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문학기행문

도시와 도시 사이를 밤으로 넘나들며 - 문학, 여행, 사유에 관한 일곱 편의 메일로 된 열차
글쓴이 : 이원기 날짜 : 24.03.06|조회 : 360

도시와 도시 사이를 밤으로 넘나들며 

: 문학, 여행, 사유에 관한 일곱 편의 메일로 된 열차

  

1. 첫 번째 칸: 여정이 시작됐지만 갈 수 있는 곳은 없었다. 적어도 15시간 동안은.. 

 

국현 씨, 며칠 전에 말씀드린 것처럼 저는 이번 기행문을 국현 씨에게 보내는 메일의 형태로 써보려고 해요. 높은 확률로 국현 씨의 답장은 분량 문제 때문에 원고에 포함되지 않겠지만, 그래도 적극적으로 참여해 주시리라 믿으며 미리 감사드립니다. 

지금 베를린은 새벽 2시 19분이에요. 아까 1시쯤 숙소에 도착해서 짐을 풀고 씻고는 커다란 원목 테이블에 앉아 메일을 쓰고 있습니다. (숙소가 기가 막히게 좋네요. 그냥 여기 살고 싶어요..) 여기까지 오는 데에 장장 15시간이 걸렸어요. 인천에서 출발해 14시간이 걸려 프랑크푸르트에 도착, 거기서 1시간쯤 기다리다가 다시 베를린행 국내선을 타고 1시간 10분 정도 날아왔지요. 15시간이라니. 생각할수록 엽기적인 숫자라는 생각밖에 안 듭니다. 

제 옆자리엔 소설을 쓰는 수빈 씨가 앉게 되었는데 수빈 씨랑 이러저러한 이야기들을 나눴어요. 학교 얘기, 친구들 얘기, 영화 얘기, 그리고 우리가 언젠가 썼거나 앞으로 쓰게 될 글들에 대한 얘기. 수빈 씨도 저처럼 요즈음 ‘출발선 뒤의 초조함’에 대한 생각을 하고 있더군요. 꿈꿔오던 등단을 덜컥 해버렸는데, 이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까 하는 고민 같은 거랄까요? 고민이 해결되면 새로운 고민이 찾아오는 법이지요.. 

많은 이야기를 충분히 나눴다고 생각했지만 비행시간은 여전히 7시간쯤이나 남아있었어요. 그럴 때면 수빈 씨는 자신이 챙겨온 베를린에 관한 책을 펼쳐 들었고 저도 이장욱의 『영혼의 물질적인 밤』(문학과지성사, 2023)을 꺼내 계속 읽어나갔습니다. 이 책에는 여행과 외로움과 문학에 관한 좋은 문장들이 넘쳐납니다. “허공에 뜬 뒤에는 누구나 그렇게 혼자가 된다. 오후 3시 5분, 인천발 상트페테르부르크행 아에로플로트기 이륙. 예정보다 40분이 지연된 시간이다. 아마도 외로운 러시아가 되겠지. 그렇기를 바란다.”(15면) “오늘은 하루 종일 개처럼 걸어 다녔다. 별다른 목적 없이 돌아다니는 것. 그것이 이 도시에 대한 내 사소한 예의이다.”(18면) “아마도 이 여행은 오랜 시간이 지난 후, 내 삶의 어떤 문장 속으로 스며들겠지. 그것을 기대하고 있다.”(28면) 외로운 러시아. 고독한 겨울의 풍경. 국현 씨, 저는 고독을 동경합니다. 고독이란 제게 때로 결코 가닿을 수 없는 실향의 영역처럼 느껴지기까지 합니다. 고독이 만들어내는 깊이.. 고독과 깊이의 필연적 연결.. 그 둘은 창작과 비평의 훌륭한 도구들이지요. 이 책이 이번 저의 여행에 동반자가 되어줄 듯합니다. 

베를린 공항에 도착했을 때 느낀 건 갈색 표지판들과 베이지색 조명이 만들어내는 묘한 쾌적함이었어요. 베를린이라는 도시를 직관적으로 이해시켜주는 분위기였달까요? 몰락한 사회주의 국가가 유산으로 남긴 특유의 정갈함과 그 사이로 스며든 자본주의적 발랄함이 잘 어우러진, 기분 좋은 공간이었습니다. 특히 그 반듯함과 고요함은 일본의 그것을 연상시키기도 했는데요, 어쩌면 제가 느낀 것이 다름 아닌 사회주의와 전체주의의 교집합이 건축학적으로 발현되는 지점 같은 것이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내일 해가 뜨고 베를린을 조금 더 돌아다니기 시작하면 제가 받은 첫인상과 이 도시가 실제로 보여주는 여러 표정을 서로 비교해볼 수 있을 듯합니다. 베를린이라는 도시를 입체적으로 형상화하는 즐거운 경험이 내일부터 시작될 것 같네요. 

