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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가는 밤
작성자 서재진
날짜 18.09.03 조회 5035

또 가는 밤
 
 함께 길을 잃은 사람들은 친해지기 마련이다. 여섯 명의 사람과 한 마리의 개구리 인형은 아일랜드의 밤거리를 죽어라고 헤맸다. 인천 공항에서 더블린 공항까지 가는 것과 더블린 공항에서 스펜서 아파트로 가는 것은 천지차이였다. 밤 열 시가 되면 모든 상점의 불빛이 꺼지는 곳이라면 내가 태어난 옥산마을(사실 거기는 불이 꺼질 상점조차 없는 곳이다.) 외에는 본 적이 없다. 낯선 아파트 정원에서 아일랜드인이 키우는 개를 쓰다듬으며 우리는 친해졌다. 두 유 노우 싸이? 두 유 노우 불고기? 개의 귓가에다 실없는 질문을 하는 동안 길을 잃었다는 사실을 실감했다. 개에게도 영어로 말을 걸어야 하는 곳에서 간신히 숙소를 찾아 첫 밤을 보냈다. 그러는 동안 친해졌으니 길을 잃는 게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아파트 주방에 늘어놓은 신라면 봉지를 보며 물을 마셨다. 바깥으로 도둑고양이가 지나갔다. 그 고양이도 아마 영어를 할 것이었고 타국의 언어를 쓰는 우리는 이방인이었다.
 오코넬 거리와 작가 박물관에서의 낮, 또 한 번의 밤을 보내고 닿은 트리니티 대학교에서 켈스의 서를 봤다. 현재를 사는 사람들에게 그 책은 이방의 언어로 느껴질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의 언어와 과거의 언어는 모양도 발음도 문법도 다르다. 각자의 시간에서 존재하는 언어들이 한 곳에 모여 있었다. 인간은 언젠가 과거가 된다. 모든 미래는 현재가 되니 결국 실존하는 것은 과거와 현재밖에 없다. 수도사들이 하나하나 그려낸 머리글자를 보며 나는 어떤 과거가 될까 고민했다. 고민한다고 달라지는 과거는 없으나 그 때의 나에게는 모든 아일랜드가 현재였다. 과거가 될 미래에 대해 고민하는 나는 지금의 과거가 되었고 또 다시 시간이 간다.
 아일랜드 작가, 존 밴빌과의 대담에서 그런 과거들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그는 현재를 과연 현재라 말할 수 있는가, 하는 의문을 이야기했다. 켈스의 서도, 『바다』의 마일스도 모두 과거를 이야기한다. 나도 과거를 쓰고 있다. 과거를 쓴다고 쓴 문장도 지금은 과거가 되었다. 지나간 시간에 대해 쓰는 것이 문학의 필요 중 하나라고 조심히 짐작해본다. 과거를 공유하는 일은 아주 섬세한 작업이다. 나의 시간을 내보임으로써 읽는 이에게 어떤 감정을 느끼게 하는 작업이 문학의 본질이자 필요 아닐까. 아일랜드의 한 이탈리아 식당, 모든 시간은 과거가 되고 바깥에는 갈매기가 날아갔다. 바다가 보이지도 않는 곳에서 말이다. 갈매기가 어딘지 모를 곳으로 날아갔다.
 
 아일랜드와 프랑스 사이에 시차가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프랑스의 아파트에는 천장 조명이 없다는 것도. 정각이 되면 숙소 앞에서는 노틀담 성당의 종소리가 들렸다. 나는 그렇게 영화같은 곳과 어울리지 않는다. 거리에서 담배를 피우는 일도, 길을 걷다 옆을 보면 세느 강이 있는 것도 익숙하지 않았다. 종교가 없는데도 노틀담 성당에서 기도를 올렸다. 그토록 보고 싶었던 모나리자의 실물을 보고도 아무런 감흥이 없었다. 파리 어디에나 한국인 관광객이 있었다. 알아들을 수 있는 언어들을 피해 어디론가 숨고 싶었다. 그래서 기도를 올렸는지도 모르겠다. 남가좌동의 자취방 매트리스에 누워 마냥 쉬고 싶다고. 나를 아는 사람이 없는 곳으로 가고 싶다고. 보들레르가 그런 기분으로 파리의 우울을 썼을까 싶었다. 하지만 보들레르의 우울은 보들레르의 우울이고, 서재진의 우울은 서재진의 우울이다. 파리는 우울하지 않았다. 내가 우울할 뿐이었다. 파리의 아파트 실내등은 부드럽고 어두웠다. 슬펐다.
 
 기도를 할 때면 일어서서 손을 모으고 있다는 감각만이 확실하게 다가왔다. 그래서 노틀담 성당이 좋았다. 제가 사실 종교는 없는데요, 로 운을 뗀 그 기도는 꽤 길었다.
 
