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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산대학문학상 유럽문학기행 기행문
작성자 이진하
날짜 12.03.07 조회 8715

글 / 이진하_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4학년. 제10회 대산대학문학상 동화 부문 수상자. 1988년생



1
첫 해외여행! 그 떨림을 어떻게 다 말 할 수 있을까요. 얼마나 부산을 떨었던지 비행기를 타기 전부터 이미 녹초가 되어버렸어요. 비행기 안에서의 시간은 예상했던 대로 무척이나 길고 지루했어요. 영화를 두 편도 더 봤는걸요. 이따금씩 비행기 창밖을 봤는데 구름 속에 폭 파묻힌 기분이 아주 그만이었지요. 아참, 신기한 경험도 했어요. 창밖으로 석양이 지더니 곧 다시 하늘이 밝아지는 거예요. 그리고 정신을 차려보니 어느덧 또 다시 석양이 지고 있지 않겠어요? 하루에 두 번이나 석양이 지는 걸 보다니! 어린 왕자는 하루에 마흔 세 번이나 해가 지는 걸 봤다는데, 나는 두 번도 신기하더라구요.
프랑크푸르트에 도착하자마자 숙소에 짐을 풀고 펍에 가서 맛있는 요리를 먹었어요. 우리 일행을 힐끗거리는 시선들을 느꼈지요. 그제야 나는 내가 외국에 있다는 것을 실감했어요. 외국인들에게 외국인 취급당한다는 느낌이 꽤나 이상했어요.
다음날엔 아침 일찍 거리를 나섰지요. 뢰머광장에서 청소부 아저씨들과 다정히 한 컷 찍었어요. 아직 문을 열지 않은 가게들을 기웃거리기도 하고, 이름 모를 동상 앞에 서서 어색한 자세로 사진을 찍기도 했어요. 건물들이 얼마나 아름답던지 그림 속으로 걸어 들어온 느낌이었어요. 한적한 길들을 가로질러 괴테 하우스에 도착했어요. 괴테가 글을 쓰던 책상이 인상 깊었어요. 먼 옛날 그곳에 앉아 괴테가 글을 썼을까요? (사실 괴테는 나처럼 침대에 엎드려서 썼는지도 몰라요!)
베를린의 ‘궁전’이라는 한식당에서 번역가 노선정 선생님과 페터 슈나이더 작가를 만났어요. 독일은 우리와 비슷한 아픔을 지닌 나라여서 친근감을 느꼈어요. 내가 느낀 건, 당연하지만, 세계가 참 넓다는 것. 그리고 한국은 참 작은 나라라는 것. 외국에는 한국의 작가들이 많이 알려지지 않았다는 것. 나라의 부강함이 문학적 관심의 기원이 될 수밖에 없다는 것. 노선정 선생님은 돈이 많고 군사력이 뛰어난 것이 부강함은 아니라고 하셨어요. 하나의 국가가 국제적 목소리를 내고 의견을 표명하는 것이라고 하셨지요.
2
프랑스 파리! 내게 정말 잊지 못할 기억을 남겨주었지요. 태어나서 처음으로 소매치기라는 걸 당했지 뭐예요. 그것도 파리에 도착하자마자! 정말 한 정거장 사이에 주머니에 있던 핸드폰이 감쪽같이 사라졌어요. 그리고 핸드폰이 있던 주머니엔 대신에 100원짜리 동전이 두 개 들어있었지요. 소매치기 범들의 미신, 혹은 최소한의 예의 같은 걸까요?
하지만, 파리는 정말 재밌었어요. 오르세 미술관도, 샹젤리제도, 에펠탑도, 몽마르트 언덕과 노트르담 성당도! 하지만 이상하게도 가장 기억에 남는 건 공동묘지 페르라세즈였어요. 사실 나는 공동묘지에 가본 적이 없었어요. 그리고 묘지라는 게 참 음산하고 으스스한 것이라고만 생각했지요. 하지만 그곳은 아주 평화롭고 아름다웠어요. 정교하게 세공된 석탑들과 석상들에 탄성을 질렀어요. 돌로 조각된 강아지가 무덤 위에 날름 올라앉은 것도 보았어요. 아마도 마르티즈 종인 것 같았어요. 고인이 아끼던 강아지였겠지요.
