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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문학기행 B그룹] 유럽문학기행문
작성자 남상욱
날짜 12.03.07 조회 7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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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지금부터 이야기해드릴 여행기(旅行記)에 앞서 잠시 안내의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이 여행기는 순전한 제 관점으로 얼룩진 이야기이니, 훗날 여행을 다녀오셔서 사기라고 말씀하시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전 그에 대한 아무런 책임도 없다는 것을 여기서 확실히 밝히는 바입니다. 그럼, 이야기를 시작하죠.
 
이번 여행에서 가장 특이한 점을 말하라면, 아마도 ‘사람’에 관한 걸 먼저 말씀드려야겠군요. 중학교 도덕 시간에 배운 바로는, 사람은 다른 동물과 달리, 사회적 동물이기에 다른 사람과 관계를 맺고 살아야만 한다고 하더군요. 거기, 당신도 이미 제 이야기를 듣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저와 관계하고 있는 게 아니겠습니까? 물론, 지금 얼굴을 붉히고 있는 당신이 생각하는 관계완 조금 다르지만 말입니다. 그런데 사람이 관계를 맺는 방식에도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시간이 꼭 필요하다는 것은 다들 잘 알고 계실 겁니다. 만나서 서로의 이름을 말하고, 이야기를-이 이야기는 대체로 거국적인 것에서부터 시작해서 내면적인 것으로 진행되는 경향이 있죠-하고, 그러다 밥이나 한 끼 먹고, 또 그러다가 술이나 한 잔 마시고, 한 두 번쯤은 싸우기도 하고, 그리고 화해를 한 후 더욱 친밀해지고…, 그렇게 흘러가는 거 아니겠습니까? 확실한 통계는 내지 못했지만 제 경우를 보면 자신에게 물어봤을 때 친한 친구라고 생각하기 위해서는 짧게는 6개월, 길게는 1여 년 정도의 시간이 걸리더군요. 그런데, 이번 여행에서는 15일 안에 이 모든 과정을 압축해내야만 했습니다. 아니, 사실 그래야만 하죠. 15일간 모든 시간 및 행동을 같이 해야 하는 사람들과 계속 ‘식사는 입에 맞으세요’, ‘담배 한 대 펴도 될까요’ 라는 식의 대화를 할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그러니 이 압축 과정은 어느 정도는, 생존과 관계된 일이었죠. 처음 보는 사람과 15일만에 친해지기. 이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단 한 번만 생각해 본다면 해답이 나올 거라고 믿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됐냐구요?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친해졌죠. 그것도 많이요. 과정은 천천히 말씀드리기로 하고 일단 여행의 이야기를 시작하도록 하죠.
 
하루를 경유한 일본에서의 과음으로 숙취에 괴로워하며 런던으로 향하는 비행기에 올라탔죠. 영국으로 향하는 비행기답게 기내식은 느끼했고, 눈과 귀로 접해지는 모든 것은 영어 또는 일본어였습니다. 옆자리에서 뭔가를 하고 있는 제 여행의 동반자들 외에는 저의 세계는 점점 멀어져만 갔습니다. 런던 히드로 공항에서 내려 숙소로 향하는 동안 저는 확실히 느꼈습니다. 25년 간 제가 살고 있었던 세계는 티끌 하나 남겨두지 않고 사라져 버린 거였죠. 그건 도대체 뭐라고 해야할까…, 아니, 아무튼 보지 못한 건물 건물에서 쏟아져 나오는, 전혀 다른 피부색과 생김을 한 사람들이, 이해할 수 없는 언어를 ‘당연히’ 내뱉는다는 것. 그건 무인도에 혼자 떨어진, 아니. 오히려 ‘X-file'에서처럼 외계인에게 끌려간 지구인의 느낌이더군요. 살짝 겁이 났습니다. 이 때 한 순간 옆에 있는, 저와 같은 세계의 사람들이 친근해져 보이더군요. 