 -제가 사실 종교는 없는데요, 그냥 얘기해봐요. 저는 신이 있다고 믿어요. 신이 제 기도를 들어준다거나 전지전능하다는 사실에 확신을 못 가질 뿐이지, 일단 신은 있다고 믿어요. 저는 그래요, 성모님. 제가 글을 잘 쓰게 해달라거나 앞으로 쓸 수 있는 힘을 달라는 얘기는 안 할게요. 그건 다 제가 해야만 하는 일들이잖아요. 누가 대신 해줄 수 있는 일이 아니고요. 저는요, 뭔가 들어달라고 기도하는 게 아녜요. 그냥…… 앞으로 열심히 쓰겠다고. 아니, 열심히는 아니더라도 성실히 쓰겠다고 약속할게요.
 거짓말을 하면 지옥에 떨어진다고 하잖아요. 남을 속이면 안 된다고요. 근데 제가 하는 일은 거짓말이에요. 글을 쓰는 건 능숙하게 거짓말을 쳐서 없는 얘기를 지어내는 거니까요. 그런데 그 안에 사람 사는 얘기가 다 있으니까 완전한 거짓말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거기다 저는 거짓말이 업인가 봐요. 거짓말 쳐서 상도 타고 시인도 됐어요. 또 거짓말을 안 하더라도 저는 아마 지옥에 갈 거예요. 나쁜 일을 너무 많이 해서요. 그리고 제가 하고 싶은 일이 거짓말인데 거짓말 안 하고 살면 너무 힘들 것 같아요.
 적어도 열심히 한다고…… 성실하게 한다고…… 약속할게요. 성모님은 다 알고 계신다고 했죠. 제가 했던 말, 성실하게 쓰고 차근차근하게 산다는 말, 그 말은 거짓말이 아니었어요. 잘 지킬게요. 성실하게 쓰고 차근차근 살겠다고, 성모님께 또 한 번 약속드립니다. 아멘.
 
 파리의 밤에는 눈이 왔다. 버스를 멈추고 소음을 없애는 눈이 왔다. 베란다에 쪼그리고 앉아, 자신은 프랑스의 시차를 살아간다는 랩을 들었다. 교수님이 문신 때문에 긴 팔 입고 오라던 적은 없었는데, 하는 생각도 했다. 소복소복 쌓이는 눈을 보며 오르세 미술관에 걸린 툴루즈 로트렉의 침대라는 작품을 떠올렸다. 두 사람이 마주보고 침대에 누워있는 그림이다. 눈이 파리의 길가를 덮었다. 저 먼 곳…… 지구의 어디쯤에서는 나와 파리가 함께 누워있는 것처럼 보이겠단 생각이 들었다. 완전히 반대편에서라면 거꾸로 매달린 모습으로 보일 거고 말이다. 어느 방향에서 보느냐에 따라 나의 자세는 완전히 달라진다. 서 있는 것도 누워있는 것도 맞는 채로 파리의 밤이 지나갔다. 기행의 끝이 다가오고 있었다. 한국의 밤이 무서웠다. 눕거나 앉거나 매달려야 하는 곳으로, 내가 아는 언어만 있는 곳으로 가야한다는 사실은 아주 어려운 자세를 취해야만 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런던의 극장에서도 그런 두려움을 느꼈다. 오페라의 유령을 영어로 들었다. 발코니 석에 앉은 탓에 앞사람의 머리가 무대 정중앙을 가렸다. 오히려 그게 편했다. 극을 보지 않고 귀로만 들었다. 대사를 알지 못하니 남은 것은 멜로디뿐이다. 가방에 개구리 인형을 매달고, 메인 넘버의 멜로디를 속으로 흥얼거리며 버스를 탔다. 숙소에 가까워지는 것과 한국에 가까워지는 것이 비슷하게 느껴졌다.
 
 며칠간의 기행은 큰 탈 없이 마무리되었다. 우리는 늘 길을 잃었고 늘 친해졌다. 여섯 명의 사람과 한 마리의 개구리 인형이 갔다가, 여섯 명의 사람과 몇 마리의 고양이 물고기 개구리 양 로봇 인형이 돌아왔다. 인천공항은 미세먼지로 뿌옜다. 축산물 반입 규정을 위반한 모 씨의 짐이 수화물 컨베이어 벨트를 몇 바퀴쯤 돌고 나니 와인과 누가 캔디와 더블린, 파리, 영국의 먼지를 잔뜩 묻힌 옷이 들어있는 내 캐리어가 나왔다. 아일랜드의 비와 프랑스의 눈과 런던의 흙이 묻은 캐리어를 끌고 남가좌동 작은 자취방으로 돌아왔다.
 나는 기도를 지킬 수 있을까. 거짓말이 업이라지만 글을 쓸 때 말고는 거짓말을 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나와 한 적이 있다. 과거의 이야기를 쓰는 지금, 나는 아직 무서워할 게 많다는 생각이 든다. 무서워할 것을 다 무서워하고 나면 새로운 두려움이 찾아올 것이다. 무섭기 위해서 쓴다. 마냥 무서워했던 해외에 다녀왔고 마냥 무서운 작업인 글쓰기를 한다. 알아들어줄 사람을 찾으며 나의 언어로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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