 

그럼 이만 줄이고 답장 기다리겠습니다. 

이원기 드림

 

 

2. 두 번째 칸: 자본의 안팎을 도시의 빛과 함께 거닐며 

 

국현 씨, 써주신 답장 잘 읽어보았습니다. 폴란드에 다녀온 이야기가 무척 인상적이네요. 말씀하신 대로 제약과 자유는 종이 한 장 차이인 듯합니다. 아무것도 할 수 없기 때문에 무엇이든 할 수 있다.. 자유를 억압하는 법의 울타리 안에서 우리는 진정으로 자유로울 수 있다.. 

그래서 말인데요, 오늘 제가 깨달은 재밌는 사실이 한 가지 있어요. 그건 바로 어떤 나라의 사람이 되려거든 먼저 그 나라의 법을 지켜야 하고, 이어서 그 법을 어겨야 한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현지인이 되는 일은 그 나라의 법을 지킴으로써가 아니라 그 후 그 법을 스스로 어김으로써 비로소 성취된다는 것이지요. 내면에 윤리의 탑을 쌓아 작동시키고, 뒤이어 그것을 손수 부수기. 창조와 파괴는 주체의 본질을 변화시킵니다. 

갑자기 무슨 얘기냐고요? 어제까지만 해도 우리는 신호를 지켜 횡단보도를 건넜고, 오늘 아침부터 조금씩 무단횡단을 하다가 점심을 먹고 나서부터는 태어나서 횡단보도란 걸 본 적도 없는 사람들처럼 도로를 가로질러 다니기 시작했거든요. 그렇습니다. 우리는 결국 베를리너Berliner가 된 것입니다.. (물론 이 표현에는 약간의 과장이 섞여 있으니 곧이곧대로 받아들이지 않으시길 바라요. 우리는 충분히 안전합니다. 법과 질서의 가호 아래서..) 

그런데 아닌 게 아니라 이곳의 보행자 신호는 무척 짧아서, 일반적인 성인의 걸음으로는 신호가 들어오자마자 곧바로 길을 건넌다 해도 중간에 빨간불로 바뀌어버리고 맙니다. 유럽의 도시들은 걷기 좋다고 들었는데, 이 도시는 정말 보행자를 위한 도시가 맞을까요? 폭스바겐, 아우디, BMW, 벤츠의 나라에서 도로 위의 사람은 자동차 안의 사람보다 어쩌면 덜 중요하게 여겨지는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국현 씨, 자본주의는 모든 것을 끌어안지만 그것이 끌어안지 않는 단 하나의 존재가 있다면 그건 바로 인간일 겁니다. 인간과 자본주의, 둘 중에 무엇이 인간에게 더 해로울까요? 생각해볼 문제입니다. 

오늘 우리의 일정은 카이저 빌헬름 교회에 방문하는 것으로 시작됐습니다. 베를린에서 독일학을 공부하고 계신 한국인 선생님 한 분과 함께 교회 내외부를 둘러보며 선생님으로부터 간단한 설명을 들었어요. 그리고는 버스를 타고 국회의사당으로 갔지요. 국회의사당은 가운데에 돔 형태의 커다란 유리 구조물이 있는 건물이었는데, 본격적인 도시 구경에 앞서 베를린 안의 여러 랜드마크를 파노라마 형태로 살펴볼 수 있는 인상적인 곳이었습니다. 국회의사당에서 나와 우리가 향한 곳은 홀로코스트 기념관이었어요. 다양한 높이로 세워진 비석들이 마치 물이 차오르듯 넘실거리며 그 사이를 거니는 방문자의 마음을 묵념의 상태로 차분히 가라앉게 만드는 곳이었지요. 

이후 우리는 그 유명한 브란덴부르크 문을 통과했습니다. 안쪽에서 바깥쪽으로. 선생님께서는 안쪽이 옛 서독 지역이라고 하시더군요. 그러니까 우리가 서독으로 표상되는 자본주의의 안쪽에서 그 바깥쪽으로 나간 셈이었다고나 할까요? 물론 그런 분리가 이제는 무의미해졌지만 말입니다. 주지하다시피 자본의 바깥은.. 없습니다. 국현 씨, 자본주의 리얼리즘에 관한 마크 피셔의 이야기를 기억하세요. “자본주의의 종말보다 세계의 종말을 상상하는 것이 더 쉽다.” 어찌나 쉬운지 요새 나오는 영화들은 전부 세계의 종말을 상상하고 있잖아요? 그렇게 따지면 사실 이 세상의 모든 서사는 크든 작든 세계의 종말을 다루고 있지요. 그렇다면 문학이란 자본주의의 종말에 대한 상상의 대체제로서 이루어지는 작업인 걸까요? 그 문학을 다루는 비평은 또 무엇일까요? 생각이 야간열차처럼 이어집니다.. 

