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문학기행문

다음의 음
글쓴이 : 김수려 날짜 : 24.03.06|조회 : 343

 

다음의 음 

2024년 22기 베를린 문학기행  

 

어떤 시간이 끝나는 소리가 들렸다. 어떤 시간은 끝이 난다. 한 페이지를 넘길 때 끝이 나고, 한 권의 노트를 다 썼을 때 끝이 나고, 이삿짐을 모두 옮긴 빈집을 돌아볼 때 끝이 나고, 한 모금씩 홀짝이던 커피잔의 바닥을 볼 때 끝이 나고, 홀로 밤거리를 걷다가 문득 느껴지는 땅의 진동에 멈춰 섰을 때 끝이 난다. 그리고 다시 시작된다. 다음 발자국을 떼면서 시작되고, 영업시간이 끝나가는 카페의 문을 열고 나와 밤거리를 걸으면서, 참았던 숨을 들이쉬면서, 새 노트에 첫 흔적을 남기면서, 다음 페이지를 응시하면서 시작된다. 이번 여행은 한 시절이 끝나고 다음 시절이 시작되려는 그 사이의 시간 동안 이뤄졌다.  

 

여행지는 베를린이었다. 다시는 방문할 일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 도시. 작년 여름 나는 작은 노트 한 권과 배낭을 가지고 1주일 남짓 베를린에 방문한 적이 있었다. 독일 남부 프론텐에서 10시간 동안 야간열차에 몸을 실어 베를린에 도착했다. 그 당시엔 완전히 혼자였고 돈은 최대한 아껴야 했으며, 만나야 할 사람도 가야 할 곳도 없었다. 여행자에겐 아무런 단서도 쥐여주지 않은 채 지연되는 기차와 지하철, 버스에 지쳐 나는 돈과 더불어 말과 사진도 아끼게 되었다. 모두가 나에게 무관심해 보였고 그러니 나도 관심을 꺼주겠다는 심보였다. 그 당시엔 오로지 극장에서만 숨을 쉬었다. 극장만이 나를 환대해 주는 공간이었다. 그마저도 지연되는 지하철로 인해 여러 번 방문조차 방해받았지만. 그러니 복수심에 ‘다시는 방문하지 않겠다’고 섣부른 선언을 한 사실도 이해받고 싶다.  

 

이번 여행은 모든 면에서 지난번 여행과 반대의 속성을 가지고 있었다. 겨울이었고 계획하지 않았으며 혼자가 아니었다. 여행 내내 맛있는 식사를 했고 만나야 할 사람이 있었다. 극장엔 가지 않았고 감탄과 탄성을 참지 않았으며 사진도 아끼지 않았다. 그러나 모든 풍경이 여름의 베를린과 겹쳐 보였다. 나는 단절을 원했다. 모든 것을 처음처럼 느끼고 싶었다. 사진도 남기지 않았고 절대 글로도 정리하지 않았던 그 여행이 끝맺지 못한 시간이 되어 내 안에 남아있다는 사실이 참기 힘들었다. 

 

