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에서 돌아오는 비행기를 타려고 할 때 공항 내에서 바로 지하철을 타고 탑승홈까지 이동했다. 한 정거장의 짧은 순간이었다. 문이 열렸고, 문은 닫혔고, 나는 잠깐 지쳐 있었다. 한 정거장, 보다 멀리 가기엔 내게 너무 부족한 시간이었다.
풍경도, 사람도, 떠날 때까지도 낯설었던 것들은 아무것도 나를 뒤돌아봐주지 않았다. 다만 나 혼자 기억할 뿐. 처음 경험하는 세계를 내 세계로 끌어안고 싶은 욕심은 비행기가 이륙할 때에도 부지런히 작아져 가는 로마의 모습을 쫓았지만 욕심도 깜빡 잠이 들고, 그걸로 마지막이었다.
굳이 나를 숨길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면서 긴장을 풀다가도, 어느 순간 유치한 과장으로 나를 포장하고 있었던 것 같다. 이전의 나를 모르는 사람들, 나 아닌 내가 되어도 전혀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을 처음 만난 사람들과의 여행에서 나는, 그 포장을 풀고 있었던가, 겹겹으로 꽁꽁 싸매고 있었던가. 여행 내내 하루 종일 긴장했던 것 같다.
때때로 그래왔듯 여행지에서도 술이 가끔씩 나를 용감하게 해줬다. 솔직해서 무서운 그 용감함으로 나는 내 나라 말로 무엇을 떠들다 왔는지 모르겠다. 하루하루 내일 정해진 일정이나 돌아갈 날짜를 무슨 어음 만기일처럼 챙기며 마음의 빚이 늘었다. 늘어만가는 보고 싶은 사람들에게 받은 마음의 빚(특히 너), 나를 잊고 제대로 여행 못한 마음의 빚, 아쉬움. 아직도 점점 마음이 무거워 지기만 한다.
지금부터 써내려가는 기행은 그저 나열일 뿐이다. 나의 긴장이 배재된 일정의 나열. 애써 기억하려면 기억나는 게 없다. 그래도 여행에서 돌아와 지칠때면 문득문득 단편으로 기억나는 낯선 풍경들이 아쉬운 건 좋은 여행이었기 때문이 아닐까. 지나간 사진으로 보는 풍경들이 이제서 낯익어지기도 하는 날인데.
유럽의 첫 여행지 영국. 피카디리 서커스 근처의 유스호스텔에 숙소를 잡았다. 짐을 풀고 그럭저럭 정리를 하고 나니 밤이 다 되었다. 잠깐 밖으로 나가서 그냥 근처를 배회했다. 낯선 건물들, 사람들, 차이나타운의 화려한 행사들로 거리가 북적댔다. 저녁을 먹고 내일을 위해 잤다. 사실 너무 피곤했다. 지루함도 일거리였나보다. 비행기 안은 너무 지루했다.
다음날 아침 일찍, 런던 브리지와 런던탑으로 갔다. 그리고 SOAS도. SOAS에서는 현지 한국인 교수와 함께 간단하게 저녁식사를 한 게 전부였다. 굳이 느낌을 말하자면 서울 한 중식당에서 선생님과 저녁식사를 한 것과 같은.
그 근처의 대영박물관도 갔었지만 별 다른 흥미가 없었다. 정말 정교하고 아름답거나 크고 웅장한 조형물들이 많았지만, 자꾸 눈에 익으니까 감화가 없어지는 것 같았다. 대신 박물관 앞 길 건너에 헌책방이 눈에 확 들어왔다. 나 뿐만 아니라 함께 여행간 인실언니나 상욱오빠도 거길 더 좋아했다. 어깨를 붙이고 자기를 닫고 있는 책은 감상하기 좋게 진열된 전시물들보다 은밀하고 흥미로웠다. 거기서 얼마 되지 않는 여비를 털어 화보집이나 사진집 따위를 샀다. 언어는 소통이 되지 않아도 생경한 사진들 속에서 어떤 이미지나 공감대가 떠오르는 것 같았다. 오래된 책냄새가 풍기는 미묘한 향기가 어떤 안도감을 주기도 했고. 물론 나는 전혀 외국어를 해석할 만한 능력은 안되지만. 그냥 다른 사람의 손때 묻은 책을 하나하나 꺼낼 때 마다 하나의 만남처럼 설레었다. 그렇게 큰 헌책방을 한국에서 보지 못했던 것 같다. 책이 많이 꽂혀있다는 이유만으로도 매력적이었다. 조용하고 한적한 분위기도. 프랑스에서도 비슷한 경험을 했었다. 소르본 대학 근처에 있던 셰익스피어 컴퍼니라는 작은 헌책방에서.
