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산문화

대산문화 표지

꽃대가리

오후 다섯 시의 로르카 도서관

문학작품은 사랑 아니면 전쟁에 대한 이야기

기획의 말 ①알지 못했던 세계에서 ②레트로토피아, 혹은 세트장으로서의 ‘과거’ ③어느 시대에 살고 싶은데요? ④시인 소호씨의 일일(一日)1)

실패한 사람

국가적 기억상실을 거부한다

튀는 퀴어, 나는 퀴어

“꽃은 지더라도 또 새로운 봄이 올 터이지”

그런 때가 있었다

나를 소설가로 만든 요소들

『칼라 명작 - 소년소녀 세계문학』을 읽는 매혹의 시간

김사량, 사선을 넘어 태항산에 들다

꽃 진 자리에 잎 피었다 너에게 쓰고 잎 진 자리에 새가 앉았다 너에게 쓴다

1969년 베트남 어느 산기슭에서

가장 독창적인 동아시아의 도원도

그들의 땅, 거기에 깃들기

백화점에서 쇠스랑 닮은 포크로 먹는 ‘난찌’

①20 02 02 14,소녀 가장 ②실물,형식

①우리는 어디까지 알까? ②새 식구

흰 눈은 어떻게 해서 생겨났을까

①『논어』 읽고 듣기 ②아바나 항구에서 ③양파를 까는 마음

①새롭고 대담한 질문을 향하여 ②바이러스 갱단의 유쾌한 언어 사전

‘알아서 기지 않는 문학’

