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을 기획하며 동아시아문학 공동의 집 시간과 우리 작가와 작품, 독자와 현실의 틈새에 서서 ①주요 발제문 다시 읽기➍ 작품교류-전통 ①주요 발제문 다시 읽기➎ 작품교류-차이 ①주요 발제문 다시 읽기➏ 작품교류-미래 ①주요 발제문 다시 읽기➐ 작품교류-독자 ②한중일 동아시아문학포럼 참관기 ③한중일 대표 공동 기자간담회
속간 《문예중앙》, 2010년 가을 통권 제123호로부터
숲은 아름답고 깊지만 내겐 지켜야 할 약속이 있네 아직 가야 할 길이 남아있네
①기차를 타고 밤 약속,월동준비 ②당분간 달콤,홀로그래피
①최근 역사 영화의 한 경향에 대해 ②그러면, 그러면, 그러면 ③주인도 제목도 없는
내 글쓰기의 스승
인간의 성장이 있는 모든 곳에 스승이 존재한다. 스승은 항상 스 승 그 이상이다. 특정한 한 인물만이 아니라 만물이 다 스승이다. 특 히 시인에게 그렇다. 시냇물, 촛불, 망각, 무지몽매함, 문손잡이, 처마 끝 가장자리, 벼랑, 바다. 감기, 무한고독, 램프의 빛, 나무, 달……. 내가 알고 있는 모든 것은 그것들에서 왔다. 스승은 가르치는 자가 아니라 내 안에 숨은 진짜 자아를 발견하도록 이끄는 자다. 그리고 내 안의 꺼진 램프에 작은 불씨를 붙여주는 자다. 램프의 불꽃에 영 감과 사색을 불어넣고 그것을 고양시켜 커다란 화염으로 키우는 것 은 본인의 몫이다.
젊은 날 나는 독학으로 문학 습작을 했다. 딱히 스승으로 따를 인 물이 주변에 없었다. 나는 주로 시립도서관에서 좋아하는 책을 곶 감 빼먹듯이 찾아 읽었는데, 그랬으니 내 글쓰기의 스승은 수천 명 을 꼽을 수도 있다. 그 중에서 기억에 남을 만한 딱 한 저자를 꼽으 라면 단연코 프랑스의 시학자이자 과학철학자인 가스통 바슐라르 (1884~1962)를 들겠다.
가스통 바슐라르, 그 역시 독학자였다. 1884년 프랑스 북동부의 상파뉴의 작은 마을에서 태어난 그는 집안 사정으로 우체국 직원으 로 근무하면서 혼자 책을 읽었다. 제1차 세계대전이 터지자 결혼한 지 3주 만에 사병으로 징집되었다. 그 뒤 장교시험을 거쳐 통신장교가 되었다가 35세 때 제대했다. 전쟁이 끝난 뒤 고향의 모교에서 중학교 교사를 하면서 마흔 무렵 수학과 물리학 학사와 철학 교수 자격을 얻었다. 일찍이 아내와 사별하고 딸을 혼자 키우며 오랫 동안 독학의 고독과 마주한 끝에 1927년 소르본대학교에서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그리고 디종 대학교 교수를 거쳐 소르본대학교에서 과학철학사와 과학사 교수로 재직했다.
내가 읽은 바슐라르의 첫 책은 『초의 시학』(각기 다른 국역본은 네 종이 나왔다. 최근에는 『촛 불』이라는 제목으로 출간되었다)이다. 이 책은 바슐라르가 죽기 한 해 전에 쓴 시적 몽상에 관한 책이다. 마흔 해 전 서울의 한 시립도서관 참고열람실 창가 자리에서 이 책을 읽었다. 마침 창문을 통해 비쳐 들어온 햇살이 어깨를 넘어 펼친 책장 위로 떨어졌다. 나는 순도가 높은 햇빛에 물든 책장에 고개를 박고 마치 그것을 씹어 삼킬 듯이 몰두했다.
