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문학을 하겠다는 사람은 어떤 사람들일까. 하루 종일 문학에 대해 얘기하고 들으면서도 지치지 않는 사람들이 아닐까? 정말 문학을 사랑하고 사랑할 수밖에 없는 사람들이 아닐까? 해외문학기행이 의미 있는 것은 그런 사람들과 함께 한국을 떠나 외지에서 한국의 문학을 얘기하는 즐거움 때문일 것이다. 어느 나라의 어느 길거리에서나 누구의 눈치에도 얽매이지 않는 세계가 생겨났고, 그 안에서 우리는 자유로웠다. 언어가 가진 자유로움 속에서 걸었던 폴란드의 안개 낀 거리와, 비 내리던 광장이 선명하다. 유독 춥고 말이 없었던, 말을 할 수 없었던 아우슈비츠의 질척거리던 흙바닥을 기억한다. 아우슈비츠를 들어서기 전 먹었던 샌드위치의 맛을 영영 잊지 못할 것 같다. 이상하다 싶을 정도로 맛있는 음식들만 먹었던 날들 중에서 유독 그곳에서 먹었던 샌드위치가 기억에 남는 이 감정을 지금은 글로 쓸 수조차 없다.
여행 내내 안개가 우리를 따라다녔다. 우울한 일정이 될 수도 있었지만 유쾌한 사람들과 함께여서 침울해질 겨를이 없었다. 애초에 안개는 우울한 것이 아니고, 우울하게 생각하도록 만들어진 것이고, 난 날씨의 공평함을 알고 있다. 안개는 나를 꿈의 세계로 데려갔다. 여행 내내 꿈을 꾸는 기분이었다. 이제 막 작가가 되어 명함을 내밀 곳도 없고, 아직 누군가에게 보여줄 작품이 나온 것도 아닌 새내기 작가들이 모여서 떠날 수 있는 여행이 얼마나 있을까. 심지어 과분할 정도로 맛있는 음식들과 맛있는 이야기들이 오가는 여행이라니. 이런 행운이 내게 찾아와도 되는 것인지 문득문득 궁금해졌다. 이 행운만큼 앞으로 더 열심히 글을 쓰고, 생각하고, 노력해야겠구나 하는 과제를 가지고 돌아왔다. 앞으로 만날 사람들은 여행을 함께한 사람들만큼이나, 혹은 그 이상으로 문학을 사랑하는 사람들일 텐데, 그런 사람들에게 실례가 되지 않을 만큼 문학을 사랑하는 사람이 되어야지. 그런 생각을 하며 잠들게 하는 날들이었다.
많은 경험을 했다. 바르샤바 대학교 한국학과 학생들을 만나 어색하고 서투른 말로 서로를 인식하고, 눈을 마주치고, 웃는, 색다른 경험이었다. 대부분 1학년 학생들이었는데, 더 쉬운 말로 명확하게 이야기를 전달해 주지 못해 미안했다. 무언가를 쉽게 표현한다는 것은 어렵게 표현하는 것보다 힘든 일이라는 것을 또 한 번 깨닫게 되었다. 언어는 누구나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는 것이지만, 언어가 가진 무한한 가능성을 억누르는 자유로움이라고 생각하면, 난 늘 말을 아끼고 싶어진다. 그럼에도 나는 말한다. 작가가 되기로 생각하면서, 작가가 되면서 내게는 언어의 자유를 빼앗을 권리가 생겼다. 내 책이 나온다면, 그것이 바로 언어의 자유를 빼앗은 첫 번째 결정체가 될 것이다. 권리와 함께 뒤따라오는 책임을 기꺼이 감수할 수 있는 작가가 되고 싶다.
바르샤바에는 쇼팽의 심장이 있는 성 십자가 성당이 있다. 저녁에는 쇼팽의 연주회를 들을 수 있었다. 음악이란 듣는 즐거움도 있지만 보는 즐거움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하지만 지금에 와서 기억나는 것은 연주회가 끝나고 나와 걸었던 자욱한 안개 속의 건물들이다. 명백하지 않은 윤곽들과 흐릿한 불빛이 만들어내는 광경은 초점이 흔들린 사진처럼 매력적이었다. 그곳에서, 그 시간에만 느낄 수 있는 것을 느끼고 온 것 같은 기분이다. 명백하고 또렷한 것을 좋아하는 편이지만, 애초에 명백한 것은 아무것도 없을지 모른다.
