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험을 든다면 역시 교보생명을 드는 게 좋겠다고 생각하며 쓴 의리 있는 기행문
모든 일이 그렇겠지만 여행이란 것도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충분한 시간과 금전적인 여유까지 어느 정도 갖춰줘야 가능한 일이니 말이다. 내 경우에 시간이야 쓸데없이 남아도는 성질의 것이지만 돈은 생각만 해도 뒷골이 당기는지라 여행에 대해선 별 감흥 없이 지냈다. 그중에서도 유럽여행은 내가 꿈도 못 꿀 나와는 다른 세계의 사람들 일이라 여겼는데, 그랬던 내가 유럽에 다녀왔다.
자취방에서 라면을 끓여 먹으며 모니터 속 연예인들의 유럽 여행기를 보고 ‘이야, 나는 살아생전에 저런 델 가보려나’ 하던 게 아직 생생한데, 인생은 정말 알 수 없는 법이다.
당선된 것에 대한 축하와 이게 취업과도 상관있는 거냐고 묻는 친척 어르신들의 초롱초롱한 눈망울을 뒤로하고 2월 1일, 나 그리고 나와 같이 당선된 다른 분야 친구들, 담당자분들까지 해서 우리 7명은 아일랜드의 더블린으로 떠났다.
난생처음 경험해보는 장거리 비행은 몽롱한 와중에 기내식을 꼬박꼬박 챙겨 먹다 보니 끝나있었다. 사실 공항에 내릴 때까지도 유럽에 온 게 실감이 나지 않았다. 멍하니 서서 둘러 보며 공항 근처 건물들이 서울역과 비슷하네 하고 생각했는데 빨간 이층버스를 타고 우리나라와는 다른 구조의 건물들을 잔뜩 보고 나니 유럽에 오긴 왔구나 싶었다.
우리의 일정은 너무 빡빡하지도 너무 여백이 많지도 않은 적당한 정도였다. 더블린의 하지스 피기스 서점부턴 다들 서로 어느 정도 말도 트고 거리감도 좁혀져 세상 모든 진리를 깨우친 눈을 가진 호랑이 인형 하나를 발견해놓고 내리 웃기도 했다. (결국 그는 우리 중에서 주인을 찾았다, 아니 선택했다)
아일랜드는 녹색이 군데군데 퍼져있어서인지 어딘지 모르게 아늑하고 포근한 느낌이 좋았는데, 그곳에서 마지막 밤을 보내야 했던 날엔 존 밴빌 작가와 만남을 가졌다. 그와 우리는 이탈리아 음식점에서 짭짤한 음식들은 먹으며 편안한 분위기로 인터뷰를 진행했다. 그는 우리가 준비한 질문들에 대해 거침없이 답변해주었다. 유쾌한 할아버지였다. 그분을 만나고 우리는 기네스 공장에 가서 갓 생산된 기네스를 마시며 아일랜드에서의 일정을 마무리했다.
두 번째 여행지였던 프랑스 파리에 가서는 루브르와 오르세를 연달아 견학하는 더 없는 행운을 누리게 되었다. 미술 교과서나 대중매체에서 영상이나 사진으로 접해 보던 것들을 실제로 보고 있자니 경이롭기 그지없었다. 경이롭다라는 감상에는 놀라움과 동시에 두려움도 내재 되어있다고 하더니 과연 그 말대로 어떤 것들은 소름 돋는 느낌을 주기도 했다. 나에겐 로댕의 지옥의 문이 특히 그러했다. 한 시간 넘게 지옥의 문만 보고 있어도 괜찮겠다 싶었다.
지옥의 문만큼 인상 깊었던 세종학당 사람들과의 만남도 꽤 흥미로운 경험이었다. 내 생각 이상으로 그들은 한국에 관심이 많았다. 그 때문일까, 우리에게 건넨 질문 또한 기대 이상으로 심도 있는 것들이었는데 우리의 대답이 성에 찼을지는 잘 모르겠다. 나름대로 열심히 답변해주었다는 것만 알아주기를 바랄 뿐이다. 덧붙이자면 드라마라는 달콤한 매체를 통해 한국에 너무 큰 환상을 갖지 않았으면 한다는 충고도 기억해주길.
마지막 여행지였던 런던에선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을 보기 전에 한 건물이 통째로 장난감 가게로 된 곳을 갔던 게 기억에 남는다. 정말 별의별 장난감들이 다 모여 있었는데 아이들 전용의 예쁜 드레스들도 잔뜩 있었다. 우리 모두 어린 시절에 그런 드레스를 입어본 적이 없어 공연장 가는 길까지 그 드레스를 입고 갈까 하고 우스갯소리가 나오기도 했다. 문제는 드레스들이 아이들 용이라 우리네 몸엔 딱 붙는다는 거였다. 굳이 입어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괜히 드레스를 입었다간 지나치게 육감적일 까봐서 다음을 기약해야만 했다. 기약이 기약으로 끝나지 않고 진심으로 우리끼리 멋진 턱시도나 드레스를 입고 파티를 열 날이 오면 좋겠다. 오페라의 유령에 나오는 노래도 틀면서 기분을 낼 날이 말이다.
지금까지 기행문을 쓰면서 인상 깊었던 것들 몇 가지만 적었는데 사실은 한순간, 한순간이 모두 중하고 잊을 수 없는 것들이었다. 아일랜드에선 맥주를, 프랑스에선 와인을 마시며 밤늦게 대화했던 일들도 무척이나 좋았다. 사람들이 다 너무 좋아서 되돌아보면 마음 맞는 친구들만 딱딱 골라 수학여행을 다녀온 느낌이 나기도 한다. 너무 흥이 난 나머지 아무 말 대잔치를 연발했던 내게 유한 반응을 보여줬던 일행들에게 진심으로 감사한다. 다들 나와 같이 즐겁게 여행해줘서 고마웠고 혹시라도 내 말에 조금이나마 마음이 불편했던 친구가 있다면 용서를 구하는 바이다.
나는 우리가 계속해서 서로에게 좋은 사람들로 기억되는 관계가 되기를 바란다. 공적인 자리뿐 아니라 사적으로도 충분히 교감할 수 있기를.
좋은 친구들과 진귀한 경험을 하게 해준 대산문화재단에 감사를 표하며 이만 기행문을 마치고자 한다. 덕분에 행복하고 즐거웠다라는 문장을 진심으로 쓸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