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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문학기행문
작성자 정기선
날짜 12.03.07 조회 8869

저희들의 일정 그러니까 동선을 기행문에서는 자세히 소개하지는 않으렵니다. 제 또래 대학생들이 몇 개월씩 돈을 모으고, 부모님의 호주머니를 조르고 쥐어 짜 오는 유럽이기에 자세한 저희들의 동선을 자세하게 소개하는 것도 중요하겠지요. 시시한 여행담을 들려주는 대신 자세한 일정과 주의 사항을 일러주는 것도 기행문이 맡은 중요한 임무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민족문화 창달’과 ‘한국문학의 세계화’를 바라는 대산문화재단이 지원해주는 해외문학기행이기 때문에 다른 대학생들의 배낭여행과는 틀리겠죠. 여기에서 저는 대산문화재단만이 계획할 수 있는 해외문학기행을, 또 대산대학문학상 수상자들만의 누릴 수 있는 문학기행을 이야기해보려고 합니다.
 
1. 조선의 소년
 
기행 첫날 런던의 언더그라운드를 뚫고 나와 우리들은 런던 피카딜리 서커스에 서 있었습니다. 기행 첫날부터 백색 문명의 본거지이자 제국주의의 첨병이었던 런던은 조선에서 온 소년과 소녀들의 기를 죽이기 시작하더군요. 조선에 이런 건물들이 있었다면 모두 사적(史蹟)에 등록될 건물들이 줄을 지어 서 있는 게 아니겠습니까? 어린 시절 상상하던 피터 팬이 똑똑 창문을 두들길 거 같은 건물들이 너무도 흔하게 서 있는데 저는 할 말을 잃었습니다. 우리가 애독해오는 동화의 무대가 여기에서는 너무 쉽게 이루어져있다니 명작 동화의 맛은 극동 그것도 조선 아이들에게 더욱더 다가오는 거 같습니다. 그리니치 천문대를 통해 지구축과 시간의 중심을 자신들의 나라에 두고 있다는 사실을 떠올려 보면 제가 쉽게 기가 죽는 것도 마냥 이해 못할 일만은 아닌 거 같습니다.
다음날 런던 시내를 관광하는 내내 저는 서울 중구 남대문로에 서 있는 한국은행 본관을 계속 떠올렸습니다. 일본 메이지 시대 신건축의 권위자였던 다쓰노 긴고(辰野金吾)가 설계한 한국은행 본관 말입니다. 이 건물이 현재 사적 제280호라는 걸 확인해 볼 때 근대에 형성된 우리의 문화유산들이 ‘이식문화’의 일부라는 가치평가에 얼마나 쉽게 휩싸일 수 있는지 알 수 있습니다. 버킹엄 궁에서부터 트라팔가 광장, 다시 화이트홀거리에 줄지어선 사적 제280호 한국은행 본관의 원본을 보신 분들이라면 1908년생 임화의 울분을 십분 공감하실 수 있을 실겁니다. 특히 우연히 일행들이 모두 모여 펍에서 맥주를 한 잔 하면서 마주한 일본어 포스터처럼, 오늘날까지 영국과 일본이 서로의 문화를 애호하는 모습을 보면 백 년 전 근대 섬나라 문화의 종착지가 혹시 조선 반도가 아니었을까? 하는 의구심마저 듭니다.
이러한 식민주의의 원본을 바라보는 조선 소년의 울분은 프랑스에서 또 다른 호기심으로 드러났습니다. 호기심은 화려했던 베르사유 궁전의 영광에서 드러난 것이 아니라 몽마르트르 언덕에 있는 사크레쾨르 대성당과 노트르담 성당에 가득 새겨진 황홀한 신앙들에서 발분했죠. 프랑스에서는 어느 종교보다도 가톨릭 신자가 대다수이며 이것은 오랜 종교 전통이기도 합니다. 이러한 종교 전통을 따져볼 때 베르사유 궁전은 인간이 추구한 모든 권위의 종착지였고, 이들 성당들은 신에 대한 경외와 찬양의 출발점이었을 것입니다. 아직 신앙에 대해 깊은 반성과 자각을 이루어보지 못한 저에게 이들이 보여준 헌신은 또 하나의 영성이었습니다. 결국 조선의 소년은 유럽 그것도 현대 패션의 도시 파리에서 불멸의 영성이 미메시스로 고정된 현장에 서 있었던 행운을 움켜질 수 있었죠. 다시 말해 그리스도교의 보편성을 프랑스에서는 찬란한 조각상으로 해석해 놓은 것을 보면 각자가 가지고 있는 문화의 특수성을 이해할 때 이식이나 식민지, 피지배의 굴레도 우리 스스로 청산할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2. 한국의 청년
 
