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내 나이는 스물 두 살이다. 부드럽게 꺾어진 직선과 그것을 탄탄하게 받쳐주고 있는 일직선이 만들어 내는 숫자 2. 이 부드럽고 견고한 숫자에 둘러 쌓여 내 감성이 달디단 잠에 빠져 있었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앞으로 나의 스물두 살이 보낼 일 년은 어떨까. 13일 동안의 기행문을 써야하는 지금 온통 하얀 모니터를 바라보며 내 머릿속에 떠오르는 의문이다.
나는 변했다. 한국에 돌아 온 뒤에도 내가 아직도 깨닫지 못한 어떤 것이 끊임없이 나를 자극하고 있으며 견고한 2의 갑옷에 안전하게 갇혀있던 내 감성은 자꾸만 깨어나려고 나를 자극하고 있다. 지금부터 나는 그것이 무엇인지를 한글로 한 글자 한 글자 되짚어 나가고자 한다.
태어나고 처음으로 공항에 가보았고 기분을 제대로 느끼기도 전에 인간들의 불가능에 대한 도전의 성과를 온몸으로 느끼고 있었다. 나를 뱃속에 품고 있는 거대한 기계새는 대기와 호흡하기 위해, 억지로 날아오르기 위해 너무 큰 진동을 소비하고 있었다. 롤러코스터를 타는 기분이에요. 비행기가 붕 뜨는 순간 내가 내뱉은 한 마디를 듣고서 웃는 김효진 선생님의 얼굴이 흔들린다. 이미 나는 중력을 거부한 인간이었다. 그리고 도착지가 정해져 있는 새의 뱃속에서 국적마저 잊어버린다. 아주 잠시, 신의 의지를 거스른 인간의 대단함에 놀라다가 조그만 참문으로 잠시 엿본 자연의 위대함에 경건해진다. 모든 것은 찰나 일 뿐,
여섯시 사십분. 시계를 보다가 나는 갑자기 서글퍼졌다. 내 몸은 중력을 그리워하며 단단한 땅을 딛고 싶어 하는데 온통 허공뿐인 공간 속에서 콘크리트보다 더 쌀쌀맞은 비행기의 기체에 나를 맡기고 시간은 허울 없이 흘러가 벌써 네 시간이 넘었다.
나를 단단하게 만들어 주던 것들은 모두 어디로 갔을까, 나 자신 마저 느껴지지 않는 비행기 안에서 막막한 서글픔과 내가 챙겨 온 짐만큼 무겁고도 막막한 이 낯설움을 어떻게 감당해야 하는지 아직 나는 모른다.
런던은 모든 것이 정지되어 있는 도시다. 탁한 붉은 벽톨 틈으로 새어나오는 약한 회색 분위기는 시간이 지날수록 나를 침체시켰다. 히드로 공항에 내린지 채 십분도 지나지 않아 내 등을 짓누르는 짐의 무게와 정지되어 있는 공간속을 빠르게 움직이는 외국인들 사이에서 숨이 턱턱 막히는 것을 느꼈다. 영국에서 머문 시간은 가장 짧았지만 가장 깊은 인상을 받았다.
지금 영국의 이미지, 런던의 이미지를 떠올리자면 곰팡이 핀 회색빛 밖에 떠오르지 않는다. 그 회색빛을 가득 채우고 있는 영어, 영어, 영어, 잉글리시. 숙소에 도착해 짐을 풀르고 저녁을 먹기 위해 중국 음식점을 찾았다. 시차적응이 어려울 거라는 말이 무슨 말인지 이해가 잘 되지 않았지만 이미 몸은 이해를 하고 있었나보다. 지금은 일어나야할 시간이라고 정신은 닦달하는데 몸은 자꾸만 피곤을 이기지 못하고 휘청거렸다. 억지로 찰기 없는 쌀밥을 우걱 거리다가 식당 밖으로 나와서 지나가는 사람들을 쳐다보았다. 지금쯤 나를 아는 사람들은 뭐하고 있을까, 기차소리를 처음 듣고 고막이 터져버린 개구리처럼 지나가는 사람들이 내뱉는 알아 들을 수 없는 영어발음으로 인하여 나는 서서히 자아를 상실해가고 있었다. 저 수없이 많은 사람들 중 단 한명조차도 내 글을 읽지 못하고 살아갈 수도 있다는 생각이 나를 괴롭게 만들고 풍요롭게 빛나던 문학수업의 추억들마저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내 머릿속을 텅비게 만들었다. 한글이 절실하게 필요한 순간이었다. 한번도 의식해본 적 없었던 우리말의 소중함이 공기처럼 내 몸에 끈적하게 달라붙고 있었다. 숙소로 돌아와서 내 몫으로 배정된 침대에 누워 오랜 시간 뒤척였다. 이 도시는 너무나 우울하다. 그것이 나를 견딜 수 없게 만든다. 그렇게 런던에서의 하룻밤이 깊어가고 있었다.