‘지혜가 있는 폰’이 일으킨 시장혁명 그리고 새로운 문명

동화가 된 소설, 영화가 될 수 없는 소설

신화의 땅에서 일어난 민족 수난사

사랑을 담아줘

대하소설을 외국어로 번역한다는 것

전후 한국문학 대표작의 사변성과 사회성을 읽다

대산창작기금,대산청소년문학상 등

2020 대산창작기금 및 한국문학 번역·연구·출판지원 공모 등

단편소설

②새 식구

김덕희 소설가, 1979년생 소설집 『급소』 등

    단편소설②

새 식구


  현관 쪽에서 비밀번호 누르는 소리가 들렸다. 시계를 보니 지수가 퇴근해서 들어올 때였다. 부모님과 나는 소파에 등을 붙인 채 바닥에 앉아 테이블 위의 귤을 까먹으며 티브이를 보고 있었다. 04141020. 지수와 내 생일을 합친 여덟 자리 번호가 오늘도 한 번에 입력되지 못한다. 성격이 급해 자주 있는 일이다. 현관과 가장 가까운 엄마가 일어났다.
  “어머, 그게 뭐니?”
  나는 고개를 돌리지 않는다. 엄마가 지수를 보고 놀란 이유는 또 무슨 쓸데없는 쇼핑을 해서다. 대개는 그랬다. 버는 족족 써대는데 가족의 생활비를 혼자서 책임지다시피 하고 있기 때문에 지수를 나무랄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열의 한두 번은 엄마가 걸칠 만한 것을 사 오고 나머지는 죄다 제 물건들이다. 아버지나 내 것은 이제 기대도 안 한다. 들고 들어오는 것에 관심을 보이면 지는 거다. 현관을 향해 오른쪽 귓등이 빳빳하게 긴장하는 것을 느끼며 티브이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그러나 옆에서 아버지가 고개를 돌리는 기척이 느껴졌고 그 시선이 나를 지나쳐서 지수 쪽에 오래 고정되는 바람에 나도 더 이상은 참기 힘들었다.
  지수는 품에 안은 커다란 가방 같은 것 때문에 구두를 벗는 데 시간이 걸리고 있었다. 엄마는 두 손을 어정쩡하게 내민 채 서 있을 뿐 도움이 되지 않았다. 지수가 구두를 벗고 올라와 거실에 내려놓은 물건은 전체적으로 분홍색을 띠고 있었는데, 작은 텐트처럼 생겨서 개나 고양이를 넣고 다니는 캐리어 정도로 착각하기에 알맞았다.
  “새 식구야.”
  지수가 가방의 입구를 열어 보였다. 안에서는 하얀 덩어리 두 개가 꼬물거리고 있었다. 나는 내 눈과 귀를 의심하며 ‘캐리어’에 다가갔다. 먼저 들여다보고 있던 엄마가 거의 울먹이며 말했다.
  “강아지 아니니, 어쩜…….”
  엄마는 들뜬 얼굴을 하고서도 선뜻 다가가지 못했다. 아마도 강아지들이 놀랄까 싶어 조심하는 것 같았다. 나는 엄마가 그러거나 말거나 캐리어 입구에 얼굴을 바짝 들이댔다. 강아지들은 서로의 겨드랑이로 얼굴을 더 깊게 파묻기 위해 경쟁하고 있을 뿐 바르르 떨고 있는 것으로 보아 제 의지로 기어 나올 것 같지는 않았다. 나는 몸을 틀어 아버지를 쳐다봤다. 아버지는 어느새 다시 티브이만 묵묵히 보고 있었다. 보세요 아버지, 개예요. 내가 눈으로 그렇게 물으며 오래 쳐다보는데도 아버지는 한사코 시선을 티브이에서 떼지 않았고 늘어난 러닝셔츠 위로 불룩하게 튀어나온 배만 한 번 긁을 뿐이었다. 이어서 다리를 기지개 켜듯 뻗으며 파자마 밖으로 나온 가느다란 발목을 돌려 오도독 소리를 내기도 했다. 그런 행동에 특별한 의미가 있는 것 같지는 않았다. 29년이나 함께 산 사람의 속을, 방금 만난 강아지들 것보다 읽어내기 힘들었다.
