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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3회 대산문학상 수상작 선정
글쓴이 : 운영자 날짜 : 15.11.02|조회 : 9713

국내 최고의 종합문학상을 지향하는 '제23회 대산문학상' 수상작이 아래와 같이 결정되었습니다.
한해 한국문학의 결실이라 할 수 있는 수상작들에 많은 격려와 관심을 부탁드립니다.

<제23회 대산문학상 수상작>
시 부문 : 『마흔두 개의 초록』 마종기 作

소설 부문 : 『계속해보겠습니다』 황정은 作
희곡 부문 : 「알리바이 연대기」 김재엽 作
번역 부문 : 독역 『Vaseline-Buddha 바셀린 붓다』(정영문 作) 
                 얀 헨릭 디륵스(Jan Henrik Dirks) 獨譯

본심 심사평
▲ 시 부문
예심을 거쳐 본심에 올라 온 시집은 10편이었으며, 그 중에 다시 4편이 종심에서 논의되었다. 마지막에 거론된 4편은 마종기의 『마흔 두 개의 초록』(문학과 지성사), 문정희의 『응』(민음의 시), 손택수의 『떠도는 먼지들이 빛난다』(창비), 고형렬의 『아무도 찾아오지 않는 거울이다』(창비) 등이다. 네 시인 모두 빛나는 시적 성취를 이루었던 시인들인데, 이번 시집들은 이전의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하거나, 오히려 후퇴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는 것이 심사위원들의 중론이었다. 아쉬움을 느끼며 하나의 수상작을 고르는 과정에서 『응』이 같은 시집으로 목월 상을 받았다는 사실이 밝혀져 그의 시집은 논의에서 제외하기로 하였다. 하나의 시집으로 큰 상을 두 개씩 받는 것은 본인으로서도 부담으로 작용할 것이며, 다른 시인들에게 우선권을 주는 것이 좋겠다는 의견이 우세하였다.
나머지 세 시인 중 『떠도는 먼지들이 빛난다』가 작품성 면에서 호평을 받았는데, 젊은 만큼 미래가 더 많이 열려 있지 않겠냐는 의견이 많았다. 이번 시집의 호평도 상대적인 것이고, 이전의 시집인 『나무의 수사학』보다는 미흡한 만큼 다음을 기약하는 것이 좋겠다는 의견이 설득력을 가졌다. 『아무도 찾아오지 않는 거울이다』는 이전 시집과는 차별성을 보여 시적 갱신의 노력에 박수를 쳤지만, 그것이 과연 시적 성과로 이어졌는가에 대해서는 의문을 표시하는 의견이 많았다. 추상적이고, 관념적인 시적 진술이 많아 자연스러운 시상전개를 가로 막는 경우가 자주 발견된다는 지적들이 있었다. 
『마흔 두 개의 초록』은 시인의 전성기 시절 시집과 비교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언어를 다루는 감각과 삶에 대한 깊은 시선은 노장다운 면모를 유감없이 드러내고 있다. 산문의 느슨한 형태를 시 형식으로 분절시켜 놓은 것 같은 느낌을 간혹 주지만, 전체적으로 시상과 형태가 안정되어 있어 시의 품격을 높이고 있다. 물 흘러가듯 매끄럽게 전개되는 언어의 연쇄에 삶의 체험을 알알이 수놓는 일은 손쉽게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편안하면서도 묵직한 울림을 주는 것이 이번 마종기 시집의 가장 큰 매력이며, 그것은 대산문학상의 무게에 걸맞은 문학적 가치라고 할 수 있다.
심사위원 : 고형진 김광규 신달자 유종호 정호승

