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수영문학관’을 지키는 명예관장 김수명 선생과의 대화
기획의 말 ①사야(買) 살(住) 수 있는 집 ②2013년과 2021년, 그들도 다른 그들처럼 ③집을 쫓는 모험 ④잠시 중지된
①의심을 품자, ②명품 위에 쓴 시,우리가 웅덩이를 안다 해도 갈 데가 없다
①강물을 읽다 ②누가 길 위에서 우는데 ③이게 내가 하는 일이에요
그림 속에 펼쳐진 창덕궁과 창경궁의 장대한 경관
-<동궐도>
장진성
서울대학교 고고미술사학과 교수, 1966년생
공저서 『Landscapes Clear and Radiant: The Art of Wang Hui, 1632-1717』, 저서 『단원 김홍도: 대중적 오해와 역사적 진실』, 역서 『화가의 일상: 전통시대 중국의 예술가들은 어떻게 생활하고 작업했는가』 등
![]() 그림1. <동궐도>, 국보 제249호, 1828~1830년경, 비단에 채색, 각 첩 45.7x36.3cm, 전체 273.0x584.0cm, 고려대학교박물관 |
<동궐도(東闕圖)>는 현재 국보 제249호로 고려대학교박물관과 동아대학교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그림 1, 2). <동궐도>는 경복궁(景福宮)의 동쪽에 위치해 있는 창덕궁(昌德宮)과 창경궁(昌慶宮)을 그린 작품이다. 1392년에 새로운 왕조인 조선을 개창한 태조 이성계(李成桂, 1335~1408)는 2년 후 수도를 개경에서 한양으로 옮겼다. 태조의 명을 받아 정도전(鄭道傳, 1342~1398)은 한양에 지을 도성과 궁궐을 총 설계하였다. 법궁(法宮)인 경복궁은 1394년에 공사가 시작되어 1395년 9월에 완공되었다. 법궁은 정궁(正宮)을 의미한다. 경복궁은 도성의 북쪽에 위치해 북궐(北闕)로 불렸다. 제1차 왕자의 난(1398년) 이후 등극한 정종(定宗, 재위 1398~1400)은 한양을 떠나 다시 개경으로 환도(還都)했다. 태종(太宗, 재위 1400~1418)은 한양으로 다시 천도할 계획을 세우고 이궁(離宮)인 창덕궁을 창건하였다. 이궁은 별궁(別宮)을 의미한다. 창덕궁은 1404년 10월에 공사가 시작되어 1년 뒤인 1405년 10월에 완공되었다. 태종은 1405년 11월에 한양으로 재천도하였다. 창경궁은 본래 1418년에 세종(世宗, 재위 1418~1450)이 상왕(上王)인 태종의 거처지로 지은 궁궐이다. 건립 당시 창경궁의 이름은 수강궁(壽康宮)이었다. 1483년에 성종(成宗, 재위 1469~1494)은 세조(世祖, 재위 1455~1468)의 왕비이자 할머니인 정희왕후(貞熹王后, 1418~1483), 생모이자 대비인 소혜왕후(昭惠王后, 1437~1504), 제8대 예종(睿宗, 재위 1468~1469)의 계비(繼妃)인 안순왕후(安順王后, ?~1498)를 모시기 위해 대대적으로 수강궁의 궁역(宮域)을 확장하는 공사를 시작하였다. 1484년에 공사가 완료되었으며 수강궁은 창경궁이라는 새로운 이름을 얻었다. 임진왜란 때 경복궁, 창덕궁, 창경궁 모두가 소실되었다. 창덕궁은 1610년에 중건되어 경복궁이 중건된 1867년까지 법궁으로 이용되었다. 창덕궁과 창경궁은 동궐로, 광해군(光海君, 재위 1608~1623)이 1620년에 지은 경덕궁(慶德宮), 즉 경희궁(慶熙宮)은 서궐(西闕)로 불렸다. 이후 폐허가 된 경복궁을 대신해 동궐과 서궐의 양궐(兩闕) 체제로 궁궐이 운영되었다.
![]() 그림2. <동궐도>, 국보 제249호, 1828~1830년경, 비단에 채색, 274.0x578.2cm, 동아대학교박물관 |
그런데 <동궐도>는 그림 형식부터 특이하다. 동궐도는 본래 16개의 절첩으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그림 전체를 보려면 화첩을 하나하나 펼쳐야 한다. 이 그림은 왜 이런 형식으로 그려진 것일까? <동궐도>의 가장 이상적인 형식은 병풍이다. 이 그림이 병풍으로 그려졌다면 한눈에 그림 전체를 살펴볼 수 있는 이점이 있다. 상하로 접어 포개진 16개의 절첩을 모두 펴서 전체 화면을 구성하는 방식은 조선시대 회화에서 유례가 없는 일이다. 왜 이와 같이 절첩이라는 매우 불편한 형식으로 <동궐도>가 그려졌는지 그 이유를 알 수 없다. 16개의 화첩은 어느 곳에 펼쳐졌을까? 거의 길이 6미터, 높이 3미터에 가까운 <동궐도>는 벽에 펼쳐졌을까 아니면 전각의 바닥에 펼쳐졌을까? 절첩 형식은 흔히 대형 지도인 전도(全圖)에 사용되었다. 김정호(金正浩)가 1861년에 제작한 <대동여지도(大東輿地圖)>는 22개의 화첩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각 화첩은 접는 형식인 절첩으로 되어 있다. <동궐도>는 궁궐 그림인 동시에 상세하게 궁궐 내의 각종 건물과 시설물, 궁궐 주변의 경관이 표현된 회화식 지도이다. 조선시대에 지도는 행정적, 군사적 중요성으로 인해 기밀(機密) 문서와 같이 취급되었다. 따라서 궁궐을 치밀하고 정교하게 그린 <동궐도>는 최고의 기밀 그림이라고 할 수 있다. 즉 조선 왕실의 일급 기밀이라고 할 수 있는 궁궐 내부를 그린 <동궐도>는 절대로 밖으로 유출돼서는 안 되는 극비(極秘) 그림이었다. 따라서 지도와 같은 절첩 형식으로 이 그림이 제작된 것도 이러한 이유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 그림3. <동궐도>, 국보 249호, 1828~1830년경, 비단에 채색, 각 첩 45.7x36.3cm, 전체 273.0x 584.0cm, 고려대학교박물관 |
![]() 그림4. <그림 1>의 세부. 창덕궁 인정전(仁政殿) 일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