같은 피부색, 같은 머리색, 같은 눈동자, 그리고 가장 중요한 같은 세계를 공유하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그 사람들이 어찌나 좋아지던지. 이건 단순한 입에 발린 말은 아닙니다. 외국에 나가면 모두가 애국자가 된다는 말 아시죠? 짧은 여행 중에 든 생각이지만, 그건 아마도 강한 향수병이 변형된 결과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영국에서 맛없는 저녁과 함께 맛있는 맥주를 홀짝이며 하루를 정리한 후 우리는 다음 날을 기약하며 잠이 들었습니다. 이튿날, 시차 적응의 실패와 진정한 여행 첫 날의 흥분으로 인해 우리는 생각만 해도 믿을 수 없는 시간에 일어났습니다. 그때만 해도 ‘아침형 인간’도 꿈이 아니다라고 생각했는데……. 아무튼 아침 6시, 아직 해도 뜨지 않은 시간에 우리는 길을 나섰습니다. 영국은 들은 말 그대로 추웠고, 하늘은 꾸무정했습니다. 왜 하늘에서 비가 내리지 않는지 이상하게 생각될 정도로 말입니다. 그 꾸무정해빠진 하늘을 올려다보며 우리는 정신없이 돌아다니기 시작했습니다. 신기했습니다. 뭐가 신기했냐고요? 모든 게요! 외계인의 도시가 우리에게는 너무도 신기했습니다. 한 손에 지도와 무식하도록 두꺼운 가이드북을 움켜쥐고 탐험을 시작했습니다. 내가 앞을 맡겠다, 넌 왼쪽을 주시하고, 넌 오른쪽을 항시 지켜보도록! 여기서 우리가 없어져도 울어줄 사람은 아무도 없어. 언제나 긴장을 풀지 말도록, 그럼 돌격! 이런 식은 물론 아니었지만 말입니다, 흠흠. 출근 시간, 템스강 다리를 외계인들은 시계를 흘깃 보며 걸어가고 우리는 다리 난간에 붙어 강을 보았습니다. 뭔가 감동을 찾으려하는 몸부림이었지만, 추위만 한껏 느껴지는 게 영 아무 것도 없더군요. 아, 내가 이렇게 메마른 인간이었단 말인가? 그래, 다른 곳을 가보면 무언가 달라지겠지. 그럼, 그럼. 같은 소리하고 있었지만! 전 제 자신을 너무 믿었습니다. 유명하다고 말하는 곳 중 어디에서도 절 흔들어 주는 곳은 없었습니다. 런던의 역사를 대표하는 왕궁이었다 감옥으로 바뀌어버린 역사를 지니고 있는 런던 탑은 춥고 우울했고, 너무도 아름답다는 타워브리지는 왠지 촌스러웠습니다. 그리고 세계 최고의 박물관이라는 대영 박물관은 사람을 지치게 만들더군요.
하지만, 하지만 말입니다. 오히려 그런 유명한 곳보다 훨씬 사람 마음을 편하게 해주는 곳도 있었습니다. 골목골목 사이사이로 이건 보너스라는 듯이 보이는 낡은 가게들. 여기도 욕정이 있다는 듯이 묵었던 호텔 뒤에 당당히 늘어서 있던 환락가. 내셔널 갤러리에서 마음에 드는 그림을 잡고는 열심히 스케치하던 학생들. 그리고 그 옆에서 그 그림을 살짝 들여다보며 원작보다 더욱 마음에 들어했던 저. 그런 것들이 외계인과 우리는 좁혀주던 풍경들이었습니다. 그리고 가장 마음에 들었던 ‘오페라의 유령(The Phantom of the Opera)’ 공연. 그 공연을 보면서 살짝 눈물이 나더군요. 물론 영어였어요. 내용은 예전에 여기저기서 주워들었던 게 다였고. 그런데 어떻게 울 수 있었냐고 물으신다면. 그 사람들은 말로 대화하지 않았으니까, 라고 말해야 하겠군요. 노래를 부를 땐 음정으로, 리듬으로 의미를 전달했고 연기할 때에는 몸으로 의미를 주었으니까요. 전 그래서 연극을 좋아합니다. 몸으로 이야기할 수 있다는 힘이 연극에는 존재하니까요. 아무것도 하지 않고 뮤지컬만 보기 위해서라도 영국은 저에게 다시 갈 곳 중 하나가 되었죠.
SOAS(School of Oriental and African Studies)란 곳을 갔었습니다. 아시아와 아프리카에 대한 학문을 공부하는 곳이더군요. 우리나라의 학교보다 훨씬 아담한 크기의 그 대학에서 가장 놀란 건, 도서관의 질과 양이었습니다. 몇 층 크기의 도서관에 꽂혀있는 한국 도서. 참 반갑더군요. 그리고 놀라웠습니다. 이 많은 책들을 영국에서 어떻게 구해왔는지 궁금하더군요. 더군다나 북한 서적도 있었습니다. 그 책을 보며 어쩌면 여기 학생들은 우리가 아는 것보다 훨씬 다양하게 한국이란 나라를 이해하고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들이 알고 있는 한국이란 나라는 ‘South'도 ’North'도 아닌 단지 ‘Korea’일 뿐이니까요.
