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산문화

대산문화 표지

아우의 인상화 印像画

아바나, 영혼은 탈탈 털리고 심장은 도취하다

도종환 문화체육관광부 장관과의 만남 '진흙과 풀꽃'

대한민국, 2018년 늦가을

특집을 기획하며 동아시아문학 공동의 집 시간과 우리 작가와 작품, 독자와 현실의 틈새에 서서 ①주요 발제문 다시 읽기➍ 작품교류-전통 ①주요 발제문 다시 읽기➎ 작품교류-차이 ①주요 발제문 다시 읽기➏ 작품교류-미래 ①주요 발제문 다시 읽기➐ 작품교류-독자 ②한중일 동아시아문학포럼 참관기 ③한중일 대표 공동 기자간담회

“어둠 속에서 둘이서,어둠 속에서 나홀로”

차이(差異)의 매혹

강릉 유가(儒家)의 군자

쓰지 않아도 된다

길 위에서

검박한 스승, 굴산사 당간지주

동아시아와 세계, 우주에 대한 새로운 성찰

의약분업의 효시

내 글의 스승, 가스통 바슐라르

속간 《문예중앙》, 2010년 가을 통권 제123호로부터

숲은 아름답고 깊지만 내겐 지켜야 할 약속이 있네 아직 가야 할 길이 남아있네

①기차를 타고 밤 약속,월동준비 ②당분간 달콤,홀로그래피

①사람 사는 집 ②네가 웃어야

잘 알지도 못하면서

잘 잊히지 않는 일들

①최근 역사 영화의 한 경향에 대해 ②그러면, 그러면, 그러면 ③주인도 제목도 없는

①시대의 아픔 위에 놓인 애도의 문학 ②제26회 대산문학상 수상작리뷰

고민과 아픔을 문학으로 승화하기 위한 노력들

소설이 묻고, 영화가 답하다

인생 리셋을 위한 자기 계발의 과학

파라나 강물 위에는 그를 기리는 꽃잎이 흐른다

한국문학 번역, 어렵고 힘들지만 “계속해보겠습니다”

강 저편과 여기

기다림의 미학

대산세계문학총서149,150

대산창작기금, 한국문학 번역지원,외국문학 번역지원

대산문화재단 신창재 이사장 은관문화훈장 수훈 등

기획특집

동아시아문학 공동의 집

글 최원식 ㅣ 평론가, 인하대학교 명예교수, 동아시아문학포럼 한국조직위원장. 1949년 인천 출생. 서울대학교 국문과 및 동 대학원 졸업. 문학의 예술성과 사회성이 어떻게 대화해 왔는지 또는 어떻게 대화할 수 있을지에 대해, 그리고 대안으로서의 동아시아/동아시아문학에 대해 관심을 기울여 왔다. 『민족문학의 논리』 『생산적 대화를 위하여』 『문학의 귀환』 『제국 이후의 동아시아』 『소수자의 옹호』 등의 저서와 『韓國の民族文學論(한국의 민족문학론)』 『東アジア文学空間の創造(동아시아 문학공간의 창조)』 『文學的回歸(문학의 귀환)』 등의 역서가 있다. 대산문학상, 임화문학예술상 등을 수상했다.


바로잡습니다 ㅣ 이번호 단행본에는 본 원고의 제목이 ‘「동아시아문학 공동의 집」’에서 ‘「시장 속의 문학」’으로 잘못 표기되었습니다. 편집상의 실수를 바로 잡습니다.

