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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천 213장의 사진에 담긴 시간들
작성자 오성용
날짜 12.03.12 조회 6699

 
글/오성용_제6회 대산대학문학상 소설부문 당선자. 조선대학교 문예창작과 3년. 1984년생.

도쿄는 선명했다

도쿄에 도착해서 처음 끄적거린 메모가 있다. 아마 전철을 타던 와중이었던 것 같다.

-나리타공항에서 어디론가 이동 중. 어딘가가 어디인지는 아무도 알려주지 않았다. 그저 막연히 어딘가로 가고 있다는 것만 알 수 있을 뿐이다. 도쿄에 와서 받은 첫 느낌은, 뭔가 선명하다는 것?- 생각해보니 이 짧은 메모가 나의 일본여행을 전부 다 말하고 있는 것 같다. 어쩐지 내가 장치해놓은 복선에 휘말려든 기분이랄까. 각설하고,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일본의 첫 느낌에 대한 것이다. 그것은 한 단어로 축약시킬 수 있는 감상이었다. 선명하다. 바로 이것이었다. 한국이 희뿌옇다는 상대적인 차원의 생각이 아니라, 그것과는 별개로 원래 일본은 선명하고 뚜렷하구나 하는 자연스러운 연상이었다. 눈앞에 스쳐지나가는 모든 사람들, 그 사람들의 옷, 그 사람들이 걷는 거리, 거리의 자판기, 자판기의 버튼, 전철창밖의 야경, 건물, 간판, 버스를 비롯한 모든 것들의 형태, 윤곽, 색상, 선, 결들이 또렷하게 드러났다. 마치 눈에 딱 들어맞는 안경을 쓴 것처럼, 해상도가 높은 사진을 찍은 것처럼, 나의 망막에 스며들어왔다.

하지만 선명하게 보이는 것과 반대로 내 안쪽은 점점 흐려졌다. 일본어라고는 헨타이 관련 용어 몇 단어만 간신히 알고 있는 나로선, 어디를 가는지 여기가 어딘지 갈피를 잡을 수 없는 형세가 계속 이어진 것이다. 약간의 자괴감과 무력감을 곁들이면서 묵묵히 앞서 걷는 일행을 쫒기 바빴다. 나중에 적응이 되고 보니 선 감상 후 정리도 괜찮은 여행방식임을 깨달았지만, 적응치 못했던 탓에 나는 ‘우와’ 하고 감탄한 후, 책자나 옆 사람이 들려주는 정보를 듣고 ‘오호’ 하면서 고개를 주억거리는 식의, 진짜 간신히 이어지는 모양새로, 하라주쿠와 시부야 그리고 아키하바라와 우에노를 겪어야 했다. 그 방식은 일본여정의 꽃이었던 히라노 게이치로 씨와의 대담에서도 이어졌는데, 한국어로 한 질문이 통역을 거쳐 일본어로 그에게 닿고, 그의 반응이 일본어로 뱉어져 나와 다시 통역을 거쳐 한국어로 변해 돌아오는, 규칙적이지만 연쇄적이지 못한 의사소통이 그런 느낌을 갖게 했다. 굴곡지게 소통하는 것을 감수하고도 히라노 게이치로 씨는 멋진 소설가였다. 언어의 차이로 보다 많은 생각을 나누지 못해 아쉬웠지만, 그의 뚜렷한 소설관과 문체에 대한 노력, 경험과 지식과 앞으로의 포부들이 나에게 있어서 많은 자극이 되었다. 밝지만 진지한 분위기속에서 두 시간 가량 이어졌던 그와의 대담과 그의 싸인을, 나는 평생 지울 수 없을 것 같다. 말나온 김에, 그와의 소통을 도와주신 사나다 히로코 씨에게도 다시 한번 고맙다는 말을 건네고 싶다.


더블린은 화창했다

이틀에 걸쳐 도쿄에서 런던을 경유해 우리는 마침내 아일랜드 더블린에 도착할 수 있었다. 아쉽게도 이미 해가 저물어 가고 있었다. 우리는 더블린의 중심가 그라프튼 거리와 오코넬 다리를 거쳐 돌아돌아 호텔에 도착, 짐을 푼 후 저녁을 먹기 위해 템플바를 찾았다. 무수히 많은 펍들이 다닥다닥 밀집되어 있던 그곳은 거리의 외형들만 보아도 시간가는 줄 모를 정도로 멋있었다. 기쁘게도 나는 그 내부까지 들어갔고, 나이프와 포크의 움직임을 요하는 진수성찬에 세계최강의 맛이 분명한 흑맥주를 곁들일 수 있었다. 아일랜드의 흑맥주는 생크림 같은 거품과 약간의 짭조름함으로 무장한 그 검은색 액체는 대대손손 존경받아 마땅한 맛을 자랑했다. 그 압도적인 맛을 맛본 나의 혀가 아직도 자랑스러울 정도다.


