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문학기행문

베를린에 다녀왔습니다 ^_^
글쓴이 : 김수진 날짜 : 24.03.06|조회 : 318

 

베를린에 다녀왔습니다 ^_^ 

―대산대학문학상 해외문학기행 기행문

  

와, 우리가 왔네요. 우리가 드디어 왔어요. 평생의 연고도 접점도 없던 그곳에 도착했습니다. 이곳으로의 도달은 어쩌면 우리가 꿈꿔왔던 날의 상징인 줄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옅고 가늘게, 물에 풀린 휴지처럼, 한 방울의 잉크처럼. 춤을 추듯 유연하고 느슨하게 풀려있던 우리들의 나날. 실체도 질량도 없던 우리의 미래가 드디어 형상과 밀도를 갖게 되는 순간입니다, 이젠 관념이 아니라 어떤 사실로서 존재하겠죠. 우리가 그날 거기에 있었다는 걸, 우리가 진정 그곳에, 그런 모습으로 존재했다는 걸. 그 기억은 앞으로 영영 우리의 뉴런 사이를 헤엄치고 다닐지도 모르겠습니다.

 

1. 베를린은 참 독특한 도시입니다. 

구름 낀 날씨 때문이었을까요? 외로움과 쓸쓸함이 느껴지던 도시. 바쁜 도시는 왜 이렇게나 외로운 얼굴을 하고 있는 걸까요. 절제된 모노톤 사이로 엉뚱하리만치 밝은색이 고개를 내밀고 있을 때면 어쩐지 반가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어쩌면 우리들도 각각 그렇게 존재하고 있겠네요. 베를린의 스펙트럼처럼요. 

도회적인 분위기와 고풍스러움이 공존하던 도시. 폐허의 잔상이 ‘보존’된 도시. 그리하여 쌓아 올린 것들만큼이나 허물어진 것들이 많던 도시. 대과(大過)의 흔적을 그저 지워버려야 할 것으로서 취급하지 않던, 정중한 도시였습니다. 

하나의 벽을 경계로 양분되었던 세계, 그 중심에 있던 도시. 아직도 벽 하나를 두고 다른 세계를 사는 저는 묻고 싶었습니다. 우리가 다르게 믿는 것은 이념일까요, 신념일까요? 그리고 제 물음엔 명확한 당사자성이 있을까요? 우리가 넘지 못하는 그 얄팍한 경계 너머엔 어떤 풍경이 있을까요. 

원기는 브란덴부르크 문을 가리키며 한때 그 문이 자본의 안팎을 가르는 경계였다고 말해주었습니다. 하지만 지금 여기에서 우리가 저 문을 나가봤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이고, 그것이 불행인가 다행인가 꽤 오래 생각해야 했습니다. 이곳엔 무수한 경계가 있고, 그 경계를 가로지르는 동안 우리에겐 아무 일도 생기지 않았습니다. 놀라울 정도로 평화롭고 안온했습니다. 이런 평화가 무던히도 간절했을 시절을 떠올립니다. 이 도시를 비추는 햇살이 참 아름다웠던 날의 일입니다.

 

2. 베를린은 코딱지의 도시입니다. 

우리는 이곳의 건조함을 그렇게 비유했습니다. 공기가 너무 건조해서 콧속까지 바싹 말라버린다고요. 그런 실없는 농담 하나에 밤새 웃고 떠들며, 다음날 퀭한 눈으로 일정을 소화하곤 했습니다. 어쩌면 우리에겐 모든 것을 한없이 가볍고 우스운 것들로 만들어 버리는 시간이 필요했던 건지도 몰라요. 