영국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건 뮤지컬을 본 일이었다. 오페라의 유령을 봤는데, 맨 앞줄에 앉은데다가 자막이 뜨는 전광판 보랴 정신이 없었지만 팬텀의 노래나 화려한 무대는 다시 한번 꾸고 싶은 꿈처럼 기억됬다.
또, 자유시간엔 같이 간 인실언니와 함께 사창가나 뒷골목 시장을 돌아다니기도 했다. 일부러 찾아 다닌게 아니라 헤매다 보니 찾아 진거다.
시장엔 고무줄로 묶음해서 파는 듀라셀 건전지나 우리나라 난전에서 흔한 나이론 가방들이 보였고, 사창가엔 그와 함께 그 존재는 아랑곳 않고 슈퍼나 미용실, 고급스런 찻집, 빵집, 성인용품점이 함께 장사를 하고 있었다. 그래도 위험지역이긴 위험지역이었나 보다. 녹색 옷을 입은 외국인 아줌마가 길거리에서 우릴 초등학생 취급하며 선도하려드는데, 어이없이 웃고 말았다.
이튿날, 종일 날씨가 우중충했던 영국에 정작 떠나는 날에 날씨가 좋아 서운했던 기억을 남기며 우리는 유로스타를 타고 프랑스로 떠났다.
프랑스에서도 역시 마찬가지로 행군을 하듯 하루 종일 걸어 다니며 구경을 했다. 샹제리제 거리, 루브르, 노틀담, 소르본 대학, 어느 것이나 낮보단 밤이 좋았던 것 같다. 야경을 잊을 수가 없다. 특히 파리지엔을 타고 본 에펠탑이나 파리시내의 야경은.
무엇보다도 파리의 인상을 좋게 한 건 클로드 무샤르 선생님과의 만남이었다.
자택에서 이루어진 간담회는 선생님의 배려 속에서 너무나도 편안하게 진행됬다. 손수 구워주신 파이와 커피, 포도주는 여행의 긴장을 풀어주었다. 여느 선생님과 학생의 자리가 아니라 정말 어린 우리들을 손님으로 예우해 주셨다. 또, 8대학에서 공부하고 있는 한국인 유학생 두 분의 통역으로 우리는 짧으나마 깊은 얘기를 나눴고, 마사츠쿠라는 일본인 유학생까지 함께해 더욱 활발한 간담회였다.
클로드 무샤르 선생님은 미국문학과 유럽문학에 대한 우리 견해와 미국의 블랙마운틴 컬리지를 빗대며 우리나라 문예창작의 현실도 궁금해 하셨다. 예전엔 문예창작과라는 것에 반감을 가지고 있었는데, 지금 거기서 배출된 작가들의 경험을 들어보고 생각이 바뀌었다고 하셨다. 또, 이청준 선생님과의 만남을 회상하며 한국 전쟁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던 것을 들려주셨다. 주현오빠와 얘기를 하시다가 한국 영화에 대한 프랑스의 관심에 대해서도 언급하시며 죽어도 좋아를 칭찬하셨다. 그리고 짓궂게도 나에게는 문학만으로 생계가 가능하냐는 질문을 하셔서 그 질문에 대한 내 대답엔 서로 웃을 수밖에 없었다.
언어가 직접적으로 전달되지 않는 다는 건 참 답답한 일이다. 통역해주신 분들도 녹초가 되도록 힘드셨지만 우린 못내 아쉬울 수밖에 없었다. 이야기하는 내내 화제가 되었던 번역문제도 그 때문에 더욱 활발하게 토론되었던 것 같다.