동아시아문학 공동의 집

1. 집짓기

이번 기조발제는 저의 고별사입니다. 10년 전 열린 첫 포럼부터 두 번째 바퀴가 다시 시작된 오늘 에 이르기까지1) 동아시아문학포럼의 경과를 돌아보건대 우여곡절조차도 반짝입니다. 아니 그 모든 우 여곡절이야말로 포럼의 육체와 영혼이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가 함께 건설한 동아시 아문학포럼이라는 집은 어떤 유명한 건축가가 책상 위에서 혼자 뚝딱 만든 신기루가 아니라 이 집에 입주할 세 나라 작가들이 궁리 끝에 쌓고, 살면서 고쳐 쌓고, 그리고 아마 신입자가 들 때마다 수정 이 더해져, 완성이 끝없이 미끄러지는, 다시 말하면 완성이 곧 미완으로 되는 ‘공동의 집(the common house)’이기 때문입니다. 소로가 말하는 ‘이 같은 무의식적 생활의 아름다움(a like unconscious beauty of life)’2)이란 바로 우리 동아시아문학포럼에 꽤 들어맞는 말이 아닐까 싶습니다.
나라, 국민, 언어의 경계를 넘는 일이 어떠한지를 실감한 10년이었습니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넘는 다’는 말에 어폐가 없지 않습니다. 양자 관계라면 넘는다는 말이 그럴듯하지만 셋이 되면 넘을 수가 없 습니다. 셋은 이미 세상이기 때문입니다. ‘걸치다’란 뜻을 지닌 중국말 ‘콰[跨, kua]’가 우리 포럼을 가리 키는 데 가장 가까울 것입니다. 포럼에 들어서는 순간 우리는 ‘다른 세상’의 시민으로서 중국말, 일본 말, 한국말 사이에 걸터앉게 되는데, 더욱이 이 세 말은 중국의 『시경(詩經, shijing)』과 일본의 『망요슈 (萬葉集)』와 한국의 『삼대목(三代目)』 이후 물경(勿驚) 천여 년 동안 절차탁마(切磋琢磨)된 고도의 문학 어입니다. 그 덕에 이 포럼으로 살러 온 작가들은 졸지에 낯선 시간과 낯선 공간에서 도착한 가없는 언 어들 사이를 잇는 연락원의 책무를 떠안게 되거니와, 낯선 독자들의 호응으로 그 책임은 은은한 기쁨 으로 홀연 변신하던 것입니다. 이 ‘공동의 집’을 둥그렇게 감싼 한중일 세 나라 독서공동체의 나지막하 지만 견결(堅決)한 옹호야말로 바로, 포럼의 오늘을 이끈 결정적 언덕이었음을 자랑스럽게 고백하는 바입니다.