크라쿠프에서 방문한 아우슈비츠는 말 그대로 할 말이 없어지는 공간이었다. 비극이 너무 커서 비극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내가 보고, 듣는 이것들이 실제로 일어난 일이었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았다. 그리고 그 희생 후에 내가 살아있다는 사실이, 그로인해 이곳을 방문했다는 사실이 참을 수 없이 서러웠다. 인간으로 사는 것이 결코 축복은 아님을 느끼게 해주는 공간이었다. 인간이 인간일 수 있는 것은 같은 실수를 되풀이 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했다. 그런데도 인간은 왜 같은 실수를 반복할까? 반복하고도 왜 인정할 줄을 모를까? 한나 아렌트가 말했던 것처럼 ‘악의 평범성’인 걸까? ‘악’을 정의해 놓고, 거기에 ‘평범성’이라는 말을 붙여도 되는 것일까? 애초에 인간은 악을 정의하지 말았어야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은폐될 뻔했던 비극을 눈앞에서 보는 심정은 무척 참담했다. 하지만 내가 슬퍼하고 괴로워해도 되는 일인지 확신할 수 없었다. 나는 슬프고 괴로운 일에 대해 극복보다는 회피를 하는 쪽이다. 잊기 위해 노력하고, 한참이 지나 ‘그런 일이 있었지’라며 다시 꺼내놓고 생각을 정리하는 편이다. 아우슈비츠에서 본 비극은 결코 회피해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 계속 기억해야 할 역사였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고 했다. 이 말이 의미하는 바가 그 나라만의 역사일 필요는 없을 것이다. 아우슈비츠가 가진 역사는 독일이나 유럽만의 역사가 아니고, 인간의 역사였다. 사실 멀리 갈 필요도 없이 우리나라에서도 잊어서는 안 되는 역사들이 있다. 아직도 생각하면 눈물이 나는, 멀지 않은 과거의 일들이 있다.
그들의 희생이 결코 나와 아무런 관련이 없다고 생각할 수 없다. 또한 그들의 악행이 나와 무관하지도 않다. 인간이라면, 인간으로서 지켜야 할 최소한의 것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도 그것을 지키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아직도 많다. 인간으로서 살아간다는 것은 끔찍한 일이다. 그럼에도 인간에 대하여 글을 쓰고, 인간에 대한 글을 읽고, 인간 속에서 인간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앞으로도 계속 나를 따라다닐 질문이 될 것이다.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는 소설가 얀 코스틴 바그너를 만났다. 외국의 작가를 만난 것은 처음이었다. 우리를 통해 한국의 이미지가 정해질 것이라고 생각하니 무척 긴장이 되었다. 혹시 성격이 너무 괴팍하면 어쩌지 하는 우려와는 다르게 조용하고 친근한 느낌이 드는 작가였다. 그의 작품을 읽고 인물의 형상화가 뛰어난 작가라는 생각을 했다. 인물에 대해 많은 시간을 투자해 창조해내는 작가가 아닐까 생각했는데, 인물보다는 인간의 심리에 대해 더 골몰하는 것 같았다. 나는 언제쯤 내 작품세계와 스타일의 밑그림이 그려질까 생각해 보게 만드는 만남이었다.
나는 생각하는 것을 좋아한다. 공상이라고 해도 좋고, 쓸모없는 짓이라고 해도 좋다. 뭔가를 생각하기 때문에 글을 쓸 수 있다고 믿는다. 요즘은 생각 없이 사는 것 같은 사람이 너무 많고, 생각할 수 없는 일들이 자꾸만 벌어지는 것 같다. 어쩌면 ‘요즘’에 한정된 말은 아닐지도 모른다. 예전에는 닫혀있던 문들이 요즘에는 열려있는 것뿐일지도 모른다. 그 열린 문 너머에는 내가 이해하기 힘든 일들이 너무도 많다. 내가 글로 쓸 수 없는 일들이 잔뜩 도사리고 있다. 그런 와중에 무슨 글을 쓰겠다고 우리는 이렇게 힘들어 하고 있는 걸까.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다. 생각해야 할 것들에 대해 생각하고, 생각할 수 없는 것들에 대해 고민하고, 글을 쓰고 싶다.
해외문학기행을 떠날 때는 낯선 사람들과의 여행 때문에 걱정이었는데, 돌아오고 보니 그건 아무것도 아니었다. 여행을 하다 보니, 걱정해야할 일은 따로 있었다. 나름대로 진지하게 문학과 대면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결국 내가 아는 만큼의 문학과 도토리 키재기를 하고 있었다. 시야를 넓혀준 대산대학문학상 동기들에게 감사하다. 좋은 사람들과 함께여서 난 앞으로가 더 기대되는 사람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앞으로도 대산대학문학상이 소중한 인연들을 많이 만들어줬으면 좋겠다. 한국에서 문학을 하겠다는 패기 넘치는 우리 또래들이 더 많은 경험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으면 좋겠다. 무엇보다 그 안에 내가 있을 수 있어, 무척 감사하다.
살아있다는 서러움에 대해 생각하는 작가가 되겠다,

| 번호 | 기 행 문 | 글쓴이 | 조회 |
|---|---|---|---|
| 5 | 이제 없는 당신들에게 | 박규민 | 6062 |
| 4 | 살아있다는 서러움 | 양그림 | 5657 |
| 3 | 15회 해외문학기행문 | 육호수 | 6176 |
| 2 | 멀리, 그리고 처음 떠나보는, | 정희정 | 6150 |
| 1 | 문학에 대해 하루종일 이야기하고 싶어 | 한설 | 644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