 
유로스타가 연착되는 바람에 예정보다 조금 늦게 프랑스에 들어갔는데, 유럽이란 나라가 다 똑같은 줄 알았던 저에게도, 영국과 프랑스는 조금 달라 보였습니다. 영국에 비해 프랑스는 조금 더 밝았고, 조금 더 화려했고, 많이 느긋해 보이더군요. 늦은 점심을 먹던 호텔 앞 레스토랑 웨이터 아저씨가 얼마나 부러웠는지 몰라요. 콧노래를 부르며 뛰어다니시며 주문을 받으시고, 잠시 주문이 없을 때면 주방에서 언제나 담배를 뻐끔거리시며 웃고 계시던 웨이터 아저씨, 디저트를 후식이라고 우리가 계속 이야기하니까 어느새 어색한 억양으로 ‘후식, 후식’이라고 말하던 그 웨이터 아저씨 때문에 제가 프랑스에 대한 인식이 약 10배 정도로 좋아졌다는 건 말할 나위가 없습니다. 그 아저씨 때문에 개선문이니, 노틀담 성당이니 하는 유적에 대한 감동이 퇴색되었다는 건 조금 비약된 결론이겠지만, 저에게는 몇 백 년 동안 세워져있는 유적보다는 한 명의 진정 즐거워 보이는 사람이 더욱 큰 감동으로 다가왔습니다. 그러기에 제가 지금까지 글을 끄적이는 지도 모르겠죠. 제 자신으로서 보여줄 수 있는 ‘인간’이란 건 너무도 작기에 나머지 것들을 글로 쓰고 있는 걸지도…….
아, 또 프랑스에서 좋았던 게 있긴 했죠. 몽생미셸의 풍경은 얼마나 아름답던지요. 자연은 머물러 있지 않기에 풍성했고, 그러면서도 늘 같았기에 아늑했습니다. 예전에 이런 글을 끄적인 적이 있었죠. ‘하늘을 찍은 사진은 배신하지 않는다’. 디지털 카메라란 걸 처음 구해서 사진을 찍고 다닐 때 했던 말입니다. 정말 그랬죠. 멍하니 아무 곳에나 앉아서 하늘만 보고 있어도 시간은 쉽게도 지나가더군요. 그리고 클로드 무샤르 선생님과의 만남. 많이도 떨렸고 기대했던 만남. 기대한만큼의 성과를 이루지는 못했습니다. 아니, 이건 사람의 문제가 아닌 언어의 문제였습니다. 그 순간만큼 언어가 통하지 않다는 게 슬펐던 적은 없었습니다. 통역의 힘이 아닌 개인 대 개인이 언어를, 세계를 공유한다는 건 얼마나 멋진 경험인지, 그 순간의 경험을 통해 반증적으로 알게 되었죠. 클로드 무샤르 선생님께서 그러셨죠. “자신은 나라를 중요하게 생각지 않는다. 단지 마음이 맞는 사람과 맞지 않는 사람이 있을 뿐이다.” 확실히 기억은 안나지만 이런 뜻의 말이었을 겁니다. 그렇습니다. 그 말씀에 저는 전적으로 공감하는 바입니다. 하지만, 중요한 건 언어가 통해야만이 그 마음을 100% 알 수 있으니. 외국어 공부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그렇게 절실했던 적은 또 없었던 것 같군요. “외국어란 건 단순히 입사나 진학을 위한 공부만은 아니다. 자신의 세계를 더욱 넓게 가질 수 있는 계기가 되는 것이다.” 라는 선배의 말이 절로 생각나더군요.
 
이탈리아, 그 중에서 시칠리아로 향했습니다. 밤새도록 달리는 간이 침대 열차를 타고 향하던 그 길은 너무도 길고 지루했습니다. 아, 혹시 저와 같이 여행간 친구들의 얘기가 왜 나오지 않냐고 물어보는 분이 있을지도 모르겠군요. 지금 얘기하려고 합니다. 지금까지 그 애들과의 사이는 그저 친한 정도? 였었죠. 처음에도 이야기했지만 생존을 위해 친해져야 하는 사이였기에 우리는 열심히 친하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러기에 싫은 것도 조금씩 넘겨야 하는 상황이 있었죠. 그런데 중요한 건 이 넘김이 계속 뒤에 쌓여갔다는 겁니다. 반나절 만나고 헤어지고 이틀 뒤에 다시 만나서 반나절 놀 그런 사이라면 그 간격 동안 그 넘김이 조금씩 풀어졌겠지만 24시간을 계속 붙어다녀야 하는 우리는 그럴 사이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여행의 피로와 간이 침대의 불편함이 합쳐져 우린 그 날 결국 싸웠습니다. 처음에 툭툭 던진 말들이 결국 싸움으로 번지게 되었죠. 그리고는 쓰러져 잤습니다. 그래서 그 다음 날 어떻게 되었냐구요? 정말 재미있게도 다음 날 우리는 그런 내색을 전혀 하지 않았습니다. 마치 어제 밤이 없던 것처럼 다시 지냈죠. 하지만 그제와는 조금 다른 느낌이 있었죠. 조금 어색하기도 하고, 조금 더 친해진 것 같기도 한 것 같은. 그리고는 리오토 교수님을 그 날 만났습니다.