다음 날부터 무뚝뚝한 두 발은 나를 이끌고 다녀야 했다. 쉼 없이 두 다리를 놀리며 가는 곳 마다 사진을 찍었다. 찰칵. 소리가 날 때 마다 내 발은 잠깐 쉬고 또 다시 걸음을 옮겼다. 별 탈 없이 밑에서 잘 살고 있었구나. 이 낯선 환경에서 쩔쩔 매고 있는 잘난 척 하는 김미선이란 인간보다는 그래도 말 없는 발이 한 수 나았다.
그 후로도 발은 오랫동안 런던의 축축한 비를 그대로 맞으며 나를 이끌었고 나는 두 다리의 물살에 실려가는 배가 된 느낌을 간직하며 삐그덕 거렸다.
마거릿 드래블 선생님과의 간담회는 영국에서 담아온 가장 귀중한 보석이었다. 아직도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을 표현하기 위해서 시작한 문학이 평생의 버팀목이 되었다는 선생님의 말씀이 귓가에 맴돈다. 혜경궁 홍씨에게 깊은 감명을 받아서 레드퀸을 쓰게 되었다면서 마거릿 드래블 선생님은 책을 쓰면서 참고한 참고 관련 서적을 한아름 안고와 보여주셨다.
뻔쩍뻔쩍한 금박이 우울한 하늘과 대조되던 버킹검 궁전부터 시작해서 템즈강, 중학교 영어 교과서에 실려있던 빅벤, 런던타워등... 모두다 영국의 아름다움을 한껏 자랑하는 유명한 관광지였지만 그것보다도 잊혀지지 않는건 정갈하게 빛나던 선생님의 하얀 머리카락이다. 차갑게 가라앉은 나라에서 한중록을 모티브로 소설을 쓴 영국인이 타주던 따뜻한 홍자한잔, 그 홍차가 영국이라고. 진정한 영국의 향기라고 생각한다.
프랑스로 향하는 비행기 안, 이륙한지 몇 분도 지나지 않아 거대했던 건물들이 장난감집처럼 보이기 시작했다. 잠시 시선을 던지다가 금세 질렸다. 오히려 손만 뻗으면 만져질 것처럼 가까이 있는 구름의 모습이 더 신기했다. 비행기의 발명이 위대한 것은 불가능을 넘어섰기 때문이 아니었다. 신이 만들어낸 인간보다 더 위대한 땅 위의 자연을 가까이서 볼 수 있기 때문에 위대하다고 칭할 수 있는 것이다. 방부제에 잔뜩 절여진 것 같은 버섯과 두꺼운 치즈가 들어있는 딱딱한 빵을 씹고 있으려니 프랑스에 도착했다. 입국 심사를 하고 몇 발자국 걸어나갔을까. 프랑스 공기, 프랑스 말, 프랑스 햇빛, 걸을 때마다 일행들은 감탄사를 연발했다. 확실히 영국의 근엄하고 가라앉은 분위기와 달랐다. 런던이 딱딱한 고딕체라면 프랑스는 자유롭고 풍부한 샤넬체라고 할 수 있다. 꿈을 꾸는 기분으로 가랑비 내리는 몽마르뜨 언덕을 지나 멀리 파리 시내가 내려다 보이는 샤크네 꿰르 성당을 한바퀴 돌았다. 사진으로 본 것과 똑같은 에펠탑과 그 당시 왕의 힘을 짐작할 수 있었던 베르샤이유 궁전을 볼 때까지 내 발걸음은 샹송처럼 부드러운 리듬을 타며 춤을 추는 듯 했다. 그리고 밤에 만난 노틀담 성당과 세느강에서 나의 샹송은 절정에 다다랐다. 모든 건물들은 완벽하게 따뜻하고 아름다웠고 약간 쌀쌀한 공기마저도 나를 풍요롭게 채웠다. 오 샹제리제~샹제리제~노래에서 만난 샹제리제 거리를 지나서 개선문 가득히 쓰여진 프랑스 어 앞에 섰을 때까지 말이다. 황제 나폴레옹이 자신이 점령한 나라이름들과 공을 세운 장군들의 이름을 새겼다는 이야기를 듣고 아연질색하지 않을 수 없었다. 다른 나라를 짓밟고 침략한 것이 자랑이란 말인가. 게다가 그것을 당연하게 자신들의 문화재로 내놓는 프랑스란 나라를 또 뭐란 말인가. 영국에서 대영 박물관을 관람했을 때도 느꼈었다. 대영 박물관에 있는 엄청난 양의 문화재들을 전부 기증 받은 것은 아닐 것이다. 그들이 침략을 시작했을 때 약소국에서 다 뺏어온 것들이 아닌가. 갑자기 우리나라의 과거사 규명 문제가 떠올랐다. 서구열강의 뻔뻔스러운 문화재들이 자리 잡고 있는 한, 더럽게 얼룩져 있는 과거사 문제를 깨끗이 청산 할 수 있을지. 구수하게 누런 모시적삼이 생각나는 이유는 씁쓸하게 가슴을 아려오는 조국이 생각났기 때문이리라. 우리가 일제 강점기 때 강탈당하고 짓찢겨졌던 삶을 문화재로 만들어 놓는 다면, 아니 우리 조상들이 겪은 아픔을 잘 팔리는 상품으로 포장해 내놓는다면 그들도 우리나라에 관광을 와서 그 앞에서 사진을 찍고 해마다 친구, 가족들과 여행을 오겠지? 힘이 약한 나라는 스스로 입을 꿰매야 한다. 작은 것 하나까지 아름다움으로 가득 차 있던 프랑스는 나에게 그것을 가르쳐 주었다.