  지수와 나는 초등학교에 다니던 내내 강아지를 갖고 싶다고 졸랐다. 그러나 아버지는 두 번 듣지도 않고 절대 안 된다고 못을 박았고 엄마도 아파트에서 무슨 동물을 키우느냐고 했다. 우리가 매일 목욕도 시키고 똥오줌도 치울 거라고 수백 번 다짐을 해도 소용없었다. 아버지는 눈만 무섭게 부라릴 뿐이었고 엄마는 우리 남매가 당신의 강아지라며 말을 돌렸다. 그렇게 털 날리는 것은 현관문을 넘을 수 없다는 오랜 금기를 지수가 아무런 예고도 없이 깨뜨린 셈이었다. 오랜만에 지수가 한 살이라도 누나인 게, 그리고 현재는 우리집 가장인 게 실감 났다.
  “포메라니안 쪽인데, 이름은 지돌이랑 지둥이로 했어. 별 뜻은 없어.”
지수가 강아지들을 꺼냈다. 나는 포메라니안이면 포메라니안이지 포메라니안 쪽은 뭔가 싶었다. 지수가 그것들을 양손으로 하나씩 들어 보였다. 왼쪽이 지돌이고 오른쪽이 지둥이라고 했다. 지수가 제 이름의 ‘지’를 돌림자처럼 쓴 데에서 강아지들에 대한 지분을 온전히 제게 두겠다는 의지가 엿보였다. 배 아래쪽에 둘 다 무언가의 흔적처럼 작은 것을 달고 있었다. 암만 봐도 색깔과 생김새가 같은 두 수컷을 무엇으로 구분해서 이름 지었는지 궁금했다. 구분은 둘째 치더라도 ‘지돌’과 ‘지둥’은 너무나 성의 없이 지은 느낌이 들었다. 돌림자를 맞게 쓰자면 차라리 돌수와 둥수라 해야 하지 않나도 싶었다. 그러나 지수, 현수, 돌수, 둥수 이렇게 나란히 놓자 좀 망측해졌다. 강아지들은 허공에서 잠시 버둥대더니 체념한 듯 사지를 늘어뜨리고 여린 꽃잎 같은 혓바닥을 내밀어 제 코를 핥았다.
  “우리 학원 수학쌤 있잖아?”
  지수가 강아지들을 품에 넣듯 안으며 말했다.
“왜 그 연애에 정신 팔려서 나한테 맨날 지 수업 시간 땜빵해달라고 징징거리는. 저번에도 다낭인가 어디 티켓이 싸게 나와서 남친이랑 급히 가게 됐다고 며칠이나 안 나왔잖아. 내가 땜빵 안 해줬음 학부모들 난리 나고 다시는 이 바닥에 발 못 붙이지. 아무튼, 그 쌤이 공짜로 분양해준 거야. 거긴 벌써 다 큰 애들이 세 마리나 있거든. 팔면 둘이 합쳐서 오십만 원은 받을 수 있는데도 가족 같아서 그러긴 싫었대나? 진짜 믿을 수 있는 사람한테 맡기고 싶어서 아무한테도 얘기 안 하다가 나한테 처음 얘기한 거래. 예방접종도 다 했대.”
  명색이 국어 선생이란 게 땜빵이니 남친이니 하며 지껄이는 걸 듣고 있자니 그 학원 학생들에게 내가 다 미안해졌다.
  수업 마치고 들어오면 곧 죽을 것처럼 피곤해하며 목소리를 내는 것조차 성가셔하던 애가 아무리 갑자기 강아지를 데려왔다고 해도 좀 지나치게 수다스러웠다. 그래서 엄마나 나 들으라는 소리가 아니라 아버지에게 하는 말인 줄 알 수 있었다. 아버지는 여전히 굳은 얼굴을 티브이로 향하고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티브이에서는 혼자 사는 연예인을 카메라가 관찰하듯 따라다니고 있었다. 엄마는 저 프로그램을 볼 때마다 연예인의 자취집을 가리키며, ‘저런 집은 보증금이 얼마나 하니? 작으니까 그렇게 비싸진 않겠지?’ 하고 지수에게 묻곤 했다.
