔씩 하셨다. 아버지의 오른쪽이 마비될 무렵 6·25 전쟁이 났다. 옆집에 사는 청근이 아버지가 붉은 완장을 차고 날뛰고 다니기 시작했다.
6월 27일, 비가 온 종일 주룩주룩 내리는데 북쪽에서는 대포소리가 점점 크게 들려왔고 동네 사람들과 함께 우리도 피란을 떠났다. 어머니, 15살과 11살 된 누나들, 7살의 나, 2살짜리 겨우 걷는 동생, 이렇게 다섯 식구가 간단한 차림으로 아버지를 업거나 부축하며 응봉동 고개를 넘어 한강으로 향했다. 오후에 출발하여 하룻밤을 민가에서 지내고 한강의 나루터에 도착하니 배를 기다리는 행렬이 길고 총알이 날아다녔다. 우리 차례가 되었다. 약 20명 정도가 탈 수 있는 나룻배에 우리 가족이 타자 사공이 아버지를 쫓아냈다. 몸의 균형을 못 잡아 배가 뒤집어 질 것이라는 이유를 들었다. 우리도 같이 따라 내렸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더 멀고 힘들었다. 인민군을 실은 트럭들이 왕십리에서 신당동쪽으로 질주하고 있었다. 6월 28일이었다.
이틀쯤 뒤일 것이다, 인민군 서너 명이 현관으로 들이닥쳤다. 아버지가 해방 후에 쓰신 공산주의를 비난하는 글이 실린 신문들을 들고 아버지를 체포하러 온 것이었다. 그러나 몸도 못 가누고 의사소통도 안 되는 아버지의 상태를 확인하고는 그냥 돌아갔다. 이런 일은 9·28 수복 직전까지 네 번이나 반복되었고 아버지의 상태는 점점 더 악화되어 갔다.
서울 수복 후 그 동안 완장을 차고 설치던 옆집 청근이 아버지는 동네 사람들에게 흠뻑 두들겨 맞은 후 가족과 함께 자취를 감추었다. 수복의 기쁨과 안정도 잠시였다. 10월 말부터 북에서 피란민들이 오기 시작하더니 11월이 되면서 그 수는 점차로 늘어났다. 그 때부터 어머니는 매일 아침에 나갔다가 저녁때가 되어 힘없이 돌아오는 일을 반복하였다. 병든 아버지를 싣고 피란을 가기 위하여 리어카를 구하러 나가는 것이었다.
12월 초가 되면서 아버지의 병세는 더욱 악화되었다. 음식을 입에 넣어 드리면 씹어 삼키거나 마셨었는데 반 이상을 흘리시면서 몸이 바짝 말라가시고 가래의 양이 많아지기 시작하였다. 등을 벽에 기대고 앉아있는 것도 불가능해 졌다. 어두운 표정이 짙어 가는 어머니는 아버지의 간병을 누나들에게 맡긴 채 더욱 바쁘게 돌아 다녔으나 리어카를 사는 데 실패하였다. 날은 점점 더 추워지고 북으로부터 오는 피란민의 숫자도 줄고 이웃들도 피란을 떠나 동네도 텅 비어 갔다.
12월 하순경부터 아버지는 아무 것도 들지를 못하셨다. 혼수상태에서 입에 미음을 넣어 드리면 삼키지도 못하고 사래가 들어 기침을 하셨고, 가래가 점점 많이 생기며 숨소리가 차츰 거칠고 약해졌다.
12월 29일에는 한동안 종적을 감추었던 옆집 청근이네 식구들이 되돌아왔다. 이때부터 어머니를 비롯한 식구들의 불안감은 극도에 달했다. 어머니의 지시에 따라 뜰의 언 땅을 파고 아버지께서 쓰시던 원고와 고급 소장품과 그릇들을 묻었다. 청근이네 식구가 혹시 보지나 않을까 하는 불안감 속에 눈치를 보느라 극히 적은 양만 묻을 수 있었다.
그 이후 며칠간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아버지는 혼수상태에서 아무도 삼키지 못하고, 움직임도 없어지고, 가래 섞인 숨소리는 점점 약해져 갔고 몸이 매우 여위고 열이 펄펄 났다.
1월 2일(1951년), 어머니가 우리를 불러 놓고 결심한 듯이 말씀하셨다. “6·25때는 그런대로 가족들의 목숨은 위협을 안 받았으나 이번에는 좀 다를 것 같다. 강 건너 흑석동에 살고있는 결혼한 네 큰 누나네가 지금쯤은 전부 피란을 가서 빈 집일 것이고 우리가 거기에 가 있으면 누구인지 모를 터이니 목숨은 건질 수 있을 거다. 아버지가 위독하지만 너희들까지 죽일 수는 없다. 내일 아침에 너희들을 흑석동에 데려다 놓고 나는 다시 집으로 돌아와 아버지의 임종을 보고 나서 흑석동으로 갈 터이니 내일 아침 일찍 떠날 수 있게 간단한 짐을 꾸려라.”
