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문학기행문

유럽문학기행문
글쓴이 : 최영오 날짜 : 12.03.07|조회 : 7846



영국에서
꼬박 12시간을 날아와 히드로공항에 내렸다. 진짜 외국이라는 생각. 생김새가 다르다. 입국심사대에서는 화가 났다. 화 낼 일이 아니지 하면서도 화가 났다. 결국 영어가 문제였다. 편해진 씨가 와서 일행이라고 말을 해 준다. 이름이 좀 특이한 그는, 내가 태어나 처음으로 비행기를 탔을 때 옆에 앉은 사람이다. 그의 유창한 영어실력에, 무엇보다 그가 보는 영자 신문 때문에 나는 그가 한국 사람이라고는 상상할 수 없었다. 하지만 도쿄 나리타공항를 거쳐 여기까지 오는 동안 한국사람인 편해진씨와 일본인 승무원은 영어로 말을 했다. 이 엄청난 충격. 자신의 언어를 가지고도 외국어로 대화를 했다. 내가 화를 내고 있는 것은 영어가 주는 중압감 때문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 내 언어는 내 나라를 떠나는 순간 전혀 소통이 되지 않는, 쓸모 없는 것으로 변해버렸다.
그와 헤어지고 숙소로 가는 길. 날카로워진 신경으로 고민을 한다. 에레베이터를 타고 내려가 지하철을 타야 하는 영국의 지하철역에 대해, 전철이 서울보다 낡았다고 사람들이 말하는 동안에 나는 내가 읽은 외국 시들을 떠올린다. 눈치로 읽었던 시들. 과연 우리의 시들을 번역했을 때 나처럼 영어를 못하는―한글을 모르는 영국 사람들은 나만큼이라도 읽어낼 수 있을까. 정말 어느 소설가의 말처럼 영어가 세계를 지배하는 시대에 우리는 영어로 작품을 쓰는 것을 심각하게 고려해봐야 할까. 역시 준비가 필요한 여행이었다는 생각. 그리고 이 여행이 끝날 때까지 이 숙제는 나를 따라다닐 것이라는 예감에 사로잡혀 영국에서의 첫날을 보냈다.
기차 안에서 표를 검사할 때마다 나는 표를 보여주며 창 밖을 본다. 사람들이 지도를 보며 위치를 확인하는 동안 나는 갈매기를 보며 여전히 바다가 가깝다고 생각을 한다. 여행을 시작한지 닷새가 너머 가는데 모레면 떠날 영국, 아무런 준비 않고 도착한 이곳에서 나는 늘 이런 식이다. 사람들이 영국의 풍경들을 말하는 동안 나는 새 소리를 들으며 이곳에도 참새가 있구나 생각했고 일행과 뮤지컬을 보고 나와서는―뮤지컬, 그 알아들을 수 없는 말로 노래 부르던 배우들을 칭찬하는 일행들 속에서 나는 술 취해 토하는 사람, 담배꽁초를 아무데나 버리는 사람들을 보며 서울이나 런던이나 사람 사는 곳은 다 같구나 생각했다. 그래, 준비 안된 여행에서 나는 끝없이 비교하고 유추해 냈다. 영국의 모든 집들, 심지어 어떤 집들은 지붕을 온통 커다란 유리로 만든 곳도 있었는데 그 이유 또한 날씨에서 때문일 것이라고 유추해 냈다. 영국의 젊은 남자들이 모두 축구선수 베컴의 머리, 그 닭벼슬 머리를 하고 다니는 이유도 지금 창 밖에 펼쳐지는 넓은 잔디에서 찾아낸다. 그리고 이젠 무엇을 보든 유추해야 하는 이 익숙하지 않은 습관을 지우려 창 밖의 나무들을 자세히 본다. 모국어로 쓰여진 나무들에 관한 시들을 떠올린다. 플라타너스를 만나면 김현승 시인의 「플라타너스」가 아니라 이정록 시인의 「플라타너스」― ‘닭 모가지라도 받아야겠다는’‘,‘목이 없어 아직/ 山으로 가지 못한’한국의 외국산 나무를. 잔가지에 여전히 눈 갖고 있는 나무를 만나면 박용하 시인의 추운 나무들, 지금도 한계령에서 폭포처럼 타오를 나무들을 아무 부담 없이 거리낌없이 떠올리며 이 여행에 적응하리라 다짐한다. 그래 군대에 왔다고 생각하기로 한다. 입대 후에 떠오르던 추억들―입대 전의 많은 추억들 떠올리듯 나는 모든 것을 한국과 나의 추억에 빗대어 생각하기로 한다. 그리고 너도 아는 한 여자, 여행만 시작하면 나타나는 이 여자를 굳이 밀어내지 않기로 한다.