모든 것이 마음처럼 되지 않듯 그토록 바라던 단절은 의외의 공간에서 찾아왔다. 여행 3일 차 베를린 필하모니 공연장이었다. 지루할 것이라고 생각했고 적응되지 않은 시차 때문에 뛰어난 건물의 편안한 의자에서 고상한 음악을 들으며 잠에 들 것이라고 예상했던 공연장. 혼자였다면 절대 찾지 않았을 장소였다. (다시 한번 섣부른 선언) 나의 예상과 달랐던 것은 좌석의 위치였다. 우리의 좌석은 오케스트라 연주자들의 뒷모습을 볼 수 있는 그러니까 우리가 정면이라고 부르는 무대의 뒤편이었다. 연주자들의 하얗게 새버린 머리카락과 지휘자의 얼굴을 마주 볼 수 있는 자리, 그중에서도 가장 꼭대기에 있어서 무대뿐만이 아니라 오케스트라를 지켜보는 수백 명의 관객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여행자들의 좌석이었다. 그리고 갑작스럽게 연주는 시작되었다. 연주가 시작되기 전 지속되었던 약간의 소란스러움과 재채기들을 가볍게 제압하고 살아있는 연주자들이 살아있는 음을 연주했다. 저렇게 머리가 하얗게 세는 동안 몇 번의 교향곡을 연주했을까. 한 음, 한 음 정성껏 이어지는 연주에 나는 문득 묻고 싶어졌다. 당신들도 실수하는 것이 두렵습니까? 그들은 조용히 대답해 주었다. 네. 하지만 아닙니다. 두려워할 새가 없지요. 나는 다음의 음을 연주해야 하고 이런 생각을 하는 틈에 이미 다음의 음을 연주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나는 그들의 대답이 이어지는 동안 한시도 눈을 뗄 수가 없었다. 40분의 연주가 찰나처럼 지나갔다.  

 

베를린 필하모닉 공연을 보기 전, 여행 3일 차의 낮에는 다와다 요코 작가를 만나기 위해 한 카페에 있었다. 나는 그를 인터뷰하기 위해 준비한 질문들을 잔뜩 가지고 있었고 긴장을 한 채로 작가를 기다렸다. 곧이어 카페 문이 열리고 작가는 일본 문학을 연구한다는 동료 교수와 함께 들어와 우리가 준비해 둔 테이블에 앉았다. 2시간가량의 인터뷰 동안 질문과 답이 물 흐르듯 이어졌다. 우리 모두는 그의 책을 몇 권씩 읽은 상태였고 책과 인생에 대한 질문들을 했다. 그리고 인터뷰 막바지에 나는 개인적으로 정말 묻고 싶었던 질문을 꺼냈는데, 글을 쓰는 직업을 가진 사람의 생활에 대한 질문들이었다. 당신은 많은 작품을 발표했지만 여전히 이야기를 쓰는 것이 막막할 때가 있는지, 그리고 그럴 때면 어떻게 돌파구를 찾는지 물었다. 처음에 그는 질문을 이해하지 못한 표정이었다. 통역의 과정에서 잘못 전달된 부분이 있는 걸까 싶어 한 번 더 말을 정리하려 했는데 그가 대답했다. 나는 막막할 때 글을 씁니다. 글을 쓰기 때문에 막막하지는 않습니다. 

 

그는 자신에게 글쓰기는 행선지를 모르는 기차에 올라타는 일과도 같다고 말했다. 동시에 자신만의 안전한 공간을 구성하는 일이라고 했다. 그러니 행선지를 모르는 기차에 매일 올라타도 괜찮다고. 계속해서 부딪히는 말을 해서 미안하지만 기차에 올라탈 때 나는 행선지를 모르는 동시에 알고 있다고 했다. 질문을 하고 있는 당신도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지요? 라고 묻는 듯한 표정으로 그는 우리를 보았다. 나는 고개를 마구 끄덕였다. 맞아요. 저도 그래요. 그리고 행선지를 알고 있지만 동시에 모른다는 사실이 저를 그 기차에 오르기 힘들게 만들어요. 그래서 너무나 많은 시간을 망설이는 데에 쓰고 있어요. 다와다 요코는 잠시 생각을 하다가 아까 전 질문에 추가 답변을 하고 싶다고 했다. 물론 나도 글을 쓰기 어려운 날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럴 때 역시 매일 아침 일어나서 씁니다. 이것이 답이 될까요? 