▲ 소설 부문
본심에 오른 8편의 작품을 4편으로 줄이는 데도 많은 논의가 있었다. 엽기 스릴러 무협으로 현란하게 써 내려간 메타 픽션에서부터 21세기의 인물이 26세기에서 날아온 타임머신을 타고 16세기 조선에 불시착하는 ‘오락소설'에 이르기까지 작품의 내용과 형식은 실로 다양했으며 따라서 비교 평가가 쉽지 않았고 논의만 길어지기 일쑤였다. 한 가지 특기할만한 점은 판타지에 의지해 소설적 허구를 십분 발휘한 소설들이 적지 않았던 반면 허구적 과장과 기복을 오히려 최소화하여 현실다운 현실에 다가가려는 작품의 수가 또한 그만큼이어서 인상적인 대비를 이루었다는 것이다.
4편에서 1편의 수상작으로 줄이는 과정에서도 열띤 논의는 그치지 않아 심사위원장의 브레이크 타임 선언에도 아랑곳 않고 토론을 이어갔으며 식사시간도 미루었다.
4편에 해당한 작품은 권여선의 『토우의 집』, 심상대의 『나쁜 봄』, 장강명의 『한국이 싫어서』, 황정은의 『계속해보겠습니다』였으며 논의 과정에서 다루어진 쟁점은 에두르기의 다과(多寡)에 따른 주제 표출의 강약 효과, 명료한 문제의식에 선행되어야 할 정교한 소설공법, 저널리즘 상상력과 중간소설, 하층계급 구성원이 공통적으로 가지는 견해나 사상에 대한 새로운 반성 등이었다.
논의는 진행만 될 뿐 특정한 작품으로 좁혀지지 않았다. 흥미로웠던 점은 논의 전반부에서 비중 있게 다루어지는 듯했던 작품이 후반에서는 언급이 줄어들면서 상대적으로 열세였던 작품이 반등하는 역전 균형을 이루었다는 것이다.
4편에서 2편으로 줄이고 2편에서 1편으로 줄이기 위해 두 차례의 투표를 거쳤다. 황정은의 『계속해보겠습니다』가 마지막까지 남은 수상작이 되었을 때 잠깐 침묵이 흘렀다.
사실 『계속해 보겠습니다』는 전망이 밝은 편은 아니었다. 논의 과정에서 한 켜 한 켜 착실히 가치를 쌓아 마침내 수상의 영예를 안은 경우였다. 심사위원들의 상찬을 한 몸에 받았다기 보다는 작품 스스로 제 안의 빛을 하나하나 차분히 내보인 결과였다. 수상작이 결정되고 나면 으레 어딘가 허전하기도 하고 과연 잘 뽑은 걸까 또 한 번 지레 염려하게 되는 게 심사자의 후유(後遺)일 텐데 『계속해 보겠습니다』라는 제목만 홀로 남은 칠판, 그것을 바라보는 심사자들의 표정에는 허전도 염려의 빛도 남아 있지 않았다. 침묵의 의미는 그것이었을 것이다. 사소하고 보잘 것 없어 보이기만 하는 삶이고 가족이고 이웃이지만 그것이 계속될 수밖에 없는 이유와 계속되어야 하는 까닭을 거의 침묵에 가까운 조용한 문장으로 압도하는 소설이 이번의 수상작이므로.
심사위원 : 강석경 구효서 김형경 도정일 최원식

▲ 희곡 부문
제23회 대산문학상 희곡부문 심사는 지난 2년간의 모든 창작 희곡을 대상으로 하였으며, 작가의 연륜과 관계없이 엄정하게 작품 그 자체만을 대상으로 논의하였다. 이러한 논의 중에 심사위원들의 추천으로, 우선 다섯 작품을 선정하였으니 「알리바이 연대기」(김재엽 작), 「아버지와 나와 홍매와」(김광탁 작), 「미국아버지」(장우재 작), 「노란봉투」(이양구 작)와 「불량청년」(이해성 작)이다. 「목란언니」(김은성 작)와 「꽃피자 어데선가 바람불어」(백하룡 작)도 추천은 되었으나, 이미 대산문학상 기 심사 목록에 포함되어 제외되었다.
이들 중 우선 「아버지와 나와 홍매와」와 「불량청년」이 제외되었다. 전자는 죽음을 바라보는 노부부의 심리적 디테일이 섬세하게 묘사된 점이 높이 평가되었으나 극작술이 평이하고 작품의 참신성이 부족하다고 사료되었다. 후자는 그 목적성으로 인해 자칫 뻔할 수도 있는 애국지사의 이야기를 오늘과 연결시켜서 뭉클하게 우리가 빚진 선대의 애국심을 상기시킨 극작술과 작품성은 훌륭했으나, 인물들의 관계와 인물 묘사가 단편적이었다는 지적을 받았다.
이후 다시 최종심에 오른 3편의 작품들, 「알리바이 연대기」, 「미국아버지」와 「노란봉투」를 두고 열 띤 논의가 계속되었다. 「노란봉투」의 경우는 현장성의 전달과 그 진정성에 있어서는 탁월했으나 극작술의 평이함에 아쉬움이 있다고 논의되었다. 「미국아버지」의 경우는 세련된 극구성과 한국 창작희곡의 글로벌화에 새로운 지평을 넓혔다는 점이 높이 평가되었으나, 지나치게 많은 직접적 인용과 작품 안에 녹지 못한 생경한 자료들이 문제로 지적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타인의 고통에 대한 진정성 있는 포용과 오늘날 새로운 제국주의에 대한 강한 저항은 심사위원들의 많은 공감을 얻었다.
마지막으로 남은 「알리바이 연대기」는 역사적 현실에 대한 서사적 글쓰기를 개척하여 그 정점에 있는 수작(秀作)으로 사료되었다. 대한민국 현대사를 예리한 통찰력으로 바라보며, 속도감 있게 작품을 진행하였다. 무엇보다도 그 뛰어난 균형 감각이 주목되었으니, 현대사와 개인사를 교차시켜 감정적 교감을 이끌어냈으며 역사의식까지 아슬아슬한 중립성을 유지하였다. 결국 현대사는 우리 모두의 책임이기에, 우리는 끊임없이 ‘알리바이’를 입증하는 연대기를 쓰고 있는 것은 아닐까? 소시민의 살아가기가 역사 돌아보기로 이어지며 서사적 극작술과 맞물려서 감동으로 다가왔기에, 심사위원 전원 만장일치로 ‘제23회 대산문학상 희곡부문’ 수상작으로 선정한다.
심사위원 : 박근형 이강백 이미원 이윤택 정복근