사람들이 웃고 떠드는 동안 몇 번이나 화장실에 다녀온다. 그들의 이야기가 끊길 때마다 나는 방금 떠나온 브라이튼의 바닷가를 떠올린다. 비 내려 더욱 뛰어들고 쉽게 만들었던 바다. 대서양의 초록색 물을. 어제 ‘세 개의 무대’라는 술집에서 마신 그 쓰디쓴 기네스맥주의 거품 같던 파도의 흰 포말을 생각한다. 이성복 시인의 시 「서해」를 온전히 이해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긴장을 늦춘 내 추억의 포말들은 마구 부서지기 시작한다.
‘아직 서해에는 가보지 않았습니다/ 어쩌면 당신이 거기에 계실지 모르겠기에’.
첫 연을 중얼거리자 선영이 형의 대부도가 떠오른다. 이미 서해까지 와버렸구나 하는 생각에 밤새 혼자 노래방 기계를 놓아주지 않았던 그 밤이. 고개 흔들며 영국에서의 추억 떠올렸지만 떠오르는 모든 추억들, 그 여자와 관계된 것들이다.
영국의 첫날 토마스 하디의 생가. 하디가 직접 설계하고 지었다는 집은 닫혀있었다. 그의 유품 있는 동네 박물관 들러보고 우리네 시골읍내처럼 작은 도체스터의 시장거리 걷다 서로의 마음 맞아 찾아가던 곳. 스톤헨지 사는 길. 영국의 둥근 택시 타고 달리던 길. 양옆의 이름 알 수 없는 아름드리 나무들은 결혼 소식을 듣고 무전여행을 시작했던, 윤구형에게 돈 좀 붙여달라 전화하고 걸었던 담양 들어가는 길, 그 사이프러스 나무들 떠오르게 했다. 스톤헨지의 돌들 건성으로 보고 멀리 양 떼들 볼 때는 전혀 상관없는 밀레의 그림. 「이삭줍기」가 떠오르고 아니, 그보다는 그 그림을 볼 때마다 그림 속 사람들은 안보고 지평선만 보던 그 여자 떠올랐다.
어제 다녀온 ‘푹풍의 언덕’. 바람의 언덕까지 달려가 몸을 맡긴―그 미친 바람조차 폭우 쏟아지던 잔디밭에 너부러진 나를 떠올리게 했다. 광명의 그 잔디밭―철이 네가 아직도 그 곳을 기억한다면 나는 본 ‘폭풍의 언덕’은 바로 그런 곳이었다고 말하고 싶다.
이 어쩔 수 없는 여자는 왜 유럽에까지 따라와 나의 문학기행을 망치고 있을까, 하는 생각. 여기서 그칠 것 같지 않은 두려운 예감. 그 예감을 지우려고 밤마다 마시던 소주를 생각하고 있다. 슈퍼에서 사온 물, 우유 다 떨어지고 입 속 말라갈수록 소주 생각이 간절하다. 내 어머니가 싸주신 술. 술버릇 하나는 아버지를 닮았다하여 나를 위해 싸주신 어머니의 소주. 하지만 소주는 호텔에 있다. 나는 숙소의 소주가 그립니다. 같이 온 사람들이 영 낯설고 내 기억 속에 사는 여자는 점점 선명하게 얼굴을 들이민다.
