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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문학기행문
작성자 박주현
날짜 12.03.07 조회 9289

1. 피카딜리 서커스
  히드로 공항에서 숙소까지는 멀었다. 긴 비행에 지친 몸과 짐을 질질 끌고 피카딜리에 도착했다. 숙소는 버거킹을 지나서, 도너츠와 커피를 파는 작은 가게를 지나서, 가펑클(garfunkel)이라는 바(bar)를 지나서, 그리고도 골목 두엇은 더 지나쳐야 나타나는 유스호스텔이었다. 저녁을 먹으러 간 차이나타운에서 내가 시킨 메뉴는 프라이드 누들이었는데, 정말 말 그대로 딱딱하게 튀긴 국수였다. 그 날 밤, 꿈에 몇 번이나 그 비스킷처럼 딱딱한 국수를 보았다.
  다음날 우리는 오전 일찍 숙소를 나섰다. 문 열지 않은 아케이드에 고급 캐시미어 제품과 코트, 구두들에서부터 용도를 짐작하기 어려운 사치품들이 진열되어 있거나, 진열되고 있었다. 유리그릇이나 넥타이 핀, 쟁반, 면도 도구, 트렁크, 서류가방의 다소 오만한 얼굴. 화이트 홀과 트라팔가 스퀘어에서 출근을 서두르는 바쁜 사람들 사이를 우리는 천천히 걸었다. 건물 하나하나, 하다못해 아케이드까지도 역사와 권위를 날 것으로 과시하고 있었다. 나는 수  백년이나 되는 건물과 광장을 그대로 쓰고 아직도 왕족에 열광하는 이 부유하고 완고한 나라가 낯설었다.
  점심을 먹자 부슬부슬 비가 내렸다. 차가운 바람과 비를 맞으며 대영 박물관으로 갔다.  청과 명의 도자기를 보고, 그 도자기를 복제한 네덜란드제 도자기도 보았다. 중국식 접시에 중국화풍으로 서양 옷을 입은 여자들의 그림이 있었다. 네덜란드제 접시와 주전자에는 서양의 화풍으로 수염을 길게 기른 노인과 거의 옷이 흘러내릴 듯한 화동이 그려져 있었다. 그리고 이집트에서 가져온 수많은 관과 부장품과 미이라들을 보았다. 그들은 아무도 안녕하지 않아 보여서 슬펐다. 슬펐다, 라고 쓰면서 소녀취의 감상을 적는 것은 아닌가 의심한다. 그러나 그들 중 누구도 죽은 후에 더럽고 너덜너덜해진 붕대와 바싹 마른 검은 피부를 보여주게 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런던에서는 황석영, 마거릿 드래블 선생님과 고은주 선생님의 통역으로 대화를 나눴다. 마거릿 드래블 선생님은 한중록을 읽고 받은 충격에 대해서 이야기했고 우리는 영국의 작가가 한중록으로 소설을 쓴 것에서 받은 충격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그리고 개인의 문제가 어떻게 문학적으로 형상화되고 보편성을 갖게 되는지에 대해서도 토론했다. 나는 강의를 듣는 방식이 아니라 그분들과의 대화를 통해 배울 수 있었던 자리였다는 사실에 아직도 놀라고 있다. 그 대담은 오랜 시간 현역인 작가의 에너지와 노력을 실감할 수 있는 자리이기도 했다. 황석영 선생님은 호탕한 목소리를 가진, 회갑을 넘긴 나이를 실감할 수 없는 매력적인 분이셨다. 저녁식사 자리에서 나는 입에 잘 대지도 못하는 술을 몇 잔이나 마셨다. 그리고 가장 좋아하는 작가가 누구냐는 질문에 “황석영”이라고 대답한 소설가의 맘을 알 것 같아서 혼자 웃었다.
  우리는 다시 피카딜리 서커스로 돌아왔다. 이틀 밤을 지냈을 뿐인데 숙소로 돌아오는 길이 정겨웠다. 그러니까 버거킹, 도너츠 가게, 바 가펑클, 그리고 골목 두 개를 더 지나는 그 길이.
