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산문화

대산문화 표지

꽃대가리

오후 다섯 시의 로르카 도서관

문학작품은 사랑 아니면 전쟁에 대한 이야기

기획의 말 ①알지 못했던 세계에서 ②레트로토피아, 혹은 세트장으로서의 ‘과거’ ③어느 시대에 살고 싶은데요? ④시인 소호씨의 일일(一日)1)

실패한 사람

국가적 기억상실을 거부한다

튀는 퀴어, 나는 퀴어

“꽃은 지더라도 또 새로운 봄이 올 터이지”

그런 때가 있었다

나를 소설가로 만든 요소들

『칼라 명작 - 소년소녀 세계문학』을 읽는 매혹의 시간

김사량, 사선을 넘어 태항산에 들다

꽃 진 자리에 잎 피었다 너에게 쓰고 잎 진 자리에 새가 앉았다 너에게 쓴다

1969년 베트남 어느 산기슭에서

가장 독창적인 동아시아의 도원도

그들의 땅, 거기에 깃들기

백화점에서 쇠스랑 닮은 포크로 먹는 ‘난찌’

①20 02 02 14,소녀 가장 ②실물,형식

①우리는 어디까지 알까? ②새 식구

흰 눈은 어떻게 해서 생겨났을까

①『논어』 읽고 듣기 ②아바나 항구에서 ③양파를 까는 마음

①새롭고 대담한 질문을 향하여 ②바이러스 갱단의 유쾌한 언어 사전

‘알아서 기지 않는 문학’