프랑스에서
물집이 잡힌 것을 실토했을 때, 같이 온 대산문화재단의 전성우씨는 나를 신나게 놀렸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내는 시골 놈이 아니라는 것이다. 시골에서 자란 사람이 그 정도 걷고 어떻게 물집이 잡히냐는 것. 벤츠가 어느 나라 자동차인지 모르는 것이, 각 나라의 환율을 모르는 것이 내가 촌놈이기 때문이 아니라 무식해서라고. 그 정도의 관심도 없이 어떻게 시를 쓰냐, 고 놀릴 때보다 더 화가 났다. 영국에서부터 내 발은 신발을 거부하고 있었다. 벗고 다닐 수 있다면 그렇게 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리고 함께 온 사람들처럼 좀처럼 익숙해지지 않는 새 신발은 샹제리제 거리를 걸을 때―그 화려하게 돈 치장한 거리에서―내 값싼 신발은 드디어 자괴감에 빠졌는지도 모른다.
나는 무엇을 이루어 놓았는가. 혹 그 여자 이런 나를 미리 알고 있지나 않았을까. 서점들 둘러보는 내내 아문 상처 헤집는 사람처럼, 온 길을 되짚어 가는 사람처럼 걸으면 걸을수록 물집은 내 여린 추억들을 깨웠다.
모네의 화집을 넘길 때, 어제도 걸었던 센강의 다리들 생각나고 있었다. 색약이라 처음부터 그림감상을 포기했던 내게 처음으로 그림 같아 보이던 모네의 그림들. 「베퇴유의 여름」의 베퇴유는 센 강변의 어디쯤 있을까, 아폴리네르의 시에 나오는 「미라보 다리」는. 아니 영화「퐁네프의 연인」에 나오는 다리 퐁네프를 찾으려 초조해 했던 에펠탑 떠오르고 있었다. 그리고 되살아난 알 수 없는 초조함을 지우려 「수련」연작을 넘기고 있을 때, 채호기 시인의 「수련」 연작은 떠오르지 않고 『슬픈 게이』의 많은 시들 떠올랐다. 죽은 애인을 그리워하는, 그리하여 자신의 몸을 바꿔가면서 한 여자의 삶을 살아가고자 하는, 시집 속 남자는 섬뜩하다. 하지만 아름답다. 그 남자처럼 살지 못한, 살지 못할 나는, 「마라보 다리」의 사내처럼, 어디가 어딘지 도무지 알 수 없는 이 이국에서 드디어 실연을 받아들이는 것일까. 과장하면 10년이 다 되가는 실연을.
모네의 화집을 사서 나오며 모네의 정원은 여기서 얼마나 멀까, 생각한다. 여행 준비를 전혀 안한 나는 그 곳이 어딘지 모르고 그래서 가보자는 말을 못한다. 다만 누군가를 일생동안 기다린 다면, 흐르는 물이 있는 곳이 아니라 「수련연못」에 나오는 아늑한 다리 같은 곳, 그런 조용한 곳이 좋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남는 것은 사진이라고 루브르박물관 유리피라미드 앞에서 사진을 찍고 저녁 먹으러 가는 길. 희곡 당선자 문정연 씨가 발이 어떠냐고 다시 한번 묻는다. 시상식장에 왔던 후배들이 예쁘다고 했던 여자다. 너는 보지 못한 그녀는 얼굴만큼 마음도 이쁘다. 뷔페 식당에서 저녁을 먹는 동안 나는 그녀의 따뜻한 말 한마디로 내 이명이 멈춘 것을 느낀다. 먼 시간도 아닌 어제 다녀온 몽마르트르 언덕을 음식의 풍요로움과 함께 추억한다.