이튿날 일찍부터 서둘러 아침을 대충 때우고 아버지 방에 불을 충분히 때고 다섯 식구가 집을 나섰다. 어머니는 이부자리 몇 채를 등에 지고 2살 된 동생은 그 위에서 어머니의 목을 붙잡고 올라앉아 가는 형태였다. 둘째와 셋째 누나들은 나름대로 쌀과 옷가지들을 등에 지었고 내 배낭에는 은수저와 설탕가루가 들어 있었다.
신당동, 약수동을 거쳐 한남동 쪽을 향하다 보니 피란민의 수가 상당히 많았고. 길 한 편의 양쪽으로 새끼줄을 치고 군인들이 피란민들을 그 안으로 몰아넣고 있었다. 우리는 서로 떨어지지 않기 위해 손을 잡고 안으로 밀려들어갔다. 이후에 우리가 할 수 있는 선택은 아무것도 없었다. 군인들은 이탈을 엄격하게 통제하였고 우리는 느리고 긴 피란민 행렬에 섞여 얼어붙은 한강에 가설한 부교를 건너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는 곳으로 계속하여 움직여야 했다. 행렬을 따라 우리가 첫날밤 도착한 곳은 어디인지는 몰라도 흑석동과는 거리가 먼 곳이었다. 우리를 흑석동에 데려다 놓고 그 길로 집으로 와서 아버지의 임종을 맞으리라 던 어머니의 계획은 완전히 불가능해졌다.
그 날 이후로 피란 대열의 통제는 없어졌다. 우리는 후퇴하는 국군과 남진하는 인민군 사이에 끼여 남쪽으로 향했다. 어느 날 저녁, 오산의 강둑 아래 있는 빈 집에 자리를 잡고 저녁을 먹고 나서 동네를 나가 보니 군인들이 다리 근처를 돌아다니고 있었다. 밤에 다리를 폭파할 준비를 한다는 것이었다. 우리는 그 집을 나와 다리를 건너 노숙을 하였다. 이틀 정도 지나 천안 시내를 통과하다 보니 ‘이제 더 피란을 안 가도 된다’는 방이 여기 저기 붙어 있었다. 아마 오산의 강둑이 마지막 방어선이었던 것 같다.
그때부터는 머물 곳 찾기가 더 어려워 졌다. 집주인들에게 대가를 지불하고 머물러야 했기 때문이었다. 우리는 애초 임시 거처를 흑석동으로 옮길 예정으로 길을 떠났기 때문에 수저 이외에는 밥을 해 먹을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거처할 방 한 칸뿐 아니라 식기까지도 주인집 신세를 져야 했다. 천안 근처에서 보름 이상을 지냈고, 그 대가로 약간의 돈과 누님이 지고 온 포목을 지불한 것 같다.
어머니는 매일 밖에 나갔다 들어 오셨다. 어느 날 온양에 피란민 수용소가 생겼다니 그리로 가자고 하셨다. 온양의 초등학교 근처에 콘센트 건물이 약 20동 있었고, 우리는 그 중 한 칸에 입주하여 비좁고 어렵지만 살 곳을 마련하였고 배급도 받아 오랜만에 안정된 생활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아마 3월 초순쯤이었을 것이다. 얼마 후에는 수용소 안에 있는 고아원을 어머니가 맡게 되어 사는 것이 더 안정되었다.
1951년 8월 초순, 어머니가 서울에 갔다 오자고 하셨다. 어머니와 나는 무턱대고 온양에서 기차를 탔다. 기차 안에는 대부분이 군인들이었고 극소수의 민간인들이 타고 있었다. 한참을 달리더니 기차가 멈춰 섰고 차장이 우리에게 와서 의자 밑으로 숨으라고 했다. 헌병들이 한동안 서류들을 검문하고 지나간 후에 의자 밑에서 기어 나와 보니 기차는 한강 다리를 건너고 있었다. 당시 서울은 국군에 의해 재탈환은 되었으나 민간인 출입이 엄격히 통제되고 있었기 때문에 어머니가 미리 차장에게 손을 써 놓았던 것 같다.서울역에서 내려 걸어서 왕십리 집으로 왔다. 집에 도착하니 아버지 방이 텅 비어 있었다. 집안을 다 돌아다녀 보아도 아버지의 흔적은 찾을 수 없었고, 다른 사람들이 살다 간 흔적만이 여기 저기 있었다. 당황해 하시는 어머니를 따라 뜰로 나가 보았다. 장마 뒤끝이라 피란 가기 전에 집기들을 묻어 두었던 곳은 누가 다시 파 간 흔적으로 웅덩이가 되어 물이 고여 있었고 창틀의 유리들이 많이 없어져 있었다.