  지수는 그럴 때마다 어마어마하게 비싸다고 딱 잘라 말했다.
나는 엄마가 이따금 독립하려는 기미를 보이는 게 모두 아버지를 향한 시위라고 생각했다. 아버지가 ‘정부 쪽 인사가 뒤를 봐주고 있다’는 지인의 회사에 퇴직금을 투자했을 때나, 그 일이 잘 안 풀리자 아파트를 담보로 대출까지 받으려 했을 때가 엄마로서는 독립할 적기였다. 엄마는 눈 딱 감고 재산을 분할 받아 나갔어야 했다. 비록 아파트는 지켰지만 당신의 삶은 계속해서 다른 세 식구에게 묶여 있었다. 아버지는 돈과 지인을 잃은 뒤부터 거실에서 생활했다.
  티브이를 보다가 소파에서 그대로 잠들어 버릇하더니 결국엔 안방으로 들어가는 게 아주 어색해져버렸다. 나는 엄마가 진짜 나가버릴까 봐 저러는 건가 싶기도 했다.
  “젖은 뗐니?”
  엄마가 지수의 품에 가만히 안겨 있는 둘 중에서 한쪽의 머리에 조심스럽게 손을 갖다 대며 말했다. 그게 지돌인지 지둥인지는 벌써 헷갈렸다. 엄마의 손길에 녀석은 작은 입을 짝 벌렸다 닫았다. 하품인지 반항인지 구분하기는 어려웠다. 하품이든 반항이든 사람 심장을 녹아내리게 할 만큼 귀여워서 나도 모르게 아랫입술이 내밀어지며 한숨이 나왔다.
  “이유식 시작했으니까 우유랑 혼식하면 된대.”
  “세상에…… 어미가 얼마나 찾을까…….”
  나는 엄마의 그 한마디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마치 우리가 어느 단란한 가족을 산산조각 내버린 것만 같아서였다.
  “찾기는, 젖 물리기 싫어서 요리조리 도망 다니느라 바쁘대. 이제는 남남이야, 남남.”
  “아무렴 그럴까, 아직 요렇게 작은데…….”
  “됐어. 잘 키우면 되지 뭐.”
  내 귀엔 엄마의 거듭되는 독백이 그냥 하는 소리로 들리지 않았다. 나를 잠시 수원 외가에 맡겼다던 얘기가 떠올라서였다. 아버지가 이런저런 직장을 전전하느라 아직 형편이 아주 안 좋을 때였다. 연년생 남매를 키우려니 너무 힘들어 나를 9개월 정도 외가에 보냈다는데 나로선 전혀 기억이 없다. 지수는 이미 말을 시작했을 때여서 떨어뜨려놓을 수가 없었고 나는 늦된 게 아닌가 걱정될 정도로 순해서 어렵잖게 보낼 수 있었다고 했다. 그렇게 순했으면 굳이 보낼 필요는 없지 않았느냐고 물은 적이 있었다. 엄마는 아무리 순해도 입히고 먹이고 씻기는 일은 똑같다고, 사내아이라 덩치가 크고 힘이 좋아서 더 힘들었다고 했다. 먹고 싸는 것도 지수의 두 배는 됐다고 했을 때 나는 엄마에게 좀 미안해졌다. 내가 자라는 동안 다방면에서 평균을 밑도는 모습을 보일 때마다 엄마는 어릴 때 떨어져 지내서라고 진단했고 아무리 형편이 어려웠다지만 식구끼리 어떻게든 뭉쳐 살았어야 했다고 자책했다.
  내가 모자란 모습을 보일 때마다 엄마가 차라리 나를 다그쳤다면 어땠을까 생각하곤 했다. 엄마가 자책하는 걸 보기 싫어 나름대로 한다고 해 보았지만 학업을 비롯한 삶 전반은 결코 만만하지 않았고 어느 순간부터는 엄마 말대로 내 탓이 아닌 셈 쳤다. 나와 달리 지수는 어떤 분야에서건 평균 이상의 자질을 보였다. 그래서 나는 동네에서든 학교에서든 아주 오랫동안 내 이름 현수가 아닌 지수 동생으로 불렸다. 니가 지수 동생이구나. 누나한테 한글 좀 가르쳐달라고 해. 니네 누나 반만 따라가봐라……. 