점심 식사를 마치고 우리는 이스트 사이드 갤러리로 향했습니다. 이후 아인슈타인 카페에서 아인슈페너 한 잔을 다 마실 때까지도 갤러리 건물이 따로 있고 머잖아 우리가 그곳으로 다시 이동하게 되는 줄 알았던 저는, 카페를 나설 때가 되어서야 우리가 조금 전까지 한참을 따라 걸은 베를린 장벽이 바로 이스트 사이드 갤러리였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어요. 저를 제외한 모두가 웃음을 터뜨렸지요. 그럼 넌 지금까지 뭘 보고 있다고 생각했니? 악의 없이 날아드는 짓궂은 질문들에 저는 그냥 갤러리에 가는 길에 마침 장벽이 있다고밖에 생각하지 않았노라고 말하며 민망함을 웃음으로 승화시킬 수 있을 뿐이었습니다. 국현 씨, 반드시 기억하세요. 이스트 사이드 갤러리는 수많은 벽화가 그려진 베를린 장벽의 동쪽 편(East Side) 그 자체를 의미한다는 사실을요.. 

이후 우리는 케밥 가게에서 저녁거리를 포장해 숙소로 돌아왔습니다. 해가 저무는 베를린의 짙푸른 하늘 밑에서 거리의 노란 조명들이 하나둘씩 켜졌고, 저는 또다시 홀린 듯 휴대폰 카메라를 들었습니다. 저를 사로잡는 것은 언제나 도시의 불빛들입니다. 저물어가는 하늘 아래 도시가 반짝이기 시작하고, 물이 흐르고, 사람들이 움직이거나 멈춰 있는 풍경.. 반듯한 잿빛 건물들과 그 사이를 지나는 노란색 버스, 노란색 트램, 노란색 열차들의 도시.. 저는 베를린에 와서 회색과 노란색이 이토록 잘 어울린다는 걸 처음 알았네요.

 

그럼 오늘은 이만 줄일게요. 

이원기 드림

 

 

3. 세 번째 칸: Sehr gut!

 

저는 다른 나라에 가게 되면 가능한 한 그 나라의 언어에 대해 약간이라도 알아보고 갑니다. 낯선 표지판들에 쓰인 글자를 직접 발음하거나 낯선 이들과 간단한 의사소통을 하는 일이 제게 주는 즐거움이 아주 크다는 사실을 언제부턴가 알게 되었기 때문인데요, 적어도 제게 있어 언어에 대한 감각은 이처럼 유희의 영역과 무관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오늘 만난 일본 태생 작가 다와다 요코 씨의 경우도 언어와 존재와 경계의 문제에 깊이 천착하는 작업을 해오고 있는 분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이번 문학기행의 하이라이트라고도 할 수 있는 ‘작가와의 만남’ 시간이 바로 오늘 있었어요. 매끄러운 인터뷰 진행을 위해 저와 친구들은 아침 일찍 일어나서 원목 테이블에 모여앉아 질문의 순서와 흐름 등을 최종적으로 정리했습니다. 그리고 요코 씨와 만나기로 한 카페 근처의 이탈리아 식당에서 점심을 먹고, 서점을 잠시 구경했지요. 

약속한 시각이 되어 우리는 카페에 자리를 잡고 앉았습니다. 이윽고 요코 씨가 들어왔고, 헤어지는 순간까지 장장 두 시간이 지나도록 우리는 준비했던 질문들과 그때마다 떠오르는 곁가지 질문들을 요코 씨에게 던지고 또 답을 들으며 즐겁게 인터뷰를 했어요(통역으로 애써주신 대사관의 이 선생님께 감사를..). 놀랐던 것은 요코 씨가 우리의 자기소개를 들으며 뭔가를 메모하시더니 우리에게 질문 한두 가지씩을 던지기도 하셨다는 사실입니다. 거장 작가가 우리 같은 아기 작가들에게 궁금하실 게 뭐가 있었겠어요? 국현 씨, 그것은 동료 문인으로서의 존중과 격려가 담긴 따뜻한 제스처에 다름 아니었으리라고 저는 생각해보게 됩니다. 물론 대답하기가 마냥 간단하지만은 않은 질문들이었지만요. 제가 받은 질문은 “미술평론에도 관심이 있다고 했는데, 그건 문학평론과 어떻게 다른 것 같습니까?” 하는 것이었습니다. 당황했지만 나름 최선을 다해 대답했어요. 제 답을 들은 요코 씨의 표정이 딱히 밝아지는 것 같진 않았습니다만.. 