물론, 혀만 호강한 것은 아니었다. 다음달 탐험한 제임스 조이스 기념관, 트리니티 컬리지 박물관, 크라이스트처치 성당, 그리고 영화 ‘원스’의 배경지들은 눈과 귀에서 콧노래가 흘러나올 나올 만큼, 값진 곳이었다. 제임스 조이스 기념관에 가서 받았던 충격을 기억한다. 생각보다 좁다랗고, 작고, 아기자기 했던 그 공간 한 귀퉁이에서, 제임스 조이스에게 명치를 한대 얻어맞았기 때문이었다. 벽면에 붙여져 있던 포스터 안에서 그가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나는 율리시즈을 썼다. 당신은 뭘 하고 있나?’. 이전까지 그렇게 오만하고 멋있는 포스터는 본적이 없었기 때문에, 나는 숨을 들이키고 그대로 정지했다. 마치 멋을 직업으로 삼은 듯한 사람의 사진과 문구 같았다. 나는 마음속으로 그의 질문에 대답할 수 있는 멋있는 일을 해야지, 그리고 꼭 저 포스터를 따라하고 말겠어 하는 다짐을 굳게 했다. 제임스 조이스가 날 때렸다면, 트리니티 컬리지 박물관은 날 쓰다듬어 주었다고 볼 수 있다. 박물관의 안쪽엔, 켈틱어로 쓰여진 성경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성경의 내용도 중요하겠지만, 나는 그 책 자체에 경이로움을 느꼈다. 양피지책자를 만드는 과정을 단계별로 설명해주는 동영상들이 그 감동을 배가시켜주었다. 단 한권의 책의 완성, 그 처음부터 끝에 달하는 엄청난 노동(나라면 자살할 것이다)을 눈으로 본 나는, 찬사를 보내지 않을 수 없었다. 끔찍했지만 그만큼 아름다웠던 책. 정성에 정성이 중첩되어 이윽고 신성에 다다른 책. 그런 책들이 박물관 가득 빽빽하게 자리하고 있었다. 나는 온 몸에 빽빽하게 돋아난 소름으로 그 감상을 표했다.

런던은 반짝였다

다시 더블린에서 런던으로 향했다. 적지 않은 날짜를 지내서인지 조금씩 여행에 대한 감이 잡히기 시작했다. 동행인들과의 관계가 원만해진 것도 물론이었다. 여하튼 일행 모두 예전보다 한 층 밝아진 얼굴로 런던 시내를 도보하면서 하루를 지냈다. 짧은 시간 안에 피카딜리서커스, 버킹엄궁, 웨스트민스터, 빅벤, 템즈강, 런던아이, 타워브릿지 등등의 명소들을 구경할 수 있었다. 모두 한결같이 아름답고 위엄 있었다. 다만 문제는 내가 그것을 바라보면서도, 이 장면을 내가 진짜 보고 있는 것인지 아닌지 하는 의문에 휩싸여 있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실감이 나지 않았다. 카메라의 줌을 당기고 밀치고를 반복해도, 그 자리에 서서 사진을 찍어도, 지나가는 사람들과 어깨를 부딪쳐도 그 느낌은 떨쳐지지 않았다. 이런 상념들은 터키로 갔던 팀이 다시 합류하고, 내셔널갤러리에 들어가 한 폭의 그림과 마주 할 때까지 줄곧 이어졌다.