예수성심대성당에서 나와 내려다보던 파리의 전경. 짓무른 발이 처음으로 편히 쉬고 있었다. 파리에 와 가본 곳들, 노트르담성당, 샤이요궁, 에펠탑, 개선문. 그리고 내가 이름 외우지 못한 많은 곳들 흐린 날씨와 땅거미로 구분할 수 없었지만 내 마음은 여행에서 처음으로 편안함을 얻었다. 시인들의 무덤이 있다는 곳 가지 않았지만 물랭루주 가보지 않았지만 하나도 서운하지 않았다. 내 귀속에는 언제나 따라다니는 이명 멈추고 방금 경건하게 들었던 수녀님들의 노래 소리―프랑스에서의 첫날, 자전거를 타고 달리며 듣던―베르사이유 호숫가 바람소리처럼 울리고 있었다. 유럽의 모든 건물들처럼 흰 대리석으로 지었다는 성당. 다른 건물들처럼 오래되어도 까맣게 변하지 않는다는 세월이 갈수록 더욱 희게 빛난다는 성당에서 내 귀를 헹궈냈기 때문이었을까.
성당에서 나와 문정연 씨가 내 발이 어떠냐고 물을 때 나는 드디어 사람들을 우리로 받아들였다. 함께 여행하는 사람들에서 함께 여행하는 가족으로. 내려오는 길에서는 사창가를 들렀다 가자고 농담까지 하고 전철을 타고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는 파리 7대학에서 만난 사람들―이국에서 한국의 문화와 문학을 알리는, 살 부비고 싶을 만큼 고마웠던 사람들을 떠올렸다. 모국어라는 단어를 이제야 이해했다는 생각. 그들의 따듯한 환대를 위해서라도 파스의 말처럼 모국어를 살찌우는 시인이 되리라, 거창한 다짐도 했었다. 그리고 내가 종교를 가진다면 그 것은 저 아름다운 목소리들을 들을 수 있는 천주교가 될 거라는 생각.
생각해 보니 영국의 대영박물관에서도 루브르박물관에서도 그리고 영국의 그 금빛 국회의사당과 내가 본 많은 건물들 속에서 나는 어떤 소리를 찾고 싶었나보다. 장석남 시인의 말처럼 문맹자의 가슴에도 쉽게 우물을 파놓는 음악. 영국의 거지에게 동전 주던 나를 나무라던 전성우씨 조차 프랑스의 노래하는 거지에게는 선뜻 동전 내밀게 만드는 음악. 혹, 나처럼 끝없이 사람들 속으로 들어가고 싶어는 사람에게 쉽게 문 열 수 있게 도와주는 소리. 나는  여행 내내 그런 소리를 듣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스위스에서
인터라켄 오스트 역으로 가는 길. 이른 아침인데도 스키 복장의 스위스 사람들 기차가 역에서 멈출 때마다 밀려들었다. 그제서야 나는 오늘이 주말이라는 것을 생각해냈다. 하지만 곧, 시간을 계산한 것이 큰 잘못이라도 저지른 양 얼굴을 붉혀야했다. 한국인 관광객들과 함께 산악열차 한량을 온전히 차지하고 오르던 융푸라우. 터널 몇 개를 지나자 칼선 산정이 아침해를 받고 있었다. 석양에 빛나는 깨진 유리조각처럼, 산정묘지의 시 구절처럼 ‘산정은/ 얼음을 그대로 뒤집어 쓴 채/ 빛을 받아드리고 있었다.’
‘저 산정의 눈들은 만년설이리라. 어느 아침이나 저렇게 금빛으로 빛났으리라.’
책을 읽듯 산정의 이미지를 정리하자 산정이 반사한 빛들, 기차가 방향을 틀 때마다 산정의 아침빛은 내 얼굴에 싸대기를 날렸다. 산정으로 가는 길 아니냐고, 무엇인가 새로운 각오를 세우기로 한 놈이 웬 잡생각이 그렇게 많으냐고, 산정의 빛들이 나를 흔들어 깨웠다.
일상을 벗어날 때마다, 낯선 곳에 닿을 때마다 떠오르는 그 여자, 떠난 지 몇 년이나 되었는지 헤아려보던 나를―나 스스로 잊기로 했다.
