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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에 대해 하루종일 이야기하고 싶어
작성자 한설
날짜 17.09.05 조회 6440

 문학에 대해 하루종일 이야기하고 싶어

 -해외문학기행을 갔다 와서

 

 

1. 해외문학기행이라니 

대산문예캠프를 꼭 가고야 말겠다고 다짐했던 때가 있었다. 글에 관해서라면 꽤나 외로운 학창시절을 보냈기 때문일까. 나는 문학에 대해 하루종일 이야기할 수 있는 기회가 오기를 언제나 꿈꿨는데 어째 대산문예캠프에 가기만 하면 그런 기회가 올 것만 같았다. 그래서 매년 혼신의 힘을 다해 글을 써서 대산청소년문학상에 투고하고는 했다.

 

당연히 떨어졌다. 세상에 글을 잘 쓰는 사람은 참으로 많았는데, 그건 고등학생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여서, 나는 한 번도 대산문예캠프를 가지 못했고, 아, 나는 창작에 재능이 없나 보다 좌절한 상태로 무심하게 평론이란 걸 툭툭 건드려보았는데, 문학에 대해 하루종일 이야기하고 싶다는 간절함이 빛을 발해서인지 이런저런 상도 받아보고, 결국 대산대학문학상을 평론 부문에서 수상했고, 덕분에 여러분은 지금 이 글을 읽고 계시다. 요약하자면 대산문화재단에서 주최한 대산청소년문학상에는 떨어져 대산문예캠프는 가지 못했지만, 대산문화재단에서 주최한 대산대학문학상은 받아 해외문학기행은 가게 된 셈인데, 이렇게 쓰고보니 대산이라는 단어가 내 삶에서 중요한 것만 같고(이렇게 수상소감에 썼어야 했는데!), 대산문예캠프를 해외 버전으로 가는 것만 같아 기분이 묘하다.

 

그래서 평소보다 들뜬 상태로 여행을 준비했던 것 같다. 얀 코스틴 바그너와의 인터뷰에서 무슨 말을 할지 며칠간 고민도 해보고, 바르샤바와 크라쿠프의 역사는 어떠한지 베를린과 프랑크푸르트에서는 뭐가 볼만한지 심심할 때마다 찾아봤던 것 같다. 그리고 2월이 시작되던 날, 우리는 체코를 경유하여 폴란드 바르샤바로 떠났다.

   

2. 바르샤바에는 쇼팽의 음악 

바르샤바에 저녁 늦게 도착한 우리는 다음 날에 바르샤바 대학교의 한국학과 학생들과 1시간 동안 간단히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리고 바르샤바 궁전과 성 요한 교회가 위치해 있는 구시가를 들러봤다. 그날 가장 기억나는 건 쇼팽 연주회이다. 솔직히 말해서 나는 음악에 무지한 편이다. 한때는 음악을 잘 모르는 것이 창피하게도 여겨져 억지로 음악을 들어보려고 한 적도 있는데, 내가 온몸으로 음악을 거부하고 있다는 사실만을 깨닫게 되었다. 지금까지도 내 핸드폰에는 음악이 하나도 저장되어 있지 않다. 트와이스를 제외하고는 대중가요에 대해서도 무덤덤하다. 인디 음악이나 팝 음악, 클래식 음악에 대해서는 말할 것도 없다.

 

가뜩이나 시차 때문에 피곤한 상태라 멀쩡한 정신으로 피아노 연주를 들을 수 있을지 걱정이 앞섰는데, 기우였다. 1시간 정도의 짧은 연주였지만 쇼팽에 홀려 정신없이 음악을 들었다. 그의 음악은 하나같이 엄청났다. 페달에 의해 늘어진 음들이 허공으로 사라지려고 하면 다른 음들이 재빠르게 밀려왔다. 모래 속으로 파도가 스며들기도 전에 또다른 파도가 몰려오듯이. 문득 성 십자가 교회에서 보았던 쇼팽의 심장이 떠올랐다. 우리가 처음으로 밟은 폴란드 땅인 바르샤바 쇼팽 국제공항도 떠올랐다. 그의 음악은 분명 누군가에게 위로가 되었을 것이다. 혹은 희망이 되었을 것이다. 2차세계대전을 다룬 영화인 <피아니스트>의 주인공 브와디스와프 슈필만이 그러했듯이.

 

 3. 크라쿠프에는 아우슈비츠 수용소 

다음날 저녁 우리는 크라쿠프로 가서 시내를 둘러보았다. 그리고 새벽엔 아우슈비츠 수용소로 갔다. 노동이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ARBEIT MACHT FEI)는 문장이 수용소의 입구를 지키고 있었다. 겨울이라서 그런 걸까. 지나치게 쌀쌀한 바람이 우리 주변으로 스쳐 지나갔다. 탈출에 실패한 수감자들은 이 날씨에 알몸으로 바깥에 서 있어야 했다. 전시관에 들어갔다. 나치의 만행이 샅샅이 밝혀져 있었다. 사람들은 비좁은 기차를 며칠간 타고 이곳으로 끌려왔다. 흡사 지옥도 같았다. 화장실도 없는. 빛이 들어오지도 않는. 머리카락 더미를 봤다. 한쪽 벽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방금 누가 땋아준 듯 곱게 장식되어 있는 머리카락. 나치는 시신에게서 돈이 될 만한 것은 모두 빼낸 다음에 소각했다고 한다. 그들은 입 속의 금니도 뺐고 약지의 결혼반지도 뺐다. 머리카락도 예외는 아니었다. 머리카락은 담요를 만들기에 좋은 섬유였다. 기차에서 내린 사람들을 기다리고 있던 것은 분류 작업이었다. 노동을 할 수 있을지 없을지. 전시관의 계단은 굴곡져 있었다. 수많은 수감자들이 밟고 지나간 흔적이었다. 노동을 할 수 있다고 판명된 사람들은 기초대사량에도 못 미치는 음식을 먹으며 혹독한 노동을 버텨야 했다. 전시관의 끝에는 책이 있었다. 두터운 책. 거기에는 수많은 이름들이 적혀져 있었다. 별다른 이유 없이 죽어야만 했던 사람들. 그들을 기억하려는 눈물겨움. 노동을 할 수 없다고 판명된 사람들은 가스실로 갔다. 당연히 그들은 자신이 가스실로 간다는 것을 모른 채 샤워를 위해 옷을 벗었다. 나치가 귀중품을 챙겨가기 편하게. 노동을 할 수 없는데도 운 좋게 가스실로 가지 않은 사람들도 있었다. 쌍둥이들. 그들은 생체실험에 동원되었다.