‘지혜가 있는 폰’이 일으킨 시장혁명 그리고 새로운 문명

동화가 된 소설, 영화가 될 수 없는 소설

신화의 땅에서 일어난 민족 수난사

사랑을 담아줘

대하소설을 외국어로 번역한다는 것

전후 한국문학 대표작의 사변성과 사회성을 읽다

대산창작기금,대산청소년문학상 등

2020 대산창작기금 및 한국문학 번역·연구·출판지원 공모 등

단편소설

②새 식구

김덕희 소설가, 1979년생 소설집 『급소』 등

    단편소설②

새 식구


  현관 쪽에서 비밀번호 누르는 소리가 들렸다. 시계를 보니 지수가 퇴근해서 들어올 때였다. 부모님과 나는 소파에 등을 붙인 채 바닥에 앉아 테이블 위의 귤을 까먹으며 티브이를 보고 있었다. 04141020. 지수와 내 생일을 합친 여덟 자리 번호가 오늘도 한 번에 입력되지 못한다. 성격이 급해 자주 있는 일이다. 현관과 가장 가까운 엄마가 일어났다.
  “어머, 그게 뭐니?”
  나는 고개를 돌리지 않는다. 엄마가 지수를 보고 놀란 이유는 또 무슨 쓸데없는 쇼핑을 해서다. 대개는 그랬다. 버는 족족 써대는데 가족의 생활비를 혼자서 책임지다시피 하고 있기 때문에 지수를 나무랄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열의 한두 번은 엄마가 걸칠 만한 것을 사 오고 나머지는 죄다 제 물건들이다. 아버지나 내 것은 이제 기대도 안 한다. 들고 들어오는 것에 관심을 보이면 지는 거다. 현관을 향해 오른쪽 귓등이 빳빳하게 긴장하는 것을 느끼며 티브이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그러나 옆에서 아버지가 고개를 돌리는 기척이 느껴졌고 그 시선이 나를 지나쳐서 지수 쪽에 오래 고정되는 바람에 나도 더 이상은 참기 힘들었다.
  지수는 품에 안은 커다란 가방 같은 것 때문에 구두를 벗는 데 시간이 걸리고 있었다. 엄마는 두 손을 어정쩡하게 내민 채 서 있을 뿐 도움이 되지 않았다. 지수가 구두를 벗고 올라와 거실에 내려놓은 물건은 전체적으로 분홍색을 띠고 있었는데, 작은 텐트처럼 생겨서 개나 고양이를 넣고 다니는 캐리어 정도로 착각하기에 알맞았다.
  “새 식구야.”
  지수가 가방의 입구를 열어 보였다. 안에서는 하얀 덩어리 두 개가 꼬물거리고 있었다. 나는 내 눈과 귀를 의심하며 ‘캐리어’에 다가갔다. 먼저 들여다보고 있던 엄마가 거의 울먹이며 말했다.
  “강아지 아니니, 어쩜…….”
  엄마는 들뜬 얼굴을 하고서도 선뜻 다가가지 못했다. 아마도 강아지들이 놀랄까 싶어 조심하는 것 같았다. 나는 엄마가 그러거나 말거나 캐리어 입구에 얼굴을 바짝 들이댔다. 강아지들은 서로의 겨드랑이로 얼굴을 더 깊게 파묻기 위해 경쟁하고 있을 뿐 바르르 떨고 있는 것으로 보아 제 의지로 기어 나올 것 같지는 않았다. 나는 몸을 틀어 아버지를 쳐다봤다. 아버지는 어느새 다시 티브이만 묵묵히 보고 있었다. 보세요 아버지, 개예요. 내가 눈으로 그렇게 물으며 오래 쳐다보는데도 아버지는 한사코 시선을 티브이에서 떼지 않았고 늘어난 러닝셔츠 위로 불룩하게 튀어나온 배만 한 번 긁을 뿐이었다. 이어서 다리를 기지개 켜듯 뻗으며 파자마 밖으로 나온 가느다란 발목을 돌려 오도독 소리를 내기도 했다. 그런 행동에 특별한 의미가 있는 것 같지는 않았다. 29년이나 함께 산 사람의 속을, 방금 만난 강아지들 것보다 읽어내기 힘들었다.
  지수와 나는 초등학교에 다니던 내내 강아지를 갖고 싶다고 졸랐다. 그러나 아버지는 두 번 듣지도 않고 절대 안 된다고 못을 박았고 엄마도 아파트에서 무슨 동물을 키우느냐고 했다. 우리가 매일 목욕도 시키고 똥오줌도 치울 거라고 수백 번 다짐을 해도 소용없었다. 아버지는 눈만 무섭게 부라릴 뿐이었고 엄마는 우리 남매가 당신의 강아지라며 말을 돌렸다. 그렇게 털 날리는 것은 현관문을 넘을 수 없다는 오랜 금기를 지수가 아무런 예고도 없이 깨뜨린 셈이었다. 오랜만에 지수가 한 살이라도 누나인 게, 그리고 현재는 우리집 가장인 게 실감 났다.
  “포메라니안 쪽인데, 이름은 지돌이랑 지둥이로 했어. 별 뜻은 없어.”
지수가 강아지들을 꺼냈다. 나는 포메라니안이면 포메라니안이지 포메라니안 쪽은 뭔가 싶었다. 지수가 그것들을 양손으로 하나씩 들어 보였다. 왼쪽이 지돌이고 오른쪽이 지둥이라고 했다. 지수가 제 이름의 ‘지’를 돌림자처럼 쓴 데에서 강아지들에 대한 지분을 온전히 제게 두겠다는 의지가 엿보였다. 배 아래쪽에 둘 다 무언가의 흔적처럼 작은 것을 달고 있었다. 암만 봐도 색깔과 생김새가 같은 두 수컷을 무엇으로 구분해서 이름 지었는지 궁금했다. 구분은 둘째 치더라도 ‘지돌’과 ‘지둥’은 너무나 성의 없이 지은 느낌이 들었다. 돌림자를 맞게 쓰자면 차라리 돌수와 둥수라 해야 하지 않나도 싶었다. 그러나 지수, 현수, 돌수, 둥수 이렇게 나란히 놓자 좀 망측해졌다. 강아지들은 허공에서 잠시 버둥대더니 체념한 듯 사지를 늘어뜨리고 여린 꽃잎 같은 혓바닥을 내밀어 제 코를 핥았다.
  “우리 학원 수학쌤 있잖아?”
  지수가 강아지들을 품에 넣듯 안으며 말했다.
“왜 그 연애에 정신 팔려서 나한테 맨날 지 수업 시간 땜빵해달라고 징징거리는. 저번에도 다낭인가 어디 티켓이 싸게 나와서 남친이랑 급히 가게 됐다고 며칠이나 안 나왔잖아. 내가 땜빵 안 해줬음 학부모들 난리 나고 다시는 이 바닥에 발 못 붙이지. 아무튼, 그 쌤이 공짜로 분양해준 거야. 거긴 벌써 다 큰 애들이 세 마리나 있거든. 팔면 둘이 합쳐서 오십만 원은 받을 수 있는데도 가족 같아서 그러긴 싫었대나? 진짜 믿을 수 있는 사람한테 맡기고 싶어서 아무한테도 얘기 안 하다가 나한테 처음 얘기한 거래. 예방접종도 다 했대.”
  명색이 국어 선생이란 게 땜빵이니 남친이니 하며 지껄이는 걸 듣고 있자니 그 학원 학생들에게 내가 다 미안해졌다.
  수업 마치고 들어오면 곧 죽을 것처럼 피곤해하며 목소리를 내는 것조차 성가셔하던 애가 아무리 갑자기 강아지를 데려왔다고 해도 좀 지나치게 수다스러웠다. 그래서 엄마나 나 들으라는 소리가 아니라 아버지에게 하는 말인 줄 알 수 있었다. 아버지는 여전히 굳은 얼굴을 티브이로 향하고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티브이에서는 혼자 사는 연예인을 카메라가 관찰하듯 따라다니고 있었다. 엄마는 저 프로그램을 볼 때마다 연예인의 자취집을 가리키며, ‘저런 집은 보증금이 얼마나 하니? 작으니까 그렇게 비싸진 않겠지?’ 하고 지수에게 묻곤 했다.