바슐라르는 어두운 물질에 빛이라는 생명을 부여하는 램프에 매혹되어 시적 몽상을 펼친다. 램 프에서 퍼져 나오는 빛은 세계의 싹이다. 우리는 고독 속에서 시적 몽상을 키우며 저 어린 시절의 추억을 소환한다. 구형(球形)의 유리 용기 안에서 타오른 노란 불꽃은 순수한 파동으로 우리 존재 를 부드럽게 감싸며 내면으로 스며든다. 고요한 불의 완만한 시선을 던지는 램프의 빛 속에서 우 리는 그 누구도 아닌 자신을 발명한다. 램프는 기름에 의지해 빛을 밝히는데, “노란 기름은 빛의 질료 자체이고, 아름다운 노란 기름은 응축된 빛, 팽창되고 싶어 하는 응축된 빛”인 것이다. 저녁 에 켠 램프는 밤의 어둠 속에서 타오르다가 새벽이 되어서야 꺼진다. 밤새도록 타오르는 램프, 부 드러운 우정의 빛을 던져주는 램프! 램프가 건네주는 부드러운 빛은 지속하는 우정이고 행복이 다. 바슐라르는 “램프는 첫 페이지부터 ‘존재’다”라고 쓴 뒤 이어서 “책의 화자가 자신이 어느 인적 없는 고원, 어느 인적 없는 집, 벽이 둘러쳐진 어느 텅 빈 정원에 자리 잡았음을 말하는 첫 여섯 줄이 씌어지자마자 램프가 개입한다. 타인의 램프, 멀리서 보이는 램프, 예상치 못한 램프다”라고 쓴다. 그렇게 램프의 몽상가는 한 시인으로 탄생한다. 시인은 고독 속에 유폐된 가운데 오직 그것이 이끄는 대로 저 우주를 향해 나아가는 몽상을 펼친다.
나를 시인으로 이끈 것은 타인의 램프, 우리 존재 바깥에서 빛나는, 저 멀리 있는 램프다. 그 램 프의 빛이 내 안의 꺼진 램프를, 어둠 속에 방치되어 있던 램프에 불을 점화시킨다. 내 안의 램프 에 불이 당겨지자마자 나는 불가피하게 ‘쓰는 자’로 호명되었다. “램프가 비추는 책상 위에, 백지 의 고독이 펼쳐지면, 고독은 증가한다. 백지! 가로질러야 하지만, 한 번도 가로지른 적 없는 이 거 대한 사막. 밤샘 때마다 하얗게 남은 이 백지는 끝없이 다시 시작되는 고독의 큰 징표가 아닌가?” 램프의 창백한 빛 아래 펼쳐진 백지의 고독과 마주하면서 나는 모든 것을 다시 시작하는 자, 날마다 무언가를 쓰는 자로 진화했다.
나는 이 기적 같이 다가온 책 『초의 시학』에서 눈을 떼지 못한 채 눈으로 그것을 남김없이 다 마 셔버렸다. 이성 저 너머 무의식의 상상력과 환상의 세계로 이끈 바슐라르의 첫 책을 다 읽고 난 뒤 나는 내면 형질이 바뀌어버린 걸 깨달았다. 나는 어떤 기운과 영감에 이끌려 한 번도 체계적으로 배운 바 없는 문학평론이란 걸 처음 썼다. 어느 날 우연히 시작한 그 작업을 마흔 해가 넘도록 하게 될 줄을 몰랐다. 나는 『초의 불꽃』을 시작으로 『몽상의 시학』 『물과 꿈』 『공기와 꿈』 『공간의 시 학』 『불의 정신분석』 『대지 그리고 의식의 몽상』 등 바슐라르의 국역된 책들을 닥치는 대로 섭렵했다. 20대 초반의 나를 문학평론의 길로 안내한 바슐라르를 내 우연의 운명을 창조하는 촉매 역할을 한 스승이라고 불러도 좋지 않을까?
내 글의 스승, 가스통 바슐라르
글 장석주 ㅣ 시인, 평론가, 1955년생
저서 『글쓰기는 스타일이다』 『은유의 힘』 『나를 살리는 글쓰기』, 산문집 『가만히 혼자 웃고 싶은 오후』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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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날 나는 독학으로 문학 습작을 했다. 딱히 스승으로 따를 인 물이 주변에 없었다. 나는 주로 시립도서관에서 좋아하는 책을 곶 감 빼먹듯이 찾아 읽었는데, 그랬으니 내 글쓰기의 스승은 수천 명 을 꼽을 수도 있다. 그 중에서 기억에 남을 만한 딱 한 저자를 꼽으 라면 단연코 프랑스의 시학자이자 과학철학자인 가스통 바슐라르 (1884~1962)를 들겠다.
가스통 바슐라르, 그 역시 독학자였다. 1884년 프랑스 북동부의 상파뉴의 작은 마을에서 태어난 그는 집안 사정으로 우체국 직원으 로 근무하면서 혼자 책을 읽었다. 제1차 세계대전이 터지자 결혼한 지 3주 만에 사병으로 징집되었다. 그 뒤 장교시험을 거쳐 통신장교가 되었다가 35세 때 제대했다. 전쟁이 끝난 뒤 고향의 모교에서 중학교 교사를 하면서 마흔 무렵 수학과 물리학 학사와 철학 교수 자격을 얻었다. 일찍이 아내와 사별하고 딸을 혼자 키우며 오랫 동안 독학의 고독과 마주한 끝에 1927년 소르본대학교에서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그리고 디종 대학교 교수를 거쳐 소르본대학교에서 과학철학사와 과학사 교수로 재직했다.
