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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친구 여진에게
작성자 김현영
날짜 12.03.07 조회 9093

1. 인천 공항을 떠나면서.
아침 9시에 공항에 도착했어. 원래 모이기로 한 시간은 10시 30분이었는데 말이야. 공항에도착한 순간부터 머릿속이 하얘지는 걸 느꼈어. 5시간 후면 한국 하늘 아래 없는 거지. 비행기를 타기 직전 너의 전화를 받았어. 12박 13일의 여행 동안, 니가 얼마나 보고 싶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
2. 처음 밟은 런던의 거리.
12시간을 날아오니, 이곳은 밤. 공항을 빠져나오는 길은 너무 길었어. 너무 오고 싶어 하던 런던이었는데, 난 12시간의 비행에 지친 탓에 런던의 거리를 느낄 여유가 없었어. ‘여기가 정말 런던인가?’ 싶은 마음뿐이었다.
3. 다음 날 버킹엄 궁과 템즈강에서.
런던의 명소를 돌아다녔어. 버킹엄 궁과 템즈강을 봤어. 난 버킹엄 궁보다, 버킹엄 궁으로 가기 전에 깔려 있던 잔디밭이 더 좋았어. 아침 산책로로는 더없이 좋을 것 같았어. 버킹엄 궁은, 크다는 생각밖에, 다른 생각은 그다지. 템즈강을 봤는데, 템즈강이 너무 쓸쓸해 보였어. 템즈강 사진을 세 방이나 찍었다. 이렇게 고독한 느낌을 주는 강을 볼 수 있다는 건 행운일까?
4. 마거릿 드래블 여사와 황석영 선생의 간담회에서.
마거릿 드래블 여사의 집에 초대 되었어. 인솔자 선생님 말씀이 우리나라로 치면 ‘박완서 선생’ 이라고 하시더군. 그렇다면 대단한 사람인 건 분명한 거지. 아주 많은 이야기들이 오고 갔는데, 난 말은 하지 않고 아주 많은 얘기들을 듣고만 있었어. 거기서 내가 든 생각은 ‘마거릿 드래블 여사 대단한 사람이구나. 부럽다.’ ‘이런 집에 살아서 좋겠다. 글이 잘 써질 거야.’ ‘홍차가 정말 맛있구나.’ 라는 생각이었어.
  간담회가 끝나고 황석영 선생과의 저녁식사가 있었어. 아주 맛있는 일식을 사주셨는데, 배불리 먹을 수 있었지. ‘사케’도 마실 수 있었고. 저녁 식사 때에도 아주 많은 얘기들이 오고 갔는데, 아직 내가 소화하기에는 어려운 말들이었어. 마거릿 드래블 여사와의 간담회 때에도 그랬듯이. 하지만 뭐, 그 많은 말들을 언젠간 다 소화할 수 있는 날들이 오겠지.
5. 런던에서의 마지막 날.
날씨가 내내 흐리고 비가 왔었는데, 마지막 날은 하늘이 참 맑았어. 런던에서 있는 3일 내내 이런 하늘이었다면 좋았을 걸, 하는 생각이 들었어. 하지만 그건 런던 날씨가 아니지. 정말 오고 싶던 영국이었고, 런던이었는데, 정신없이 지나간 것 같아. 하지만 숙소를 떠나게 되는 건 정말 기뻤어.
1. 파리에서의 첫날.
파리다. 여진이 네가 한 달 뒷면 오게 될 파리. 너보다 먼저 파리 땅을 밟게 되는 상황이, 그 상황이 안겨다주는 기분이, 묘하다. 네가 이 거리에서 6년, 혹은 7년, 정말 긴 시간을 보낼 거란 말이지. 이 생각을 하니까, 마음이 다시....... 
  파리의 거리는...... 혼자 걸으면 고독하고,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걸으면 아름다울 것 같은 거리야. 네가 그랬었지. 파리에 혼자 유학을 오면 처음에 다들 우울증에 걸린다고. 왜 그러는지 알 것 같아. 여진 넌 부디 그런 일이 없길.
2. 몽마르뜨와 베르사유 궁전. 노틀담 성당, 세느 강변.
  베르사유 궁에서 난 우리식으로 말하면 ‘코끼리 열차’ 라는 걸 타고 베르사유 궁을 봤지. 혼자 탈 수 없어서 덕민 오빠가 같이 탔는데, 미안했어. 걷는 걸 좋아한다고 했는데, 걷지 못하고 코끼리 열차를 타다니. 베르사유 궁도 역시 크다는 생각 외에 다른 생각은 별로.
  몽마르뜨 언덕을 오르는데, 비가 왔어. 계단이 무지 많아서, 전성우 선생님이 업어주겠다고 하셨는데, 난 한사코 거절했어. 업히는 건 정말 민폐니까. 그리고 몽마르뜨 언덕을 누군가의 등에 업혀서 오른다는 건 몽마르뜨에 대한 예의가 아니겠지. 정말 아름다웠는데, 비가 와서 더 아름다웠을지도...... 그런 곳에서 커피 한잔도 못 마시고 내려온다는 사실이 안타까웠어.