  지수는 그럴 때마다 어마어마하게 비싸다고 딱 잘라 말했다.
나는 엄마가 이따금 독립하려는 기미를 보이는 게 모두 아버지를 향한 시위라고 생각했다. 아버지가 ‘정부 쪽 인사가 뒤를 봐주고 있다’는 지인의 회사에 퇴직금을 투자했을 때나, 그 일이 잘 안 풀리자 아파트를 담보로 대출까지 받으려 했을 때가 엄마로서는 독립할 적기였다. 엄마는 눈 딱 감고 재산을 분할 받아 나갔어야 했다. 비록 아파트는 지켰지만 당신의 삶은 계속해서 다른 세 식구에게 묶여 있었다. 아버지는 돈과 지인을 잃은 뒤부터 거실에서 생활했다.
  티브이를 보다가 소파에서 그대로 잠들어 버릇하더니 결국엔 안방으로 들어가는 게 아주 어색해져버렸다. 나는 엄마가 진짜 나가버릴까 봐 저러는 건가 싶기도 했다.
  “젖은 뗐니?”
  엄마가 지수의 품에 가만히 안겨 있는 둘 중에서 한쪽의 머리에 조심스럽게 손을 갖다 대며 말했다. 그게 지돌인지 지둥인지는 벌써 헷갈렸다. 엄마의 손길에 녀석은 작은 입을 짝 벌렸다 닫았다. 하품인지 반항인지 구분하기는 어려웠다. 하품이든 반항이든 사람 심장을 녹아내리게 할 만큼 귀여워서 나도 모르게 아랫입술이 내밀어지며 한숨이 나왔다.
  “이유식 시작했으니까 우유랑 혼식하면 된대.”
  “세상에…… 어미가 얼마나 찾을까…….”
  나는 엄마의 그 한마디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마치 우리가 어느 단란한 가족을 산산조각 내버린 것만 같아서였다.
  “찾기는, 젖 물리기 싫어서 요리조리 도망 다니느라 바쁘대. 이제는 남남이야, 남남.”
  “아무렴 그럴까, 아직 요렇게 작은데…….”
  “됐어. 잘 키우면 되지 뭐.”
  내 귀엔 엄마의 거듭되는 독백이 그냥 하는 소리로 들리지 않았다. 나를 잠시 수원 외가에 맡겼다던 얘기가 떠올라서였다. 아버지가 이런저런 직장을 전전하느라 아직 형편이 아주 안 좋을 때였다. 연년생 남매를 키우려니 너무 힘들어 나를 9개월 정도 외가에 보냈다는데 나로선 전혀 기억이 없다. 지수는 이미 말을 시작했을 때여서 떨어뜨려놓을 수가 없었고 나는 늦된 게 아닌가 걱정될 정도로 순해서 어렵잖게 보낼 수 있었다고 했다. 그렇게 순했으면 굳이 보낼 필요는 없지 않았느냐고 물은 적이 있었다. 엄마는 아무리 순해도 입히고 먹이고 씻기는 일은 똑같다고, 사내아이라 덩치가 크고 힘이 좋아서 더 힘들었다고 했다. 먹고 싸는 것도 지수의 두 배는 됐다고 했을 때 나는 엄마에게 좀 미안해졌다. 내가 자라는 동안 다방면에서 평균을 밑도는 모습을 보일 때마다 엄마는 어릴 때 떨어져 지내서라고 진단했고 아무리 형편이 어려웠다지만 식구끼리 어떻게든 뭉쳐 살았어야 했다고 자책했다.
  내가 모자란 모습을 보일 때마다 엄마가 차라리 나를 다그쳤다면 어땠을까 생각하곤 했다. 엄마가 자책하는 걸 보기 싫어 나름대로 한다고 해 보았지만 학업을 비롯한 삶 전반은 결코 만만하지 않았고 어느 순간부터는 엄마 말대로 내 탓이 아닌 셈 쳤다. 나와 달리 지수는 어떤 분야에서건 평균 이상의 자질을 보였다. 그래서 나는 동네에서든 학교에서든 아주 오랫동안 내 이름 현수가 아닌 지수 동생으로 불렸다. 니가 지수 동생이구나. 누나한테 한글 좀 가르쳐달라고 해. 니네 누나 반만 따라가봐라……. 그런 소리를 들을 때면 그저 멋쩍게 웃었다. 지수가 선생님들과 어른들 사이에서 유명한 게 자랑스럽기도 했다. 어느 날 운동장에서 말뚝박기를 하고 있다가 지수가 멀찍이서 제 친구들과 지나가는 걸 발견하고 손을 흔들며 부른 적이 있었다. 못 들을 만한 거리가 아닌데도 이쪽으로 고개를 돌리지 않던 그때, 나는 처음으로 ‘누나’가 아닌 ‘야, 이지수!’로 불러봤다. 지수의 친구들만 나를 쳐다봤을 뿐 정작 지수는 걸음을 서둘러 멀어지는 것을 본 그날, 나는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복잡한 감정을 느꼈다. 지금 생각하면 그 느낌은 식구들과 떨어져 지내던 시기에 대한 어렴풋한 기억이 아니었나 싶다. 그 뒤부터는 놀이에 집중이 되지 않았고 상대편 플레이에 자꾸 트집을 잡기 시작했다. 우리 편조차 나를 거들어주지 않아서 결국 놀이에서 쫓겨나고 말았다. 얼른 집에 가고 싶어 일부러 그랬던 것 같다. 집에 오자마자 엄마에게 지수를 고발했으나 지수는 정말 못 들었다고 잡아뗐다.
  나는 지금도 그날의 하늘이 어땠고 바람이 어땠고 운동장에서 일던 먼지가 어땠는지까지 모두 생생한데 지수는 전혀 기억나지 않는다고 했다.
  “야 이백수!”
  엄마가 다급히 손을 들어 지수의 팔뚝을 쳤다.
  “현수한테 그러지 말래두! 쟤가 왜 백수야. 친가 외가 탈탈 털어봐라, 석사 하나 나오나.”
  “아이고 어머니임. 요새 석사는 개도 안 물어간다고 몇 번이나 말해? 그리고, 지금 삼 개월이나 놀고 있는데 백수 맞지 뭘. 놔봐. 너, 애들 케어 잘해라. 똥오줌 치우고 목욕시키고 밥 주는 거 다 니 담당이야. 엄마가 하게 하지 말고, 알겠어? 그런 거 하기 싫으면 사료든 장난감이든 병원비든 하나라도 맡아봐. 퇴직금 얼마 받았댔냐? 이백? 삼백? 남아 있긴 하고?”
  강아지들이 지수의 서슬에 놀라 낑낑거렸다.
  “니가 데려왔으면 니가 해! 뭔데 이래라 저래라야?”
  나는 그대로 일어나 내 방으로 들어와 버렸다. 방문을 소리 나게 닫고 나서야 방에서 별로 할 일이 없다는 걸 깨닫고 후회했다. 침대에 눕자마자 강아지들이 보고 싶어졌다. 꽃잎 같은 혓바닥이 다시 보고 싶었고 하품인지 저항인지 모를 표정이 계속 되감겼다 재생되었다. 촉촉한 콧등을 한 번 더 눌러보고 싶었고 보드라운 털을 쓰다듬으며 그 아래서 체온과 함께 전해지는 여린 골격을 느끼고 싶었다. 나는 무언가가 보고 싶어진다는 느낌이 참 오랜만이구나, 생각했다. 누운 자세 그대로 스마트폰을 들고 포메라니안을 검색했다. 성견이 될 때까지 몇 번 정도 모습이 바뀌는 것 같았다. 특히 배내털이 빠질 때 얼굴에서 먼저 털갈이가 시작되면서 원숭이처럼 보이는 시기가 재밌었다. ‘포메라니안 원숭이’로 검색되는 사진마다 어지간히도 미운 꼴을 하고 있었는데, 아무것도 모르는 표정으로 렌즈를 보는 시선들이 웃겼다. 그 외에 장난감, 목욕, 산책, 습성 등을 검색하다 보니 한 시간이 금방 지나 있었다. 얼굴 위로 들고 있는 스마트폰이 바위처럼 무거워 두 팔을 떨어뜨리듯 내렸다. 눈이 뻐근했고 곧바로 잠들 수 있을 것도 같았다. 불을 꺼야 하는데 다시 일어나서 스위치까지 가는 게 몹시 귀찮았다. 개 두 마리를 관리하는 건 스위치를 끄는 일보다 힘들 텐데 걱정이 앞섰다.

