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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기행문
작성자 홍현정
날짜 14.03.11 조회 8823

글 / 홍현정_서울예술대학교 미디어창작학부 2학년. 제12회 대산대학문학상 동화 부문 수상자 


  공항으로 가는 동안 백지처럼 하얘진 내 머릿속에는, 남겨질 것들에 대한 미련과 걱정들이 차곡차곡 차오르기 시작했다. 출발도 하기 전에 나는 공항에서 여권을 잃어버렸고, 혹여나 떠나지 못할 수 있다는 생각이 잠시나마 나를 안도시켰던 것 같다. 하지만 여행 전날 여권 뒷면에 써놓은 휴대폰 번호 덕분에 나는 다행이(?)도 여권을 찾을 수 있었다. 12시간의 비행 후 바르셀로나로 가기 위해 경유 한 암스테르담. 새벽 5시의 유럽의 풍경은 영영 해가 떠오르지 않을 것처럼 까만 어둠에 잠겨 있었다. 칠흑 같은 어둠만큼이나 두려웠던 건 내가 한국과 점점 멀어지고 있음이었다.
  바르셀로나에 도착하자마자 첫날의 일정이 기다리고 있었다. 이대로 숙소에 가 깊은 잠을 청하고 싶었지만 함께 온 동기들을 보며 단체생활에서 민폐 덩어리가 되지 않기 위해 긴장을 늦추지 않으려 애썼다. 가우디의 미완성 유작이자 300년 전부터 현재까지, 그리고 앞으로 16년은 더 지어야 한다는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은 감히 ‘아우라’라는 말이 새어나올 만큼 웅장하고 고귀했다. 고개를 완전히 뒤로 젖히고 봐야 겨우 그 꼭대기를 볼 수 있었던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 엘리베이터를 타고 성당 위까지 올라가자 다리가 풀려 걸을 수 없었다. 덕분에 난생 처음 심장이 벌렁거린다는 느낌을 경험했다. 사족보행이라도 해야 할 만큼 두 다리로 걷는 건 위태로웠다. 회오리처럼 생긴 계단을 내려오며 창문 밖으로 콩알만 해진 사람들과 도시의 풍경이 한눈에 들어왔다. 차라리 창문이 없었으면 좋겠다고 백 번은 넘게 생각했었다. 보지 않으려 애썼지만 존재하는 걸 부재로 받아들이는 건 더없이 힘든 일이었다. 창문 너머로 공사에 임하는 인부들의 모습이 보였다. 사실 나는 성당 꼭대기까지 올라와 일하는 인부들의 모습이 더 경이로웠다. 그들은 매일 그곳에 올라가 목숨을 걸고 일을 할 테고 또다시 오늘도 살아있음에 감사하며 그곳을 내려와 집으로 돌아갈 것이다. 300년 전부터 많은 이들이 이곳에 와 목숨을 걸며 자신의 일에 임했을 거다. 그들에게 이 성당은 어떤 의미로 다가왔을까? 괜한 궁금증이 생겼던 시간이었다.
  그라나다의 알람브라 궁전에서 내려다보는 그라나다 시내의 모습은 픽션이었다. 내가 환영을 보고 있는 게 아닐까 생각할 만큼 거짓말 같은 풍경이었다. 비슷한 건물들과 외벽에 칠한 흰색의 페인트는 그들만의 무언의 약속처럼, 암호처럼 느껴졌다. 그 거짓말 같은 풍경은 론다에서도 펼쳐졌다. 누에보 다리는 밑이 보이지 않는 깊은 절벽과 절벽 사이를 잇고 있는, 그야말로 롱(long)다리였다. 다리를 더 자세히 보기 위해 반대편의 산책로를 따라 다리 밑으로 내려갔다. 헤밍웨이가 산책을 즐겼다던 그곳에서 산책이라 할 수 없는, 등산과 다름없는 산행을 해야 했다.