요코 씨와 헤어진 뒤 우리는 포츠다머 플라츠로 가서 베를린 국제영화제가 열리는 곳이기도 한 필름 하우스를 잠시 둘러보고, 역 근처 파이브 가이즈에서 저녁을 먹은 다음 베를린 필하모닉 연주회에 갔어요. 요코 씨와의 인터뷰에 에너지를 너무 쏟았던 탓인지 우리 모두는 여차하면 졸아버릴 기세로 피곤을 헤집으며 공연장의 지정석에 앉았습니다. 오로지 오케스트라 공연만을 위해 무대를 감싸는 형태로 기획된 넓은 객석, 주홍빛의 조명이 관객들의 잔잔한 흥분과 함께 커다란 홀을 가득 메우고 있는 광경은 피곤 속에서도 분명 감탄할 만한 것이었습니다. 세계 3대 필하모닉 중 하나라고 하는 베를린 필하모닉.. 연주회를 즐겨 가지 않는 저이지만 이번만큼은 궁금하더군요. 그 명성이 사실인지 직접 보고 싶었습니다. 

결과적으로는 고개가 끄덕여지는 수준의 연주회였다고 해야겠네요. 저야 이 분야엔 문외한이지만, 게다가 몰려오는 피곤함에 몇 차례 고개를 떨구고 말았지만, 그래도 멋진 경험이었다는 건 부정할 수 없습니다. 특히 가장 마지막에 아주 가느다랗고 길게 무반주로 이어지던 소프라노의 목소리는.. 정말이지 경이로웠습니다. 제아 구트Sehr gut(매우 좋다)! “처음과 끝이 인상적이고 중간은 졸음을 참기 힘들다.” 이번 기행에 동행하신 문화재단 최 선생님의 한줄평입니다. 마치 한 편의 인생을 본 것 같네. 최 선생님이 말했습니다. 그러네요. 제가 말했어요. 인생 참.. 

 

“‘인생은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지만 멀리서 보면 희극’이라는 말은 알려진 대로 채플린의 것이다. (..) 당연하게도 삶이 그 자체로 비극이거나 희극인 것은 아니다. 삶은 차라리 비극과 희극 사이에서, 희비극적 어긋남 속에서 흘러간다. 시선이 바뀌면 희극과 비극이 교차하고 각도가 바뀌면 희극과 비극이 뒤바뀐다.”(이장욱, 『영혼의 물질적인 밤』, 문학과지성사, 2023, 61-62면. 중략은 인용자)

 

국현 씨, 우리는 인생을 다른 각도로 보는 연습을 해야겠습니다.

 

그럼 이만.. 

이원기 드림

 

 

4. 네 번째 칸: 결국 즐기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일이 없을 것이다 

 

오늘 우리는 카페에서 아침 겸 점심을 먹고 베를린 신 국립미술관으로 향했습니다. 미술관은 그 유명한 건축가 미스 반 데어로에가 설계한 건물이라고 합니다. 근대 건축의 문을 연 거장의 작품 속에서 우리는 동시에 다른 미술가들의 작품을 관람할 수 있었습니다. 미술관에는 정말이지 팔짱을 낀 사람들이 많더군요. 미간에 주름들도 많고. 마치 비평가처럼 말이지요. 역시 비평이란 관객/독자의 일이 맞는가 봅니다.. 

이후 우리는 박물관 섬에 있는 교회인 베를리너 돔으로 갔어요(원래는 카톨릭 성당이었다네요). 베를리너 돔은 독일에서 가장 큰 규모의 교회라고 하는데, 예배당에 들어서는 순간 그 공간의 크기에 그대로 압도되어 버리고 맙니다. 거대한 지붕을 떠받치고 있는 육중한 대리석 기둥들과 그 사이사이의 조각들, 벽화들.. 아무래도 카톨릭에서 말하는 교회는 건물 자체를 가리키는 것이었다 보니 모든 성당은 다 예쁠 수밖에 없지 않을까 싶어요. 당시엔 아름다운 건물이 곧 신앙의 상징이었을 테니까요. 

돔 위로 올라가면 360도로 펼쳐지는 파노라마 뷰를 볼 수 있다기에 저는 최 선생님과 수빈 씨, 수진 씨와 함께 267개의 계단을 올라가 보기도 했습니다. 언제 또 이 거대한 건물의 지붕에 올라가 볼 수 있겠어요? 뷰는 정말 최고였습니다. 마침 해가 저물어가고 있었고, 탁 트인 하늘 아래 저 멀리 강이 흐르고, 다리 위에서 누군가 버스킹 공연을 하고, 개미만 한 크기의 사람들이 지상을 바쁘게 오가는 게 보이더군요. 다시, 우리는 채플린의 이야기를 기억해 인생을 멀리서 바라볼 줄도 알아야 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네요. 우리를 괴롭히는 인생의 커다란 문제들은 또한 얼마나 작은 것일지! 