  강아지들은 많이 먹었고 종일 잤고 자고 나면 또 먹었고 그러는 사이사이에 엄청나게 싸댔다. 우유에 사료를 불려서 줘야 하는 시기는 금방 지나갔다. 이제 두 놈이 사료 그릇에 주둥이를 박고 흡입하는 꼴이 일종의 시합 같았다. 한 톨이라도 먼저 다 먹은 놈이 옆의 것을 넘봤고 그럴 때면 서로의 대가리를 밀어내기 위해 안간힘을 쓰면서도 주둥이를 쉼 없이 놀렸다. 사료 한 포대는 처음만 한 달을 가더니 다음부터는 4주, 3주, 보름 만에 새로 들여야 했다. 배변 훈련에는 진척이 없었다. 가끔 화장실 안에 지정해놓은 자리에서 일을 볼 때가 있긴 했는데 아무리 봐도 너무 급했거나 단순한 우연 같았다. 보통은 보란 듯이 거실 가운데서 쌌다. 같은 자리가 비어 있으면 서로 자기 걸 먼저 싸 놓으려고 하는 게 녀석들의 습성인 것도 같았다. 나는 녀석들이 뒷다리 오금에 힘이 들어가는 것만 봐도 알아차리고 휴지를 찾았다. 보이는 대로 곧장 치웠는데도 집 안에 개똥 냄새가 은은히 돌았다. 안에만 있을 땐 잘 몰라도 잠시나마 밖에 나갔다 들어오면 알 수 있었다. 냄새는 나날이 짙어지고 복잡해졌고 개들은 바람을 집어넣고 있는 풍선처럼 하루가 다르게 자랐다.
  뒤치다꺼리를 하지 않는 다른 식구들 눈에는 그저 살아 있는 인형처럼 보이는 것 같았다. 하루 종일 온 집을 헤집으며 놀다가 밤이 되니 잠시 쉬고 있는 두 놈을 엄마와 지수가 하나씩 붙들어 안은 채 닳도록 쓰다듬고 있었다. 엄마는 이렇게 예쁜데 왜 〈동물농장〉같은 데서 안 오냐고 물었다. 예쁘긴, 말이라도 잘 들으면 모를까……. 지수는 잘 훈련시켜서 모델을 시키면 좋겠다고 했다.
나는 듣고 있기 힘들었고 기어이 속말을 내뱉고 말았다.
  “아직 똥오줌 자리도 못 찾는 줄 모르나? 저런 잡종이 모델은 무슨…….”
눈길을 티브이에 두고 웅얼거리기만 했는데 거실 분위기가 싸늘해졌다.
  “야! 애들 다 알아들어.”
  지수가 소리를 지르는 바람에 개들이 놀라 발딱 일어나서는 내게로 뛰어들었다. 엄마와 지수의 품이 허전해졌다. 나는 느닷없이 달려드는 녀석들 때문에 소파에 기대고 있던 등을 일으켜 세워야 했다. 둘은 돌진해오다 멈춰서는 잠시 내 주변을 탐색하더니 나란히 나를 마주하고 궁둥이를 내려놓았다 그러고는 나와 눈을 마주치려 애쓰며 잠시 얌전하게 굴었다. 마치 내 안색을 살피는 듯했다. 개들은 사람의 서열을 구분해 따른다고 하던데 가장 말단인 나를 챙기는 걸 보고 있으니 그동안 밥 주고 똥 치워준 게 영 헛일은 아니었구나 싶었다.
  “요놈들을 좀 연구해서 이참에 훈련사로 나서봐?”
  내가 둘의 정수리를 간질이며 말했다.
  “넌 세상이 만만해 보이냐? 훈련사는 아무나 해? 그리고 지돌이, 지둥이가 무슨 실험도구야?”
무시하려 했지만 지수가 ‘지돌이, 지둥이’하면서 말할 땐 나도 모르게 곁눈질을 하게 됐다. 지수가 턱짓을 두 번 했고 내 착각인지 몰라도 반대로 가리킨 것 같았다.
  “또 현수한테 그런다. 뭐라도 해볼 생각을 하는 게 어디니. 그래, 그거 하면 티브이에도 나오고 좋아 보이더라. 한번 해봐라 현수야.”
  엄마의 맹목적인 응원은 이제 나조차도 민망했다.
  “누가 티브이에 나오고 싶댔나…….”
혼잣말로 궁시렁댔을 뿐인데 지수가 또 걸고넘어졌다.
  “쟨 맨날 저렇게 삐딱하다니까. 엄마가 지금 너더러 연예인 하라 그래? 기죽지 말라고 해주는 얘기잖아! 너 저번에 면접 봤다던 데서 그러는 것도 다 니가 그래서 그런 거야. 좀 긍정적으로 해 긍정적으로.”
  관자놀이를 뾰족한 것으로 찌르는 듯 머리가 지끈거렸다. 면접을 보자고 한 회사는 제시된 연봉이 너무 낮아 혹시나 합격하더라도 출근을 망설일 것만 같던 곳이었다. 면접을 본 지 이틀 만에 장문의 문자메시지를 받았다.
  - 이현수 님의 지원서와 면접에서 보여주신 열정은 매우 인상적이었으나 저희가 계획한 채용 인원의 한계로 좋은 소식을 전해드리지 못해 대단히 안타깝습니다. 금번의 지원에 무한히 감사드리며 좋은 인연으로 다시 뵙길 기대하겠습니다.
나는 메시지를 오랫동안 들여다보다가 문안을 만든 사람을 상상했다. 채용 인원이 무한대였더라도 뽑지 않았을 거면서, 우리 사이에 다시 볼 좋은 인연이란 없을 걸 알면서 왜 이런 문자를 보낼까. 나는 메시지의 행간을 더듬으며 오래 궁금해했다. 메시지를 보낸 사람도 나를 몹시 궁금해하도록 답장을 쓰고 싶었는데 아무런 문장이 떠오르지 않았다. 자기소개서를 제출했고 대면도 했으니 나는 더 이상 궁금해질 수 없는 종류의 사람이 되어 있었다.
  - 네, 기다리던 소식은 아니지만 연락 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음이라도 기회가 있다면 꼭 다시 뵙겠습니다.
  예상했던 대로 더 이상의 메시지는 없었다. 한참 뒤에야 저쪽에서 발신한 번호는 모바일이 아니란 걸 알았다. 가닿지 못한 메시지가 어디쯤에서 떠돌며 나를 우습게 만들고 있을 것 같았다.
  “지돌이랑 지둥이 구분 못 하지?”
  나는 시선을 개들에게 향한 채 말해보았다.
  “뭐?”
  지수가 불의의 한 방에 허를 찔린 게 분명했다. 대답하는 목소리가 날카로웠다.
  “어디 자신 있으면 한번 말해봐. 헷갈린 거 벌써 오래된 거 같은데, 아니야?”
  “저게 미쳤나! 하루 종일 집에 처박혀서 나한테 시비 걸 거리만 생각하고 있는 거야? 겨우 생각해낸 게 그거고? 햇빛 좀 보고 살어. 누가 보면 환자라고 하겠다. 너는 그렇게 살면 니 인생한테 미안하지도 않니?”
  “그만 못 해? 니들은 어떻게 하루도 안 거르고 싸워? 엄마 속상한 건 생각 안 해?”
  엄마가 중재하지 않았더라도 나는 더 나갈 생각이 없었다. 지수가 강아지들을 구분 못 한다는 건 이로써 분명해졌고 지수가 열을 받았으므로 그걸로 충분했다.
  잠시 정적이 흐르는 동안 티브이 소리가 또렷하게 들렸다. 토크를 주고받던 중에 무슨 재밌는 얘기가 나왔는지 모든 출연진이 왁자하게 웃고 있었다. 어떤 사람은 아예 의자에서 내려와 바닥을 치며 배를 잡았는데 도대체 얼마나 재밌으면 저럴까 싶었다. 아버지를 슬쩍 봤지만 아무런 표정이 없었다. 식구들이 개를 데리고 떠드는 동안에도 소파 위에서 다리를 포개고 앉아 티브이만 보고 있었다. 아예 개들을 없는 셈 치는 것 같았다. 평소에도 녀석들이 싸질러놓은 것만 피해 다닐 뿐 곁을 준 적이 없었다. 물이라도 마시러 일어나면 득달같이 달려들어 바짓단을 물고 늘어지니 한 번쯤은 놀랄 만도 한데 그저 뭐에 걸린 걸 벗겨내듯이만 했다. 소파로 돌아와 걸터앉을 때 종종거리며 다가와서 발가락에 코를 갖다 대려고 하면 그럴 땐 슬그머니 양반다리를 했다. 가뜩이나 이 집에서 그리 넓지 않던 아버지의 영역은 그렇게 어느새 소파만큼 줄어들고 말았다. 둘 다 아직 어려서 고작 앞발만 소파에 걸쳐볼 뿐 뛰어오르지는 못하기에 망정이지 더 크면 아버지가 몸을 둘 공간은 소파의 등받이뿐이다. 아버지가 소파 등받이에 원숭이처럼 올라앉는 모습이 떠올라 코웃음이 났다.
  “엄마 쟤 혼자 웃는 것 봐. 진짜 미쳤나 봐. 야! 너 지금 정말로 내가 지돌이, 지둥이 구분 못 한다고 생각하는 거야?”
  지수가 바락 소리를 지르는 바람에 모든 식구가 움찔했다. 강아지들마저 지수와 나 사이에 껴들어서는 지수를 향해 깜찍하게 짖어댔다. 한주먹감도 안 되는 녀석들이 톡톡 뱉어내는 소리가 제법 사나웠다. 지수는 순식간에 얼굴이 빨개졌고 눈이 두 배나 커졌다.
  “얘들이 왜 이래? 뭘 잘못 먹었나? 야, 백수! 너 애들한테 무슨 짓을 한 거야?”
  지수가 악을 쓰는 동시에 개들이 더 크게 짖기 시작했다. 네 발을 바닥에 단단히 고정하고 자세를 낮춰 작은 탱크처럼 소리를 쏘아댔다. 둘이 박자를 맞춰 번갈아 짖으니 공백이 생기지 않았다. 기세로만 봐서는 당장이라도 지수에게 달려들 것 같았다. 이웃에서 항의하지 않을까 걱정될 정도였는데 언제 이만큼이나 자랐나, 기특해서 더 짖도록 내버려뒀다.
  개들이 지금 누굴 공격하려는 게 아니라 다툼을 말리고 있는 줄 알고 있는 사람은 나뿐인 것 같았다. 인터넷을 조금만 검색해봐도 나오는 얘긴데 어쩜 저렇게들 무지할까 싶었다. 지수는 슬금슬금 뒤로 물러나 앉았고 엄마가 개들한테 다가오다가 말고 쩔쩔매며 손을 휘저었다. 가만뒀으면 잠잠해질 것을 엄마가 큰 모션을 취하는 바람에 개들이 더욱 흥분해버렸다. 나는 두 놈의 배 아래로 손을 넣어 가뿐히 들어 올려서는 내 방으로 향했다. 진정시키는 데는 격리가 즉효였다. 두 녀석을 내 방에 데려와 내려놓고 문을 닫자 흥분의 잔변감인 듯 잠시 가르랑대다가 곧 멈췄다. 그런 뒤 지돌이 깡총거리며 내 방 이곳저곳을 탐색하기 시작했고 지둥이 나를 돌아보며 머뭇거리다 지돌의 뒤를 따랐다. 복제품 같은 둘은 그렇게 성격으로 구분해야 했다.
  밖에서 지수가 엄마에게 하소연하는 소리가 들렸다.
  어떻게 주인한테 저래? 아무래도 잡종이라 그런가? 혹시 광견병? 미쳐버리면 주인도 몰라보고 그러는 거야? 나는 문을 벌컥 열고 밖을 향해 외쳤다.
  “야, 애들 다 알아들어!”