  세비야로 가는 버스는 심하게 굽이쳤고 덕분에 나는 멀미를 하고 말았다. 대각선에 앉은 어떤 아저씨는 세비야로 가는 내내 구두 굽으로 바닥을 치며 요란한 소리를 냈다. 나름의 박자가 있었지만 흔들리는 버스 안에서 그 소리는 오히려 내 속을 더 불편하게 만들었다. 세비야에 도착하니 비가 내리고 있었다. 가로수처럼 빼곡히 늘어선 관상용 오렌지 나무는 비바람을 못 이기고 엄청난 양의 오렌지를 도로 위에 토해냈다. 누군가 밟고 지나간 오렌지는 토사물처럼 어지럽게 널려있었고 그것을 아무렇지 않게 밟고 지나가는 사람들을 보며 나 역시 아무렇지 않은 척 하려 애썼다. 숙소는 카테드랄(성당) 맞은편에 있었다. 성당에서는 시도 때도 없이 종이 울렸고 그 소리는 돌아오는 날까지 적응되지 않아 귀를 틀어막고 지내야 했다. 세비야에서의 마지막 날 저녁엔 플라멩고를 관람했다. 그곳에서 나눠준 샹그리아는 여태껏 마셨던 샹그리아보다 밍밍했지만 플라멩고 공연은 스페인 사람들의 성격처럼 강렬했고 정열적이었다. 그제서야 버스 안에서 아저씨가 밟던 그 요란한 스텝이 플라멩고의 스텝이었음을 깨달았다.
  렌페를 타고 3시간을 달려 온 마드리드에서는 아르투로 페레즈 레베르테와의 대담이 기다리고 있었다. 내가 알고 있던 아르투로라 페레즈 레베르테라는 작가에 대한 정확한 정보는 종군기자였다던 약력뿐이었다. 나는 아르투로의 책을 읽으며 내 멋대로 만들어 낸 상상과 추측만 가지고 그를 만나러 갔다. 스페인 한림원에 소속된 아르투로의 안내를 받아 우리는 한림원의 내부를 둘러볼 수 있었다. 한국인 방문객은 우리가 처음라고 했다. 그 영광스러운 상황을 놓치지 않기 위해 나는 그곳을 찬찬히 둘러봤다. 대담은 준비해간 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작가가 젊은 날 겪었던 경험들과 지식들이 우리들의 궁금증을 불러일으켰고,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자꾸만 샘솟는 궁금증들을 질문을 대신해 묻기 시작했다. 그는 우리가 쉽게 그의 생각을 받아들일 수 있도록 세세한 예를 친절히 들어주었다. 1시간가량의 대담이 끝나고 그곳을 나오며 나는 다시금 그와의 만남을 되새겼다. 그에겐 젠틀맨이라는 수식어가 딱 어울렸다. 그리고 유머와 진지를 1:1 비율로 잘 섞을 줄 아는 작가였다. 거의 마지막 일정에 속했던 작가와의 대담 덕분에 나는 이번 여행의 본질을 새삼 깨닫게 되었다. 내가 이곳에 온 목적을 되새겼고, 그 덕분에 이번 여행의 마무리가 더 빛을 발하게 되었다.
  떠나기 전엔 등단 동기라는 것밖에는 알지 못했던 우리. 유럽에서 함께 보냈던 열흘은 같은 시간, 같은 곳에 머물렀다는 것 이상의 끈끈한 우정을 느끼게 해줬다. 스페인의 짠 음식 때문에 늘 갈증에 시달린 나에게 항상 물을 챙겨줬던 하나, 매일 새로운 질문을 하며 내가 답을 하는 동안 내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줬던 지수, 본인은 진지했으나 그 진지함에서 때 묻지 않은 순수함이 보였던 막내 응규, 인간 내비게이션이자 여행 내내 막중한 책임감으로 우리를 통솔했던 장근명 대리님, 엉뚱한 행동으로 늘 우리에게 웃음을 줬던 현지 쌤! 이 모두 덕분에 나의 첫 유럽 여행이 외롭지 않았다. 다섯 명 모두에게 고마웠다는 말을 끝으로 나의 보고문 같은 기행문을 마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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