숙소로 돌아와서는 수려 씨가 만들어준 야참을 먹으며 다 같이 문학 이야기를 나눴어요. 무려 시 낭독회.. 서로 자신이 쓴 시를 다른 누군가의 입을 통해 모두에게 들려주는 시간이었지요. (왜 하필 시냐고 묻는 시 당선자 수진 씨에게 시가 가장 빨리 낭독될 수 있기 때문이라고 소설 당선자 수빈 씨가 답했습니다.) 저는 까마득한 옛날에 쓴 「기쁜 일」이라는 제목의 시를 공개했는데 수빈 씨와 수려 씨가 좋아해 줬네요. 귀한 나의 99년생 친구들. 고맙다 얘들아. 

국현 씨, 어느덧 이번 여정의 중간 지점에 도착했어요. 남은 4일 동안에는 또 무슨 일들이 일어날까요? 어떤 관계들이 또 어떤 국면들을 새롭게 마주하게 될까요? 알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습니다. 할 수 있는 것도요. 즐기는 것밖에는.. 

 

밤이 깊었습니다. 그럼 안녕히. 

이원기 드림

 

  

5. 다섯 번째 칸: 이제 봐야 할 건 더 이상 없다. 사야 할 것만 있을 뿐.. 

 

국현 씨, 이번 답장에 제 글을 읽을 때 미간에 주름이 생기고 팔짱을 끼게 된다며 국현 씨 자신에게도 비평가의 피가 흐르는 것 같다는 이야기를 써주셨죠. 전에 소설가 정지돈 씨와 주고받은 메일이 떠오르더라고요. 지돈 씨는 좋은 글은 읽는 이로 하여금 뭔가를 쓰고 싶게 만드는 것 같다는 이야기를 해주셨어요. 저도 국현 씨에게 비슷한 영향을 끼친 것 같아 기쁘네요. 국현 씨, 올해 말 대산대학문학상에 평론을 내보시는 걸 추천드려요. 물론 국현 씨는 대학생이 아니라서 안 되겠지만.. 

오늘 저희는 디스트릭트 카페에 가서 브런치를 먹고 마우어 파크에서 열리는 플리마켓을 구경했어요. 마우어 파크 플리마켓은 일요일마다 열리는데요, 많은 사람이 골동품, 수제품 등을 가지고 나와 부스에 걸거나 매대에 깔아두고 물건을 팔고 있었어요. 오늘 제가 플리마켓에서 산 것은 두 가지입니다(그래요. 저는 스스로 소비자가 되기를 자처함으로써 다시금 자본주의의 따스한 날개 아래로 기어들어간 것입니다. 마치 바퀴벌레처럼..). 먼저는 갈색 재킷인데요, 35유로, 한국 돈으로 약 5만 원쯤 하는 물건이었어요. 빈티지 옷가게 부스였고 비슷해 보이는 다른 재킷들과 비교하다가 가장 마음에 드는 걸로 결정한 것이었죠. 다들 저와 너무 잘 어울린다고 말해줘서 기뻤습니다. 물론 칭찬 말고 무슨 말을 했겠냐마는요.. 

두 번째는 직접 찍은 사진들을 파는, 어딘지 지쳐 보이는 표정의 남자에게서 산 세 장의 사진들입니다. 1장에 10유로, 3장에 25유로라기에 3장을 골랐네요. 계산할 때 잠시 대화를 나눴는데, 그 남자는 자신이 사진작가이자 웨이터로 일하고 있다고 하더군요. 예술가들이 대부분 그렇게 살듯이, 라고 덧붙이기에 저는 맞다고, 나는 한국문학에 대해 공부하며 평론을 쓴다고 말했죠. 한국문학이라.. 남자가 말했습니다. 우리는 아시아 문학에 대해 학교에서 배우지 않아서 잘 몰라. 나도 잘 몰라, 라고 저는 생각했지만 말하지 않았습니다. 끝으로 저는 그에게 당신의 작업이 정말 마음에 든다고 말해주고 자리를 떴습니다. 오늘 저와의 만남이, 적어도 제 소비가 지친 예술가에게 작은 힘이 되어주었길 저는 다만 바랄 뿐이에요. 

플리마켓을 떠나 우리는 근처 한국 식당에서 점심을 먹고 곧바로 박물관 섬으로 가서 구 국립미술관과 그 옆의 이집트 전시관을 돌아봤습니다. 특기할 만한 내용은.. 딱히 없네요. 이집트 유물 전시를 보면서는 조금 열받긴 하더군요. 훔쳐 온 거면서 생색은.. 게다가 이걸로 얼마나 많은 관람료를 벌어들이고 있을지! 하물며 네페르티티의 흉상을 전시해둔 공간은 경비만 세 명이고 사진 촬영도 엄격하게 금지하고 있더라고요. 두고 보세요. 제가 조만간 훔쳐서 이집트로 금의환향합니다. 물론 이집트가 제 고향은 아니지만.. 