2. 역사적 시간으로서의 21세기

이번 포럼의 주제는 ‘21세기 동아시아문학, 마음의 연대’입니다. ‘21세기’란 말을 생각합니다. 21세기 도 이미 5분의 1 가까이 지났습니다. 그런데 과연 21세기는 시작된 것일까요? 기계적 시간으로는 분명 21세기를 살고 있습니다만 역사적 시간이란 각도를 취하면 좀 달라지는 것 같습니다. 가령 19세기와는 다른 20세기가 모습을 드러내는 결정적 계기로 제1차세계대전(1914) 또는 러시아혁명(1917)을 드는 경 우가 일반적이거니와, 이후 자본주의와 공산주의의 대립이 세기 내내 이어졌습니다. 그럼 21세기의 꼴 을 주조할 대사건은 일어나긴 일어난 걸까요? 9·11테러(2001), 동일본(東日本)원전사고(2011), 시진핑 [習近平] 취임(2013), 브렉시트(2016), 트럼프 집권(2017), 북핵 6차 실험(2017), 한국의 촛불혁명(2017) 등등이 주마등처럼 떠오르지만, 그 어느 것도 1차대전 또는 러시아혁명에 상응하는 사건이라고 지목하 기에는 손색이 있지 싶습니다. 그 사건들 모두가 지금 우리가 딛고 사는 21세기의 태동을 증거하는 파 노라마일진대 그 단초는 동베를린 장벽의 붕괴(1989) 또는 소비에트연방의 해체(1991)일지도 모릅니다. 미소 대립에 기초한 냉전(cold war)시대는 핵공포에 기초할망정 일정한 균형을 취할 수밖에 없는 상대 적 안정기임을 상기할 때 소련이 소멸한 탈냉전(post-cold war)시대에 불확실성이 증폭할 것은 예견 된 바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눈을 동아시아로 돌리면 냉전 또는 탈냉전이 잘 맞지 않습니다. 서구에서 기원한 냉전이 열 전으로 번진 국공내전(1946~1949)과 6·25전쟁(1950~1953)과 베트남전쟁(1955~1975)이 그 단적인 증 거들입니다. 서구에서는 냉전이지만 동아시아에서는 열전입니다. 더구나 탈냉전도 서구에서는 1991년 이후지만 동아시아에서는 그 이전입니다. 핑퐁외교(1971)는 중일수교(1972)를 거쳐 중미수교(1979)로 귀결됨으로써 소련의 붕괴를 선도한 셈이니 1970년대 동아시아야말로 탈냉전의 시원인 것입니다. 그 럼에도 그 단초를 제공한 동아시아가 아직도 탈냉전을 완수하지 못했습니다. 한소수교(1990)와 한중 수교(1992)로 동북아시아에도 탈냉전이 본격화했지만 그에 상응하는 북미수교와 북일수교는 여전히 이루어지지 않음을 빌미로 북방의 북중러와 남방의 한미일이 왕년의 냉전시대처럼 대립하는 형국입 니다.
그러나 이를 신냉전이라고 부를 수 있을지는 좀 의심스럽습니다. 동아시아에서는 지금도 조선민주주 의인민공화국(1948), 중화인민공화국(1949) 그리고 베트남사회주의공화국(1976) 등 사회주의나라들이 건재합니다만, 세 나라는 왕년의 공산진영이 아닙니다. 중국과 베트남은 벌써 개혁개방을 통해 시장사 회주의로 변신했고 북한 역시 통상적인 사회주의국가가 아닐 뿐더러 안팎으로 시장경제에 포섭된 형 편인지라 지금의 대립은 왕년과는 크게 차별된다고 하겠습니다. 더욱이 결정적인 것은 냉전의 한 축을 이룬 소련이 일찍이 해체된 점입니다. 물론 소련의 붕괴를 재앙으로 애도하면서 대국주의로 질주하는 푸틴 정부에는 의상을 갈아입은 소련이라고 볼 측면이 없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소련이 누린 국제적 권 위에 대한 강력한 향수(鄕愁)를 먹이로 다시 제국의 부활을 꿈꾸는 지금의 러시아는 왕년의 소련이 아 닙니다. 민주주의의 일정한 유보라는 점에서 푸틴의 러시아가3) 소련과 유사하게 보일지라도 속내는 다 릅니다. ‘주권민주주의(sovereign democracy)’와 ‘국가자본주의(state capitalism)’를 두 바퀴로 하는 푸틴의 정책은 명백히 우향(右向)이기 때문입니다. 푸틴의 러시아야말로 신냉전의 의상을 걸친 탈냉전 의 한 경향, 즉 국가주의의 부상을 대표할지도 모릅니다.
그럼에도 동북아시아는 오로지 국가주의의 충돌로만 환원할 수 없습니다. 소련을 대신해서 중국 이 G2로 부상한 점이 각별하거니와, 미국의 불안에 말미암은 지정학의 요동으로 한반도 ‘분단체제(백 낙청)’가 아직도 평화적 해소의 단계를 착실히 밟아나가지 못하고 뒤뚱거리고 있는 현실입니다. ‘냉전’ 의 낡은 자물통이 유독 한반도의 허리를 조이는 바람에 6·25전쟁은 아직도 종결되지 못했습니다. 휴 전협정(1953.7.27.)은 전투의 일시적 중지에 지나지 않으므로 지금도 한반도는 엄격하게 말하면 전시에 준합니다. 예외상태가 ‘상태(常態)’로 되는 엄중한 조건입니다. 일방이 타방을 흡수할 수 없는 것이 한 반도의 역사적 운명이라는 사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준 6·25전쟁의 교훈을 상기컨대, 남과 북이 하나가 되기보다는 하나이면서 둘인 국가연합(confederation)이 통일의 최종형태라고 해도 무방하다는 소국 주의적 통일을 저는 지지합니다. 남북연합의 목표 아래 북과 함께 주변 4강(미중일러)을 설득하는 것이야말로 거의 유일한 선택일진대, 이 ‘지루한 성공’4)의 길을 실천할 한국사회의 추동력이 안팎의 견제 속에 약화되면 종전(終戰)의 미완성에 말미암은 유사(類似)-냉전이 문득 복원된다는 점을 직시하는 것이 종요롭습니다.
사태는 그리 비관적이지 않습니다. 평창동계올림픽이 효녀 노릇을 톡톡히 해냈습니다. 그사이 중단 된 남북협력 기제가 다시 작동하면서 분단을 관리할 가능성이 간신히 열리고 있습니다. 우리 포럼이 겪었듯이, 희한하게도 남북관계가 나빠지면 동북아시아도 분쟁으로 갈마듭니다. 6·15선언(2000) 즈음 에는 공동체 논의까지 활발했던 동북아시아가 한반도 분단을 둘러싼 유사-냉전이 요동하면서 간단없 는 충돌상태로 빠져든 것은 여기서 다시 반복할 필요도 없을 터인데, 지루한 공방 끝에 한반도문제와 교접(coupling)된 동아시아문제도 함께 풀릴 고비에 이르렀습니다. 공교롭게도 평창동계올림픽 2년 뒤 에 도쿄하계올림픽이고 또 그 2년 뒤엔 베이징동계올림픽입니다. 평창에서 발진한 평화의 기운이 도쿄 로 베이징으로 확산되는 이 드문 기회들을 충실히 살린다면 이 고비가 미소 양극의 대립을 축으로 한 20세기로부터 다원적 국제주의가 정착하는 21세기로 진화하는 입구, 다시 말하면 역사적 시간으로서 의 21세기가 탄생하는 호시절(好時節)의 시작이 되지 못할 이유도 없겠습니다.

