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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의 자리로 돌아왔다
작성자 염동규
날짜 15.07.17 조회 9863

글∣염동규_고려대학교 국어국문학과 4학년. 제13회 대산대학문학상 평론부문 수상자

1. 이것은 여행이 아니라 출장이다.

나는 여행에 별 매력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사람 사는 곳이 다 거기서 거기이므로, 유럽에 간다고 해서 대단한 게 있을 것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여행 같은 걸 갈 바에야 익숙한 거리의 익숙한 장소에서 익숙한 사람들과 대화를 하는 편이 훨씬 더 이롭고 효율적이라고 여겼다. 게다가 수중에 돈은 없었으니 여행에 드는 이러저러한 비용들을 감당할 만한 형편도 못 되었다. 그래서 이렇게나 소중한 기회가 생겨 떠나게 된 유럽 문학 기행에 대해서도, 감히 고백하건대, 그것을 ‘여행’으로라기보다는 ‘출장’으로 받아들였던 것 같다.
기대는 별로 없었다. 세계적인 작가를 만나 대화를 나누게 되리라는 점이나 다른 나라 학교의 학생들 앞에서 내 글을 소개하게 된다는 점에 설레기는 했지만 그것 역시 ‘바보 같은 말을 하면 안 된다’는 부담감과 뒤섞여 묘한 책임감을 자아내고 있었다.
그래서인지 인터뷰와 발표 준비는 꽤나 열심히 했어도 정작 짐을 챙기는 일과 여행 가서 쓸 돈을 환전하는 일은, 떠나기 전날에서야 억지로 시작했다. 여행 전날의 새벽에 나는 울적했고 무서웠다. 느닷없이 테러에 대한 걱정이 일었고 읽어야 할 책의 목록이 떠올랐다.
유럽에 가봤자 뭐 별 게 있겠냐는 생각은 도착한 날까지도 이어졌다. 12시간이 넘는 비행시간 동안 몸은 온통 찌뿌드드했고, 비행기 안에서 잠을 자지 못해 몹시 몽롱하고 피곤했다. 공항에서는 부쳐놓은 짐은 대단히 늦게까지도 나오지 않았다. 한국에서였다면 잠에 들어야 하는 시간. 런던의 활기찬 오후는 내게 불편했다. 숙소에 가서 어서 눕고 싶었다.

2.  런던에서의 며칠간

하지만 두 번째 날이 되어서 어느 정도 피곤이 가시고 나자 영국의 첫인상은 상당히 바뀌게 되었다. 사람 사는 곳이 다 거기서 거기일 거라는 생각엔 변함이 없었지만 신기했다. 식당의 유리창 건너편에서는 낯설게 생긴 사람들이 모여 밥을 먹고 있었다. 이런 건 영화에서나 보던 모습인데. 조금씩 즐거워졌다. 건물들도 예뻤다.
우리는 웨스트민스터 역에 위치한 ‘빅 벤’으로부터 런던 시내 관람을 시작했다. ‘빅 벤’은 정말 웅장했다. 뭐랄까? 정의내리기는 어렵지만 ‘이것이 바로 문화다’라는 생각이 들었던 듯하다. 그 건물이 그 자리에 서 있는 것은 자연스럽고 태연해 보였다. ‘빅 벤’이 그 주변의 다른 건물들과 조화를 이루고 있는 광경은, 예를 들어 말하자면, 온갖 서구식 건축물들의 사이에 광화문이 서 있는 광경과는 분명히 다른 느낌으로 다가왔다. 지금에서야 드는 생각이지만 서구식 건축물로 가득한 공간에 둘러 싸여 있는 우리 문화 유산의 모습들은 어떤 명맥이 끊어져버렸음을 현시하는 것 같아 안타깝고, 거기 서 있던 빅 벤은 자신이 머금고 있는 시간의 깊이를 주변의 다른 것들과 함께 이어왔다는 사실을 덤덤히 자랑하는 것처럼 여겨지는 것 같아 부럽다.
이건 프랑스의 아름다운 건물들을 보면서도 마찬가지로 느꼈던 점이었다. 과장을 덧붙이자면 유럽을 돌아보고 난 뒤에, 전통과 역사라는 말은 예전과는 좀 다르게 울리는 듯했다. 나에게 한국의 역사와 전통은, 그 영광이 너무나 멀리 있는 듯싶고 그 상처는 너무나 가까이 있는 듯싶어 대체로 어둡고 쓸쓸했는데 이곳에 사는 사람들이라면 제 나라의 전통과 역사가 (그것이 오만이든 무엇이든 상관없이) 일단은 듬직하게 여겨질 듯했기 때문이었다.
버킹엄 궁전을 둘러보고, 대영 박물관에 간 뒤 우리는 런던의 공립 대학 중 하나인 SOAS(School of Oriental and African Studies)로 향했다. 거기에서 그레이스 고 선생님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면서 런던의 생활과 그곳 대학교의 분위기를 전해 듣고, 벤 오크리 작가와의 인터뷰에 관한 사항을 조금 조율했다. 그레이스 선생님은 매우 친절하셨고 또 상냥하셨다.