 

그럼 오늘도 멋진 하루 보내시기를요. 제가 산 재킷처럼. 

이원기 드림 

 

 

6. 여섯 번째 칸: 길은 시작되었다. 여행을 마저 하라. 근심 걱정은 아무것도 바꾸지 못한다. 너를 영원히 내동댕이쳐 균형을 잃게 할 뿐.1) 

 

오늘은 라이프치히에 다녀왔습니다. 라이프치히는 괴테와 바흐, 멘델스존 같은 예술가들의 도시이자 근현대사에서는 동, 서독을 나누는 장벽을 허물기 위한 기도회와 그로부터 촉발된 평화 운동이 출발한 곳이기도 하다네요. 참 의미가 있는 곳이지요. 하지만 의미를 따르는 모든 삶은 언제나 희생을 수반하는 모양입니다. 의미 있는 그 도시에 가기 위해 우리는 아침 6시 50분에 숙소를 나서야 했거든요. 

버스를 타고 베를린 중앙역까지 가며 저는 창가에 앉아 에어팟으로 음악을 들었어요. 햇살이 정말 아름다운 아침이었지요. 건물의 흰 외벽에 부딪혀 흐르는 빛들.. 차가운 바람이 감기는 앙상하고 깨끗한 나뭇가지들.. 그 풍경을 구경하는 것만으로 버스에서의 시간은 잘도 흘러갔습니다. 중앙역에서 우리는 맥모닝을 하나씩 사 들고 기차에 올랐어요. 그리고 저는 어제 국현 씨가 받으신 메일을 쓰기 시작했지요(맞아요. 하루씩 밀렸어요). 

우리는 역에서 나와 지금은 박물관이 된, 멘델스존이 살던 집으로 향했습니다. 가는 길에 유명하다는 가게에서 소시지도 사 먹고요. 전통적인 방식으로 불에 구워서 주먹만 한 빵 사이에 끼워 주는 기다란 소시지였는데요, 굽기 전에는 모양도 이상하고 색깔도 징그러워 마치 개불 같은 걸 굽는 것처럼 보였는데 완성된 소시지를 한 입 먹고는 우리 모두 그 맛에 반해버렸어요. 소시지에서 육즙이.. 흐르더군요. 빵도 ‘겉바속촉’의 윤리(?)를 잘 지키고 있었고요. 우리는 전부 케첩 대신 머스터드를 뿌렸는데, 겨자의 향이 약간의 느끼함을 잡아줘서 그러길 잘했다 싶었습니다. 조금 짰다는 사실을 제외하면 그 소시지는 정말 훌륭했어요. 날씨만큼이나.. 

멘델스존 박물관에서 우리는 전시를 다 본 후 그 시대의 의상을 입고 사진을 찍어볼 수 있는 무인 사진관 서비스를 이용했습니다. 전부 각자의 이미지가 의상과 묘하게 잘 어울려서 사진은 무척 기이한 분위기를 자아냈지요. 특히 분홍색 원피스를 입고 뚱한 표정을 지으며 카메라를 응시하는 동화 작가 경희 씨의 모습은 정말이지 섬뜩하더군요(칭찬입니다, 경희 씨). 에나벨 같고 좋았어요. 문화재단의 유 선생님은 그 단체 사진이 썩 마음에 드셨는지 곧바로 카톡 프로필 사진을 그걸로 업데이트해두시더라고요. 볼수록 웃음이 터져나와 행복해지신다나요.. 멘델스존이고 뭐고 그 사진관 서비스 덕에 모두 즐거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멘델스존은.. 그러다가.. 어떻게 됐더라? 뭐, 음악의 기쁨은 이렇게 우리 삶 속에서 다양한 형태로 변주되고 지속되는 것이겠지요. 

다음 행선지는 바흐가 25년간 연주자로 일하며 출퇴근했다는 성 토마스 교회였습니다. 거기서 우리는 바흐가 직접 쳤다는 파이프오르간도 보고, 바흐의 관이 묻힌 자리도 봤어요(국현 씨도 바흐처럼 현 직장에 뼈를 묻으시기를 축복합니다!). 흥미로웠던 건 교회의 스테인드글라스에 바흐와 멘델스존의 모습이 그려져 있었다는 사실인데요, 둘 다 신학자도 아니고 신앙심으로 유명한 인물들도 아닌데 그렇게까지 교회에서 그들의 이름을 후광으로 활용한다는 점이 뭔가 이상하고도 재밌었달까요? 교회라기보다는 이제 거긴 그냥 박물관, 혹은 역사적 명소 정도로 쓰이고 있는 것 같더라고요. 