그런 소리를 들을 때면 그저 멋쩍게 웃었다. 지수가 선생님들과 어른들 사이에서 유명한 게 자랑스럽기도 했다. 어느 날 운동장에서 말뚝박기를 하고 있다가 지수가 멀찍이서 제 친구들과 지나가는 걸 발견하고 손을 흔들며 부른 적이 있었다. 못 들을 만한 거리가 아닌데도 이쪽으로 고개를 돌리지 않던 그때, 나는 처음으로 ‘누나’가 아닌 ‘야, 이지수!’로 불러봤다. 지수의 친구들만 나를 쳐다봤을 뿐 정작 지수는 걸음을 서둘러 멀어지는 것을 본 그날, 나는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복잡한 감정을 느꼈다. 지금 생각하면 그 느낌은 식구들과 떨어져 지내던 시기에 대한 어렴풋한 기억이 아니었나 싶다. 그 뒤부터는 놀이에 집중이 되지 않았고 상대편 플레이에 자꾸 트집을 잡기 시작했다. 우리 편조차 나를 거들어주지 않아서 결국 놀이에서 쫓겨나고 말았다. 얼른 집에 가고 싶어 일부러 그랬던 것 같다. 집에 오자마자 엄마에게 지수를 고발했으나 지수는 정말 못 들었다고 잡아뗐다.
  나는 지금도 그날의 하늘이 어땠고 바람이 어땠고 운동장에서 일던 먼지가 어땠는지까지 모두 생생한데 지수는 전혀 기억나지 않는다고 했다.
  “야 이백수!”
  엄마가 다급히 손을 들어 지수의 팔뚝을 쳤다.
  “현수한테 그러지 말래두! 쟤가 왜 백수야. 친가 외가 탈탈 털어봐라, 석사 하나 나오나.”
  “아이고 어머니임. 요새 석사는 개도 안 물어간다고 몇 번이나 말해? 그리고, 지금 삼 개월이나 놀고 있는데 백수 맞지 뭘. 놔봐. 너, 애들 케어 잘해라. 똥오줌 치우고 목욕시키고 밥 주는 거 다 니 담당이야. 엄마가 하게 하지 말고, 알겠어? 그런 거 하기 싫으면 사료든 장난감이든 병원비든 하나라도 맡아봐. 퇴직금 얼마 받았댔냐? 이백? 삼백? 남아 있긴 하고?”
  강아지들이 지수의 서슬에 놀라 낑낑거렸다.
  “니가 데려왔으면 니가 해! 뭔데 이래라 저래라야?”
  나는 그대로 일어나 내 방으로 들어와 버렸다. 방문을 소리 나게 닫고 나서야 방에서 별로 할 일이 없다는 걸 깨닫고 후회했다. 침대에 눕자마자 강아지들이 보고 싶어졌다. 꽃잎 같은 혓바닥이 다시 보고 싶었고 하품인지 저항인지 모를 표정이 계속 되감겼다 재생되었다. 촉촉한 콧등을 한 번 더 눌러보고 싶었고 보드라운 털을 쓰다듬으며 그 아래서 체온과 함께 전해지는 여린 골격을 느끼고 싶었다. 나는 무언가가 보고 싶어진다는 느낌이 참 오랜만이구나, 생각했다. 누운 자세 그대로 스마트폰을 들고 포메라니안을 검색했다. 성견이 될 때까지 몇 번 정도 모습이 바뀌는 것 같았다. 특히 배내털이 빠질 때 얼굴에서 먼저 털갈이가 시작되면서 원숭이처럼 보이는 시기가 재밌었다. ‘포메라니안 원숭이’로 검색되는 사진마다 어지간히도 미운 꼴을 하고 있었는데, 아무것도 모르는 표정으로 렌즈를 보는 시선들이 웃겼다. 그 외에 장난감, 목욕, 산책, 습성 등을 검색하다 보니 한 시간이 금방 지나 있었다. 얼굴 위로 들고 있는 스마트폰이 바위처럼 무거워 두 팔을 떨어뜨리듯 내렸다. 눈이 뻐근했고 곧바로 잠들 수 있을 것도 같았다. 불을 꺼야 하는데 다시 일어나서 스위치까지 가는 게 몹시 귀찮았다. 개 두 마리를 관리하는 건 스위치를 끄는 일보다 힘들 텐데 걱정이 앞섰다.