 화면 상단 오른쪽에는 양반다리를 하고 앉아 있는 아버지의 하반신이 걸려 있었다. 전체적으로 소파가 화면 중심에 자리 잡고 있었는데 지돌이 벌써 수차례나 소파로 뛰어오르다 실패하길 반복하는 중이었다. 이어폰을 통해 티브이 소리와 함께 지돌을 응원하는 내 목소리가 무척 호들갑스럽게 섞여 들렸다.
 지둥은 소파 아래에서 궁둥이를 바닥에 붙이고 지돌이 설쳐대는 걸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지돌이 뛰어올라 소파에 앞발을 걸쳤다가 떨어질 때마다 지둥의 고개가 좌우로 한 번씩 돌아갔다. 지돌은 지치지 않았다. 힘을 모았다가 일어섰는데 그만 방향과 타이밍을 놓치고 두 발만 들어 올려보곤 만세를 부르며 뒤로 자빠지기도 했다.
  마침내 힘과 타이밍이 딱 들어맞아서 앞발을 소파 깊숙이 걸쳤다. 화면 뒤에서 응원하고 있는 내 목소리 톤이 한껏 올라갔다. 아직 끌어올리지 못한 뒷발 두 개가 허공에서 무한 계단을 탔다. 짤막한 꼬리도 동원해 저럴 땐 지느러미처럼 쓰기도 하는 건가 싶게 힘차고 빠르게 좌우로 휘저어댔다. 나는 이제 방해가 될까 싶어 소리도 내지 못하고 끅끅대며 스마트폰을 가까이 가져가는 중이었다. 성공이 코앞이었다. 소파 아래 앉아 멀뚱히 지켜보던 지둥이 뭔가 직감한 듯 몸을 일으키곤 지돌을 향해 왈, 하고 한 번 짖었다. 그와 동시에 지돌은 바닥으로 나동그라졌고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몸을 일으켜서는 혀를 길게 빼물고 숨을 몰아쉬었다. 나는 길게 탄식했지만 곧바로 잘했어, 하고 말해주었다. 지돌이 제자리를 두 바퀴 돌아보곤 나를 향해 고개를 들었다. 봤지? 거의 될 뻔했지? 화면의 눈망울에서 전해지는 그 기운이 더없이 천진해 입꼬리가 절로 올라갔다.
  지하철 차창이 환해졌다. 한강을 건너느라 지상으로 올라왔고 청명한 풍경이 한산한 객실로 밀고 들어왔다. 무직자만이 누릴 수 있는 평일 늦은 오후의 호사였다. 나도 거의 될 뻔하고 있는 중일까? 면접을 본 출판사는 예상보다 규모가 있어 보였고 사옥 내부 곳곳에 클로즈업된 작가의 얼굴이나 책 표지 디자인들로 세련되게 꾸며놓아서 영화사나 연예 기획사가 아닌가 싶었다. 면접관은 내 경력을 가리키며 조교 2년에 연구원 2년의 이력과 석사 학위가 과연 도서 편집 실무에 얼마나 도움이 될지 확신이 서지 않는다고 했다. 학술 자료집이나 문집에 참여하면서 깐깐한 필진들과 원만히 소통했고 학회장님 이하 박사 선배들과 여러 프로젝트를 수행하며 조직적인 협업도 몸에 익혀놓았다고 우겼다. 석사 학위에 대해서는 그 자체로는 큰 의미를 두지 않지만 그것을 성취한 나의 노력과 끈기에는 큰 박수를 보내고 있는 중이라고, 연습한 대로 읊어주었다. 면접을 몇 번 봤더니 시나리오를 준비해야 할 것 같았다. 거지같은 글을 주면서 마감 시일을 우습게 아는 발표자들을 볼 때마다 모두 믹서기에 갈아버리고 싶은 살의에 시달렸다거나 학회장과 박사 놈들 때문에 종노릇에는 이골이 났다는 사실을 각색한 것이었다. 면접관은 조금 더 강도를 높여 압박해왔다. 대학에서만 너무 오래 계셨는데, 현장은 그곳과 좀 다르지 않을까요? 네. 그렇게 보실 수도 있지만 긴 시간 흔들림 없는 모습으로 신임을 받았다고 봐주실 수도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면접관은 잠시 고개를 끄덕이더니 연구원 때의 급여를 물었다. 연봉 협상에서 불리할까 싶었지만 나중에 문제 될 수 있으니 사실대로 대답할 수밖에 없었는데 면접관은 깜짝 놀라며 다시 물었다. 그걸로 생활이 되던가요? 하급 연구원 나부랭이가 노동부에 고발할 수는 없지 않았겠냐는 말은 눌러둔 채 바로 그 지점이 책임감 강한 나의 성격을 증언해주는 거라고 웅변했다.
  객실이 다시 어두워졌다. 방금까지 눈앞에 환하게 펼쳐져 있던 한강과 하늘의 풍경이 맞은편 차창에서 잔상으로 잠시 머물다 사라졌다. 지금까지 세 정거장을 왔고 앞으로 네 정거장만 더 가면 집이니까 면접을 본 곳들 중에서는 집과 가장 가까워 약간 욕심이 났다.
  집에 돌아오자마자 지돌과 지둥이 달려 나와 반겨주었다. 개 두 마리가 좋다고 난리를 피우는 중에도 어딘가 적막한 느낌이 들어 집을 둘러보게 됐다. 이상한 기운의 원인은 티브이였다. 현관에 들어서면 맨 먼저 켜져 있는 티브이가 눈에 들어와야 했는데 웬일로 까맣게 죽어 있는 화면이 보여 잠깐 남의 집 같은 착각마저 들었다. 아버지가 소파에 없는 풍경은 너무나 오랜만이었다. 엄마는 이 시각이면 늘 구청 문화센터에서 싼값에 뭔가를 배우고 있는 중이니 안 보이는 게 당연했는데 아버지는 갈 만한 곳이 짐작되지 않았다.
  거실 한가운데서 멍하니 서 있는데 왈, 하고 짖는 소리에 정신이 돌아왔다. 그리고 깜짝 놀랐다. 지돌이 소파 위에서 아까부터 봐주길 기다리다가 참지 못하고 날 부른 것이었다. 지돌은 내가 자길 본 걸 확인한 뒤 가볍게 소파 아래로 뛰어내렸다가 다시 도약했다. 비록 성견처럼 깔끔하게 뛰어오르지는 못했지만 일단 앞발을 잘 걸친 다음 궁둥이를 통째로 몇 번 뒤뚱거려서 뒷발도 걸쳐지게 하는 요령을 터득해낸 것 같았다. 소파에 올라선 뒤에는 늠름하게 허리를 펴고 섰다. 아직 아래에서 쳐다보고만 있는 지둥을 근엄한 눈빛으로 내려다보기도 했다.
  “야, 이 짜아식, 드디어 해냈구나!”
  내가 지돌의 볼을 만지며 칭찬해주자 어느새 지둥이 다가와 내 다리를 앞발로 더듬으며 낑낑댔다. 나는 지둥의 턱밑을 긁어주면서 말했다.
  “너도 그러고만 있지 말고 니 형이 하는 거 잘 보고 따라 해봐.”
  그렇게 말하는데 느닷없이 무언가가 목울대를 가격한 듯했고 콧날이 매워졌다. 머릿속에서 무수히 많은 장면이 빠르게 지나갔다. 그리고 그 끝은 친구들과 말뚝박기를 하고 있던 학교 운동장이었다. 목이 터져라 불러도 돌아보지 않던 지수의 뒷모습이 바로 어제 일인 듯 또렷하게 떠올랐다.
  “……아니야. 못 올라가도 돼. 그럼, 되고말고.”
  지돌이 소파에서 뛰어내려 현관으로 달려갔다. 곧이어 비밀번호를 누르는 소리가 들렸고 엄마가 들어왔다. 장을 봐온 듯 양손 가득 비닐봉지가 들려 있었다. 나는 얼른 가서 그것들을 받아 주방으로 옮겨뒀다. 지돌과 지둥이 저희들 먹이를 사 온 줄 알고 쪼르르 따라붙었다. 식탁 위에 올려놓고 하나씩 들여다보는데 재료들을 보니 익숙한 식탁 풍경이 그려졌다.
  “삼계탕 하게? 전화해서 나 데려가지 그랬어? 노느니…….”
  나는 엄마가 듣기 싫어하는 소린 줄 뒤늦게 떠올리고 입을 다물었다. 엄마는 신발을 벗고 올라서서는 허리를 두 손으로 짚은 채 한번 쭉 펴보고 양쪽 어깨도 풀었다.
  “지수한테 문자나 좀 해봐. 수요일이니까 일찍 들어오는 날 맞지? 어디 새지 말고 바로 오라 그래. 지수도 그렇고 너도 그렇고 요새 얼굴이 반쪽이야.”
  “지수가 어디 닭을 먹나? 국물이나 깨작거리는 거 잘 알면서. 나도 닭볶음탕이면 몰라도 백숙은 그저 그런데…… 아빠는 좋아하시겠네.”
  식탁에 삼계탕이 올라오면 아버지는 잔뼈에까지 살점 하나 남기는 일이 없고 연골마저도 깨끗하게 발라먹는 걸 식구들은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다. 아버지가 좋아하겠다는 말에 집에서 티브이만 껴안고 사는 사람 어쩌고 하면서 잔뜩 흉을 볼 줄 알았는데 엄마는 못 들은 척하며 바로 주방으로 들어가 일을 시작했다.
  “뭐 도울 건 없고?”
  “걸리적거리니까 들어올 생각 말어. 그나저나 왜 안 보인대?”
  “뭐가?”
  “뭐긴 뭐야, 티브이 귀신 말이지.”
  “글쎄? 나도 오늘 면접 하나 있어서 나갔다 왔는데 안 계시더라고.”
  면접 얘기는 꺼내는 게 아니었는데 아차 싶었다. 엄마가 닭을 씻다 말고 소리쳤다.
  “면접이 있었어? 왜 말 안 했어! 엄마가 넥타이라도 하나 사줬을 건데!”
  주방에서 수돗물 소리에 섞여 엄마의 목소리가 건너왔다. 내가 소파에 앉는 바람에 거실과 주방을 구분해주는 벽 구조물에 가려 엄마의 표정을 볼 수 없는 게 다행스러웠다. 나는 애써 아무렇지 않은 척하며 톤을 약간 올려 대답했다.
  “됐어. 오라니까 그냥 예의상 가 본 거야. 회사 분위기가 칙칙한 게 비전도 안 보이고 별로더라고. 집에서도 너무 멀고.”
  “또 그런다. 너 행여 지수한테는 그런 말 말어.”
  엄마가 말한 순간 현관문이 열리는 소리가 나서 지수인 줄 알고 깜짝 놀랐다. 지돌과 지둥이 먼저 달려 나가 아버지를 맞았다. 아버지는 현관문을 활짝 열고선 커다란 박스를 힘겹게 들이고 있었다.
  “마이펫 6각 울타리(블랙)”
  박스 겉면에 찍혀 있는 그림과 글자가 아니었다면 무게와 크기만으로는 내용물을 짐작하기 어려웠을 것 같았다. 받아 들어서 거실 가운데 놓고 이게 왜 필요했을까 생각하고 있으니 아버지가 어느새 커터칼을 찾아와 박스를 뜯기 시작했다.
  “이게 다 뭐예요?”
  엄마가 젖은 손을 앞치마에 닦으며 주방에서 나왔다. 엄마의 말투는 놀랐다기보다 필요 없는 걸 사왔다는 책망에 가까웠다.
  “이걸 마트에 가서 직접 사오셨어요? 온라인으로 사면 배송 다 해주는데……”
  나는 아버지가 온라인 쇼핑몰을 이용할 수 있는지 어떤지도 모르면서 훈수를 뒀다.
  아버지는 엄마나 내게 대꾸하지 않고 박스를 다 뜯어서 울타리를 꺼냈다. 나는 아버지가 던져놓은 박스 안에서 설명서를 찾아 들었다. 설명서는 ‘블랙 크롬 코팅’으로 고급스러운 분위기를 연출하며 집안 어느 곳에서도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는 ‘디자인’을 자랑하고 있었다. 또한 잠금장치가 있는 출입구를 이용해 반려동물이 자유롭게 드나들게 할 수 있는 것도 ‘특장점’이라 내세웠다. 그 외에도 설치와 이동, 철거가 쉽다는 것까지는 받아들일 수 있었는데 ‘내부가 들여다보이므로 반려동물의 상태를 쉽게 관찰할 수 있다’는 것까지 자랑삼아 적어놓은 카피를 읽었을 때는 차라리 문장을 넣지 말고 여백으로 두는 게 어땠을까 싶었다. 그새 아버지는 울타리를 모두 조립해서 거실 구석에 자리를 잡아보고 있었다. 박스 겉면에는 육각형으로 설치된 그림이 있었는데 아버지는 각 면이 잇닿은 모서리들의 각도를 조정해서 직사각형으로 만들어 놓았다. 그러고 나니 거실의 벽과 모서리에 울타리가 빈틈없이 맞아떨어졌다.
  울타리는 애들이 두 배로 자라더라도 넘을 수 없을 만큼 높았다. 아무래도 지돌이 소파 위로 올라갈 수 있게 된 걸 아버지가 맨 처음 본 것 같았다. 두 녀석은 자기들을 구속할 물건인 줄 아는 것처럼 멀찌감치 떨어져 앉아서 아버지와 울타리를 쳐다보기만 했다. 지둥은 몰라도 활달한 지돌에게는 울타리가 감옥이나 마찬가지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엄마도 같은 생각인 것 같았다. 주방에서 저녁을 준비하면서도 거실의 상황을 이따금 확인하다가 울타리가 완성되자 다시 나와서는 한마디 했다.
  “저렇게 좁은 데서 둘이 어떻게 있으라고……”
  엄마가 혀를 차는데도 아버지는 울타리를 둘러보며 이리저리 각을 맞춰보기만 할 뿐이었다.
  “정말 그걸 꼭 써야겠어요? 집도 비좁은데?”
  엄마가 미간을 찌푸리고 대답을 기다리다가 입을 딱 벌렸다. 아버지가 한쪽 다리를 들어 올리더니 울타리 안쪽으로 넘어가고 있었다. 아버지는 남은 다리도 완전히 넘긴 다음 팔을 벌리고 가로와 세로의 길이를 쟀다. 그런 뒤 바닥에 앉았다가 옆으로 누워봤다. 누워서 다리를 얌전히 오므리고 팔베개를 하고 있으니 울타리가 꽉 찼다. 아버지가 티브이 리모컨을 미리 챙긴 줄은 아무도 모르고 있었다. 모로 누운 채 한 손으로 머리를 받치고 다른 한 손으로 티브이를 켰다. 티브이가 켜진 뒤에야 이제까지 집이 너무 조용했다는 걸 알게 됐다.
  엄마와 내가 놀라서 말 한마디 못 하고 서 있는데 현관문 비밀번호 누르는 소리가 들렸다. 우리는 울타리를 향하고 있던 몸을 돌려 문을 마주하고 열리길 기다렸다. 041410…… 삐삐삐. 0, 4, 1, 4, 1…… 엄마가 참지 못하고 문을 열었다. 지수의 얼굴이 보이자마자 우리는 동시에 지수를 불렀다.
  “지수야……”
  지수가 뚱한 얼굴로 대답했다.
  “뭐야? 나 기다렸어? 어? 저건 웬 개야?”
  엄마는 지수의 턱짓이 가리키는 거실 안쪽으로 무심코 고개를 돌렸다가 비명을 지르고 휘청거렸다. 나는 붙들 것을 찾아 허공에 팔을 휘젓는 엄마를 부축해 소파 쪽으로 이끌었다. 그러는 동안에도 나 역시 울타리 안쪽에서 눈을 뗄 수 없었다. 그곳에는 털이 푸석푸석하고 야윈 포메라니안 블랙탄 한 마리가 힘없이 엎드려 있었다.

