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산문화재단 해외문학기행문 / 정희정
하루 전,
까지도 걱정이 많았다. 가보지 못한 곳, 해보지 못한 경험은 생각보다 공포였다. 10시간이 넘는 비행거리를 내가, 그리고 비행기가 버틸 수 있을지… 나는 비행기 걱정까지 했다.
이번 여행 때문에 만든 빳빳한 여권을 잃어버리지 않으려 꼭 챙기고, 비행기를 타는 순간까지도, 사실 나는 조금 멍청한 상태였다.
비행기는 다행히 잘 떴다. 두 번의 기내식과 식사 전 후로 음료를 마시며, 프라하를 거쳐 폴란드 바르샤바에 도착했다. 적당한 사육이었다.
우리는 도착하자마자, 이미 어두워진 폴란드에서 첫 밤을 보낼 숙소로 이동했다. 긴 복도와 화장실이 너무 예쁜 곳이었다. 간단히 짐을 풀고 나서, 먼 곳에서 하는 첫 식사를 하기 위해 거리로 나왔다. 폴란드의 맛집을 찾아갔지만, 안타깝게도 자리가 없어서 다음을 기약하곤, 근처 이탈리아 피자집으로 들어갔다. 맥주가 큰 잔에 들어있었다. 숙소에 돌아와서, 간단히 맥주 한 캔을 더 하려 했지만, 긴 비행으로 피곤했던지 우리는 모두 잠이 들고 말았다.
그렇게 첫 날은 가벼운 맥주 한 잔으로 마무리되었다.
폴란드 바르샤바의 첫 아침엔,
눈이 왔다. 창밖으로 우산도 없이, 털모자를 쓰고 지나가는 사람들을 보며 사진을 몇 장 찍었다. 그리고 나는 하루 종일 미끄러지지 않으려고 열심히 걸어야 했다. 여행 오기 이틀 전, 빙판길에 넘어진 전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의 첫 일정은, 바르샤바 대학교 한국어과 학생들을 만나는 것이었다.
‘진 도르레, 지엥쿠엔’
어색하지만 간단히 폴란드어로 인사했고, 수줍은 시간들이 있었다. 서로 많은 질문이 없어서, 침묵이 꽤 자주 찾아왔지만, 이 먼 곳에서 한마디를 하고, 한마디를 듣는 것은 몇 배 더 어색하고, 몇 배 더 떨리는 일이었다. 누군가에게 나의 이야기를 소개하는 일은 언제나 어색한 것 같다.
우리는 쇼팽의 심장이 있다는 성당을 지나, 중앙광장까지 걸었다. 밤에는 쇼팽의 음악을 들었다. 연주자가 직접 피아노를 치는, 한 시간 정도의 공연이었다. 사실 쇼팽의 음악을 듣는 것도 좋았지만, 연주자의 손과 숨, 멈칫하고, 자세를 고치고, 눈을 감고, 웃고, 하는 모든 것이 조금 더 좋았다. 쇼팽 음악 뒤로 숨어있는 연주자를 (변태 같지만) 훔쳐보는 기분이었다.
유대인 박물관에선, 그들이 모이고 헤어지고 다시 모이는 시간을 따라 이동해 볼 수 있었다. 온통 영어밭인 곳에서 나는 승용이를 의지해 따라다녔다. 그 중, 멀리서 보았을 때는 시체 그림인 줄 알고 무서워하다가, 죽음 앞에선 누구나 평등하다는 뜻을 알고 나니 다르게 보였던 그림이 생각난다.
밖에서 간단한 눈싸움을 하고, 대리님을 속이기 위해 다 같이 숨었다가 금방 들통 난 시간을 보낸 뒤, 우리는 다음 장소인 크라쿠프로 열차를 타고 이동했다.
폴란드 크라쿠프에선 이른 새벽,
아우슈비츠를 가기 위해 일찍 일어났다. 잘라 놓은 머리카락을 보며, 남아있는 사진과 이름을 보며, 우리는 무기력함을 느껴야 했다. 그곳에선 끔찍하고 잔인한 모든 단어들을 눈으로 볼 수 있었다. 인간의 바닥은 내가 생각한 것 보다 훨씬 아래에 있었구나. 너무 악한 인물과 악한 상황들 따위는 없다는 생각을 하며, 인간은 무한한 잔인함이 있기에, 나는 조금 더 나쁜 이야기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성 마리아 성당과 바벨성을 보고 베를린으로 넘어가야 했지만, 기상악화로 인해 비행기가 뜨지 않았다. 우리는 폴란드에 하루 더 머물러야 했다. 어쩔 수 없이 근처 호텔에서 하루를 묵게 되었는데, 그곳은 심각하게 좋았다. 잠들기 아쉬워 앉아 있다가, 나는 생각나는 몇 줄을 적었다. 돌아가서 빈문서를 켤 수 있게 되었다.