그 공동묘지엔 유명한 사람들이 많이 있었어요. 정치인도 있었고, 죽은 지 얼마 되지 않은 가수도 있었고, 화려한 조각과 휘황찬란한 꽃다발로 장식된 묘지도 있었는데 누구인지는 알 수가 없었어요. 가장 인상적이었던 오스카 와일드의 무덤이었어요. 사실 처음엔 조금 실망스러웠어요. 훼손을 막기 위해 유리벽으로 둘러싸인 무덤은 조금 삭막하게 느껴지기까지 했거든요. 하지만 유리벽에 무언가 희끗희끗한 것이 보이기에 가까이 갔더니 그곳엔 수많은 입술자국들이 있었어요. 무덤에 키스를 하다니! 나는 깜짝 놀랐어요. 그리고 저토록 사랑을 받는 작가는 죽어서도 영원히 살아있는 것이라는 생각을 했어요. 
수채화처럼 물에 젖은 액상 프로방스의 고즈넉한 풍경들. 하늘에 북두칠성이 선명했던 그날 밤, 프로방스 대학 학생들과의 짧은 만남. 아……. 몇 개의 어설픈 단어들을 얼기설기 엮어 표현할 수밖에 없는 게 안타까워요.
3
쏘리? 쏘리? 쏘리? 단 세 마디로 무사히 입국 심사를 통과했어요. 그 까다롭다는 영국의 입국심사를 말예요. 영국에 와서 가장 좋았던 점은 메뉴판을 읽을 수 있다는 점이었어요. 2층 버스는 정말 재밌었어요! 특히 아슬아슬하게 사람들과 전봇대를 피해가는 버스기사의 운전솜씨가 경이로웠지요. 베이커 가에 있는 셜록홈즈의 집에도 갔어요. 셜록홈즈는 가상의 인물인데 이렇게 집까지 사들여서 꾸며 놓으니 꼭 실존인물 같았어요. 영국이 이야기의 나라라는 다큐멘터리를 본 적 있어요. 영국인들은 무엇이든 스토리를 만들어 붙이는 것을 좋아한대요. ‘셜록 홈즈가 사용하던 책상’ 이라며 전시해 놓은 것을 보니 참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한 작가의 작품 속에 있는 인물이 이렇게까지 현실에 영향을 미치고 구현될 수 있다는 것에요. 상품화야 별개의 문제로 두고요.
대영박물관에서는 이집트 관을 아주 인상 깊게 봤는데, 특히 고양이 미이라가 너무 신기했어요. 이집트사람들은 키우던 고양이를 미이라로 만든 데다가 그 고양이가 사후에 먹을 생선 미이라까지 만들었다지 뭐예요? 이집트인들의 깜찍함은 도저히 당해낼 수가 없어요.
그리고 우리는 비행기를 타러 공항에 갔어요. 비행기를 기다리는 시간이 참 짧게만 느껴졌어요. 아직도 하루가 안 지났어? 하고 비행기에서 퉁퉁 부운 발 주무르던 것이 어제만 같은데 벌써 돌아가다니. 너무 아쉬운 나머지 불법체류자로 남겠어! 하며 비장한 각오도 해봤지요. 하지만 야속하게도 비행기는 이륙하고, 창 너머로 런던의 야경이 조금씩 멀어져갔어요. 보석을 와르르 쏟아 부은 것처럼 빛났어요. 그 반짝이는 것들이 조금씩 작아지다가 구름 사이로 보이지 않게 되기까지… 얼마나 가슴이 찬란히 물들었던지! 입 안에서 톡 톡 터지는 불량 식품처럼 한동안 머릿속에서 런던의 야경이 자꾸만 반짝거렸어요. 그리고 나는 이 여행에서의 기억들을 소중히 가슴 속에 하나 하나 담아두었어요. 샌드위치 하나 주문하는 것도 무서워서 벌벌 떨던 일, 2층 기차 떼제베의 흔들림, 유리창으로 투과되던 한 낮의 햇살, 성당 위로 우르르 날아가던 비둘기 떼…….
여행은 끝이 났지만 왜 아무것도 끝난 기분이 들지 않을까요? 귀국 후에 모든 것들이 새롭게 보였어요. 나는 여행을 하듯 타자의 눈으로 서울을 바라보았지요. 지하철 커다란 창 너머로 지나쳐가는 기와지붕들, 조금은 바쁜 걸음으로 걸어가는 사람들, 신문, 가판대. 모든 것이 다시 새롭게 보였어요. 아마도 나는 한동안 여행을 계속할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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