집에서 약 20미터 정도 떨어진 밭고랑에서 잠옷을 입은 아버지의 시신을 발견할 수 있었다. 상당히 부패해 있었지만 잠옷과 형태로 밖에 확인할 방법이 없었다. 한동안 망연자실해 계시던 어머니가 어디서 삽을 구해 오더니 밭의 흙을 파서 아버지의 시신을 덮었다. 그리고 일주일이 안 되어 다시 온양으로 돌아갔다.
온양으로 가자마자 어머니는 서울로 떠날 채비를 서두르기 시작했다. 서울에 있는 동안 알아보니 누나들이 다니던 경기여중·고와 내가 1학년을 마친 무학국민학교도 가을이면 ‘훈육소’를 열어 정상 수업을 한다고 했다. 이곳의 생활이 훨씬 안정되었지만 고생스럽더라도 서울에 가서 학업을 계속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것이었다. 고아원을 다른 사람에게 인계하고 9월 중순경에 온 식구가 서울로 향하였다. 두 번을 갈아 탄 군인 부식을 수송하는 차량은 우리를 덕소 근처의 수심이 얕은 한강의 남쪽에 내려놓았다. 밤에는 숲 속에 숨어 있다가 날이 밝으면 걸어서 강을 건너 집으로 들어가는 데 성공하였다.
어머니는 근처에 있는 중앙시장에서 호떡 장사를 하느라고 아침 일찍 나갔다가 저녁 늦게 돌아오셨고, 누나들은 광화문의 경기여고로, 나는 무학국민학교 2학년으로 복교하였다.
그 해 11월 하순경이었다. 오후에 빨간색, 초록색 등으로 예쁘게 단장한 차가 집 앞에 서 있었고 어머니와 누나가 그 차에 타고 있었다. 철이 없던 나는 그 차에 타고 싶어 올라타려고 하였으나 어머니가 못 타게 하였고 야속하게도 그 차는 그냥 떠나 버렸다. 저녁 늦게 어머니와 누나가 맥이 풀린 채 돌아왔다.
홍제동 화장터로 아버지 유해를 모시고 갔던 것이고, 도착해 보니 전방에서 군인들의 사체가 하도 많이 와서 민간인을 화장해 줄 수 없고 계획에도 없으니 그냥 가라고 윽박질러 사정 끝에 군인 사체 20여 구와 같이 화장하여 누구의 뼈인지도 모르는 유골 일부를 받아 한강에 뿌리고 돌아왔다고 한다. 이렇게 해서 아버지의 육신은 영원히 우리 곁을 떠났다.
아버지는 평소 당신이 돌아가시면 화장해주기를 원하셨다 한다. 처음에 아쉬워 매장을 하더라도 세상의 변화가 빠르고 인구의 이동이 많기 때문에 몇 년 지나면 뿔뿔이 흩어져 사는 가족들에게 짐이 되기 때문이라고. 나중에 커서 생각해 보니 그런 이유도 있겠지만 당신 자신이 고향을 떠나 살아 조상의 묘를 자주 찾지 못했던 송구스러움도 다른 이유가 아니었던가 한다. 아버지는 대동강과 모란봉을 특히 좋아하셨다고 한다. 화장 후에 아버지의 유골을 따로 받을 수만 있었어도 다른 곳에 임시로 모셔 놓았다가 후에 기회가 될 때 좋아하시던 곳에 모셨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지만, 지금 해 보는 생각이지 그 때는 아무도 그런 생각을 할 겨를도, 상황도 아니었다.
이후 우리 식구들은 살아남기 위해, 교육을 받기 위해 뼈저린 고생을 하였다. 특히 어머니의 근면과 알뜰함은 자식들을 떳떳한 성인으로 키우는 데 큰 몫을 하였다.장남은 평양의 대동공전을 졸업하고 고등학교 선생님으로 정년퇴임하여 살다가 타계한 지 13년이 되었다. 장녀는 초등학교 선생을 하다가 결혼하여 7년 전에 타계하였다. 차녀는 초등학교를 다니다가 아버님이 1942년 ‘천황모독죄’로 옥고를 치르는 동안에 폐결핵으로 사망하였다. 1939년생인 4녀는 경기여고와 서울대학을 졸업하고 중학교 교사를 거쳐 서울시 장학사를 하다가 1989년 교통사고로 사망하였다. 지금은 아버지 소생의 7남매 중 3남매만이 살아 있다. 1935년생인 3녀는 경기여고와 서울대학을 나와 고등학교 교사로 정년퇴임하였고, 1948년생의 3남은 경복고와 서울공대를 졸업하고 IMF 시절에 ㈜대우의 전무이사로 퇴직하여 건강하게 잘 살고 있다. 1943년생 차남인 나는 경복고와 연세의대를 졸업하고 한양대에서 교수 생활 33년 후 지난 2월에 퇴임하였다.