산정은 올려다보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는지 모른다. 철이 네가 좋아하는 시처럼 멀리서 보면 한바탕 푸른 풀밭이었던, 만년설로 아름다웠던 산정에서 나는 아무런 계획도 세우지 못했다. 실망했다. 무엇하나 만만한 것이 없어 깨지고 상처 입었다. 실제로 평론 당선자 박은미 씨는 몇 번을 넘어졌다. 하지만 일행이 감탄하는 동안 나도 구름 낀 설산의 풍경에 감탄했다. 사진 찍을 땐 환하게 웃었다. 나는 나를 어떤 인간으로 끌고 갈 것인가. 전달되니 않는 언어는 말하지 않느니만 못하다는 생각. 혼자 앓아야 하는 고통은 시로밖에 정리 할 수 없다는 생각. 결국 나 스스로 다시 마음의 문을 닫았다. 나도 황동규 시인의 어투를 빌려, 시인의 시, 「수화」 첫 구절을 온전히 풀어냈다.
그 금빛의 얼음 조각 햇살에 싸대기 맞다 정신이 들었을 때 나는 자리가 없어 서있던 한 할머니를 보았다. 다가가 내 자리에 앉으라고 했을 때. 아! 할머니라는 말에 그 할머니는, 아니 아주머니는 기차 안이 온통 울리도록 나를 야단쳤다. 할머니라는 말 때문에. 뒷모습만 보고 호칭을 정한 것이 잘못일까. 하지만 나는 어떤가? 나는 사람들의 말에 상처받지 않을 자신이 있는가. 아니, 남들의 말이 아닌 말속에 있는―말의 마음을 읽어 낼 수 있는가.
‘남들이 삭발을 할 때, 삭발 그 때이른 눈발, 너는 아래 털을 밀었어.’
다시 「수화」의 첫 구절을 생각해 본다. 그 뒤는 생각이 나지 않는다. 대단한 아픔도 없는 대단한 사건도 없었던 스물 아홉.
내 슬픔이나 고통 안에서라도 아래 털을 밀어보자 생각한다. 다시 톱니가 박힌 기차를 타고 내려오는 길. 이름이 너무 길어 외울 수 없는 중간역에서 스키 타는 사람들을 본다. 스키장은 한번도 가보지 못했지만 아마 이곳은 세계 최대의 스키장이 아닐까하는 생각을 한다. 입장료도 없이 기차비만 내면 스키를 탈 수 있는 곳. 내가 비루포대 이야기를 했을 때 웃던 일행들에게 보여주고 싶은 사람들이 나를 지나쳐갔다. 나무로 만든 설매를 타고 아이와 내려가는 가족을 보며 나도 썰매를 타고 한국에 빨리 갔으면 하는, 정말 아이 같은 생각을 한다. 아래 털을 밀고―속마음을 보여주면 바로 바보가 되는 서울이 아니라 내 고향으로. 시에 목숨 걸 생각은 없지만 아플 때마다 힘들 때마다 아무도 보아주지 않아도 시의 수화를 하며 살 수 있는 어느 시골로 가는 상상을 한다. 이제 그 여자 이야기는 시에서도 하지 않겠다고 생각한다.
독일에서
쾰른성당은 공사중이다. 2차 세계대전 때 부서진 곳을 아직도 보수하는지 모른다. 아니면 프랑스에서 보았던 많은 건물들처럼 천천히 보수 공사를 하는지도. 무엇이든 상관이 없다고  생각을 한다. 우리는 오늘 일본으로 떠난다. 생김새가 비슷한 사람들이 사는 곳. 외국이란 생각을 하지 못했던 곳으로. 하지만 나는 이 여행에서 무엇을 보고 무엇을 얻었을까. 이 준비 안됐던 여행의 끝에서 정리를 해보려하지만 머리 속에 떠오르는 것은, 울리는 것은 아름다운 화음이다. 쾰른성당의 웅장함이 몽마르트의 예수성심성당 수녀님들의 아름다운 노래보다 못하다는 생각만 하고 있다. 각 나라들의 도시들은 서울과 비슷했다는 생각. 여행은 시골로, 자연 속으로 다녀야 한다는 생각. 여행에서 만난 문제들―거창하게 말하면 우리 문학에 대한 문제도 어느 정도 정리가 되었다는 느낌. 그 여자도 여행의 끝물이라 더 이상 나를 괴롭히지 않고 무엇보다도 내 성격에 대한 의구심을 어느 정도 풀었다는 생각을 한다. 원체 이렇게 생겨 먹은 놈이라는 것을.