이후 우리는 각자 한두 시간 정도 자유롭게 구경하는 시간을 가진 뒤 다시 기차를 타고 베를린으로 돌아왔습니다. 오는 길에 저는 책을 읽다가, 자다가, 다시 책을 읽었어요. 이장욱은 『영혼의 물질적인 밤』에서 소설에 대해 이야기하며 ‘오르페우스의 반복’에 대해 말합니다. 오르페우스는 죽은 아내를 저승에서 데리고 나오다가 뒤를 돌아보면 안 된다는 말을 어겨 다시 아내를 잃게 되는 그리스 신화 속 인물인데요, 이장욱은 이 반복이 소설을 쓰는 과정과 닮았다고 이야기합니다. 

 

“사랑하는 이를 잃는 첫 번째 상실은 소설이 시작되는 곳이다. (..) 두 번째 죽음은 소설이 끝나는 지점인지도 모른다. (..) 뒤를 돌아보았기 때문에, 사랑하는 이는 그의 눈앞에서 다시 사라진다. (..) 자신이 쓰고자 했던 그것을, 다시 잃는다.”(65-66면, 중략은 인용자) 

 

오늘 저는 두 번의 기차 여행을 했고 다행히 두 번 모두 순방향 좌석에 앉아서 갔습니다. 만약 오는 길에 역방향, 즉 ‘뒤를 돌아보는 방향’으로 앉았더라면 저는 오르페우스처럼 제가 라이프치히에서 얻었던 것들을 다시 빼앗겼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라이프치히로 가는 일과 라이프치히에서 돌아오는 일은 제 안에 어떤 차이를 만들어냈을까요? 차이를 만들어내는 경험이라는 맥락에서라면 사람들이 문학을 종종 여행에 비유하곤 하는 것도 이해가 됩니다. 독서는 앉아서 하는 여행이고 여행은 서서 하는 독서라는 말도 있잖아요(그런데 저는 보통 서서 독서를 합니다만..). 

많이 걸어 다녀 피곤한 날이었지만 숙소에서는 밤늦게까지 탁구대회가 열렸어요. 사실 탁구를 칠 줄 아는 사람은 수려 씨와 최 선생님, 그리고 저뿐이었지만요(유 선생님은 침대에 잠깐 누웠다가 그대로 잠들어버리셨다더군요). 수빈 씨, 수진 씨, 경희 씨는 수려 씨와 저의 속성 과외를 통해 마침내 탁구공을 반대편으로 보낼 수 있게 되었지만, 국현 씨도 아시다시피, 그것만으로는 게임을 게임답게 즐기기 어렵지요. 아무려나, 모두가 즐거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정말 계속 깔깔대고 웃었던 기쁜 시간이었어요. 내일 저녁에도 탁구를 하자는 의견이 있던데, 저로서는 기대되는 시간입니다. 여기서 좋은 친구들을 사귀게 된 것 같아 기쁘네요.  

 

그럼 안녕히 주무시길.. 

이원기 드림

  

 

7. 일곱 번째 칸: 도시와 도시 사이를 밤으로 넘나들며 

 

국현 씨, 벌써 마지막 메일이네요. 저는 지금 베를린 공항에서 프랑크푸르트로 가는 국내선을 타기 위해 기다리는 중입니다. 어제는 각자 일정을 세워 하루를 보냈어요. 아침에 숙소에서 각자 가져온 라면을 끓여 함께 아침 식사를 하고 저는 곧장 하리보 매장으로 향했습니다. 젤리를 그렇게까지 좋아하지 않는 저지만, 그래도 여기까지 와서 하리보 매장에 가지 않는 건 오히려 부자연스럽다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지인들 선물로 사기 괜찮은 게 있을지 구경해볼 심산이기도 했고요. 결과적으로는 꽤 만족스러운 쇼핑을 했어요. 젤리와 키링을 몇 개 샀는데 친구들이 좋아했으면 좋겠네요. 

매장을 나와서 저는 곧바로 베를린 동물원으로 향했어요. 학생증을 제시하고 할인을 받아 동물원 + 아쿠아리움 입장권을 17유로에 구매했습니다. 이 나라에서는 박물관이나 미술관에서 학생 할인이 많이 되는 모양이더군요. 게다가 어제 하루 동안의 경비는 인당 40유로씩 지원되어서, 입장권이나 식비 등은 전부 그 지원금 안에서 자유롭게 쓸 수 있었지요. 대산문화재단.. 그 아량이 가히 大山이라 불릴 만하지요? 그렇게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저는 동물원 구석구석을 기쁘게 돌아다녔습니다. 