 내게서 설명을 들은 지수는 믿으려 들지 않았다. 엄마가 증언을 해주어도 뭘 잘못 먹었느냐고 물을 뿐이었다. 엄마가 소파에 기대어 머리를 짚었다. 지수와 나도 엄마 양쪽에 앉아 한참이나 울타리를 지켜보며 아무 말도 못 하고 있었다. 개가 깔개로 삼고 있는 건 아버지가 입었던 셔츠와 바지 그리고 속옷과 양말이었다. 서툴고 불편한 솜씨로 뭉쳐두어서 이따금 초록색 우체통처럼 생긴 의류수거함 입구에 말끔히 쑤셔 넣지 않아 함부로 널려 있던 옷가지들이 떠올랐다.
  “저러려고 저 양반이 그랬구나. 그랬어.”
  한참 만에 엄마가 한숨을 섞어 얘길 꺼냈는데 지수나 나나 무슨 소린지 알아듣지 못해 서로 눈짓만 주고받았다.
  “뭘 그랬다는 거야?”
  지수가 물어서야 엄마는 다시 말을 시작했다.
  “며칠 전에 니 아빠가 이 아파트 명의를 엄마 앞으로 돌려놓겠다잖니. 빈말로라도 어디 그런 소릴 할 사람이어야 말이지. 신경도 안 쓰고 있었는데 뭔 서류들을 가져오더니 인감도장을 찍으래. 명의는 누가 거저 바꿔준대니? 수수료며 뭐며 그게 다 돈인데, 이제 와서 무슨 바람이 불어 그러느냐고 물었지. 나 모르게 또 사고를 친 건 아닌가 싶어 손이 다 떨리더라. 그런 거 절대 아니고 주위에서 하도 집적거려서라는데, 듣고 보니 누가 부추겨서 무슨 일 저지르기 전에 내 앞으로 해놓으면 잘 가지고 있다가 니들 결혼은 시키겠다 싶어 찍었지. 그러고는 어제 낮에 등기부등본을 떼 와서 보여주더라고. 틀림없더라. 내 평생 내 이름으로 된 집을 처음 가져본 거야. 꿈인가 생신가 싶더라니까.”
  엄마는 우리도 한번 보라며 지수를 시켜 안방 화장대 서랍장에서 서류봉투를 가져오게 했다. 등본은 엄마가 말한 대로였다. 엄마가 뜬금없이 삼계탕을 준비하던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엄마가 불을 좀 더 일찍 올렸더라면, 그래서 닭과 삼이 어우러져 끓는 냄새가 집안에 피어올랐더라면 아버지는 망설였을까? 엄마가 끓여준 삼계탕 한 그릇을 마지막으로 먹어보고 싶지 않았을까? 생각하니 가슴이 답답해졌다.
  등본을 보고 있던 지수가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들었다. 저건 감정이 흔들린다는 건데 설마 아파트를 욕심내고 있었던 건가 싶어 나는 화낼 준비를 했다.
  “사실은 아빠가 엊그제 차 키를 줬어. 낡아서 연비도 낮고 디자인도 별로지만 그런대로 탈 만할 거라면서…… 아니, 내가 한번 쓰겠다고 해도 절대 안 내줬잖아. 위험하다고 말이야. 근데 왜 갑자기 키를 주는 거냐고 그랬더니, 저번에 지돌이 지둥이 캐리어 들고 들어오는데 안쓰럽더래. 팔도 가는 게 그 크고 무거운 걸 들고 학원에서 집까지 어떻게 왔을까 싶었대.”
  엄마는 그랬구나, 그랬구나, 하면서 한참이나 고개를 끄덕였다. 생각해보니 아파트는 몰라도 차는 좀 아까웠다. 지수가 넋을 놓고 방바닥을 보고 있다가 나를 쳐다봤다.
  “넌 뭐 없었어?”
  “어, 현금 조금…… 양복이랑 구두 같은 거 사라고. 출근할 때까지 기다리지 말고 새 거 사 입고 면접 보러 다니라고. 근데 아직 안 샀어. 귀찮아서.”
  “그걸 받았어? 너 아빠 돈 없어서 내가 조금씩 용돈 드렸던 거 몰라? 그만큼 살 돈이면 대체 얼마나 안 쓰고 모은 거야? 아빠 정말 왜 그래?”
  지수는 나를 몰아세우다 말고 결국 울타리를 향해 울먹이며 소리를 질렀다. 조금 전까지 엄마와 나를 미친 사람 보듯 하더니 이제는 제일 심각해져 있었다. 엄마와 지수는 사람이 어떻게 개가 될 수 있는지를 따져볼 생각은 못하고 그간의 사정에 근거해 마치 일이 이렇게 될 수밖에 없었다고 받아들이는 것 같았다. 두 사람이 힘들어하느라 집안 공기가 견딜 수 없이 무거워지고 있었다.
  “아빠가 뭐 돌아가시기라도 했어? 그냥, 잠깐, 저러고 계신 것뿐이야. 곧 다시 돌아올 거라고. 울타리가 문제네. 밖으로 나오면 다 원래대로 될 거야.”
  나는 울타리로 다가가 손을 넣었다. 아버지는 내가 다가서는 걸 보고 몸을 일으켜서는 고개를 돌렸다. 그러면서도 곁눈질로 계속해서 나를 살폈는데 내가 손을 뻗자 이빨을 드러냈다. 나는 흠칫 놀라 동작을 멈추고 눈치를 살폈다. 아버지는 나와 시선을 맞추지 않으려 하면서도 입술을 말아 올리고 송곳니를 보이며 계속해서 불편한 기색을 비쳤다. 가만히 두라는 신호인 줄 빤히 알면서도 물러나지지가 않았다. 모든 게 거짓말 같은 이 상황을 어떻게든 바로잡고 싶은 생각뿐이었다. 나는 아버지의 몸통 아래로 손을 집어넣었고 아버지는 으르렁거리면서도 순순히 들어 올려질 것 같았는데 그건 내 착각이었다. 바닥에서 네 발이 떨어지려는 순간 아버지가 갑자기 고개를 틀어 내 손을 물려고 했다. 반사적으로 손을 뺀 덕에 살갗이 조금 긁혔을 뿐 피는 보지 않았다. 그러나 송곳니의 느낌이 손등에 생생하게 남아 있어서 온몸의 땀구멍에서 식은땀이 배어 나왔다.
  “야! 그러다 다치면 어쩌려고 그래! 하지 마!”
  지수가 날 걱정해서 한 소리는 아니었다.
  나는 긁힌 자국에 소독약이나마 발라둬야 할 것 같아서 욕실로 들어갔고, 어쩐지 배가 좀 고파졌다. 상황이 상황이라 잠시 잊고 있었는데 조금 전에 한 번 크게 긴장하면서 내 몸이 밥때가 되었다는 걸 기억해낸 것 같았다. 엄마가 주방에 잔뜩 부려놓은 삼계탕 재료들은 나로선 어떻게 할 수 없었다. 말을 꺼낼 수 있는 분위기는 아니었고 두 사람 중 누구라도 허기를 느껴야 할 것 같아 기다리기로 했다. 그러다 생각난 게 있어 사료 포대에서 계량 용기에 사료를 떠왔다. 나는 지돌과 지둥의 밥그릇에 일부러 소리 나게 사료를 부었다. 사료가 그릇 밖으로 튀어나가지 않을 선에서 높이를 최대한 이용했다. 사료 알갱이가 스테인리스 식기를 두드리는 소리가 정적을 흔들어주었다. 내 시도는 효과가 있어 엄마가 천천히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저 양반 시장하시겠다. 니들은 손 깨끗이 씻고 기다려. 닭 익으면 살 발라야 해. 오늘 아무래도 닭죽이 낫겠구나.”
  지수는 옷을 갈아입으러 제 방으로 들어갔고 나는 울타리 안에서 티브이 리모컨을 조심스럽게 꺼내 채널을 돌렸다. 아버지가 즐겨 보는 채널이 뭔지 생각나지 않았다. 뉴스, 바둑, 다큐멘터리의 장면들이 머릿속에서 엉켰다. 아버지는 내 쪽으로 등을 보이고 엎드려서 티브이를 향하고 있었다. 나는 소파에 앉아 채널을 돌리면서 아버지를 한 번씩 봤다. 돌리다가 아버지의 귀가 쫑긋거리는 데가 있어서 멈췄다. 화면에서는 말썽 많은 개가 훈련사에게 조련을 받고 있었다. 두어 번의 시도에 개가 얌전해지자 어린 부부인 주인들은 기적을 본 듯한 표정이 되었다. 훈련사는 개의 마음을 자의적으로만 해석해온 부부를 나무라기 시작했다. 훈련사의 지적은 날카로웠다. 개를 사랑하고 아껴준다고 생각했겠지만 그동안 아이에게는 지옥이었을 거라는 멘트에 부부의 얼굴이 이번에는 물증을 마주한 범죄자처럼 일그러졌다. 나는 지돌과 지둥의 밥그릇에 물을 따라주지 않았다는 걸 떠올려내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버지가 울타리에 들어간 뒤로 우리는 가족회의를 자주 가졌다. 주로 아버지의 행방에 대해 어떻게 둘러대야 할지를 의논했다. 당장 다음 달 말일이 할아버지 기일이라 작은집 식구들을 맞이해야 했다. 제삿날까지 아버지가 돌아오지 않는다면 작은집 식구들은 아버지가 왜 안 보이는지 물을 테고 우리는 대비할 필요가 있었다. 아파서 제사를 건너뛰겠다고 하면 문병을 올 게 빤하니 좋은 생각이 아니었다. 출장은 퇴직했으므로 소용없고 혼자 여행 갔다고 하려니 낯선 곳을 싫어하는 아버지를 잘 아는 작은아버지에게 먹혀들 리가 없었다.
  “교회 다니자. 진짜로 말이야. 그러고 나서 제사며 차례며 다 안 지내는 거야. 어차피 엄마 제사 지내는 거 싫잖아. 어쩌면 작은엄마도 반길걸?”
  지수의 아이디어는 들어줄 만했다. 사촌동생들은 제사를 물려받아야 하는 나를 언제부턴가 측은하게 보았다. 한 번쯤은 엄마가 작은아버지와 부딪혀야 하겠지만 그럴 만한 가치가 있는 일이었다. 엄마는 비장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다음으로는 아버지의 의식주에 대해 의견을 나눴다. 식구들은 울타리에 들어간 아버지에게 전에 없이 지극정성이었는데, 엄마는 간을 하지 않은 생고기들을 대느라 바빴고 지수는 사람이 먹어도 된다는 고급 사료와 옷을 사 왔다. 가족들 앞에서 발가벗고 있는 셈인데 창피할 거라면서 되도록 아버지의 취향에 맞게 무채색으로 골랐다고 했다. 내가 보기엔 흰 바탕에 검은 줄무늬들이 죄수복처럼 보였다. 지수는 아버지라고 생각하니 맨몸에 손을 댈 수가 없다고 해서 옷을 입히는 건 내 몫이었다. 아버지는 옷이 마음에 들었는지 전처럼 나를 경계하지 않았다. 옷을 입히느라 만져지는 몸은 겉보기보다 훨씬 야위어 있었다. 옷만큼 아버지가 용변을 보도록 돕는 일도 중요한 문제였다. 노견이라 기저귀를 채우는 게 좋을 것 같았다. 기저귀를 수시로 갈아주는 일은 내가 맡기로 하고 아버지가 기저귀 없이 일을 볼 때는 누구든지 가급적 거실에서 벗어나 있기로 했다. 다행히 아버지는 적게 먹고 가끔씩 아주 소량만 내놨다. 뜻밖에도 지돌과 지둥이 용변을 가리기 시작했다. 한번은 지돌이 거실 한가운데서 뒷다리에 힘을 주기에 얼른 휴지를 찾아들었는데 아버지가 울타리 안에서 지돌을 노려보며 낮고 무겁게 목울대를 긁어 소리를 냈다. 그러자 지돌이 절름거리며 화장실로 향해서는 거기에 늘 깔려 있는 신문지 위에 일을 봤다. 지돌이 그렇게 하자 지둥도 곧잘 따라했다.
  엄마와 지수는 진짜로 일요일마다 교회에 나가기 시작했다. 다녀와서는 목사의 설교가 좋더라고 운을 떼서는 한참이나 교회 이야기를 나눴다. 주로 교회에서 만난 사람들에 대한 ‘품평’이었다. 그 짧은 시간에 어떻게 그 많은 사람의 집안 사정까지 다 꿰뚫었는지 이해할 길이 없었다. 나는 어쩐지 집을 지키고 있어야 할 것 같아 한 번도 따라가지 않았다. 지수는 자기의 솔루션이 마음에 들지 않는 거냐고 물었다. “너 솔직히 니가 이씨 집안 장손이라서 교회 다니기가 켕기는 거지?”
  “그런 거 아니야.”
  “아니긴 뭐가 아니야. 딱 얼굴에 써있구만.”
  “놔둬라 때가 되면 다 주님이 역사하실 거다.”