내가 신경외과를 전공하였고 아버지의 발병 시부터 그 후의 경과를 비교적 상세히 알고 있기 때문에 아버지의 병명과 사인을 추정할 수 있다. 아버지는 왼쪽 뇌에 뇌경색증이 발병하셨고, 점차 악화되어 혼수상태에 빠지면서 삼키는 기능도 마비되어 식사를 못 하신 지가 거의 보름이 되었으며 합병증으로 폐렴까지 발병하여 아마도 우리가 집을 떠난 1월 3일이나 늦어도 그 다음날쯤 돌아 가셨으리라고 추정된다. 후에 어머니께 “병이 그렇게 진행되는데 병원에 모시고 간 적이 있느냐?”고 여쭌 적이 있다. 세브란스병원에 모시고 갔는데 “뇌에 무슨 문제가 있기는 한데 무엇인지 모르겠고 치료 방법도 모르겠다”고 하였다 한다. 그 후 침을 여러 번 맞아 보았으나 아무런 차도가 없이 악화되었다고 한다.
아버지를 헌신적으로 모셨고 아버지의 후손들을 잘 교육시킨 어머니도 작년 5월 15일에 98세로 눈을 감으셨다. 어머니는 아버지의 임종을 지키지 못하셨다는 죄책감에 가능하면 아버지 이야기를 하지 않으려 하였다. 그것은 결코 어머니의 잘못이 아니다.
자식들을 우선 안전한 곳으로 피신시켜 놓고 몇 시간 후에 돌아와 임종을 지키려고 잠시 아버지 곁을 떠난 것이 계획대로 안 되었을 뿐이다. 심사숙고 끝에 내린 결단이었고 그 결과로 자식들이 다 잘 자라 사회에 공헌하게 되었지만 그 때의 상황이 어머니에게는 끝까지 멍에로 남아 있었다. 살아생전에 커다란 족적을 남긴 소설가의 미망인으로서 많은 인터뷰 요청을 받았지만 대부분 거절하셨고 그 때의 상황에 대하여는 절대로 함구하셨다. 상황을 설명하고 당당하게 말씀하시라고 권해 보았지만 “그러한 상황을 직접 겪어 보지 못한 사람은 이해를 못한다. 아마 너희들도 내 심정을 완전히 이해할 수는 없을 것이다”라고 하시면서 끝내 멍에로 안고 가셨다.
그 결과로 말년에 대한 추측성 문헌들이 많이 생겨났다. ‘6·25 동란 중 서울에서 홀로 외로이 사망하였다.’ 맞는 말이긴 하다. ‘6·25 동란 중 홀로 서울에서 아사하였다.’ 이는 아사와 병사의 차이점도 모르고, 조사를 해 보려는 노력도 하지 않은 무식하고 무책임한 문헌이다. 6·25가 나기 1년 전부터 아버지가 병환으로 집필을 하지 못했던 것은 문단에도 잘 알려 진 사실이기 때문이다.
심지어는 ‘30대 후반에는 가산을 탕진하여 궁핍한 생활을 하다가 마약 중독에 빠진 폐인이 되어 가족에게도 버림받고 6·25 동란 중 외로이 동사하였다’는 모함적인 문헌까지 있다. <창조>, <영대>, <야담> 등을 발간하느라고 유산을 탕진한 것은 사실이다. 마약을 하신 경험이 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아버지는 마약 중독에 빠져 폐인이 된 적은 없다. 유산이 없어 진 후 식구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 취직도 했고, 열심히 문필 생활을 하여 원고료 수입으로 가족에 대한 부양의무를 다 하였다.
해방 이후에는 다시 많은 글을 쓰기 시작하였고, 특히 좌익을 비난하는 글을 많이 썼다. 초등학교 4학년 때 해방을 맞은 누나의 기억을 빌리면, 그 때까지도 우리 가족은 항상 바나나를 간식으로 먹었으며 아버지를 따라 백화점에서 계절에 맞는 옷과 모자까지 사 입은 적이 많다고 한다. 당시 부호의 반열에서는 밀려 났지만 중산층보다는 약간 부유한 생활을 유지했던 것 같다.