내가 읽은 바슐라르의 첫 책은 『초의 시학』(각기 다른 국역본은 네 종이 나왔다. 최근에는 『촛 불』이라는 제목으로 출간되었다)이다. 이 책은 바슐라르가 죽기 한 해 전에 쓴 시적 몽상에 관한 책이다. 마흔 해 전 서울의 한 시립도서관 참고열람실 창가 자리에서 이 책을 읽었다. 마침 창문을 통해 비쳐 들어온 햇살이 어깨를 넘어 펼친 책장 위로 떨어졌다. 나는 순도가 높은 햇빛에 물든 책장에 고개를 박고 마치 그것을 씹어 삼킬 듯이 몰두했다.
바슐라르는 어두운 물질에 빛이라는 생명을 부여하는 램프에 매혹되어 시적 몽상을 펼친다. 램 프에서 퍼져 나오는 빛은 세계의 싹이다. 우리는 고독 속에서 시적 몽상을 키우며 저 어린 시절의 추억을 소환한다. 구형(球形)의 유리 용기 안에서 타오른 노란 불꽃은 순수한 파동으로 우리 존재 를 부드럽게 감싸며 내면으로 스며든다. 고요한 불의 완만한 시선을 던지는 램프의 빛 속에서 우 리는 그 누구도 아닌 자신을 발명한다. 램프는 기름에 의지해 빛을 밝히는데, “노란 기름은 빛의 질료 자체이고, 아름다운 노란 기름은 응축된 빛, 팽창되고 싶어 하는 응축된 빛”인 것이다. 저녁 에 켠 램프는 밤의 어둠 속에서 타오르다가 새벽이 되어서야 꺼진다. 밤새도록 타오르는 램프, 부 드러운 우정의 빛을 던져주는 램프! 램프가 건네주는 부드러운 빛은 지속하는 우정이고 행복이 다. 바슐라르는 “램프는 첫 페이지부터 ‘존재’다”라고 쓴 뒤 이어서 “책의 화자가 자신이 어느 인적 없는 고원, 어느 인적 없는 집, 벽이 둘러쳐진 어느 텅 빈 정원에 자리 잡았음을 말하는 첫 여섯 줄이 씌어지자마자 램프가 개입한다. 타인의 램프, 멀리서 보이는 램프, 예상치 못한 램프다”라고 쓴다. 그렇게 램프의 몽상가는 한 시인으로 탄생한다. 시인은 고독 속에 유폐된 가운데 오직 그것이 이끄는 대로 저 우주를 향해 나아가는 몽상을 펼친다.
나를 시인으로 이끈 것은 타인의 램프, 우리 존재 바깥에서 빛나는, 저 멀리 있는 램프다. 그 램 프의 빛이 내 안의 꺼진 램프를, 어둠 속에 방치되어 있던 램프에 불을 점화시킨다. 내 안의 램프 에 불이 당겨지자마자 나는 불가피하게 ‘쓰는 자’로 호명되었다. “램프가 비추는 책상 위에, 백지 의 고독이 펼쳐지면, 고독은 증가한다. 백지! 가로질러야 하지만, 한 번도 가로지른 적 없는 이 거 대한 사막. 밤샘 때마다 하얗게 남은 이 백지는 끝없이 다시 시작되는 고독의 큰 징표가 아닌가?” 램프의 창백한 빛 아래 펼쳐진 백지의 고독과 마주하면서 나는 모든 것을 다시 시작하는 자, 날마다 무언가를 쓰는 자로 진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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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 기적 같이 다가온 책 『초의 시학』에서 눈을 떼지 못한 채 눈으로 그것을 남김없이 다 마 셔버렸다. 이성 저 너머 무의식의 상상력과 환상의 세계로 이끈 바슐라르의 첫 책을 다 읽고 난 뒤 나는 내면 형질이 바뀌어버린 걸 깨달았다. 나는 어떤 기운과 영감에 이끌려 한 번도 체계적으로 배운 바 없는 문학평론이란 걸 처음 썼다. 어느 날 우연히 시작한 그 작업을 마흔 해가 넘도록 하게 될 줄을 몰랐다. 나는 『초의 불꽃』을 시작으로 『몽상의 시학』 『물과 꿈』 『공기와 꿈』 『공간의 시 학』 『불의 정신분석』 『대지 그리고 의식의 몽상』 등 바슐라르의 국역된 책들을 닥치는 대로 섭렵했다. 20대 초반의 나를 문학평론의 길로 안내한 바슐라르를 내 우연의 운명을 창조하는 촉매 역할을 한 스승이라고 불러도 좋지 않을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