3. 세계일화(世界一花)의 국제주의

탈냉전 이후 잘 나가던 지역협력이 왜 국가주의의 고조로 역전되었을까? 아무래도 소련의 해체를 계기로 가속페달을 밟은 세계화(globalization)에 주목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는 노동보다는 자본 의 세계화로 경사되었거니와, 그 결과 양극화가 나라 안팎으로 심화되는 치명적 사태가 야기되었습니 다. 지역화(regionalization)와 지방화(localization)가 안팎으로 국민국가를 두들겨댄 결과, 오히려 곳 곳에 국가주의의 반동이 출현한 것입니다.
이 점에서 세계화가 유행하면서 순식간에 뒷방으로 추방된 국제주의(internationalism)를 다시 볼 때가 아닌가 싶습니다. “조직된 ‘국가 간 민족주의’(inter-nationalism)”로 국제주의를 다시 해석한 시 드니 웨브(Sidney Webb, 1859~1947)의 견해가 흥미롭습니다. 국가의 소멸을 서둘러 주장하기보다는 좋은 나라 만들기의 중요성을 지적한 그는 그 민족주의가 자칫 나라들 사이의 제국주의적 경쟁으로 치닫는 것을 방지할 국제주의적 공헌을 아울러 강조합니다. 요컨대 “애국심과 국제주의의 종합”입니다. 이런 국제주의라면 “국가와 민족들 간의 ‘최상의 종류의 평등과 상호적 우월성’을 인정함으로써 인종적 우월감과 제국주의적 지배라는 무지한 오만을 추방”5)할 수 있으리라는 그의 낙관이 마냥 공상적인 것 만도 아닐 겁니다.
양극화가 국가주의를 뒤집어쓰고 그 모태인 세계화조차 위협하는 요즘의 반전을 새기건대, 민족주 의를 배양하면서 견제할 국제주의가 더 현실적일지도 모릅니다. 물론 민족주의를 어디까지나 방편으 로 삼는 데 투철해야 합니다. 민족주의와 제국주의는 동전의 양면입니다. 방임하면 제국주의로 건너가 는 민족주의가 아니라 국가에 대한 민주적 개입이 확산되는 ‘지루한 성공’의 도정에서 점차 차별 없는 대동(大同)세계에 다가가는 그런 민족주의를 여하히 기획하는가? 민주주의가 민족주의 내부뿐만 아 니라 민족주의 사이에도 작동하는 국제주의를 비패권적 국제주의라고 할 수 있을 터인데, 한국이 해 방되었을 때 선승 만공(滿空)이 수덕사(修德寺)에서 설한 「세계일화(世界一花)」(1945.8.16.)가 그 아름다 운 표현일 것입니다. 잠깐 인용하겠습니다.