적어도 이탈리아로 가는 야간기차 안에서 나는 평화로웠다. 휙휙 지나가는 프랑스의 자그마한 집들과 단아한 가로등을 되새기면서 기차에 침대가 있을 수도 있구나. 하룻밤을 꼬박 새면서 기차를 타는 일이 가능하구나. 하고 감탄했다. 문득 루브르 박물관에서 각기 다른 색을 가진 사람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고 있던 비너스 상이 떠올랐다. 정신없이 터지는 플레시의 홍수 사이에서 나는 그녀의 잘려나간 팔을 오래도록 바라보았다. 슬프게 구부러진 허리의 곡선과 어떤 포즈로 서 있었는지 학자들 사이에서 아직도 의견이 분분한 팔을 기도하는 심정으로 바라보았다. 어쩌면 그녀의 팔은 처음부터 잘려나간 모습으로 조각된 것일지도 모른다. 편안함에 익숙해져 있던 몸이 금세 딱딱한 매트에 피곤해지는 것을 느끼면서 이대로 조각상이 되버 렸으면 하고 바랬다. 따뜻한 주홍빛 물감을 유리창에 흘리면서 지나가는 아름다운 풍경들을 바라보면서도 이런 저런 간사한 상념들에 부딪히지 않아도 됐을 테니까.
내가 영국과 프랑스에서 느꼈던 감정들을 한글로 꽁꽁 묶어 기록하는 것만큼 괴로운 일은 없다. 비너스의 곡선과 회색빛 나는 흰색 몸을 생각하며 잠이 들었다. 그녀의 얼굴에 모나리자의 얼굴을 붙여 놓으면 아름다울 것 같다. 프랑스는 더도 말고 더도 말고 그렇게 아름다운 나라였다.
그곳은 이탈리아. 깊은 초록색으로 가라앉은 물 밖에 떠오르지 않는 베니스와 비둘기들이 무지막지하게 많았던 피렌체, 엽서에 딱딱하게 박혀 있는 로마의 관광지들,
콜로세움을 바라보면서 문득 나뭇가지가 눈알에 잘못 박혀 죽을 때까지 나뭇가지를 눈알에 꼽고 다녀야 하는 소녀가 로마로 관광 온 이야기를 글로 쓰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했다. 이탈리아는 내게 시상과 글감을 가장 많이 건져 준 나라였다. 물의 도시 베니스에서 유유자적한 기분으로 이 상상, 저 상상 들을 그들의 골목에서 낚아 올렸다. 지금까지 머물렀던 곳 마다 정이 들기도 전에 십킬로그램이 넘는 짐을 꾸려서 어깨에 매고 떠나야 했다. 어느 곳에도 안주할 수 없는 나와 내 짐이 문학기행을 출발하고 난 후부터 두 발에게 신세를 지고 있었다. 진정한 보헤미안은 낭만을 노래하는 것이 아니라 튼튼한 두다리를 가져야 하는 것이라고 결론을 내렸다.
산 마르코 성당을 나오는 도중에 성당 출입구 바로 옆 난간에 죽어서 뻗뻗하게 굳어 있는 비둘기 한 마리를 보았다. 산 마르코 광장에는 엄청난 수의 비둘기들이 관광객들이 던지는 과자를 주워 먹으며 닭처럼 진화해가고 있었지만 ( 퇴화해 간다고 해야 하나?) 그 수많은 비둘기 중 왜 하필 내 눈에 들어 온 비둘기가 죽은 비둘기였을까. 나는 비둘기를 좋아하지 않지만 녀석의 몸뚱이를 보는 순간 나도 모르게 성호를 그엇다. 어쩌면 다음 생에 한국의 정치가로 태어날지도 모르는 가련한 비둘기를 위해 마지막 기도를 드렸다.
