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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영원히 살아갈 거야
작성자 박서영
날짜 18.09.03 조회 6015

우리는 영원히 살아갈 거야
 
 
모든 게 0에서부터 시작된다. 나는 이 사람들도 처음이고 지금 가는 이 나라도 처음이다. 우리는 서로의 지난 족적을 전혀 모르므로 지금부터의 말과 행동을 통해 인물을 규정할 것이다. 나는 출국장에 들어서면서 자꾸만 뒤를 돌아본다. 한국에서의 나는 결코 0이 될 수 없다. 그곳에는 내가 있어야만 완성이 되는 인과가 있고 계보가 있다. 절대로 포맷할 수 없는 삶이 멀리서 나를 배웅한다. 나는 그 광경을 등지고 비행기에 올라탄다……라고, 출국 당시를 우선 이렇게 묘사해둔다. 써놓고 보니 구구절절하다. 실은 그냥 피곤했다. 전날 잠을 아예 자지 못했으므로 내 비행의 목표는 열심히 자는 거였다. 그러나 아무리 눈을 감아도 선잠이었다. 눈이 계속 저절로 떠졌다. 피곤함이 덕지덕지 붙어있으면서도 절대 잠에는 들지 못하는, 이 지긋지긋한 눈으로 창밖을 보았다. 자줏빛 오로라가 펼쳐져 있었다. 태어나 처음 보는 오로라였다. 풍광을 보고 경이로움을 느끼긴 오랜만이었다. 나는 그것을 한참 동안 바라보았다.
내리 열여섯 시간을 견디고 나서야 우리는 더블린에 도착했다. 어둠이 내려앉아 있어 건물들이 다소 흐리게 보였다. 이곳은 지구 반대편이었고 내가 살면서 와 본 곳 중에 가장 먼 곳이었다. 그러나 실감이란 원래 감성보다 본능에 더 솔직한 법이어서, 나는 외국이고 뭐고 피곤해서 죽겠다는 생각뿐이었다. 다만 현지인과 대면하는 순간에는 내가 완벽한 이방인으로 다시 태어났음이 느껴졌다. 이곳에서의 나는 간단한 대화조차도 귀를 기울여서 해야 하고 때로는 우스꽝스럽게 손짓 발짓을 다 동원해야만 했다. 금발의 공항 직원에게 환전을 요구하는 일이란, 이렇게 온갖 방식으로 기를 써야만 가능한 것이다. 정말 0이 되었구나. 환전을 마친 나는 지친 행색이 되어 일행과 버스를 탔다. 공항이 꼭 청량리역 같다. 열여섯 시간 전에 두고 온 세상과 비교하면서.
다음 날 아침 일찍 일어나 거리를 걸었다. 아침의 더블린은 밤과는 전혀 다른 얼굴을 하고 있었다. 이국에 왔다는 게 조금씩 실감이 나기 시작했다. 낯선 건물과 낯선 사람들. 내가 이 나라에 대해 아는 것은 국민의 과반수가 가톨릭을 믿는다는 것과 크랜베리스와 유투의 출신지라는 것, 그리고 1840년대 대기근으로 인구 절반이 미국으로 이주하거나 죽었다는 것이다. 그래서일까. 작가 박물관에 가서도, 트리니티 대학에 가서도, 계속 살아남은 자들과 조우하고 있다는 인상을 떨칠 수가 없었다. 나는 약간의 경의를 느꼈다. 그리고, 내가 나를 이렇게 표현해도 될지는 모르겠지만, 나 역시 살아남은 자라는 생각이 들었다. 역사는 겪지 않아도 상처가 되고, 이 나라 사람들과 우리는 비슷한 상처를 갖고 있다. 살아줘서 고마워요. 오지랖 같지만 그렇게 말해주고 싶었다.