스위스에서 독일로 오는 기차 안에서 문정연씨에게 삭발에 관한 이야기를 했다. 황동규 시인의 「수화」의 첫 구절 이야기를. 문정연 씨는 ‘왜 그걸 이제 이해했는지 모르겠다.’고 그녀가 보기에 나는 지금까지 그렇게 살았을 것 같다는 것이다. 맞는 말이다. 나를 버리고 나의 무엇을 사람들에게 보여줄 것인가. 사람의 성정을 어떻게 바꿀 수 있는가. 있는 그대로 살기로 한다. 아래 털을 밀고 수화를 하더라도. 그도 안되면 지금까지처럼 어디를 가든 좀 모나게 살며 사람들을 불편하게 하리라. 그리고 그 안에서 답을 찾아야지.
기차를 타고 공항으로 가는 길. 갑자기 이제는 만나지 못할 사람들이 그립다. 프랑스의 7대학의 교수님들. 한유미씨. 영국에서 만나 다비데라는 이탈리아 친구까지. 그리고 본에서 만난 후베 선생님과 한국어과 교수님들. 내가 내 자신의 모습을 인정하자 이들 모두를 다시 만나고 싶은 생각이 든다.
대산대학문학상 당선자들이라는 이유로 우리는 본의 이곳 저곳을 친절히 안내 받았다. 베토벤의 생가에도 가고 후베 선생님의 배려로 본 대학의 독어독문학과 도서관에서 독일어을 어떻게 연구하는지, 그들이 어떻게 독일어와 독문학을 지켜나가는지 들었다. 한강의 유람선도 타보지 못한 내가 독일 유람선을 타고 라일강을 건넜다왔다. 하지만 나는 처음으로 내 나라가 분단되어있다는 사실을 확인해야 했다. 프랑스에서도 들었던 이야기.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북한사람들을 만나지 못했다는 이야기가 떠올라서가 아니었다. 내가 MBC ‘이제는 말할 수 있다’에서 본 ‘동백림사건’ 이야기가 술안주처럼 스쳐지나갔기 때문이 아니었다. 이곳에서도 북한의 핵문제가 최대 이슈다. 정말 이라크를 공격한 다음 부시는 북한을 공격할까? 어떤 사람들의 말처럼 전쟁을 하고서라도 통일을 이루어야 할까. 나는 모든 대답을 후베 선생님에게서 찾았다.
후베 선생님은 한국사람이다. 아니 생각까지, 행동까지 한국사람처럼 하는 독일사람이다.  기차가 떠날 때까지 기다려 주던, 기차가 출발하자 기차를 따라오던 너무나 한국사람 같은 독일 사람. 내가 분단을 격은 국가의 지식인으로 현재의 독일과 과거의 독일의 차이가 뭐냐고 물었을 때 너무 어려운 질문이라고 웃어주던 사람. 그가 노무현 당선자에 대해 물을 때, 북한문제, 통일에 관한 문제에 있어서는 낙선한 이회창 후보보다는 잘 풀어갈 인물이라고 나는 대답했다. 하지만 그는 그건 더 지켜봐야 한다고 독일이 통일을 할 때 얼마나 많은 외세의 힘이 작용했는지 아느냐고, 외국에서는 노무현 당선자에 대해 아는 게 너무 적다는 걱정을 해주었다. 한국문학 번역에 대한 짧은 대화를 할 때―나 드디어 우리의 한글, 한국문학에 대한 정리된 생각을 말할 때―‘독일에 없는 감성, 독일에 없는 삶을 이야기 할 때 독일 사람도 한국 문학에 관심을 가질 것이다’라고. 그리고 ‘그 어떤 민족이든 그 민족의 삶을 가장 잘 표현 할 수 있는 것은 그 민족의 언어다.’라는 말을 했을―고개를 끄떡여 주던 사람. 뱃삯을 끝끝내 자신이 내던 사람. 나는 후베 선생님에게서 모든 답을 찾았다.