  밤에 노틀담 성당엘 갔어. 지치고 피곤했지만, 노틀담 성당의 아름다움 때문에 꾹 참았지. 성당 안에 들어가서, 난 성당 안을 한참 동안 바라봤어.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유명한 세느강을 지나치는데, ‘이쁘다’라는 말이 저절로 나오더라. 밤이라 물빛은 까맣고, 그 까만 물 위로 크고 흰 유람선이 지나갔어. 정말 아름답더라. 템즈강과는 다른 분위기였어, 하지만 난 왠지 템즈강이 안쓰러워서, 템즈강에 한 표. 이런 말 하면 어떨지 모르겠지만, 세느 강은, 투신해도 좋을 장소 같아. 그럼 그 투신이 좀 아름답지 않을까? 물론 어느 강에 빠지든 물에 불은 시체가 흉측한 건 똑같겠지만 말이야.
1. 베니스에서.
베니스는 골목들이 너무 예쁘고 분위기 있었어. 휘황찬란한 길들은 아니었어. 골목들은 좁고, 어두웠어. 그런데도 골목에 아무렇게나 서 있어도, 그 모습을 필름에 담으면 영화가 될 것처럼, 골목들이 그렇게 묘한 분위기를 가져다 줬어.
  아침에 배를 타고 역으로 이동했는데, 물빛이 짙은 녹색이었어. 그런 물빛은 처음 봤어. 배에서 보는 풍경이 너무 아름다워서 배에 조금 더 있고 싶었어. 아침이라 몹시 추웠지만, 그래도. 나중에 ‘돈과 함께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다시 베니스에 오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 올 수 있겠지? 올 거라 믿어야지.
2. 로마에서.
  로마. 사람들이 ‘네기 신혼여행을 간다면 어디로 가고 싶어?’ 라고 물었을 때, 늘 대답하곤 했던 장소에 왔어. 그동안 힘들고, 가라앉아 있었는데, 로마에서는 조금 들뜬 것 같아. 트래비 분수 앞에서 사진도 찍고,(동전을 못 던져서 아쉬워) 콜로세움 앞에서도 사진을 찍고. 김효진 선생님이 찍어주셨어. 예쁘게 화장도 해주시고. 원판이 좀 부족해서 선생님의 화장술이 크게 살아나진 않았지만, 기분은 새로웠어. 화장 하나에 기분이 전환되기도 하고, ‘나도 여자 맞구나’ 라는 생각이 들더라. 
3. 시칠리아에서.
  시칠리아 날씨가 따듯하대서, 참 잘됐다고 생각했었는데, 우리가 도착하자마자 비가 내리더니 끝내는 우박이 내렸어. 기상이변이라고 하더군. 따뜻한 남쪽 나라에 우박이라니. 어이가 없었어. 하지만 덕분에 일정을 일찍 끝내고 숙소에 돌아와 편히 쉴 수 있었어. 영국 숙소와 비교도 안 되게 좋은 숙소라 흐뭇했지. 
  오후에 ‘마우리치 리오또’ 교수를 만났어. 한국학을 전공하시는데, 한국말을 아주 잘하셔. 놀라웠어. 그리고 술을 아주 좋아하셔. 난 교수님 댁에서 아주아주 맛있는 ‘라쟈니아’를 먹을 수 있었는데, 너무 맛있어서 기분이 좋았어. 술도 많이 마신 편이었지. 더 마시고 싶었지만 참았어. 숙소까지 걸어서 와야 했으니까. 리오또 교수님이 ‘타로 카드’도 봐 주셨는데, 결과는 믿을지 말지 생각중이야. 
1. 인천 공항에 도착해서.
  다시 한국 땅이야. 뭐라고 말해야 할지. 이국땅에서 세 번쯤 눈물 흘렸던 것 같아. 한번은 너무 힘들어서, 한 번은 네가 너무 보고 싶어서, 또 한 번은 그냥......
  12박 13일의 여행 동안 나는 사람들에게 너무 많은 민폐를 끼쳤어. 누군가가 내 짐을 들어주고, 나 때문에 천천히 걸어야 하고...... ‘신체의 부자유’라는 말을 곱씹고 또 곱씹어 본다. 세상에서 제일 싫은 건 ‘남에게 피해를 주는 일’인데, 이번 여행이 내가 제일 싫어하는 일을 너무도 많이 하게 될 여행이 아닐까, 떠나기 전부터 너무 걱정을 많이 했어. 걱정대로 많은 민폐를 끼쳤지. 로마 공항에서 비행기 시간 때문에 뛰어야 했을 땐, 뛰지 못하고 등에 업히기도 했어. 아름다운 곳을 많이 보았지만, 아름다운 곳을 많이 본 만큼, 딱 그 아름다움  만큼, 힘들기도 했다. 글쎄. 이미 여행은 끝났고, 당분간은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으려고 해. 아무 것도 생각하지 않는 것이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일 거야. 낯선 거리에서, 낯선 사람들 틈에서, 귀에 들리는 낯선 언어들 속에서, 네가 너무 그리웠어.
김효진 선생님, 전성우 선생님, 미선이, 주현언니, 기선오빠에게 고마움을 전한다.
늘 내 가방을 들어주고, 마지막 날에는 날 업고 뛰기까지 했던 덕민 오빠에게는 조금 더 많은 고마움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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