너와 내가 둘이 아니요, 이 나라 저 나라가 둘이 아니요, 이 세상 모든 것이 한 송이 꽃이다. (…) 지렁이 한 마리도  부처로 보고 참새 한 마리도 부처로 보고 심지어 저 미웠던 원수들마저도 부처로 봐야 (…) 세상 모두가 편안할 것.6)

세계일화의 국제주의는 19세기를 일통한 ‘영국의 평화(Pax Britannica)’가 아닙니다. 미국과 소련이 20세기를 지배한 양극체제도 아닙니다. 일극도 양극도 아닌 문명권들의 평화공존에 기초한 다원적 국 제주의가 당장의 목표로 될 것입니다만, 지역 안에서 패권을 추구하는 예컨대 왕년의 대동아공영권 (大東亞共榮圈)도 배제됩니다. 최근의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적 진전은 현단계 지구촌이 일극 또는 양 극 패권은 물론이고 과두적 지배도 허락하지 않는 지점에 처한 덕이기도 합니다.
대동으로 가는 중간단계로 설정함직한 다원적 국제주의는 지역(region)을 중심으로 삼는 게 자연 스럽습니다. 유럽은 유럽대로, 아프리카는 아프리카대로, 중남미는 중남미대로, 북미는 북미대로, 그리 고 아시아는 아시아대로, ‘생활세계’의 논리 따라 협력의 수준을 높여간다면 호혜평등의 국제주의 또한 그다지 먼 일은 아닐 것입니다. 아시아는 넓습니다. 동아시아사람들에게는 ‘여기가 로도스’입니다. 한중 일 세 나라 작가들이 먼저 동아시아의 이름으로 모인 이 포럼은 그 뜻깊은 증거입니다.
누차 강조되었듯이, 19세기 이후 뚜렷해진 서구라는 잣대를 거부하는 것이 아님은 물론입니다. 그 이전에는 아시아가 서구를 압도했다고 위로해도 19세기 이후가 현실입니다. 자본주의 세계체제가 전지구를 석권한 이래 ‘미국의 평화(Pax Americana)’가 도전에 직면한 지금 이 순간에도 서구는 우리 안 에 내장(內裝)되어 있습니다. 동아시아국제주의는 우선 동아시아를 특권화하는 것을 반대합니다. 서 구를 괄호치고 아시아를 인류를 구할 최후의 장소로 들어 올리는 동아시아주의는 자칫 ‘반유럽중심주 의적 유럽중심주의(anti-Eurocentric Eurocentrism, 이매뉴얼 월러스틴)’의 아류로 떨어질 위험이 농 후하기 때문에 정중히 사절합니다. 우리가 이곳에 지금 살고 있다는 실존적 감각에 충실한 동아시아 국제주의야말로 세계일화의 국제주의로 가는 지름길일 것입니다.
최근 동북아시아의 정치외교적 진전은 다행스럽기 짝이 없는 일입니다. 다만 그것이 정상들의 결단 에 의해 극적으로 전개된 데서 보이듯 ‘민제(民際, inter-civic)’가 간과될 우려가 없지 않은 게 걸립니 다. 아울러 남북미 중심이 다시 탈아입구(脫亞入歐) 바람을 슬그머니 일으켜 우리 스스로 동아시아를 주변화하지 않을까 하는 우려도 커집니다. 북핵의 평화로운 해결에서 중국은 물론 일본도 기여할 바가 적지 않기 때문에 동아시아가 함께 지혜를 모을 때입니다. 20세기 동아시아가 끼친 어두운 그림자가 여전히 무겁지만 그 때문에 더욱 그를 극복하려는 동아시아 시민들의 교류와 합작이 절실히 요구되는 이때 열리는 우리 포럼이야말로 때를 맞춘 것(時中)입니다.