존 밴빌 작가님과의 간담회는 보라색 페인트가 인상적인 이탈리안 식당에서 이뤄졌다. 나는 작가님께 질문을 하고 답변을 듣는 형식의 이 간담회가 마음에 들었다. 한때 내 대학 생활의 전부였던 학보사가 떠올라서였다. 기자를 그만두고 한동안은 학보사의 학자만 들어도 진저리를 쳤었다. 너무 고생을 많이 했던 탓이었다. 그러나 시간이라는 융단을 타고 멀리까지 날아와 보니 결국 그 시절도 추억이 되어있었다. 간담회를 끝내면서 나는 작가님께 한국에서 개인적으로 준비해온 선물을 드렸다. 우리나라 전통 문양이 그려진 볼펜이었다. 작가님이 좀 전에 한국어 번역본을 펼쳐보면서 일본 책처럼 뒤에서부터 읽냐고 물었었기 때문에, 나는 그 펜이 일본과는 다른 한국만의 정서를 전해주는 데에 조금이나마 일조할 수 있기를 바랐다.
프랑스로 이동하는 날 당일에는 가랑비가 내렸다. 떠나는 날에 내려서 다행이다. 우리는 그렇게 말하면서 공항에 갔다. 비행기에 타기까지 시간이 좀 남았으므로 나는 이어폰을 꽂고 크랜베리스의 노래를 들었다. 보컬 돌로레스의 목소리를 들으면서 아일랜드의 마지막 풍경을 두 눈에 최대한 담으려고 애썼다. 처연한 목소리로 아일랜드의 회한을 노래하는 그녀는, 내가 이곳에 오기 열흘 전에 별세했다. 이 나라의 대통령과 총리와 모든 국민이 슬퍼했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문득 기행 첫날이 떠올랐다. 나는 그때 더블린 시내의 음반매장에서 크랜베리스 앨범을 구매했었는데, 유로를 내밀던 내 표정이…… 너무 지나치게 환했던 것 같다.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물건을 봉투에 담아주던 점원의 표정이 어두웠던 건 결코 우연이 아니었다. 미안했다. 그녀의 목소리를 떠나기 직전에야 황급히 듣는 것도.
안녕, 더블린. 다음에 또 오게 된다면 그땐 절대 미안해할 실수는 하지 않을게. 나는 기념품으로 산 인형을 흔들며 마지막 인사를 했다.
프랑스는 미국 못지않게 인종의 용광로였다. 나는 파리에 들어서자마자 히잡을 쓴 여인과 흑인 무리를 보았다. 온통 백인뿐이었던 더블린과는 상반되는 풍경이어서 새삼 새로웠다. 우리는 숙소로 가기 위해 택시를 탔다. 창밖으로 센강과 에펠탑이 보였다. 우리가 입을 모아 감탄하자 기사 아저씨가 신이 나셔서 여기도 보고 저기도 보라며 손가락으로 이곳저곳을 가리켰다. 그러다가 다른 차가 새치기를 하자 화가 나서 뭐라고 큰 소리를 내며 핸들을 주먹으로 쿵쿵 쳤다. 나는 그게 프랑스인 특유의 어떤 열정 같아서 재밌었다. 약 200년 전 이 나라 사람들이 개인의 자유를 쟁취하기 위해 일으켰던 혁명의 불길에서 나온 그을음이, 아직도 도시 곳곳에 남아서 그들을 가열시키는 것처럼 보였다.
저녁으로는 스테이크와 푸아그라 오믈렛을 먹었다. 스테이크는 맛있었고 푸아그라는 너무 비려서 먹기가 힘들었다. 숙소로 돌아가는 길에는 마트에 들러 자기 전에 마실 와인을 샀다. 파리의 야경을 등지고 앉아서 와인 잔을 기울이며 보내는 밤이 일정 내내 이어졌다. 우리는 주로 문학과 페미니즘 이야기를 나눴는데 그게 나를 행복하게 했다. 나는 문창과 학생이기는 하지만 주변 사람들과 진지하게 문학 이야기를 나눠본 적은 손에 꼽을 만큼 적고 더 나아가 페미니즘을 대화의 주제로 삼아본 적은 더더욱 없다. 문학을 하는 데에 있어서 나는 언제나 변방이었다. 그것은 항상 마음 한구석에 아쉬움으로, 그리고 절대 주류에 낄 수 없다는 비감으로 남아있었다. 혼자 읽고 혼자 쓰던 그동안의 생활이 이번에야 청산된 느낌이었다. 모두에게 고마웠다.