이탈리아에서는 여행자만 물 흐르듯 흘러와 떠나가는 것이 아니었다. 나는 그렇게 많은 거지들을 본 적이 없었다. 처음에는 할머니가 동냥을 하면 집에 계신 우리 할머니가 생각나 주머니에서 동전을 꺼내 줬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꽤 묵직했던 동전은 바닥이 나버렸고 아직 콜로세움을 반도 돌지 못했는데 몇 발자국 앞에 또 아이를 업은 여자가 손을 벌리고 있다. 이 사람들 또한 자신의 삶을 등에 업고 나와는 다른 방향으로 흐르고 있는 것이다. 어쩌면 살아가는 것 또한 끊임없이 손을 벌리고 쭈그려 앉았다가 감사의 눈길로 바라보고, 그러다가 몇 시 몇 분 몇 초에 잠깐 분 바람처럼 사라져 버리는 것일지도 모른다. 영국에서 황석영 선생님이 하셨던 말이 생각났다. “문학을 하시면서 무엇이 가장 어려우셨나요?” 누군가의 질문에 “ 살아 남는게 제일 힘들었지. 죽는 줄 알았어.” 시칠리아로 향하는 야간기차 안에서 반쯤 잠이 든 내 귓가에 선생님의 말이 계속 맴돈다. 벌써 문학기행은 막바지를 향해 치닫고 있었다.
지금 내 옆에는 어제 새로 사온 네 권의 책과 시집들, 숫자를 세기도 귀찮은 소설책과 외국화가의 작품집 두 권이 쌓여있다. 읽다만 책도 있고 한 장도 넘겨보지 않은 책도 있다. 시칠리아에서 만난 리오또 교수님의 서재에 있는 책들은 지금 전원이 꺼져 있는 내 디지털 카메라에 담겨 있다. 그 분이 한국에 올 때마다 하나 둘씩 사 모으셨다는 탈과 민속 공예품들, 소파에 단정하게 펴져 있던 태극기가 떠오른다.
“너희들은 아마 그 분을 만나면 한국인보다 더 유창한 한국말부터 시작해서 계속 숙연함을 느끼게 될 거야.”
마우리치오 리오또 교수님을 만나서 내가 느꼈던 감정이 숙연함이 맞다면 전성우 선생님이 하셨던 말을 농담으로 알고 웃어 넘겼던 것이 참으로 부끄럽다.
다름 아닌 문학을 공부하기 때문에 더 배워야 한다. 이번 문학기행을 하면서 내가 느낀 감정을 한 문장으로 정리하자면 그렇다. 피렌체의 미켈란젤로 광장을 숨이 턱에 차오르도록 올라가서 보았던 풍경은 묘사하지 않기로 한다. 바로 뱉어내는 것보다 오랜 시간 묵혀 두었다가 구수하게 익었을 때 나의 작품에 덧바르고 싶다. 나는 아직 젊으니까. 중요한 것은 번지르르하게 내가 본 것을 포장하는 것이 아니라 변한 나를 느끼고 올바르게 받아들이는 것이라는 걸 깨닫는다. 내 짐보다 먼저 공항에 도착한 나는 껍질을 놓고 나온 달팽이처럼 불안한 마음 반, 홀가분한 마음 반으로 인천공항을 나섰다. 한국은 여전히 쌀쌀했다.
이 세상의 찬바람은 다 나에게로만 오는 거라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13일의 여행을 더듬어 가면서 하나 둘씩 나는 나를 감싸고 있던 2의 갑옷을 벗었다.
지금부터 나는 걸어갈 것이다. 그냥 걸어가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나의 길을 갈고 매끈하게 닦으면서 말이다. 그 후에는 춤을 추고 옷을 벗고 뛰어다니고 노래해도 상관은 없다.
이 글을 마치고 있는 지금 나의 감성은 거칠면서도 우아한 회색으로 흘러가던 템즈강으로, 다음번엔 꼭 초록색 우산을 쓰고 가겠다고 다짐했던 안개 낀 몽마르뜨 언덕으로, 환한 햇빛을 받으며 산산히 흩어지던 스페인 광장의 분수대로 마음껏 뛰어다니고 있다. 이젠 나의 감성을 억지로 매어놓지 않을 것이다. 막 그 무엇인가를 깨달은 나와 내 감성을 위하여 건배. 즐겁고도 그리운 풍경들이여. 이 한글 속에서 답답하겠지만 다시 만나는 그 날까지 참아주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