4. 나중 된 자가 먼저 된다

다른 지역들과 달리 동아시아 작가들의 모임이 왜 이처럼 늦었을까요? 사실 이 지역에는 근대 이전 동아시아 공동 문어인 고문을 통한 독서공동체가 강고했습니다만, 특히 명(明) 이후 쇄국정책이 동아 시아를 지배하면서 사행(使行)만 겨우 허용된 채 민간교류가 거의 실종했습니다. 사행에 부속된 문학 이란 원천적으로 국가이성적 만남에 제한된 지라, 마음의 연대는 거의 불가능했습니다. 조선의 경우 사행문학인 동시에 탈(脫)사행문학으로 되는 박지원(朴趾源, 1735~1807)의 『열하일기(熱河日記)』 같은 걸작이 생산되기도 했지만 이는 예외적입니다. 호혜평등의 국제주의에 기초한 문학포럼의 출현은 역시 근대의 산물입니다. 동아시아의 근대는 불우했습니다. 일본은 제국으로 부상하는데 한국은 식민지, 중국은 반식민지로 전락하면서 공동 문어의 해체에 따른 각 국민문학의 건설이 비균질적인지라 동아 시아 근대문학은 크게 보면 서구문학에 각기 분리지배되었다고 할 수도 있습니다. 물론 ‘대동아문학자 대회(大東亞文學者大會, 1942~1944)’라는 조직이 출현하기도 했지만 이는 내용과 형식 양면에서 외재 적입니다. 이런 연유로 동아시아는 지역협력도 늦었고 문학교류는 더욱 지연된 것입니다.
정치적 풍파들을 이겨낸 우리 포럼은 기적입니다. 쌍무적 관계가 아니라 다자간 관계로 나아간다는 것은 갈라파고스 현상을 넘어서 우리가 딛고 사는 이 지역을 하나의 생활세계로 여기는 실존적 사유 의 비로섬인데, 사유는 운동입니다. 지난 10년의 교류 속에서 자연스럽게 세계와 관계하는 우리의 방식이 어딘지 조금씩 새로워져 왔습니다. 대안의 한 가능성으로서 다른 동아시아의 도래에 대한 꿈이 시나브로 우리의 공감각(共感覺)으로 자리 잡은 바, 상호무지를 정당화한 서구문학 해바라기에 등을 돌리고 서구문학과 대화하는 동아시아문학의 출현을 희망할 고비에 간신히 도착한 듯도 싶습니다.
서양이나 동아시아나 시간차는 있지만 문학의 위엄이 하락하는 추세입니다. 공교롭게도 우리 포럼 은 한중일 세 나라 공통적으로 문학의 지위가 도전받을 즈음 출범했습니다. 문학의 위치가 유난히 우 뚝했던지라 충격은 컸습니다. 아마도 우리가 그 모든 갈등을 가로질러 이렇게 공동의 집을 지을 수 있 었던 것도 국민문학의 일국주의적 피로 덕일지도 모릅니다. 우리 포럼은 경계를 넘는 관용의 모험입니 다. 관용은 영혼을 자유롭게 합니다. 자유는 연대의 기초입니다. 자기 과제에 집중하는 것과 동아시아 와 소통하는 작업이 어떤 경지에서 홀연 하나로 되는 경험들에 의지하여 한국문학도 아니고 일본문학 도 아니고 중국문학도 아닌, 동시에 중국문학이면서 일본문학이면서 또 한국문학이기도 한 그 동아시 아문학에 다가선다면 더할 나위 없을 것입니다. 문화가 생활이라면 문학은 의식이며 운동입니다. 포럼 이전과 이후에 돋아난 개척적인 맹아들을 비판적으로 계승하여 한 걸음 한 걸음 높여간다면 그 이상 이 그냥 꿈만은 아닐 것입니다. 동아시아문학포럼의 입구는 세계문학의 한 단위로서의 지역문학의 성 립이지만 그 출구에 세계문학으로 빠지는 토끼굴이 있을지 모릅니다. 여러분 가운데 누군가 이 공동 의 집에서 살았던 경험을 바탕으로 나중 된 자가 먼저 되는 황금의 열쇠를 찾으신다면, 제가 그 첫 독 자가 될 영예를 누리게 해주시기를 희망합니다. 감사합니다.