아버지를 거의 글로만 대한 나는 아버지에 대한 아쉬움이 많이 남아 있다. 1954년에 신구문화사에서 『춘원연구』 출판기념회와 아버지 추도식을 겸해 <동인의 밤> 행사를 하였다. 많은 문인들이 참석한 가운데 주요한 선생은 추도사에서 “동인을 일본에서 처음 만났을 때 내가 열다섯이라고 하였더니 자기는 열여섯이라고 하여 항상 형이라고 불렀는데 오늘 약력을 보고서야 오히려 동인이 나보다 한 살 아래인 것을 알았다. 동인은 이렇게 매사에 지기 싫어하는 강한 자존심으로 한국 문학의 초석을 다져 놓고 갔다”는 말씀을 하셨다. 추도사를 들으며 내가 동네에서 싸우고 져서 울고 들어가면 “다음에 또 싸울 때는 코를 물어뜯어서라도 이기고 들어오라”시던 아버지가 생각났다.
1957년에 출판사 정양사의 윤 사장님이 『東仁全集(동인전집)』을 출판해보겠다고 했다. 출판사 사정상 원고를 수집할 수 있는 인력이 없으니 유족들에게 시중에서 구할 수 있는 단행본과 당시 신문과 잡지에 실렸던 원고들의 필사를 요청했다. 누나들과 내가 틈틈이 도서관에 가서 원고지에 필사를 하였는데 신문에 어느 분이 ‘김동인은 독자가 많아 자기 글이면 무엇이나 잘 팔리니까 이제는 야담이나 잡문까지도 많이 쓴다’는 내용의 글을 쓴 것을 보았다. 아버지가 이 글에 대해 어떤 답변을 하셨는지 궁금하여 열심히 찾아보았으나 무답이었다.
전집은 10권 예정으로 시작했으나 예산 부족으로 정양사가 7권까지 발행하고 홍자출판사로 넘어가 1960년에 10권이 완간 되었다. 그 후 여러 번의 전집과 단행본들이 출판되어 그 인세는 우리들 교육에 큰 도움이 되었다.
특별히 아쉬운 점은 친필 원고가 한 장도 없을 정도로 유품이 거의 없다는 점이다. 주요한, 백철, 정비석 선생들을 만나 뵈었으나 그 분들도 6·25를 거치느라 많은 것들을 잃으셨고 아버지가 워낙 교우가 뜸하셨던 분이라 어디서도 친필로 쓴 것을 구할 수 없었다. 아버지가 어머니께 보낸 엽서 세 개만 어머니가 피란 중에도 품고 다닌 덕분에 지금까지 남아 있다. 사진도 당시 아버지가 모아 놓으셨던 상자가 떨어져 깨진 유리 원판을 이리저리 붙여 몇 장을 복원하였고, 신문이나 잡지에 실렸던 것을 복사해 놓은 것이 몇 장 있다. <만선일보>에 1937년을 전후하여 약 1년 반 동안 연재하였던 「시들은 서총(瑞塚)」이라는 장편소설은 찾을 길이 없다.
이제 아버지는 한국 문단의 하나의 역사로 남아 있다. 우리에게는 아버지이지만 문단에서는 공인이다. 지금까지 많은 학자들의 연구 대상이었고 앞으로도 그럴 것으로 생각한다.
최근 <민족문제연구소>라는 단체에서 아버지를 친일파로 몰아붙였다. 그 이전에는 친일문제로부터는 완전히 자유로우셨는데 그 연구소에서 문제 제기를 한 것은 친일로 볼 수 있는 글 몇 개보다도 해방 후에 쓴 좌파에 대한 맹렬한 비난 글들이 그들의 비위를 건드렸나 보다.
<친일반민족행위 진상규명위원회>라는 한시적인 국가위원회가 생겨 재심사한다고 하여 기대하였으나 이 역시 노무현 정권에서 임명한 사람들의 의견들이 주로 반영되어, 수차례의 이의 신청에도 불구하고 기각되어 현재 정부를 상대로 행정소송을 진행 중이다. 그 시대를 살아 보지 못 한 사람들이, 당시 전업 작가로서 가족의 생계를 책임져야 했던 어려움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이제 와서 일방적이고 왜곡된 시각으로 인민재판식의 판결을 내리고 있다.분명한 것은 아버지는 항상 우리말과 민족을 사랑하셨고 우리말로 소설을 쓰는 소설가라는 자부심으로 평생을 살다 가신 분이라는 사실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