2. 홀베인, 정물화, 프랑스식 아침식사
  파리는 면면이 뻔뻔하고 유쾌했다. 나는 그렇게 솔직한 점이 마음에 들었다. 유적들은 시대로부터 떨어져 나왔지만 여전히 시대를 증명하는 증거물이었다. 그것들이 증거물이되 완고하게 원래의 임무를 수행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반가웠다. 베르사이유 왕궁은 더 이상 왕궁이 아니면서 절대 왕권을 말했다. 19세기적 낭만을 덤핑해 파는 몽마르트와, 부르주아의 힘과 자본주의의 팽창을 증명하는 루브르 박물관과 에펠탑. 루브르에서의 자유시간 동안 나는 중세의 기독교 예술품과 르네상스 시대의 네덜란드, 독일 회화를 보았다. 홀베인과 제리코, 렘브란트와 브뤼겔의 그림 앞에 있을 수 있어서 적이 행복했다. 루브르 박물관에서 약속장소를 찾다가 길을 잃었다. 삼십여 분이나 같은 곳을 헤매면서 동화 ?클라우디아의 비밀?을 떠올렸다. 주인공 클라우디아처럼 박물관 어딘가에 숨어서 며칠 지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했다. 그러면 정말 오랫동안 홀베인의 그림 앞에서 서 있을 수 있을 텐데. 그리고 이 많은 부르주아식 정물화를 일일이 감상할 텐데.
  소르본 대학 근처에서 번역가 한유미씨를 만났다. 프랑스에서 변방의 언어를 번역하는 어려움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한유미씨의 조분조분한 말소리 뒤로 번역 작업의 외로움이 보였다. 나는 판소리를 번역해서 공연 때 자막을 올릴 수 있었다는 말에 놀랐다. 그 공연이 작았어도 성황리에 마쳤다는 말에 더 놀랐다. 어떤 힘이 변방의 언어를 프랑스어로 번역하는 외로운 작업을 계속하게 해 주는지 조금 알 것도 같았다. 
  파리에서는 호텔에서 제공하는 프랑스식 아침식사를 먹었다. 따뜻한 크라상, 바게트, 버터, 잼, 시리얼, 우유, 커피, 뜨거운 초콜릿. 어느 것이나 내가 좋아하는 것들이었다. 파리로 떠나기 전에 파리에 대해서 듣거나 읽은 말들은 이런 것들이었다. 여자와 관광객의 가방을 뺏는 강도, 소매치기, 몽마르트, 낭만과 낭만에 대한 환상. 중심가에서 좀 걸어야 나오는 작고 오래된 호텔의 아침식사가 이렇게 풍요로울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었다.
  프랑스식 아침식사는 두 번이었다. 마지막 날에 작고 둥근 바게트와 잼을 주머니에 넣고 식당을 빠져나왔다. 빵과 잼은 베네치아로 가는 야간열차에서 먹어치웠다.
3. 시칠리아
  베네치아에서 하루, 피렌체를 거쳐 로마에서 이틀을 묵은 다음 도착한 곳은 시칠리아였다. 우리가 있었던 도시는 팔레르모. 편견과 사사로운 감정이입을 동원해서 이야기하자면 가장 아름답고 가장 더러웠던 도시, 런던과 파리를 더한 것보다도 더 매혹적인 도시, 마블링을 한 것처럼 색색의 원색들이 한데 엉켜 하나의 그림을 만들어내는 도시라고 말하겠다. 한 걸음 한 걸음마다 매번 다른 모습을 보여주는 이상한 도시. 열대식물 너머로 보이는 눈 덮인 에트나 산이 그렇고 아르누보양식이 섞인 전통 유리그릇을 파는 상점이, 이슬람식 지붕을 가진 가톨릭 예배당이 그렇다. 다종다양한 양식들이 한데 어울리는 것을 보면서 시칠리아에, 팔레르모에 자기 식으로 집을 지어놓은 수많은 정복자들에 대해서 생각했다.