그리고, 눈이었다. 파리에 머물던 3일간 우리가 유적보다 더 많이 본 건 눈이었다. 눈보라와 한파를 뚫고 루브르 박물관으로 걸어가던 일곱 명의 모습과, 에펠탑 앞에서 벌벌 떨며 기념사진을 찍던 얼굴들이 생생하게 떠오른다. 파리 한국문화원에서 만난 번역가 한유미 선생님의 말씀에 의하면, 파리는 원래 눈이 잘 오지 않는 도시라고 한다. 우리는 허탈한 표정으로,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하며 탄식했다.
한유미 선생님은 우리에게 프랑스 내 한국 문화의 입지에 대해 설명해 주셨다. 요지는 근 몇 년간 위상이 놀라울 만큼 상승했다는 내용이었다. 평소 매스컴을 통해 듣던 것보다 훨씬 유익하게 다가왔다. 이윽고 우리는 세종학당에서 한국어를 배우는 외국인들과 만나게 되었다. 그들은 이제 막 문단에 발가락만 들이민 수준인 우리에게 한국 문학에 관해 물어왔다. 우리는 신중히 답변을 골랐고 매초 조심스러웠다. 마지막으로 누군가가 앞으로의 꿈을 물었다. 나는 작가란 책이 안 팔릴 것을 걱정해선 안 되고 자기 작품이 마치 엄청난 반향을 불러일으킬 듯이 작업해야 한다는 사르트르의 말에 공감한다며, 다음에 프랑스에 올 때는 불어로 번역된 내 책이 서점 한가운데에 진열된 모습을 볼 거라고 했다. 반은 농담이었고 반은 진담이었다. 농담인 이유는 내가 미래를 살아보지 못했기 때문이고, 진담인 이유 역시 내가 미래를 살아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어제는 오늘과 다르고 오늘은 내일과 다르다. 지금의 나만 하더라도 두 달 전의 내가 전혀 예상하지 못한 하루를 살고 있다. 그렇게 말해놓고 부끄러워서 고개를 숙이자 여기저기서 박수 소리가 들려왔다. 말도 안 되는 패기에 호응해주셔서 진심으로 감사했다.
삶의 변화를 전혀 체감하지 못하고 있을 때, 그것을 실감시켜 주는 것은 변하지 않고 같은 자리에 붙박여있는 무언가다. 내게는 오아시스의 음악이 그렇다. 몇 년 전 이맘때 방구석에 시체처럼 누워 반복재생하던 오아시스와, 기행 마지막 날 기차에서 듣던 오아시스는 내게 전혀 다른 회포를 불러일으켰다. 파리에서의 일정을 마치고 인천행 비행기를 타기 위해 런던으로 가는 날이었다. 이 순간에 다다르기 위해 꼬박 몇 년의 시간을 기다렸다. 음악은 그때와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다. 그러므로 지난 시간을 환기하며 삶의 변화를 증명한다. 당시와 현재의 간극은 지나치게 넓고 나는 그래서 감사하다. 너와 나는 영원히 살아갈 거야. 쓰인 이후 단 한 번도 변하지 않았고 앞으로도 그대로일 노랫말을 들으며 창밖을 보았다. 기차는 끝을 향해 고요하게 달려가고 있었다. 미움받고 미워할 것이 자명한, 그렇기에 영원히 떠날 수 없는 곳으로의 환국이 가까워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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