1) 그 경과는 다음과 같다. 1회 2008년 서울, 2회 2010년 기타큐슈(北九州), 3회 2015년 베이징(北京), 4회 2018년 서울.
2) 소로는 건물의 아름다움이란 건축가가 부여한 겉모습이 아니라 거주자의 생활을 바탕으로 한 내부의 기품이 외부로 자연스럽게 나타난 결과란 점에서 거주자야말로 참된 의미의 유일한 건축가라고 설파했다. 헨리 데이빗 소로우, 강승영 옮김, 『월든』, 은행나무, 2011, 77쪽. Henry David Thoreau, Walden, New York: The New American Library of World Literature, Inc., 1960, 37쪽.
3) 홍완석 칼럼, 「불안을 먹고 큰 ‘푸틴’」, 《동아일보》, 2018.3.20. 러시아 국민은 이번 대선에서도 서방에 의해 ‘포위당한 요새’ 러시아를 방어하겠다는 푸틴의 약속에 껴묻은 정치적 자유의 유보라는 국가권력의 자의성에 압도적으로 동의함으로써 ‘푸틴과의 계약(Putin Contract)’을 연장했다.
4) 이는 합헌적 사회주의의 길을 선언한 영국 페이비언협회(Fabian Society, 1884년 창립)에 참여한 버나드 쇼(George BernardShaw, 1856~1950)의 말이다. ‘점진성의 불가피성’이라는 원칙에 입각해 개량주의라는 비판을 무릅쓰고 낭만적 아나키즘과 혁명적 마르크스주의를 거부하면서 버나드 쇼는 말한다. “페이비언협회가 파국론자들의 비아냥 속에서 바리케이드에 등을 돌리고 영웅적인 패배보다는 지루한(즉 오랜 시간이 걸리는) 성공을 택하기로 마음먹은 것은 1885년이다.” 버나드 쇼, 고세훈 옮김, 「1908년판 서문」, 『페이비언 사회주의』, 아카넷, 2006, 75쪽.
5) 시드니 웨브, 「1920년판 서문」, 『페이비언 사회주의』, 61~62쪽.
6) 이 구절은 왕유(王維)에서 유래한다. 바이두바이커(百度百科)에 의하건대 「육조혜능선사비명(六祖慧能禪師碑銘)」의 게(揭)에 “세계일화 조종육엽(世界一花 祖宗六葉)”이란 구절이 분명하다. 자료를 찾아준 제자 김성(金星) 군에 감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