  강아지들은 많이 먹었고 종일 잤고 자고 나면 또 먹었고 그러는 사이사이에 엄청나게 싸댔다. 우유에 사료를 불려서 줘야 하는 시기는 금방 지나갔다. 이제 두 놈이 사료 그릇에 주둥이를 박고 흡입하는 꼴이 일종의 시합 같았다. 한 톨이라도 먼저 다 먹은 놈이 옆의 것을 넘봤고 그럴 때면 서로의 대가리를 밀어내기 위해 안간힘을 쓰면서도 주둥이를 쉼 없이 놀렸다. 사료 한 포대는 처음만 한 달을 가더니 다음부터는 4주, 3주, 보름 만에 새로 들여야 했다. 배변 훈련에는 진척이 없었다. 가끔 화장실 안에 지정해놓은 자리에서 일을 볼 때가 있긴 했는데 아무리 봐도 너무 급했거나 단순한 우연 같았다. 보통은 보란 듯이 거실 가운데서 쌌다. 같은 자리가 비어 있으면 서로 자기 걸 먼저 싸 놓으려고 하는 게 녀석들의 습성인 것도 같았다. 나는 녀석들이 뒷다리 오금에 힘이 들어가는 것만 봐도 알아차리고 휴지를 찾았다. 보이는 대로 곧장 치웠는데도 집 안에 개똥 냄새가 은은히 돌았다. 안에만 있을 땐 잘 몰라도 잠시나마 밖에 나갔다 들어오면 알 수 있었다. 냄새는 나날이 짙어지고 복잡해졌고 개들은 바람을 집어넣고 있는 풍선처럼 하루가 다르게 자랐다.
  뒤치다꺼리를 하지 않는 다른 식구들 눈에는 그저 살아 있는 인형처럼 보이는 것 같았다. 하루 종일 온 집을 헤집으며 놀다가 밤이 되니 잠시 쉬고 있는 두 놈을 엄마와 지수가 하나씩 붙들어 안은 채 닳도록 쓰다듬고 있었다. 엄마는 이렇게 예쁜데 왜 〈동물농장〉같은 데서 안 오냐고 물었다. 예쁘긴, 말이라도 잘 들으면 모를까……. 지수는 잘 훈련시켜서 모델을 시키면 좋겠다고 했다.
나는 듣고 있기 힘들었고 기어이 속말을 내뱉고 말았다.
  “아직 똥오줌 자리도 못 찾는 줄 모르나? 저런 잡종이 모델은 무슨…….”
눈길을 티브이에 두고 웅얼거리기만 했는데 거실 분위기가 싸늘해졌다.
  “야! 애들 다 알아들어.”
  지수가 소리를 지르는 바람에 개들이 놀라 발딱 일어나서는 내게로 뛰어들었다. 엄마와 지수의 품이 허전해졌다. 나는 느닷없이 달려드는 녀석들 때문에 소파에 기대고 있던 등을 일으켜 세워야 했다. 둘은 돌진해오다 멈춰서는 잠시 내 주변을 탐색하더니 나란히 나를 마주하고 궁둥이를 내려놓았다 그러고는 나와 눈을 마주치려 애쓰며 잠시 얌전하게 굴었다. 마치 내 안색을 살피는 듯했다. 개들은 사람의 서열을 구분해 따른다고 하던데 가장 말단인 나를 챙기는 걸 보고 있으니 그동안 밥 주고 똥 치워준 게 영 헛일은 아니었구나 싶었다.
  “요놈들을 좀 연구해서 이참에 훈련사로 나서봐?”
  내가 둘의 정수리를 간질이며 말했다.
  “넌 세상이 만만해 보이냐? 훈련사는 아무나 해? 그리고 지돌이, 지둥이가 무슨 실험도구야?”
무시하려 했지만 지수가 ‘지돌이, 지둥이’하면서 말할 땐 나도 모르게 곁눈질을 하게 됐다. 지수가 턱짓을 두 번 했고 내 착각인지 몰라도 반대로 가리킨 것 같았다.
  “또 현수한테 그런다. 뭐라도 해볼 생각을 하는 게 어디니. 그래, 그거 하면 티브이에도 나오고 좋아 보이더라. 한번 해봐라 현수야.”
  엄마의 맹목적인 응원은 이제 나조차도 민망했다.
  “누가 티브이에 나오고 싶댔나…….”
혼잣말로 궁시렁댔을 뿐인데 지수가 또 걸고넘어졌다.
  “쟨 맨날 저렇게 삐딱하다니까. 엄마가 지금 너더러 연예인 하라 그래? 기죽지 말라고 해주는 얘기잖아! 너 저번에 면접 봤다던 데서 그러는 것도 다 니가 그래서 그런 거야. 좀 긍정적으로 해 긍정적으로.”
  관자놀이를 뾰족한 것으로 찌르는 듯 머리가 지끈거렸다. 면접을 보자고 한 회사는 제시된 연봉이 너무 낮아 혹시나 합격하더라도 출근을 망설일 것만 같던 곳이었다. 면접을 본 지 이틀 만에 장문의 문자메시지를 받았다.
  - 이현수 님의 지원서와 면접에서 보여주신 열정은 매우 인상적이었으나 저희가 계획한 채용 인원의 한계로 좋은 소식을 전해드리지 못해 대단히 안타깝습니다. 금번의 지원에 무한히 감사드리며 좋은 인연으로 다시 뵙길 기대하겠습니다.
나는 메시지를 오랫동안 들여다보다가 문안을 만든 사람을 상상했다. 채용 인원이 무한대였더라도 뽑지 않았을 거면서, 우리 사이에 다시 볼 좋은 인연이란 없을 걸 알면서 왜 이런 문자를 보낼까. 나는 메시지의 행간을 더듬으며 오래 궁금해했다. 메시지를 보낸 사람도 나를 몹시 궁금해하도록 답장을 쓰고 싶었는데 아무런 문장이 떠오르지 않았다. 자기소개서를 제출했고 대면도 했으니 나는 더 이상 궁금해질 수 없는 종류의 사람이 되어 있었다.