 

아도르노는 어디선가 아우슈비츠 이후 서정시를 쓰는 것은 야만이라고 적었다. 아우슈비츠를 들러본 사람이라면 누구든 그의 말에 공감할 것이다. 사람이 이렇게 죽었는데 누가 서정시를 쓸 수 있을까. 때문에 많은 평론가들은 아도르노의 문장을 인용하며 서정시의 죽음을, 더 나아가 문학의 죽음을 선언했다. 우리도 이렇게 쓸 수 있을 것이다. 세월호 이후 서정시를 쓰는 것은 야만이라고. 사람이 이렇게 죽었는데 누가 서정시를 쓸 수 있을까. 혹은 문학을 할 수 있을까.

 

그런데 아도르노는 나중에 자신의 문장이 오독되었다고 토로한 적 있다. 자신이 말하고 싶은 것은 서정시의 죽음이 아니며, 문학의 죽음은 더더욱 아니었다며 말이다. 화학자로 평생을 살아갈 것처럼 보였던 한 사람은 아우슈비츠에 끌려간 뒤 작가가 되었다. 그의 이름은 프리모 레비. 그는 인간이란 어떤 존재인지 증언할 수밖에 없었다. 아우슈비츠 이후 문학이란 어떤 것인지 펜을 들 수밖에 없었다. 아우슈비츠는 문학의 죽음을 암시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문학의 탄생을 암시한다. 세월호 역시 문학의 죽음을 암시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문학의 탄생을 암시한다. 아니, 그래야만 한다.

 

아우슈비츠를 나오면서 노동이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ARBEIT MACHT FEI)는 문장을 다시 보았다. B는 거꾸로 달려 있었다. 수용자들이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저항이었다고 한다. 고작 알파벳 하나 뒤집은 것이지만 그들은 그것으로 이 문장이 얼마나 허위로 찬 문장인지 밝히려 했다. 아무 것도 아니지만 모든 것을 상징할 수 있는, 거꾸로 달린 B. 어째 그것이 자꾸만 아우슈비츠 이후의 서정시 같아 보였고 세월호 이후의 서정시 같아 보였다.

  

4. 베를린에서도 프랑크푸르트에서도 이야기, 이야기, 이야기 

아우슈비츠의 기억은 한동안 우리 주변을 계속 맴돌았다. 그건 마치 안개 같았다. 안개가 모든 시계(視界)와 발화(發話)를 뒤덮었다. 우리는 어디를 가든 아우슈비츠를 보았고 아우슈비츠를 의식하며 말했다. 우리는 이야기하고 이야기했다. 아우슈비츠에 대하여. 아우슈비츠 이후에 대하여. 독일로 가는 비행기는 안개 때문에 뜨지 못했다. 이야기하고 이야기했다. 문학에 대하여. 문학 이외의 삶에 대하여.

 

안개가 사라지고 나서야 우리는 무사히 독일로 갈 수 있었다. 아우슈비츠의 기억 역시 조금은 옅어졌다. 그러나 안개에게도 그림자는 있는 법이어서 아우슈비츠에서 비롯된 이야기는 계속되었다. 베를린에서도 프랑크푸르트에서도 우리는 무언가를 이야기했다. 오래 전부터 서로 알고 지낸 사이인 것처럼.

 

우리의 이야기는 얀 코스틴 바그너를 만나는 것으로 마무리되었다. 그는 범죄소설의 형식으로 인간의 내면을 고백하는 작가로, 독일의 역사적 맥락과는 거리가 있는 소설을 써왔다. 우리는 그를 인터뷰하며 아우슈비츠 이후의 문학을, 더 나아가 세월호 이후의 문학을 어느 정도 가늠할 수 있었다.

 

인터뷰가 끝나고 우리는 여행의 마지막 밤을 이야기로 보냈다. 『파우스트』에 나오는 발푸르기스의 밤처럼 수많은 이야기가 등장하고 퇴장했다. 문득 떠오른 『파우스트』의 한 구절. 인간은 노력하는 한 방황하는 법이니라. 파우스트는 자신을 지탱해줄 무언가를 찾기 위해 평생을 노력했고, 방황했다. 우리도 아우슈비츠에서 우리를 지탱해줄 무언가를 찾기 위해 계속 이야기했다. 파우스트처럼 우리도 구원받을 수 있을까. 그레트헨은 없다지만 문학은 있으니까. 우리는 여러 이야기를 품은 채 한국으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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