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2030년 - 포스트코로나 시대 읽기 ①환란일지 ②2030년 서울, 그리고 레이턴시 ③바이러스와 함께 돌아보기 ④마스크에 관한 학교괴담
세상 풍경 중에서 제일 아름다운 풍경 모든 것들이 제자리로 돌아오는 풍경
조선통신사 수행화원이 일본에서 그린 특이한 형식의 그림
①완성의 속도 ②코로나 여름, ‘국뽕 아재’의 기원 ③적막과 고요와 침묵
아무일 일어나지 않는 40호 남짓 시골마을, 그 사람들과 정서
①일상과 일상 너머를 아우르는 탄력있는 상상력 ②포스트코로나 시대 한국문학의 흐름과 성취는?
“일본 동북사투리가 너무 어려웠어요. 게다가 한국역사도…”
대산창작기금,한국문학 번역·연구·출판지원,대산세계문학총서
2020 한국문학 번역·연구·출판지원 지원대상작 선정 제28회 대산청소년문학상 수상자 선정 김소월 등단 100주년 기념 시그림전 - 소월시 100년, 한국시 100년
한반도, “지리의 포로”에서 “지리의 힘”으로
팀 마샬의 『지리의 힘』
김기봉
경기대학교 사학과 교수, 1959년생
저서 『내일을 위한 역사학 강의』 『히스토리아 쿠오바디스』 『팩션시대 : 영화와 역사를 중매하다』『역사를 통한 동아시아 공동체 만들기』 등
팀 마샬의 『지리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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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땅의 자식이다. 우리는 땅에서 태어나 땅에서 살다가 땅으로 돌아간다. 설령 해난 사고를 당해도 시신만은 인양해서 땅에서 장사를 지내야 애도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국가가 존립하려면 땅은 필수적이다. 영토를 잃으면 국가는 망한다. 땅의 모양이나 형편을 지리(地理)라고 부른다. 사람이 사는 곳이자 국가가 놓여 있는 장소인 지리는 운명을 결정한다.
인간이 산다는 것은 시간과 공간 속에 존재해 있음을 의미한다. 그런 존재에 관한 기록이 역사다. 역사란 인간·시간·공간의 3간(間)의 조합으로 서술되는 서사다. 이 3요소 가운데 가장 영속적인 것이 공간이다. 그래서 프랑스의 역사가 페르낭 브로델(Fernad Braudel)은 지리를 “움직이지 않는 역사”라고 했다. 역사상 생겨났다가 사라진 국가가 수없이 많지만, 지리는 오고 감이 없이 제자리에서 그런 시간의 흔적을 품고 있다. 그런 지리의 관점으로 지구 전 대륙의 역사를 조망했던 팀 마샬(Tim Marshall)은 다음과 같이 썼다.
 김기봉 |
『지리의 힘』으로 번역된 책의 원제목은 “지리의 포로(Prisoners of Geography)”이다. “지리의 포로”와 “지리의 힘”은 어감이 다르다. 전자가 지리에 사로잡혀있는 형상이라면, 후자는 지리가 가진 잠재적 힘을 뜻한다. 지리가 국가에 작용하는 힘은 이중적이다. 마샬의 책에서 지리의 혜택을 가장 많이 받은 국가는 미국이다. 미국은 “신이 편애하는 땅”이라 불릴 만하다. 대서양과 태평양이란 가장 넓은 바다를 오른손과 왼손 양쪽으로 들고 광활한 대지와 풍부한 자원을 가진 나라가 미국이다. 이에 비해 지리가 문제인 강대국이 러시아와 중국이다. 두 나라는 바다로 나가는 문이 닫혀있기에 지리가 감옥이 되었다. 러시아는 가장 넓은 영토를 가졌지만 부동항이 없다는 것이 역사의 난제였다. 중국은 밖으로부터 더 바랄 게 없는 복된 땅이다. 하지만 그런 땅의 풍요가 쇄국을 초래해서 역사 발전을 막았다. 반면 열악한 지리적 조건을 가진 유럽은 교류와 경쟁을 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다는 한계가 근대 자본주의로의 이행을 이끌었다. 절치부심했던 중국이 21세기에 대국굴기를 하면서 문제가 발생한다. 중국은 세계에서 가장 많은 나라와 국경선을 맞대고 있는 나라다. 국경의 장벽 없이 밖으로 나갈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바다가 남중국해다. 가스와 원유를 수송하는 이 물길이 없다면 중국은 생존이 어렵다. 따라서 중국에게 남중국해 영유권 분쟁은 숙명이다.
지리의 포로가 되어 독자성을 잃지 않고 유구한 역사를 이어온 민족이 한(韓)민족이다. 한반도라는 지정학적 위치 때문에 한민족이 사는 정치공동체는 지도에서 사라질 수 있는 여러 위기와 전란을 겪었고, 지금도 분단시대를 살고 있다. 그런 한반도가 외부인들이 보기엔 ‘문제’다. 마샬은 그에 대해 다음과 같이 썼다.
“한반도라는 문제를 어떻게 풀어야 할까? 풀 수 없다. 그냥 관리만 할 일이다. 무엇보다 전 세계에는 이 문제 말고도 관심이 필요한 시급한 일들이 널려 있다. 말레이시아에서 러시아의 블라디보스토크 항에 이르는 지역 전체는 초조하게 남북한을 주시하고 있다. 만에 하나 그들의 코앞에서 이 문제가 폭발하기라도 하면 인접국들까지 말려들게 되고 그 여파가 당장 경제적 피해로 이어질 거라는 걸 그들은 알고 있다. 중국은 북한의 행위 때문에 전쟁이 일어나는 건 바라지 않지만, 그렇다고 통일 한국의 국경, 즉 자신들의 코앞에 미군이 주둔하는 것도 바라지 않는다. 미국도 남한을 위해 싸우고 싶은 마음은 털끝만큼도 없지만, 그렇다고 우방을 저버리는 짓을 할 수도 없다. 한반도 개입에 있어서는 오랜 역사를 지닌 일본은 어떤 사태가 벌어지더라도 모른 체 할 수 없는 입장이기에 되도록 조심스럽게 행동할 것처럼 보여야 한다”
(162쪽).
외교가에서는 “친구는 선택할 수 있어도 이웃은 선택할 수 없다”는 말을 한다. 한반도의 이웃은 중국, 일본, 러시아다. 친구는 누구인가? 북한에겐 중국밖엔 없다. 이에 비해 남한은 계산이 복잡해서, 안보는 미국과 경제는 중국과 친해야 한다. 남북한의 관계는 어떠한가? 분단시대 적대적 관계를 70년 이상 이어왔지만, 지리의 법칙으로는 둘은 운명공동체다. 인간·시간·공간, 이 셋 가운데 가장 불변한 것이 공간이다. 한반도가 대륙 세력과 해양 세력의 충돌지점이 되었기에 다른 나라들이 한반도를 관리해야 할 ‘문제’로 인식해 왔다. 21세기 한반도가 두 문명의 충돌지가 아니라 융합해서 글로벌 K-문명을 탄생시킨다면, 한반도는 더 이상 “지리의 포로”가 아니라 “지리의 힘”이 솟는 문명의 단전(丹田)으로 부상할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