  - 네, 기다리던 소식은 아니지만 연락 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음이라도 기회가 있다면 꼭 다시 뵙겠습니다.
  예상했던 대로 더 이상의 메시지는 없었다. 한참 뒤에야 저쪽에서 발신한 번호는 모바일이 아니란 걸 알았다. 가닿지 못한 메시지가 어디쯤에서 떠돌며 나를 우습게 만들고 있을 것 같았다.
  “지돌이랑 지둥이 구분 못 하지?”
  나는 시선을 개들에게 향한 채 말해보았다.
  “뭐?”
  지수가 불의의 한 방에 허를 찔린 게 분명했다. 대답하는 목소리가 날카로웠다.
  “어디 자신 있으면 한번 말해봐. 헷갈린 거 벌써 오래된 거 같은데, 아니야?”
  “저게 미쳤나! 하루 종일 집에 처박혀서 나한테 시비 걸 거리만 생각하고 있는 거야? 겨우 생각해낸 게 그거고? 햇빛 좀 보고 살어. 누가 보면 환자라고 하겠다. 너는 그렇게 살면 니 인생한테 미안하지도 않니?”
  “그만 못 해? 니들은 어떻게 하루도 안 거르고 싸워? 엄마 속상한 건 생각 안 해?”
  엄마가 중재하지 않았더라도 나는 더 나갈 생각이 없었다. 지수가 강아지들을 구분 못 한다는 건 이로써 분명해졌고 지수가 열을 받았으므로 그걸로 충분했다.
  잠시 정적이 흐르는 동안 티브이 소리가 또렷하게 들렸다. 토크를 주고받던 중에 무슨 재밌는 얘기가 나왔는지 모든 출연진이 왁자하게 웃고 있었다. 어떤 사람은 아예 의자에서 내려와 바닥을 치며 배를 잡았는데 도대체 얼마나 재밌으면 저럴까 싶었다. 아버지를 슬쩍 봤지만 아무런 표정이 없었다. 식구들이 개를 데리고 떠드는 동안에도 소파 위에서 다리를 포개고 앉아 티브이만 보고 있었다. 아예 개들을 없는 셈 치는 것 같았다. 평소에도 녀석들이 싸질러놓은 것만 피해 다닐 뿐 곁을 준 적이 없었다. 물이라도 마시러 일어나면 득달같이 달려들어 바짓단을 물고 늘어지니 한 번쯤은 놀랄 만도 한데 그저 뭐에 걸린 걸 벗겨내듯이만 했다. 소파로 돌아와 걸터앉을 때 종종거리며 다가와서 발가락에 코를 갖다 대려고 하면 그럴 땐 슬그머니 양반다리를 했다. 가뜩이나 이 집에서 그리 넓지 않던 아버지의 영역은 그렇게 어느새 소파만큼 줄어들고 말았다. 둘 다 아직 어려서 고작 앞발만 소파에 걸쳐볼 뿐 뛰어오르지는 못하기에 망정이지 더 크면 아버지가 몸을 둘 공간은 소파의 등받이뿐이다. 아버지가 소파 등받이에 원숭이처럼 올라앉는 모습이 떠올라 코웃음이 났다.
  “엄마 쟤 혼자 웃는 것 봐. 진짜 미쳤나 봐. 야! 너 지금 정말로 내가 지돌이, 지둥이 구분 못 한다고 생각하는 거야?”
  지수가 바락 소리를 지르는 바람에 모든 식구가 움찔했다. 강아지들마저 지수와 나 사이에 껴들어서는 지수를 향해 깜찍하게 짖어댔다. 한주먹감도 안 되는 녀석들이 톡톡 뱉어내는 소리가 제법 사나웠다. 지수는 순식간에 얼굴이 빨개졌고 눈이 두 배나 커졌다.
  “얘들이 왜 이래? 뭘 잘못 먹었나? 야, 백수! 너 애들한테 무슨 짓을 한 거야?”
  지수가 악을 쓰는 동시에 개들이 더 크게 짖기 시작했다. 네 발을 바닥에 단단히 고정하고 자세를 낮춰 작은 탱크처럼 소리를 쏘아댔다. 둘이 박자를 맞춰 번갈아 짖으니 공백이 생기지 않았다. 기세로만 봐서는 당장이라도 지수에게 달려들 것 같았다. 이웃에서 항의하지 않을까 걱정될 정도였는데 언제 이만큼이나 자랐나, 기특해서 더 짖도록 내버려뒀다.
  개들이 지금 누굴 공격하려는 게 아니라 다툼을 말리고 있는 줄 알고 있는 사람은 나뿐인 것 같았다. 인터넷을 조금만 검색해봐도 나오는 얘긴데 어쩜 저렇게들 무지할까 싶었다. 지수는 슬금슬금 뒤로 물러나 앉았고 엄마가 개들한테 다가오다가 말고 쩔쩔매며 손을 휘저었다. 가만뒀으면 잠잠해질 것을 엄마가 큰 모션을 취하는 바람에 개들이 더욱 흥분해버렸다. 나는 두 놈의 배 아래로 손을 넣어 가뿐히 들어 올려서는 내 방으로 향했다. 진정시키는 데는 격리가 즉효였다. 두 녀석을 내 방에 데려와 내려놓고 문을 닫자 흥분의 잔변감인 듯 잠시 가르랑대다가 곧 멈췄다. 그런 뒤 지돌이 깡총거리며 내 방 이곳저곳을 탐색하기 시작했고 지둥이 나를 돌아보며 머뭇거리다 지돌의 뒤를 따랐다. 복제품 같은 둘은 그렇게 성격으로 구분해야 했다.
  밖에서 지수가 엄마에게 하소연하는 소리가 들렸다.
  어떻게 주인한테 저래? 아무래도 잡종이라 그런가? 혹시 광견병? 미쳐버리면 주인도 몰라보고 그러는 거야? 나는 문을 벌컥 열고 밖을 향해 외쳤다.
  “야, 애들 다 알아들어!”

 

(후략)

 

*본 원고의 전문은 대산문화 <봄호>를 통해 감상하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