앞에서 조선 소년이 풀어놓은 이야기들은 대산문화재단만이 계획할 수 있는 해외문학기행이나 대산대학문학상 수상자들만이 누릴 수 있는 문학기행의 알맹이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동아리 선후배들이나 친구들이 팀을 짜서 유럽에 들리는 호텔팩이나 단신으로 용력하는 배낭여행도 이 정도 생각의 틀은 짤 수가 있겠죠. 무엇보다 조선의 소년이 한국의 청년으로 성숙할 수 있었던 것은 조선이 아니라 한국에 관심을 가지고, 한국문학을 연구하고 나아가 한국학에 전력을 다하는 분들을 만나기 시작하면서부터입니다.
한국과 영국의 대작가들인 황석영님과 마그릿 드레블님의 대담에 참여해 귀중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던 것은 잊지 못할 영광이었습니다. 문학판에 발을 내밀기 시작한 제3회 대산대학문학상 수상자들에게 해주신 소중한 말씀들 지금도 깊이 새겨집니다. ‘살아남아라.’라는 격려에 생존에 대한 각오와 뒤따라 뛰어난 작품을 창출하는 것만이 훌륭한 답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둔한 저는 조금은 늦겠지만 함께한 다른 친구들은 두 작가 분들의 기대에 서둘러 응답하리라 믿습니다.
그러나 한국문학 연구자와 넓게는 세계 학문으로 한국학 연구를 지망하는 저에게 무엇보다도 이번 문학기행은 저에게 무진(無盡)의 곳간을 보여준 것과도 같았습니다. SOAS의 고은주 교수님이나 나폴리대학의 마우리치오 리오또 교수님이 보여주신 한국에 대한 애정과 한국학에 대한 자부심만은 잊을 수가 없습니다. 물론 세계에서 한국이 얼마나 홀대받는 국가인지 알고는 있었지만 해외 한국학 연구자들로부터 듣는 현실은 고립과 고독이었습니다. 그러나 비단 부정적인 현실만이 가득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한류(韓流)처럼 한국 대중문화에 대한 관심이 세계적으로 높아지면서 한국학 연구에 지원하는 외국인 학생도 늘어나고 있고, 대산문화재단처럼 지속적인 투자를 하고 있는 단체도 늘어나고 있다는 긍정적인 현실은 또 다른 가능성이라는 걸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또 이번 문학기행을 통해 저는 유학을 위한 세부적인 정보를 캐고 모으는 단계가 아니라 해외 한국학의 성과와 현실에 대해서 밑그림을 그려볼 수 있었습니다.
게다가 유럽의 엘리트 지식인들 스스로가 자존심으로 생각하는 인문학 연구 풍토는 유럽의 엘리트 지식인들과 직접 대화를 나누지 못했다면 배울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이분들과 나눈 대화를 통해 미국 중심주의 함몰되어 있는 반도 조선에서, 미국을 벗어난 세계를 향해야 하는 동북아 허브 한국의 미래를 상상할 수도 있었죠. 조선의 소년에서 한국의 청년으로 제가 청운(靑雲)의 꿈을 꿀 수 있었다고 할까요? 이 분들 외에도 번역가 한유미님을 뵙는 것 역시 제가 스무 살 중반에 한국문학 연구와 한국학 연구라는 진로에 대해서 다시 한 번 확신을 할 수 있었던 계기였습니다. 해외 문학기행을 통해 새로운 결심과 기회를 찾을 수 있었던 것만큼은 대산문화재단이 베풀어준 기회였으며 대산대학문학상 수상자인 저만이 누릴 수 있는 혜택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정리
문학 기행 출발 전부터 제 기행문은 이미 시작되었습니다, 주어진 일정을 따라 유럽의 역사책을 대략 살펴보기도 하고, 주어진 책임을 소화하기 위해 인터넷을 검색하면서 마거릿 드래블이나 해외에서 한국학 연구를 하고 계신 분들에게 여쭈어 볼 질문을 준비하기도 했죠. 문학 기행이 끝나고 지금 생각해보면 제 준비가 어찌나 소홀했던지 부끄럽기 짝이 없습니다. 한 가지 우화를 들려드리자면 저는 이탈리아를 제대로 알지 못해 그 나라가 서방선진7개국 G7의 일원인지도 알지 못했습니다. 그러다가 로마 테르미니 역 안에 있는 대형 서점과 서점 한가운데 서양 고전들의 가득 쌓여 있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그보다 놀란 것은 서점 한편에 영어 서적이 수북이 쌓여 있는 모습이었습니다. 대중들이 오고 가는 역 서점에 영어 책을 이렇게 많이 가져다 놓는 것을 보고 영어로 독서할 수 있는 인구가 상당하다는 감탄을 부끄럽지만 하게 되었습니다.
소홀했던 준비만큼이나 짧은 기행문조차 재빨리 끝을 맺지 못하고 한참 서성인 걸 생각해보면 제가 어지간히 게으른 건 분명합니다. 부끄러운 무지와 더불어 저에게 많은 자극과 꿈을 심어준 이번 문학 기행은 저에게 분발할 것을, 더욱 분발할 것을 알려주었습니다. 함께 문학과 작가의 시련을 체험한 수상자들과 문학 기행의 전후와 좌우 모든 면에서 고생하신, 뛰어난 체력으로 저희 대학생들을 놀라게 만드신 전성우, 김효진 대리님께도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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