내셔널갤러리 안쪽에 들어서자 교복을 입은 일군의 여학생들이 뛰어다니고 있었다. 우리나라로 치면 초등학생 정도의 연령대인 것 같았다. 그 꼬맹이들은 저마다 손안에 무언가가 인쇄된 종이 뭉텅이를 쥐고 돌아다니고 있었다. 뭔가 해서 슬쩍 들여다보니, 갤러리 안에 있는 그림이 작게 인쇄되어있고, 옆의 작은 글씨들 사이사이에 빈칸이 들어가 있었다. 아마도 학교 측에서 그림의 작가, 제목, 연대 그리고 설명이나 특징 같은 것을 가르치기 위해 준비한 유인물인 것 같았다. 여기 애들은 이런 식으로도 배우구나 하는 부러움 섞인 생각과 어쩐지 이것들을 따라다니면 중요작품은 놓치지 않겠다는 생각이 동시에 들었다. 계산을 끝낸 나는 아이들을 따라다니면서 하나 둘씩 그림을 감상했다. 나는 아주 옛적에 그려진 그림들부터 시작해 천천히 방의 번호 순으로 걸음을 옮기며, 순전히 개인적인 관점에서 마음에 드는 그림들을 편식했다. 그러다 고흐의 작품이 있는 방에 들어가게 되었다. 그나마 들어본 작가의 그림에 없던 힘이 샘솟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렇게 고흐의 의자와 해바라기를 볼 수 있었다. 그 그림들 앞에, 나는 내 몸 구석에 숨겨져 있던, 스위치가 올라가면서 내는 격철 소리를 들었다. 그 순간, 내내 어둠이다 반짝하며 빛을 발하는 전구처럼 모든 상황이 반전되었다. 그제야 발을 딛고 있는 이 자리와, 그 위에 서있는 나와의 연결고리를 찾아 이어냈던 것이다. 한 개의 의자와 열 네 송이의 해바라기는 수백수천의 덧칠로 점철되어 있었다. 바로 그 수많은 붓 터치와 얇고 두터운 물감의 포개짐이, 그림속의 의자와 해바라기가 그림 밖의 그것들보다 선명한 본질을 드러나게 만들고 있었다. 그 역설의 물증을 마주하자, 어렴풋하게 담고 있었던 모든 것들이 점점이 부서져, 나라는 형태 위에 달라붙어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어떻게 보면 나 역시, 거칠게 스쳐가는 사건과 시간으로 덧칠되어 완성되어가는 하나의 그림에 지나지 않은가. 왠지 흔할 것 같은 그 감흥은, 런던과 또 다른 이국들을 내 안으로 보다 수월하게 수렴할 수 있게 도와주었다.

반짝하는 짧은 순간, 사람이 바뀐 나는 이전과는 다른 시야로 부유하는 시간들을 바라 볼 수 있었다. 하늘이 유난히 아름다웠던 타운브릿지, 영국의 진수를 보여줬던 버킹엄궁, 사람이 끊이질 않던 트라팔가 광장, 한국관의 내용이 조금 아쉬웠던 대영박물관, 시종일관 눈을 뗄 수 없었던 뮤지컬 We Will Rock You 들로 치장했던 런던의 낮 그리고 밤의 시간들은, 그 도시가 자랑하는 야경들 마냥, 어느 때건 눈부시게 빛났다. 아주 반짝.


프랑스는 풍부했다

유로스타를 타고서 4시간 정도를 미끄러져 내려가자, 마침내 프랑스 파리에 도달할 수 있었다. 후에 떼제베(TGV)까지 타보았으니 한국에서 질리도록 타본 KTX를 포함해, 비슷하기는 하지만 초고속열차를 3종이나 탑승해본 영광을 누린 것이다. 여하튼 초고속이란 말이 어울리는 맹렬한 속도로 달려 도착한 파리는 첫인상이 굉장히 거칠었다. 지하철의 출입구는 물론 어느 곳에나 있는 에스컬레이터, 엘리베이터까지 쿵쾅거리며 박력있게 여닫혔고, 락카칠을 할 수 있을 만한 공간, 혹은 할 수 없을 것 같은 공간 모두에 선정적인 그라피티가 그려져 있었다. 여기에 소매치기 같은 잡다한 범죄가 많으니 조심하라는 인솔자의 발언이 배합되자, 거친 것을 넘어서 무섭기까지 했다. 프랑스를 찾은 일본여성들이 겪는다는 파리 신드롬이란 병이 이해가 갈 정도로, 나 역시 이제까지 만들어놨던 프랑스에 대한 환상이 무참히 박살나 나뒹구는 것을 경험 할 수 있었다. 그렇게 처음부터 압도된 나는, 사막의 미어캣처럼 두 손을 지갑위에 가지런히 모은 채 사위를 두리번거리며 파리를 맞았다.