좀 전에 계속 이야기했죠? 언어와 세계에 관해서. 리오토 교수님은 이탈리아에서 한국학을 하시는 몇 되지 않는 선생님 중 한 분이셨습니다. 그리고 너무도 유창한 한국말 실력을 자랑하셨습니다. 그래서 어땠냐구요? 너무도 즐거웠습니다. 그 분의 집에는 한국에 관한 책이 여느 한국인보다 훨씬 많이 꽂혀져 있었고, 한국을 보여주는 물건들이 집안 도처에 있었습니다. 사모님께선 한국분이셨고, 고등학교를 다니는 그 분의 아들도 한국말을 유창하게 하더군요. 그건 외국에서 한국인을 만나서 이야기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느낌이었습니다. 이탈리아의 평범한 이탈리아 가정 안에 한국이 자리잡고 있었습니다. 이탈리아 가정 요리가 그릇에 듬뿍 담겨 나왔고, 시칠리아 와인이 계속 떨어져 나갔습니다. 이탈리아 사람과 한국말로 농담을 하고 건배를 외치며 술을 마신다, 는 건 어찌나 즐거운 일인지. 비로소 외계인 속에서 세계가 통하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더욱 그런 생각이 들더군요. 외국어를 공부해야 한다는 생각이. 한국에 대한 이야기, 이탈리아에 대한 이야기, 문학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 보니 어느 새 늦은 밤이 되었더군요. 리오토 교수님에게 다시 한 번 인사를 드리고 그 자리를 나와 숙소로 갔습니다. 거기서 우리들은 약간은 알딸딸한 기분에 웃으며 어제의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죠. 그렇게 우리는 마치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화해했고, 더욱 친해졌습니다. 속성으로 친해지는 건 물론 부작용이 있게 마련이지만 우리는 다행히 그걸 잘 극복해나갔죠. 친구랑 장기간 여행을 가면 무조건 싸운다는 것, 그건 더욱 친해지기 위한 일종의 성장통 같은 거였습니다.
시칠리아의 아름다운 바다와 허술해서 더욱 정감있는 골목골목의 집들, 그리고 우리를 보고 소리높여 인사하던 생선가게 아저씨를 보며 즐거워하다 아쉬운 발걸음을 돌렸습니다. 호텔에 마중나오셔서 마지막 인사를 하시며 건네주신 김밥. 재료도 잘 갖춰져 있지 않았지만 그동안 한국 음식에 굶주려 있던 위와, 그 정성에 우리는 가는 기차에서 정말 맛있게 먹었답니다. 그리고 도착한 로마. 예전에 어느 교황님께선 3주일을 채우지 않고 떠나는 여행자를 만나면 ‘안녕히 가십시오’란 인사를, 3주일 이상을 있다 떠나는 여행자를 만나면 ‘다시 로마에서 만납시다’라는 인사를 했다고 합니다. 그정도로 로마는 있으면 있을수록 더욱 그 매력에 흠뻑 빠진다는 이야기겠죠. 하지만 이틀간의 짧은 일정과 여행에 지친 저희에게 로마는 너무 힘든 도시였습니다. 도시 전체가 하나의 거대한 유적이었고 그 웅장함에 놀랐지만 그 이상이 없었다는 것은 저에게나 로마에게나 조금 아쉬운 일이었습니다. 뭐, 물론 이건 모든 나라에 해당되는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뭐 어떻습니까. 그런 아쉬움이 있기 때문에 다시 짐을 꾸리게 되는 거니까요.
 
그렇게 저희는 로마에서 비행기를 타고 다시 돌아왔습니다. 뭐가 그리 시시하냐고요? 그럼요. 당연히 시시할 수밖엔 없죠. 제가 받은 감동을 윤색하면 그건 거짓말이 될 거니까요. 적어도 저한테는 소박함이 가장 아름다운 거였으니까요. 그래도 얻은 건 분명히 있었습니다. 친구를 얻었죠. 늘 까불지만 자기 생각이 확실해서 미워할 수 없는 동생 하연이와, 걸쭉한 대구 사투리와 농담으로 분위기를 띄워주는 인실이를 만났으니까요. 인생에 정말 친한 친구 두 명을 추가한다는 건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니까요. 그리고 좋은 어른을 만났죠. 우리 때문에 언제나 힘들었던 박현준 선생님. 고생 많이 하셨습니다.  그리고 외계와의 조우가 그렇게 어렵지 않다는 걸 깨달았고, 그 곳을 더욱 잘 알고 싶다는 욕심이 생겼으니까요. 언젠가 다시 배낭을 메고 떠난다면 그 때는 더욱 즐거울 수 있겠죠. 첫 경험이란 건 언제나 설레지만 아쉬운 반면, 두 번째 경험은 조금 더 깊은 맛을 즐길 수 있을 테니까요. 거기, 얼굴 붉히시는 분, 그런 경험이 아니라니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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