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고정민_서울예술대학교 극작과 2년. 제13회 대산대학문학상 희곡 부문 수상자
히드로 공항에서 시가지로 향하는 철도의 창밖 풍경을 기억한다. 택시를 타고 숙소로 돌아오며 보았던 어두운 밤, 노란 조명등도 기억한다. 나는 지금 사라진 목소리 그리운 목소리를 부르고 있다. 어떤 기억은 목소리와 동일할 수 있다. 우리의 여행은 마니또를 찾아 떠난 고공비행 같이 아득히 먼 일의 지난 추억으로 변해가지만, 나는 지금 사라져가는 기억 그리워지는 기억을 부르고 있다.
피카딜리 서커스는 무수히 많은 길을 가진 공간이다. 열린 방향성만큼이나, 무관한 사건으로 에로스 동상이 서있는 그곳엔, 에로스의 발아래를 둘러싼 군중들이 있었다. 어디로든 뻗어나갈 자세로 등을 기대고 앉아있었다. 처음 마주한 런던의 풍경을 시작으로, 일정표를 보아도 도무지 가늠할 수 없었던 우리의 여행은 그렇게 시작됐다. 분명 익숙한 이름이지만 낯설고 기묘한 맛을 가진 음식들을 끼니마다 먹으며 우리는 참으로 많이 보고 느끼며 걸어 다녔던 거 같다. 런던아이를 시작으로 빅벤, 트라팔가 광장, 내셔널갤러리, 코벤트 가든, 영국박물관, 타워 브릿지, 아폴로 빅토리아 극장의 뮤지컬 위키드 관람까지. 막역히 머릿속에만 존재하던 런던의 이미지들은 하나의 커다란 조각으로 선명히 꿰맞춰지며 우리만의 궤도를 그어나갈수 있는 힘을 만들어줬다.
런던에서도 물 건너온 쉑쉑버거는 정말 맛있었다. 그 힘으로 킹스크로스역까지 넘어가 해리포터 마니아들의 성지인 9와 4분의 3 승장장에서 우리는 헤르미온느 지팡이를 기념품으로 샀다. 타워 브릿지를 등 뒤로, 지팡이 덜렁거리며 숙소로 걸어 돌아오는 길. 영국인들이 지하철서 자꾸만 힐끔실눈으로 쳐다보는 시선 때문에 동기들과 웃음 터진 일은 이번 여행의 잊지 못할 추억으로 남아있다.
우리가 서 있고, 내 발등 선 곳의 지정학적 위치는 어디인가. 혹은 나만의 문학적 윤리는 무엇이 될 수 있는가.
이것은 작가 벤 오크리와의 대담에서 만들어진 나의 질문이다. 지금의 나로는 쉽게 답할 수 없는 커다란 질문을 안고 남은 일정을 보내며 많은 고민에 빠졌던 시간도 기억이 난다.
우리의 일정은 프랑스의 액상 프로방스로 넘어갔다. 프랑스에서 한국문학을 알리는 데 많은 기여를 하고 계신 드크레센조 출판 관계자들과의 만남이 이어졌고, 편안한 분위기에서 자유로운 질문이 오갔다. 이어진 프로방스 대학교 학생들과의 만남은 벤 오크리의 대담에서 만들어진 질문의 대답이 결코 쉽지 않다는 것을 다시 한 번 알게 해준 계기가 됐다. 누군가 나에게 질문을 하고, 그 질문에 답을 한다는 명료하고 단순한, 그 과정 자체의 신비함을 그때만큼 새로이 느낀 적은 아마 없을 것이다. 과연 나는 누군가의 질문에 쉬이 답을 줄 수 있는 존재인가. 누군가가 아니라면 스스로의 물음에서라도 말이다. 어느 쪽이라도 지난한 여정일 것이다. 우리의 대화, 혹은 작품은 지금 여기, 우리가 사는 세상에 어떤 방향을 제시하고 어떤 질문을 만들어낼 수 있는가. 내가 무얼 써야하는지 아는 것은, 어떻게 쓰는지 보다 훨씬 더 중요한 문제가 될 수도 있다. 이번 문학기행을 통해 얻은 가장 큰 배움이 있다면 질문하는 태도에 관한 진지한 성찰이라 말하고 싶다.
문학기행에서 큰 기대를 품었던, 세잔 아틀리에 방문은 나의 기억에서 가장 아름답게 남아있는 추억이다. 고독했던 그의 작업방식만큼이나 그가 머물렀던 아틀리에는 작고 소박했다. 나는 세잔이 휴식을 취하던 아름의 정원에 앉아, 쓸쓸할 정도로 나른히 쏟아지던 햇빛을 맞으며 여행으로 쌓인 피곤을 스스로 풀어주었다.
우리는 테제베를 타고 파리로 이동했다. 여행이 막바지에 다다랐다는 것은 열차의 빠른 속도만큼이나 체감할 수 있는 분명한 사실이었다. 그러나 우디 앨런이나 에릭 로메르 등을 통해 어쩐지 친숙해진 옆 동네(?) 파리의 이미지는 세상의 시계가 멈춘, 어딘가 나른하고 고즈넉이만 흘러가는 시계바늘을 가진 동네로만 느껴졌다. 루브르 박물관이나 노트르담 대성당이 응축한 유물과 유적의 시간이 많아서일까. 에펠탑 꼭짓점으로 하늘 찌르며 모아지는 관광객의 시선이 많아서일까. 나의 예상과는 다르게 파리의 일정은 정신없이 흘러갔다.
지나고 보면 모든 일정 하루하루가 바쁘고 치열하게 이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하늘을 많이 바라보고 싶었다. 런던의 하늘은 구름이 낮은 구릉으로 뭉개뭉개 피어났고, 액상 프로방스의 하늘은 바람 한 점 없이 고요하고 청명한 가을날로 정신을 맑게 해주는 힘이 있었다. 샹젤리제 거리를 걸으며 바라본 파리의 하늘은 대롱대롱 매달린 구름이 도시건물과 맞닿을 듯 미끄러지며 거리로 쏟아졌다.
지금 내가 글을 쓰며 바라보는 창밖의 풍경은 오늘의 모습과 내일의 모습이 또 얼마나 달라질 것인가. 구름 너머 저기 높은 곳에서 나를 바라보는 비밀친구에게, 나는 하늘 바라보며 어떤 표정을 지으며 살아갈 것인가. 유럽문학기행을 통해 나는 커다란 질문 하나와 이루고 싶은 목표 몇 개를 가졌다. 이정도면 뭐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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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이 아름답게 빛나던 조용한 산속 집, 따듯한 환대로 우리를 맞이해주신 김혜경 선생님과 장 클로드 드 크레센조 선생님, 출판사 드크레센조 여러 관계자들에게 다시 한 번 감사한 마음을 전합니다. 발자크를 더 많이 한국에 번역해주신다는 10년 후의 약속 꼭 지켜주세요. 저도 그동안 불어공부 열심히 하겠습니다. 13회 동기 종연, 현우, 동규, 윤희, 지혜 누나, 모두 친구가 될 수 있어서 행복한 시간이었습니다. 더하여 뮤지컬 위키드 관람을 강력 주장한 저의 의견을 너그러이 수용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우리 일행의 주인님, 주임님으로 여러 호칭을 웃음으로 받아주신 장근명 대리님 정말 감사합니다. 돌아보니 모두 감사한 일만 가득합니다. 마지막으로 부족함 없이 보고 느끼며 배울 수 있게 도움주신 대산문화재단에도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