완전 속았다. 첫인상을 대번에 뒤집어엎는 아리따운 자태를 자랑하는 노트르담 대성당과 인접해 있던 세느강 퐁네프를 건너며 내가 내뱉은 말이다. 그렇게 예쁜 동네가 있을 줄은 정말 상상도 하지 못했기에, 설마 극적인 효과를 노리고 일부러 다른 동네를 더럽히고 다니는 건 아닐까 하는 의심까지 품었을 정도다. 개선문에 이르자 이곳이 생각보다 위험한 동네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된 나는 긴장을 풀고, 전보다 본격적이 되어 이곳저곳을 들쑤셨다. 개선문은 그냥 돌로 된 조형물인줄 알았는데, 가서 보니 건물이어서 조금 놀랐다. 내가 상식이 모자란 건가? 입구에서 입장권을 사고, 소라껍데기처럼 빙글빙글 도는 원형계단을 숨이 찰 때 까지 오르자, 한눈에 들어오는 파리가 보였다. 개선문을 중심으로 펼쳐진 수십 개의 도로들이 질서정연하게 늘어서 있었고, 멀리 에펠탑도 있었다. 하지만 정작 가까이 에펠탑을 보러갔던 날은 비가 내렸다. 그 탓에 최상층까지 운행하는 엘리베이터도 가동하지 않아서, 중간까지 밖에 못 올라갔다. 분하고 아쉬워서 죽는 줄 알았다. 베르사유 정원에서도 그 애타는 심정은 이어졌다. 뭐든 끝을 봐야 직성이 풀리는 성미인데, 비 때문에 중간까지도 못가보고 돌아가니, 바깥의 높은 습도를 무시하며 입안이 바짝 말랐었다. 그 건조한 상황에서 나를 구원해준 것은 다름 아닌 루브르박물관이었다. 안 읽어봤지만 유명하다던 다빈치코드의 배경지, 환산할 수 없는 가치를 지닌 예술품들이 죄다 모여 있는 곳, 거기다 한국어가이드 PDA도 이용가능 하다는 것! 모두가 나를 기쁘게 했다. 입을 헤 벌리고 돌아다니며, 한국인의 이미지를 더럽힌 것은 정말 불가항력적인 일이었다.


여행의 마지막을 장식한 곳, 프랑스의 라로셀 (La Rochelle 이름도 예쁘다)은 아름다운 항구 도시였다. 너무 아름다워 결혼을 언제할지, 아니 그 이전에 과연 할 수나 있을지 미지수의 상태인 내가 ‘신혼여행은 여기다’ 라고 결심했을 정도다. 에메랄드 색으로 빛나는 바다가 담긴 성채, 그 안에 형형색색의 요트들이 줄줄이 늘어서 있던 모습은, 바라만 보고 있어도 흥이 났다. 그래서인지 라로셀에서는 재밌는 일이 참 많았다. 특히 라로셀 대학의 한국학과 학생들과 함께한 수업이 대박이었다. 라로셀에서의 일정에 지대한 도움을 주신 한유미 선생님 아래, 그곳 학생들의 미팅문화 체험 수업에 참여한 것이다. 한국학생과 프랑스학생 양측 모두에게 고된 일이었지만, 고된 만큼 재밌었던 것 같다. 라로셀 대학을 나와 부둣가에서 탔던 초단거리 이동용 배도 재밌었다. 어디 멀리까지 가는 배 인줄 알고 탔었는데, 2분도 안돼서 배가 정박해서 다들 황당해 했었다. 출발과 거의 동시에 도착하는 그 배를 나는 꼭 한번 더 타보고 싶다.

한국은 현실이다

목을 무겁게 했던 카메라를 들여다보니, 시간이 나는 족족 찍었던 사진들이 어느새 1213장에 달해있었다. 집, 인천공항, 도쿄, 런던, 더블린, 다시 런던, 파리, 라로셀, 파리, 도쿄, 인천공항, 다시 집으로. 걷고 뛰고 달리고 날고를 연발해가며 정신없이 지내온 시간들이, 1213장의 사진속에 고스란히 담겨있는 것이다. 언제 어느 시간에, 잊지 못 할 것만 같았던 것들이 잊혀지려 할 때, 나는 이 사진들을 되새기고 앉아 있을 것이다. 긴 여행이었지만 짧은 여행이었다 말하고 싶은, 진짜 한번만 더 데려가 달라고 조르고만 싶은 즐거운 여행이었다. 마지막으로 이처럼 좋은 기회를 주신 대산재단과, 행선지만 나열해도 머리에 쥐가 날 것 같이 많은 곳들을, 구비구비 웃으면서 데리고 다니신 전성우, 이정화 선생님께 감사하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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