  

변태 같은 답변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필하모닉 연주자들이 마지막 음을 마쳤을 때 다시 생각했다. 그는 이렇게 한 음과 다음 음이 이어지는 걸 말한 걸까? 그러니까 결국 시간은 흐르고 중요한 것은 다음 열차를 타는 일이라는 것을 말하고 싶었던 걸까? 후회로 남겨두었던 작년 여름 베를린에서의 시간을 다시 흘려보내고 싶어졌다. 글쓰기가 너무나 어렵고 막막하게 느껴져서 옴짝달싹 못하던 시간도 흘려보내고 싶어졌다. 내 주위에는 이제 막 다음 페이지를 넘겨서 펼쳐보고 있는 작가들이 있었고, 내가 뭔가를 결심하는 사이에도 여행은 어찌 되었든 이어졌다. 다음 날 아침에  잠을 깨고서 나는 몇 년간 미뤄두었던 모든 연락에 답장을 보냈다.

  

여행의 마지막 날은 자유시간이 주어졌다. 나는 베를린 외곽에 위치한 건축이 멋있다는 화장장으로 향했다. 이 도시가 죽음을 다루는 방식을 엿보고 싶은 마음에서였다. 그곳은 베를린 중심가에서 1시간 정도 S-ban(도시고속철도)을 타고 가야 했고 1주일 동안 여행했던 베를린의 모습들이 열차 창문 밖으로 지나갔다. 나는 내가 이동의 시간을 사랑한다는 사실을 다시금 떠올렸다. 이동의 시간은 아무에게도 방해받지 않을 수 있는 시간이다. 목적지 역시 나만이 정할 수 있다. 사실 난 프론텐에서 베를린으로 오는 야간기차에서의 시간도 사랑했었다. 그곳에 도착한 일도, 프랑크푸르트에서 뮌헨을 거쳐 프론텐에 간 일도 내가 선택한 것이었다. 물론 서울에서 희곡을 쓴 일도 말이다. 그런 생각들을 하며 도착한 화장장의 문은 닫혀있었다. 구글맵에 적힌 운영시간과 달리 닫혀있는 멋지게 건축된 문을 두드리며 이 도시 혹은 여행자라는 직위가 행사하는 장난에 그만 웃음이 터졌다. 화장장은 출입하지 못했지만 그 옆으로 넓은 공원묘지가 있었고 그곳을 남은 자유시간 동안 걸을 수 있었다. 그곳엔 다른 날에 태어나 다른 날에 죽은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그 사람들의 묘에 꽃과 초를 두기 위해 종종 방문하는 듯한 사람들과 산책을 나온 동네 주민들이 스쳤다. 다시금 생각한다. 단절과 처음을 맛보는 것은 다른 것이다. 죽음과 태어남이 그렇듯이. 그러니까 처음을 느끼기 위해 지나간 시간을 끊어낼 필요는 없는 것이다. 어차피 그런 일은 내 노력 없이도 동시에 일어나니까.
 

숙소로 모이기로 한 시간이 다 되어가서 다시 역으로 걸어갔다. 무슨 일인지 핸드폰이 작동을 멈춰서 구글맵의 도움 없이 숙소를 찾아가야 했다. 일단 새 노트를 한 권 샀고, 모처럼 새로 산 노트에 남기는 첫 메모로 적당한가에 대해 생각하면서 역으로 가서 지하철 노선도를 노트에 옮겨 그렸다. 숙소 근처 지하철역까지는 한 번만 갈아타면 되었다. 전적이 있는 여행자의 직위를 이용하여 동요하지 않고 제시간에 숙소에 도착할 수 있었다. 어찌 되었든 내가 했던 수많은 실수들이 나를 돕고 있었다. 내가 끊어내지 못한 시간들이 나를 구성하고 있었다. 그러니까 한 여행이 끝나는 것을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 한 시절이 끝나는 것을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 그리고 다음 열차에 올라타야만 한다. 한국으로 돌아가는 공항에서는 오랫동안 답장을 하지 못해 미안하다는 나의 메시지에 되돌아온 대답들을 읽었다. 그리고 다시 한번 더 답장을 썼다. 다음 페이지를 넘겨볼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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