후베 선생님처럼 한국사람보다 더 한국사람 같은 외국인이 많아질 때 부시의 공격도 피할 수 있고 아니 거창한 통일에 관한 문제가 아니라도 내가 읽는 한국문학이 제대로 대우를 받을 것이라고. 하지만 나는 어땠는가.
해외에만 나오면 모든 것이 한국이 최고라고 우기는 사람이 있다는 말. 하이델베르크의 철학자의 길 거닐 때 대단한 곳이 아니구나 폄하하던, 괴테 생가에서 더럽게 부자였구나 비꼬았던 생각들 떠오른다. 내가 여행한 나라들에 대해 나는 얼마나 많은 편견과 자괴감으로 바라보았는지를 이제야 깨닫는다. 갑자기 미안해진다. 여행 중에 본 서양의 나무들. 어떤 것은 확실치도 않으면서 바오밥나무라고 나 스스로 이름 붙였던 나무도 있었다. 돌아가면 그것의 이름이라도 찾아보자 생각을 한다. 그러나 내가 언제 다시 해외에 나와볼 것인가. 철아 너는 여행을 한다면 준비를 많이 해서 와라. 나처럼 설사를 걱정한다면 햇반을 많이 사서 와라.
일본에서
새벽 5시. 나리타의 니코 호텔에 있다. 아니 목욕탕에 있다. 불과 16일의 여행이었는데 시차라는 것이 생긴 것일까? 밤새 물집 잡혔던 굳은살 떼어내며 돌아 가서의 생활을 걱정하고 있다. 독일에서부터 걱정했던―직장을 잡을 것인지 공부를 더할 것인지에 대해. 서울의 전세 값은 장난이 아니라는데 그곳에서 살 수 있을까하는 미리 겁먹고 있다.
거울에 비친 눈은 붉게 충혈되어있다. ‘어딘가 전세를 얻는 대로 침대를 사자.’, ‘일회용 가스렌지가 아니라 제대로 된 것을 사야지.’ 잠을 자지 못한 신경들 모두 눈 속의 핏줄로 모여들고 작은 눈알의 핏줄들은 아직 아무 것도 결정된 것이 없는 상황에 세세한 것까지 신경을 쓰는 나를 못마땅해 한다. 고개를 흔들며 털어 버린다. 한국에 도착하면 나는 한국의 시간에 익숙해지리라. 한국의 낮과 밤에. 한국의 생활에. 불확실한 내일에 너무 신경 쓰지 않기로 한다.
일본으로 오는 비행기 안에서 나는 잠시 내 주위를 생각했다. 지금 이곳에 잠자고 있는 일행들과 내가 아는 많은 사람들. 착한 사람들, 내 주위는 온통 착한 사람들뿐이다. 그리고 내가 내 주위 사람들을 얼마나 사랑하는 지도 알았다. 가족을, 친구들을, 우리를―윤구형을, 선영이 형을. 꼭 제대를 하는 느낌이었다. 그러나 그 때처럼 철이 네게 전화하지 않으리라. 너네 집에 들르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이 긴 편지는 네게 보낼 것이다. 김종삼 시인의 시처럼 ‘순하고 명랑하고 맘 좋고 인정이/있으므로 슬기롭게 사는 사람들이/그런 사람들이/이 세상에 알파아고/고귀한 인류이고/영원한 광명이고/다름아닌 시인’인 내 주위 사람들이 있는 곳에 닿으면 조금은 떨어져 있겠다고. 그래 돌아가면 나는 무엇이든 다시 시작할 것이다. 다시 시작하는 곳은 되도록 나를 아는 사람들이 적은 곳이었으면 싶다.
이제 곧 밥을 먹고 한국으로 간다. 답장은 하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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