그리고 우리는 벤 오크리를 만났다.


벤 오크리와의 인터뷰는 힘에 부치는 일이었다. 오크리를 만난 것은 ‘코바’라는 이름의 한식당에서였는데, 인터뷰를 하기에는 음악소리가 컸고 주변의 분위기가 왁자했다. 우리가 인터뷰를 하는 자리 옆에서는 영국의 젊은이들이 사랑의 말을 주고받으면서 서로 물고 빨고 하고 있었다. 인터뷰 준비를 위해 그날 아침 동안 열띤 이야기들을 주고받고 질문할 사항들을 차곡차곡 점검해 나갔던 우리였지만, ‘코바’의 분위기는 그딴 게 어디 있냐며 그냥 먹고 즐기라는 것 같았다. 벤 오크리 역시도 딱딱한 작가 인터뷰의 형식보다는 한 자리에서 어울려 놀면서 부담 없이 이야기하는 분위기를 선호하는 것처럼 보였다. 어쨌거나 일단, 대화는 시작되었다.
대 작가답게 벤 오크리는 시종일관 대화의 분위기를 주도했다. 주로 우리가 물어보고 벤 오크리가 답하는 흐름을 기대하고 있었기 때문에 처음에는 적지 않게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오크리는 우리에게 작가로서의 진지함 같은 것을 가지고 있는지의 여부를 확인하고 싶어 했다. 앞으로 글을 계속 쓸 생각이 있느냐, 글을 매일 쓰고 있느냐 하는 것들을 우리에게 물어왔다. 우리는 저마다 할 수 있는 대답을 했다.
아무튼 시간이 상당히 많이 지나갔음에도 불구하고 준비한 질문은 거의 시작도 못한 상태였다. 자글자글 고기는 익어갔다. 나는 익어가는 고기를 입에 넣어야 할지 대화의 흐름 속에서 질문을 위한 틈을 찾아야 할지 고심했다. 나는 먹지도 못하고 질문을 하지도 못한 채 옆 테이블에서 계속 물고 빨고 있던 애들을 힐끗힐끗 쳐다보기만 했다. 얼굴이 홧홧해졌다. 옆 테이블의 애들을 보기가 민망했기 때문인지 인터뷰의 향방이 걱정이 되었기 때문인지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서로 물고 빨고 했던 애들이 집으로 돌아가고, 음악소리가 없어지면서부터 전환의 계기는 마련되었다. 시간이 많이 흘러버렸다는 점이 문제이기는 했지만, 우리가 질문을 좀 더 자유롭게 할 수 있을 만한 분위기가 생겨났다. 벤 오크리는 진지하게 대답해주었고, 질문과 대답이 끝날 무렵이 되었을 때쯤에는 이 작가에 대한 신뢰감이 생겨났던 것 같다. ‘굶주린 길’에 보이는 많은 문학적 장치들이 짐짓 자신을 꾸며내기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자기가 실제로 거주하고 있는 세계에 대해 증언하는 것처럼 여겨졌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 세계는 우리가 한국 문학을 읽고 한국 작가들을 접하면서 느꼈던 세계와는 분명히 달랐다. 낯설었지만 유익했다.
지금 생각해보니 낯 뜨거운 이야기지만 나는 벤 오크리에게 나의 수상작을 인쇄해서 선물했다. 물론 그는 한국말을 모르므로 그것을 읽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여하간 나도 작가니까. 처음 만나는 작가끼리의 선물은 역시 ‘글’일 것 같았으니까. 그렇게 했다. 벤 오크리는 고맙다고 말해줬다.