  나는 내가 바로 들은 게 맞나 싶었다. 지수도 놀라긴 마찬가지인 것 같았다. “와, 엄마 그런 말 언제 배웠어? 완전 전도사님 다 되셨어.”
  나는 아버지를 봤다. 아버지는 졸린 눈을 들어 한 번씩 쳐다보다가 턱을 앞발 위에 얹고 다시 잠들길 반복했다.
  “엄마, 오랜만에 영화나 볼까? 요새 엄마 이런저런 일로 스트레스 많았잖아. 엄마 좋아하는 마동석 나오는 거 개봉했거든. 영화 보고 백화점 가서 스카프도 하나 사자. 아까 교회에서 보니까 아줌마들은 다 하고 있더라.”
  “그랬니? 몰랐구나. 근데 현수는?”
  나는 생각도 없다가 엄마가 물으니 괜히 비참해졌다. 지수가 나를 흘깃 쳐다봤다.
  “갈래?”
  정 가고 싶다면 데려는 가주마 하는 투였다.
  “됐어. 귀찮아.”
  “그래, 여자들끼리의 대사가 있는 거란다. 넌 담에 이 누나가 데려가 줄게. 바로 나갈까, 엄마? 준비 따로 할 거 없지 않아? 날씨가 좋아서 그런가, 나 지금 좀 집이 답답하네?”
  엄마는 지수를 따라나서면서 몇 번씩이나 냉장고에 반찬 있으니까 꺼내 밥을 챙겨먹으라고 당부했다.
  “아버지 식사도 챙겨드리고.”
  “쟤가 애야? 엄마는 현수 장가들고 나면 대체 무슨 낙으로 사실까?”
  여자를 데려오기라도 하면 어쩌고 하는 소리가 닫히는 현관문에 막혀 멀어졌다. 엄마와 지수가 나가고 나자 집이 한없이 조용해졌다. 지돌이 집안을 돌아다니고 있고 지둥이 그 뒤를 졸졸 따라다녔다. 나는 스마트폰을 들고 SNS 따위를 살펴보다가 내가 며칠 전부터 어딘가에서 연락을 기다리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떨어뜨렸으면 문자라도 줄 텐데 아직인가? 면접을 본 지 꽤 지났는데 연락이 없으므로 희망을 갖긴 어려웠다. 그래도 대개는 결과를 알려주었으므로 아주 낙심하긴 이를지도 몰랐다. 나는 출판사의 홈페이지에 들어가 공지사항 게시판을 열었다. 그리고 어렵지 않게 “신규채용 결과발표”라는 제목을 찾았다. 등록일을 보니 내가 면접을 본 그날이었다. 