선생님이 하신 질문 중에 가장 당혹스러웠던 질문은 자신이 한국문학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느냐 세계문학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느냐라는 것이었다. 굳이 그런 걸 따지지 않고 그냥 문학을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고는 대답했지만 나에 대한 가능성이나 문학하는 사람으로서의 시각, 번역문제에 대해서 많이 생각하게 했다.
클로드 무샤르 선생님이 학술적인 감화를 주었다면 외국에서 만난 한국인보다 더 반가웠던 리오토 교수님은 정말 인간적인 정과 한국적인 정서를 보여주셨다.
리오토 교수님을 만난 건 프랑스를 떠나 이탈리아로 가서였다. 로마에서 바티칸을 잠깐 들렀고 다시 기차를 타고 시칠리아로 들어갔다. 시칠리아에서 리오토 교수님의 댁으로 초대를 받고 저녁을 함께했다. 교수님댁은 한국 민속 박물관이었다. 각종 탈이며, 오래된 한국학 서적들, 보통 한국가정에도 없는 오래된 전통가구들을 수집해놓은 방안은 한국적인 냄새가 나다못해 한국인 집 같았다. 교수님과의 저녁식사는 정말 오랜만에 배가 터지도록 기분 좋게 먹을 수 있었다. 배가 불러도 흔쾌히 또 먹고 싶은 맘이 든 건 오랜만에 언어가 소통이 되는 사람을 만나서였던 것 같다. 여자는 엉덩이가 펑퍼짐해야한다느니, 시인이 술도 못 마시면 안된다며 이태백 얘기를 꺼내시는 교수님의 모습이 정말 한국에 돌아온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이튿날엔 하루 종일 시칠리아를 관광했다. 도시전체가 유적인 시칠리아는 개발이 되지 않아 오히려 더 정겹고 건물이나 시장의 분위기도 활발했던 것 같다. 2층, 3층에 높게 매달아놓은 빨래줄에 하얀 이불이 널려있는 건물 사이의 하늘에선 금방 널어놓은 빨래냄새가 날 것 같았다.
시칠리아의 해변가에서 아직 추운날씨에도 나는 양말을 벗고 바지를 걷어올린채 파도를 밟고 놀았다. 바다색이 정말 푸른 에메랄드빛으로 나는 생전 처음 바다에 와본 사람처럼 좋아했다.
해가 지고 우리는 시칠리아에서의 마지막 밤을 보내고 다음날 리오토 교수님의 사모님이 싸주신 김밥을 들고 로마로 돌아왔다. 밍밍한 김치밖에 안 넣은 어설픈 김밥이었지만 여행기간동안 가장 맛있던 음식이었다.
로마에 도착해서 잠깐 2층 투어버스를 타고 시내를 돌고 공사가 한창인 공허한 콜로세움을 구경한 뒤 나도 모르게 여행을 끝내버렸다.
짐을 풀 듯이 짐보다 먼저 나를 풀어놓았어야 했다. 좀 더, 조금만, 더,
내 첫 여행은 짧고 힘들게 끝난 긴장된 짝사랑 같았다.
너무 많이 어색했고 그래서 너무 많이 웃었다. 어색함은 울 만한 이유는 되지 않아도 웃을 만한 이유는 되었나보다. 네겐 웃는게 너무 당연했다.
런던브리지 앞에서 사진을 찍고, 영국식 아침식사의 느끼함에 속이 메슥거리면서도 또 걷고, 풍경들을 바라보았다. 걷는 일과 바라보는 일. 낯선 건축물들에 평소보다 긴 시선으로 말을 걸어 봐도 소통될 수 없는 짝사랑.
걷는 일과 바라보는 일.
너무 큰 상대에 대한 긴장으로, 혼자 걷던 길과 혼자 바라보던 풍경들이 꿈같다.
그러나 꿈을 꾸고 난 뒤에 보고 싶어지는 사람이 있다면 그걸로 행복하다.
나는 돌아왔고, 주어진 상황에 충실해야 하고, 또 다른 상황을 만들어야한다. 아직 내가 연애할 수 있는 낯선 것들은 주변에도 얼마든지 많다. 지금 함께 걷는 길에서 함께 바라보고 싶다. 아직은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