  시칠리아의 바다를 보겠다고 호텔로 돌아가지 않은 사람들은 나를 포함해서 전부 넷이었다. 우리 일행이 항구로 발걸음을 돌릴 때 부슬부슬 내리기 시작한 비는 이내 소나기처럼 쏟아졌다. 바람이 강하게 불었고 비는 우박이었다가 진눈깨비였다가, 자꾸 모습을 바꿨다. 팔레르모 중심시가지를 벗어나자 거리는 인적이 뜸하고 지저분한 쓸쓸한 곳으로 변했다. 어쩌다 만나게 되는 사람들은 머리부터 발끝까지 흠뻑 젖어서 열심히 걷는 동양인을 신기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한참을 걸어서 요트가 줄줄이 정박해 있는 곳에 도착하자 비는 폭우에 가깝게 쏟아졌다. 같이 걸어오고도 잠시 보이지 않던 막내 미선이가 돌아와서 세이벨라가 무슨 뜻이냐고 물었다. 당연하게도, 아무도 그 뜻을 몰랐다. 검푸른 바다는 아름답고 또 무서웠다. 우리는 진눈깨비였다가 우박이었다가 하는 비를 맞으며 호텔로 걸어 돌아왔다. 
  “세 이 벨라? 아, 그건 네가 예쁘다는 뜻이야. 여자는 벨라. 남자는 벨로.”
  리오토 교수님과 저녁을 먹기로 약속되어 있었다. 미선이가 낮에 시칠리아 남자로부터 들은 말의 뜻을 물었다. 우리는 다함께 교수님이 번역하신 책을 출판한 노베첸토 출판사에 들렀다. 그곳은 갤러리라고 불러도 좋을 만큼 상당한 현대미술작품들이 수집되어 있었다. 앤디워홀의 마릴린 몬로부터 바우하우스식 의자들까지. 한 번도 그런 미술품들을 사적인 공간에서 만난 적이 없었다.
  리오토 교수님의 집은 구석구석 한국의 인형들과 골동품으로 장식된 아늑한 곳이었다. 그리고 이탈리아식 저녁식사, 거나하고, 흥겹고, 즐거웠던. 올리브로 만든 갖가지 요리. 아몬드로 만든 과일 모양 과자, 마르치판 푸르트. 크림이 들어간 비스킷과 모차렐라와 술과 술, 술. 내가 술을 못 마시는 것이 아쉬웠던 딱 한 번. 우유와 설탕을 넣은 에스프레소. 이탈리아 전통 음식들 사이로 한국에 대한 애정이 깃든 걱정과 비판이 오갔다. 맹렬하고 직설적이었지만 애정 어린 충고임에 틀림없었다. 아니라면 굳이 한국말로 이야기할 필요도 없었을 것이다. 분에 넘치는 환대 속에서 우리는 시칠리아 사람들처럼 큰 소리로 말하고 큰소리로 웃었다. 우리가 자리를 털고 일어선 것은 거의 12시가 다 되어서였다.
4. 벨라 혹은 벨로
  짧은 시간에 바쁘게 다닌 여정이었다.
  돌아와서 무엇을 보았냐는 물음에 답하려다 갑자기 말문이 막혔다. 나는 아름답다고 생각한 많은 것들을 보고, 매번 셔터를 누르고 돌아왔지만 어디나 아름다운 곳에는 사람이 있었다. 사람 때문에 아름다운 것이었다. 가장 아름답지 않은 존재인 사람 때문에. 지금은 사람이 살지 않는 폐허에 가까운 유적지마저도 오래 전에는 사람이 살았던 곳. 어느 곳이나 사람이 다닌 길, 언제나 사람이 살아온 시간, 어디에나 사람이 붙여준 이름. 어쩌면 내가 여행하며 만난 모든 것을 오독하고 돌아왔더라도 사람이 아름답다는 사실은 오답이 아니길 바란다. 그래서 어째서 우리는 한 번도 싸우지 않았던 것일까 하고 생각한다. 긴 여행은 아니었지만 수상전까지 전혀 모르던 사람들이 보름이나 종일 붙어 다녔는데 우리는 싸우지 않았다. 지나치게 서로를 배려한 것은 아예 서로를 무시하는 것과 같았던 것은 아닐까, 여행이 끝나고서야 반성한다.
  팔레르모에서 보았던 토끼와 고양이, 개를 키우면서 구걸하는 남자는 어떻게 되었을까. 동물들은 몸을 떨며 한데 모여 있었는데.
 소중한 경험을 만들어주신 대산문화재단과 다섯이나 되는 어른 학생들을 인솔하느라 애쓰신 김효진, 전성우 선생님께 감사하다는 말씀도 지면을 통해 드려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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