  - 지원해주신 모든 분께 감사드리며 다음 채용공고에서 뵙겠습니다. 등록 시간을 보니 내가 면접장을 떠난 지 두 시간도 채 되지 않은 것 같았다. 회사가 나를 속인 건 아닌데 속은 것 같았고 채용된 자리가 내 것인 적이 없었는데 빼앗긴 기분이 들었다.
  나는 울타리 안에 엎드려 졸고 있는 아버지를 오랫동안 봤다. 아버지는 노쇠했으나 평온해 보였다. 나는 아버지가 깨지 않도록 조용히 다가갔다. 그러나 아버지는 내 기척을 감지하고 슬쩍 한쪽 눈을 떴다. 그래도 엎드린 채 자세를 바꾸지는 않았다. 나는 용기를 내서 한쪽 발을 울타리 안으로 넘겨봤다. 아버지는 어렵게 몸을 일으키더니 구석으로 가서 울타리에 몸을 기댔다. 나는 아버지를 자극하지 않기 위해 등을 보인 채 나머지 발도 울타리 안으로 가져왔다. 두 팔을 뻗어 길이와 폭을 재봤다. 길이는 150센티미터 남짓 돼 보였고 폭은 그 절반이니 7, 80쯤 되는 듯했다. 어느새 지돌과 지둥이 울타리에 다가와 앞발을 걸쳤다.
  울타리가 높아 넘어오진 못했다. 울타리는 철옹성이었다. 울타리가 마법에 걸린 것처럼 점점 높아졌다. 울타리에 앞발을 걸치고 있던 지돌과 지둥은 그야말로 바람을 집어넣고 있는 풍선처럼 커지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두 녀석의 눈높이가 나와 같아졌는데 둘러보니 집안 전체가 같은 비율로 커진 것 같았다.
  “현수 요새 많이 힘들지? 거기 누워라. 아빠랑 티브이나 보자.”
  나는 소리 나는 쪽으로 고개를 돌렸는데, 거기에는 아버지가 예전 모습 그대로, 그러나 죄수복 같은 옷을 입고 기저귀를 찬 채, 한 손으로 머리를 받치고 비스듬히 누워서 고급 사료를 팝콘처럼 하나씩 집어먹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