동물원은 적막하고, 한산하고, 쓸쓸했습니다. 아침이라서 더 그랬는지도 모르겠네요. 그래도 기대했던 것보다 훨씬 좋았어요. 하마, 펭귄, 독수리를 비롯해 꽤 많은 동물을 봤거든요. 특히 아쿠아리움에서는 엄청 큰 물고기도 봤는데, 그런 애들을 도대체 어떻게 상처 하나 없이 잡아 올 수 있었을지 궁금하더군요. 쇼츠 같은 거 보면 큰 물고기는 저항하는 힘도 세던데 말이에요. 어쩌면 새끼 때 잡아 와서 여기서 계속 키웠을 수도 있겠네요. 인간은 갖고 싶은 게 생기면 집요하게 방법을 찾아내 결국 손에 넣고야 마는 존재니까요.. 

그런 걸 보면 저도 어쩔 수 없는 인간인가 봅니다. 저 역시 이곳에서 손에 넣고 싶었던 걸 마침내 얻었거든요. 바로 독일어판 『공산당선언』이 그것인데요, 저는 그 책이 독일에서 살 수 있는 최고의 기념품이라고 생각했어요. 동물원에서 나와 두스만 서점으로 가서 저는 마지막으로 “Haben sie buch von Karl Marx?”라고 물었고(독일에 온 후로 이 질문을 얼마나 많이 했던지요!), 친절한 직원의 안내에 따라 입국 이후 줄곧 찾아 헤매던 바로 그 책을 마주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책은 파란 천에 은색의 무늬와 제목이 음각으로 새겨진 작고 가벼운 양장본이었습니다. 가격은 7유로, 우리 돈으로 1만 원쯤이에요. 합리적인 가격. 합리적인 공산주의.. 뿌듯하더군요. 

풍족해진 마음으로 저는 아예 일찍 숙소 근처로 넘어가 여유롭게 시간을 보내기로 했습니다. 베트남 식당에서 늦은 점심을 먹고 그 옆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며 (하루 늦은) 메일을 썼지요. 어제는 그렇게 숙소로 돌아와 다 같이 마지막 만찬을 즐기고, 탁구를 조금 더 치고, 이야기를 나누고, 그러다 잠들었어요. 시인 수진 씨, 소설가 수빈 씨, 극작가 수려 씨, 동화 작가 경희 씨, 그리고 문화재단의 유 선생님과 최 선생님.. 모두 그 따뜻했던 마지막 밤과 함께 오래 그리게 될 얼굴들이네요. 

지하철에서 내려 버스를 타고 아침에 출발했던 정류장에 다시 도착하기까지 저는 마치 제가 수유동에서 혜화동까지 가는 150번 버스를 타고 있는 것 같은 편안함을 느꼈어요. 마침내 진정으로 제가 이 도시의 일부로 흡수된 듯한 느낌이었달까요? 타지의 교통수단을 타고 타지의 익숙한 장소에 도착할 때 그곳은 더 이상 타지가 아니게 됩니다. 국현 씨, 저는 그 순간 완전한 베를린 사람이었어요. 그리고 그 감각이 저를 즐겁게 했습니다. 어쩌면 저에게 여행이란 새로움과 익숙함 사이를 배회하는 일인지도 모르겠네요. 걷고, 타고, 먹고, 보고, 들으며 경계 위를 거닐기. 

“떠날 준비는 곧 돌아올 준비이기도 하다. 시작과 끝을 동시에 인식하기. 여행은 그것의 종료로서 완성된다. 돌아옴으로써 떠남이 완성된다. 시작과 끝이 언제나 함께, 한 묶음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그럴 때 끝이 시작이 될 수 있다.” 독일로 출발하기 며칠 전에 썼던 메모입니다. 여정을 마무리하며 다시 보니 감회가 새롭네요. 그렇습니다. 떠남과 돌아옴을 동시에 인식해야 하겠지요. 그럴 때 끝이 시작이 되고, 돌아옴은 새로운 떠남이 될 수 있을 테니까요. 

이제 저의 글쓰기도 다시 시작될 것입니다. 저는 이번 여행을 통해 동료들을 얻었고 다시 몇 걸음 앞으로 나아갈 힘을 얻었습니다. 그것으로 충분하지 않을까요? 저의 글 역시 그것을 읽는 사람들에게 그런 종류의 힘을 줄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단지 한 걸음 더 내딛을 힘을. 떠나고 돌아오는 사유들처럼, 모였다 흩어지는 마음들처럼, “도시와 도시 사이를 밤으로 넘나”드는 어떤 여행처럼 말입니다. 

 

그럼 서울에서 뵙겠습니다. 

이원기 드림 

 

 


 

1) 다와다 요코, 『용의자의 야간열차』, 이영미 옮김, 문학동네, 2016, 107면.

2) 괴테의 명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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