3. 평화로운 액상 프로방스

런던에서 자유시간도 보내고, 뮤지컬도 보고, 옥스포드도 둘러본 뒤에 우리는 프랑스로 향했다. 수면 시간이 짧아서 여간 피곤했던 게 아니었지만 액상 프로방스에 도착한 뒤, 마음은 이내 평안을 되찾았다. 주말이어서 사람이 많지 않았다. 가게들의 문도 대체로 닫은 상태였다. 런던과는 달리 한적한 매력이 있는 도시였다.
주말이라고 상점이 문을 닫아버리는 것도 인상적이었지만 길거리에는 개똥이 유난히 많았고, 런던과 마찬가지로 이곳의 사람들도 대체로 횡단보도 신호등을 잘 지키지 않았다. 나에게는 그런 모습들이 그 나라 사람들의 여유를 드러내주는 것 같아 보인다. 길거리에 똥이 있어 지저분하고, 횡단보도의 신호등은 있으나 마나 차가 지나지 않을 때는 건너버리는 그런 모습들이, 공중도덕이나 교통법을 잘 지키는 것보다는 결국 삶의 평안함이 더 중요하지 않냐는 점을 말하는 듯도 했다. 이 모든 사소한 위반들을 서로 넉넉히 그러려니할 수 있다는 게 ‘여유’가 아니면 무엇이겠는가.
액상 프로방스에서 무엇보다도 행복했던 경험은 김혜경 선생님, 드 크레센조 선생님과의 만남과 액스 마르세유 대학교 학생들과의 만남이었다. 산 속의 오두막 같은 느낌의 드 크레센조 선생님네 집은 정말로 평안했고, 거기서 나누었던 이러저러한 대화들은 기껏해야 풋내기 작가들인 우리들의 마음을 조금 단단하게 잡아주었던 것 같다. 그 집에 우리가 이름만 들어도 알 만한 작가들이 왔었고, 이제는 우리가 그 자리에 앉아 있다는 느낌 때문이었다. 그것만으로도 영광이었지만 거기 모인 사람들이 우리에게 말을 걸고 이야기를 듣는다는 사실은 굉장히 뿌듯했다.
액스 마르세유 대학교에서는 준비해 온 작품 소개를 들려주고, 학생들로부터 질문을 받고 답변을 하는 시간이 주어져 있었다. 내 경우, 여기에 오기 전까지는 프랑스 대학생들과의 만남이 가장 긴장이 되었었는데 막상 와 보니까 긴장을 할 이유가 전혀 없어 보였다. 학생들은 호의적이고도 열정적이었다. 한국에서 대학생활을 하면서는 별로 보지 못했던 모습이었다. 그래서인지 우리들 중 몇몇 사람들은 언젠가 기회가 된다면 프랑스에 가서 잠시라도 공부를 해보고 싶다는 생각까지 하게 되었는데 나 역시 그랬다.

4. 파리, 사람으로 조각된 도시

파리에 대해서는 사실 걱정이 더 많았다. 외교부에서는 문자가 하루 이틀에 한 번 꼴로 계속 날아왔다. “프랑스 대테러 경보단계 최상급 유지중, 신변안전에 각별한 주의 요망”이라는 문자였다. 파리에는 소매치기범도 많고, 물건을 강매 당하기도 하고 여하간 위험한 일이 아주 많으니까 각별이 조심하라는 말도 이 사람, 저 사람에게 많이 들어서 우리는 파리가 좀 무섭게 받아들여졌다. 물론 파리가 실제로 우리에게 어떤 위험을 보여준 일은 없었지만 간접적으로나마 이 도시가 얼마간 위태롭다는 사실을 유추해볼 수는 있었다. 거리엔 총을 든 군인들이 군데군데 눈에 띄었고 각 상점에서는 덩치가 아주 큰 사람들이 경비를 맡고 있었다. 그런 것과는 무관하게 우리는 아주 자유롭게 돌아다녔고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기는 했지만 말이다.
이것이 나의 무지로부터 비롯된 착각인지 어떤지는 모르겠지만 영국의 유명한 건물들과 파리의 유명한 건물들은 좀 차이가 있어 보였다. 영국과는 다르게 파리의 유명한 건물들에는 사람의 형상이 유난히 많이 조각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내 눈에는 파리의 건축물들이 역사 속에 잠재하는 인간의 손길에 대해 보다 힘주어 말하고 있는 듯이 느껴졌는데 그런 생각을 하니 이 나라를 떠올릴 때마다 혁명의 이미지가 함께 연상되는 것이 그럭저럭 이해되었다. 자연히 흘러가는 시간은 역사가 아닐지도 모르지만, 사람들이 모여야만 완성되는 혁명의 시간은 역사가 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나에게 가장 멋져 보였던 파리의 건물은 시청 건물이었고, 고개를 숙이게 만들었던 건물은 노트르담 대성당이었다. 성당은 외형도 멋있었지만 내부가 아주 성스러웠다. 대단히 크고 넓은 성당이라 그렇게 느껴지는 면도 있었고, 이따금씩 은은하게 흘러나오는 파이프 오르간 소리는 이곳이 신의 공간임을 분명히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딱히 기도를 한 건 아니었지만 자리에 앉아서 이곳저곳을 두리번거렸다. 잠깐 동안이나마 신성한 공간의 일원이 된 듯도 했다.