독일 베를린의 밤은,
하루뿐이었다. 그러나 숙소가 좋은 위치에 있는 탓에, 우리는 짧은 시간 많은 것을 볼 수 있었다. ‘유대인’이라는 같은 이름으로 다른 곳에 존재하는 추도비도 보았고, 다음 날 이동하여 베를린 장벽도 보았다. 독일은 폴란드보다 속상하게 따뜻했다.
우리는 기차를 타고, 프랑크푸르트로 이동했다. 약 4시간 동안 창밖을 보는 일이 정말 즐거웠다. 좋은 풍경과 내가 좋아하는 노래, 그리고 호수오빠가 들려준 좋은 시. 이곳이 아니었다면, 어색했을지 모른다.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만난,
‘얀 코스틴 바그너’는 생각보다 친근했다. 그는 엄청나게 딸을 사랑하는 듯 보였다. 그가 쓴 네 개의 소설에서 보이는 인물의 분노, 욕망, 충동은 그에게 어울리지 않는 단어처럼 느껴졌다. 그러나 그가 이야기를 구성하는데 일 년이 걸린다는 이야기를 듣고, 얼마나 치밀한 힘으로 쓰는 작가인지, 알 수 있었다. 곧 출간된다는 그의 소설을 기대해본다.
우리는 마지막으로 괴테하우스에 갔다. 사실 괴테하우스보다 근처에서 야만스럽게 먹은 소세지와 고기가 생각난다. 우리는 마지막 만찬을 신나게 즐긴 뒤, 역에 맡겨 놓았던 짐을 찾아 공항으로 향했다. 모든 것이 끝나고, 처음으로 돌아가는 것 같았다. 또 걱정되기 시작했다. 장거리 비행에 대한 걱정은 아니었다.
하루 뒤,
까지도 여행의 일부였다. 돌아와서 쭉 잠들어버렸기 때문이다.
마지막 밤을 비행기에서 보냈기에, 비어있는 마지막 날의 메모를 보며, 나는 내가 그 날 무슨 생각으로 돌아왔는지 생각해본다. 아마도, 돌아오면 미뤘던 이사를 해야 할 테고, 미뤘던 고민을 다시 생각해야하겠지, 그리고 또 며칠은 조금 외로울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기억하고자 사온 것들을 꺼내며, 나는 어떤 기념품도 내가 그날 본 것과 느낀 것을 대변해줄 수 없다는 것이 슬펐다. 어떤 여행이든, 끝은 이렇게 다시 짐을 꺼내 있던 곳에 놓아야 한다는 것과, 달라진 것은 보이지 않는 나의 생각뿐이라는 것이 속상했다.
그러나 멀리, 처음 떠나본 나의 여행은, 거의 모든 것이 새로운 경험이었고 만난 모두가 거의 새로운 사람들이였다. 이번 여행을 통해, 나는 어느 순간순간 새로운 감정을 느꼈고, 그 속에서 나는 조금 덜 좋은 내 모습을 마주할 수 있게 되어, 반갑다.
먼저, 찬양하지 않을 수 없는 재단에 감사한 마음을 전하며,
돌아오는 비행기 자리를 바꿔준 호수오빠와, 걸음이 느린 내가 잘 오고 있나 가끔 뒤돌아봐주던 규민이, 매일 늘 옆에서 같이 잠든, 정든 그림이와 아주- 다양한 분야의 지식을 갖고 있어 배울 것 많은 승용이. 모두, 나와 함께 해주어서 고맙다.
또, 이것저것 많이 신경써주시고 챙겨주신 혜리쌤과 이리저리 뛰어다니시며, 이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해주신 대리님- 여행 내내 따라다니기만 하면 되어서, 너무 편했고 정말 너무 감사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제일 맛있었던 건, 추운데도 전날 꼭 사다가 챙겨주신 아침이었다.
여행이 끝나고 그리운 것이, 어느 도시가 아니라 참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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