글 쓰는 사람은 자주 아프고 외롭고 슬프다는 말을 많이 들었습니다. 그건 아니라고, 이렇게나 유쾌하고 밝은 면도 있다고 말하고 싶은데, 내 유쾌한 문우들의 슬픔을 모른다고 하기에 나는 너무나 잘 알고 있었습니다. 진지하면 생각이 많아지고, 생각이 많아지면 슬퍼집니다. 그래서 생각 대신 말을 많이 합니다. 농담은 생각으로 가는 수로를 차단하기에 가장 좋은 수단입니다. (그렇기도 하지만 훔볼트대학교 앞에서 사진을 찍기 위해 포즈를 잡는데, 몰타 대통령이 등장하는 등의 일은 우리의 의지와는 상관없었습니다.) 가끔은 지나치게 즐겁고 기뻐서, 이 모든 것들이 금세 휘발되면 어쩌지, 라는 걱정을 하기도 했습니다. 그렇지만 수려가 만들어 준 카프레제나, 경희가 애타게 찾던 하리보 차멜로우 소프트키스나, 수빈이 아침에 챙겨주었던 손난로나, 늘 우리보다 앞장서 계시던 혜리 샘과 동혁 샘의 등, 야밤에 탁구 대회를 했던 일 같은 건 너무나 선명해서 괜한 걱정을 했던 것 같기도 합니다. 

또, 원기가 다시 관계를 조각하느냐 조형하느냐, 하는 등의 질문을 던져 붕 뜬 분위기를 약간의 무거움으로 희석해 주기도 했고요. 

어쨌거나 저는 코딱지 얘기를 하면서 웃을 수 있는 사랑스러운 동료들이 생겨서 좋습니다. 우리의 애 같음과 무구함이 좋습니다.

 

3. 독일 사람들 

대체로 제가 봤던 독일 사람들의 얼굴이라고 한다면 ‘-_-’이런 느낌입니다. 그 가운데 ‘^_^’ 이런 얼굴로 웃는 친밀한 사람들이 있고요. 프랑크푸르트에서 베를린으로 경유하는 비행기에서 만났던 승무원이 흔치 않은 ‘^_^’한 사람 중 한 명이었습니다. 그는 넉살이 매우 좋았어요. 우리에게 사진을 찍어주겠다며, 가까이 붙어 포즈를 취해 보라고 말했습니다. 우리의 인솔자인 혜리 선생님께선 뭔가 문제가 생긴 줄 알고 당황하셨지만, 가까이서 자세한 사정을 듣고 그제야 안심한 듯 활짝 미소를 지으셨습니다. 승무원이 먼저 사진을 찍어주겠다고 제안하다니, 예상치 못한 일이었으니까요. 여행자인 우리보다도 더 들뜬 목소리가 어찌나 살가웠는지요. 인천에서 프랑크푸르트로 장장 12시간이 넘는 비행을 견디고 온 터라 다들 지친 얼굴이었지만, 저는 그 사진이 마음에 들었습니다. 약간은 풀린 눈들까지요. 

그다음으로 기억에 남는 사람이라고 한다면 안젤리나였습니다. 베를린 공항 선물 가게에서 봤던 직원의 이름인데요, 자꾸만 덤을 얹어주는 그에게 왜 이렇게까지 하느냐고 묻자 이렇게 답했습니다. “독일 사람들은 잘 웃지 않아, 너희의 웃음 덕분에 내가 다 행복해졌어. 그래서 선물로 주는 거야.” 

우리의 웃음이 그만큼의 값어치가 있었을까요? 무려 80%의 파격 디스카운트를 받을 만큼요. 

웃음이 어떤 가치로 환원되는 것은 처음 보는 일이었어요. 그것도 생판 처음 보는 사람에게 말이에요. 웃는다는 건 어쩌면 타인에게 행복의 포자를 흩뿌리고 다니는 일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저도 안젤리나의 웃는 얼굴과, 그와 나눴던 포옹을 통해서 그걸 배웠습니다. 우리는 언젠가, 어디선가 다시 마주치게 되면 꼭 반갑게 인사하기로 했습니다. 그런 날이 오겠죠? 분명히 올 겁니다. 반가운 얼굴과 이름을 다시 마주하게 되는 날, 우리가 어떤 인사를 나누게 될지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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