▲ 번역 부문(독어)
올해 4년 만에 돌아온 대산문학상 번역상 독일어권 번역의 예심대상으로 올라온 번역물은 모두 31권이었다. 조선 중기부터 한국 근현대의 작품들을 포함하여 최근의 전위적인 작품까지 다양한 작품들이 짧은 기간 동안에 번역 출간되었을 뿐만 아니라 그 수준이 눈에 띄게 향상되었다는 사실이 우선 매우 고무적으로 평가되었으며, 대산문화재단과 한국문학번역원의 꾸준한 지원사업의 효과가 이제 비로소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는 것이라고 심사위원 모두가 인정하였다.
문학작품 번역의 근본적인 문제점에 대한 인식을 함께하는 심사위원들은 주로 다음 세 가지를 기준으로 이 번역물들을 살펴보기로 하였다. 1. 번역의 수준(원문 이해와 번역텍스트의 정확성, 독일어 번역본의 문학성), 2. 원작의 한국문학으로서의 가치, 3. 독일 출판사의 명망도 및 독일 독자층의 반응.
예심을 거쳐 본심에 올라 온 번역물은 소설 5권, 시집 1권이었다. 「Heimat 고향」(이기영作), 「Kamilien 동백꽃」(김유정作), 「Das verborgene Leben der Pflanzen 식물들의 사생활」 (이승우作),「Vaseline-Buddha 바셀린 붓다」(정영문作), 「Ich bin ein Phantomschriftsteller 나는 유령작가입니다」 (김연수作), 「Autobiographie aus Eis 얼음의 자서전」(최승호作).
우리가 본심에서 다시 한 번 확인한 사실은 독일어 번역 세대의 뚜렷한 진화이다. 독일어에 능숙한 한국인, 한국어와 한국문화에 익숙한 독일인이 전면에 등장하기 시작했다는 반가운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특히 한국학을 전공하는 전문번역가의 등장도 두드러진다. 이러한 진화는 한국문학 독일어 번역의 밝은 미래를 위해 매우 바람직한 현상이 아닐 수 없다.
위의 여섯 편 중에서 「Ich bin ein Phantomschriftsteller 나는 유령작가입니다」와「Vaseline-Buddha 바셀린 붓다」가 끝까지 토론의 대상으로 남았으며, 오역으로 의심되는 부분에 대한 면밀한 검토까지 이루어졌다. 그 결과 두 작품의 번역수준이 매우 뛰어나며 문학성 또한 상당한 경지에 이르렀다는 데에 심사위원 전원은 의견을 같이 하였다. 두 작품 모두 한국어를 잘 아는 독일인이 중심이 되어 번역한 점도 매우 고무적으로 평가하였다. 오랜 논의 끝에 우리는 꽤 까다로운 원문의 문체를 한국어와 한국문화에 대한 탄탄한 이해를 바탕으로 유려하고 문학성 높은 독일어로 옮긴 얀 헨릭 디륵스의 「Vaseline-Buddha 바셀린 붓다」를 최종 수상작으로 결정하였다. 훌륭한 독일어권 번역자의 탄생을 축하하며 앞으로도 한국문학 소개에 힘써 줄 것을 부탁드린다.
심사위원 : 김륜옥 김용민 안문영 전영애 프리트헬름 베르툴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