5. 다시, 내일을 연다

파리에서 이틀 정도를 머문 뒤에 우리는 한국으로 돌아왔다. 사실 나는 이 기행문을 쓰면서 조금 난감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왜냐하면 내가 유럽을 돌아다니면서 느꼈던 것은 막연하게 기쁜 마음이나 “얘네 정말 멋있네”하는 막연한 감탄의 문장들 정도였지 멋드러지게 ‘기행문’으로 다듬을 만한 정도는 아닌 듯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또 어떤 맥락에서는 열흘 남짓의 시간 동안 내가 마주쳤던 기행의 내용과는 무관하게 내가 쓰고 싶었던 말이 몇 가지 있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첫 번째는 사람들에 관한 것이다. 사람을 새로 사귀고 이야기하고 하는 일에 너무 지쳐서 한동안은 새로운 사람 만나는 일을 하지 않았고, 만난다 하더라도 웬만해선 가까이 지내지 않으려고 해왔으므로 어떤 의미에서는 이번 여행이 유럽으로의 여행이라기보다는 사람으로의 여행이기도 했다. 그 여행지가 정말 마음에 드는, 아름다운 곳이었다는 점을 말하고 싶었다. 아직은 잘 알려지지 않은 여행지이지만 몇 년쯤이 지난 후에는 이 여행지들이 꼭 ‘보편적인’ 여행지가 되기를 바란다.
두 번째는 망각에 대한 것이다. 소설 쓰는 윤희와 소설 이야기를 하다가 나는 내가 최근에 망각의 능력이 조금 자랐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윤희와는 소설 읽는 취향이 잘 맞아서 어떤 작가의 어떤 소설 이야기만 나오면 “최고의 소설!”이라는 감탄을 함께 해댔는데, 정작 그 소설에 대해 뭐라도 더 말하려고 하면 잘 기억이 안 났다. 주인공이 대충 뭘 했는지도 떠오르지 않는 경우가 많았던 것이다. 비평 쓰는 사람이 이래도 되나, 싶은 생각이 잠깐 들기도 했지만 왠지 나는 예전 일들을 조금 털고 새로 시작할 수도 있겠다는 기분이 더 많이 들었다. 런던의 빅토리아 역에서. 그런 생각이 들었다. 여행이 끝난 지금, 나는 가벼운 마음으로 다시 시작할 준비를 하고 있다.
세 번째는 여행 그 자체에 대한 생각이다. 이번 여행 기간 동안 나는 여행에 대해 예전과는 조금 다른 생각을 하게 된 것 같다. 앞에서 말한 것처럼 여행 전엔 사람 사는 곳이 다 거기서 거기이기 때문에 마땅히 돌아볼 이유는 없다고 생각했다. 이 생각은 아직도 웬만큼 유효하다. 하지만 이번 여행을 통해서 삶에 대한 관심의 차원을 새로 얻은 기분이다. 사람 사는 게 다 똑같다는 나의 회의는 여행에 대한 것만이 아니었음을 알고 있다. 나는 지쳐 있었고, 귀찮았으며 신경질이 났기 때문에 세계에 대한 관심이 점점 줄어가는 형편이었다. 사람을 속단하고 세상을 단정 짓는 일이 점점 늘어갔다. 사람도 똑같고 세상도 똑같아 보였다.
지루했다.
버릇을 고치기는 어렵겠지만 이번 여행을 통해 삶에 대한 관심이 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나는 내가 낯선 삶을 들여다보는 일에 앞으로도 더 많은 매력을 느끼기를 바란다. 다른 삶의 세계로 여행을 떠나는 일이란 결국 내가 사는 삶의 자리로부터 그저 떠나는 일이라기보다는 결국 제자리로 돌아와 자신의 자리를 사랑하고 그 사랑의 힘을 다른 누군가에게 전해주려 애쓰는 일일 테니까. 비록 사람 사는 것이 다 비슷하고 별 볼 일 없을지라도.  그럴지라도 말이다. 그러므로 오랜만에 느낀 흥분을 뒤로 한 채 나는 이 자리로 다시 돌아와서 내가 발붙인 땅을 사랑하는 일을 계속하려고 한다. 낯선 것들에 의해 갱신되는 내 자리에 대한 사랑을 느끼면서. 그리고 나 역시도 충분히 낯선 사람이 되어 가면서. 어제의 자신을 잊고, 오늘을 새롭게 열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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