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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일문학예술의 정신사적 의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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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문학예술에서의 친일 행적이 지닌 특징
친일문학 예술에 접근하는데는 대략 다음 몇가지 중요한 쟁점을 주시해야 한다.
첫째 다른 분야와는 달리 문학예술은 작품과 행적이 가장 분명하게 남아 있다는 점이다. 이 말은 다른 분야의 친일 행위와 형평에 걸맞은 평가의 안목이 요망된다는 뜻을 지닌다.
둘째 고려되어야 할 점은 친일 예술인 옹호론에 빈번히 동원되는 재능론이다. 그러나 면책 특권적인 발상은 역사의식과 민족의식의 입장에서 온당치 못한 논리이다.
셋째로 고려되어야 할 사항은 친일작품이나 행위가 악랄했던 식민통치자들의 강압에 의한 부득이한 결과라는 상황 윤리론이다. 하지만 친일문학인 가운데는 유감스럽게도 엄청난 위하력이나 육체적인 고문, 기아에 직면한 궁핍 등등의 물리적인 압박 현상을 찾기 어렵다.
넷째는 친일 예술인들의 민족·국가·사회적인 공헌과 기여론으로 상쇄할 수 있다는 논리이다. 이 문제에 관한한 유일한 보상책은 바로 반민족 행위 그 자체에 대한 속죄와 참회일 것이다.
다섯째 '전국민 친일론'을 경계해야 한다. 친일파는 국민 절대다수가 아니라 소수일 따름이다. 그 소수가 자신들의 연명책으로 너도 나도 다 친일파였기에 이를 묵과해 버리자는 논리를 전개하는데 부화뇌동해서는 안된다.
2. 친일예술의 이념적 접근
친일론은 정한론(征韓論) 이후 역사 교과서 파동까지 일관된 대화혼(大和魂)의 발로로 확고한 뿌리와 탄탄한 줄기와 무성한 잎과 꽃들로 치장된 일본적 파시즘이라는 천황주의 극우 이데올로기선상에 버티고서 아시아 전역을 배회하며 둥지를 틀고자 틈새를 노리고 있는 강력한 접착성 이념이다. 친일예술의 이념성, 곧 자발성으로 창작한 친일작품은 (1) 천황제 이데올로기 (2) 군국주의 혹은 파시즘의 독재체제 이데올로기 (3) 제국주의적 침략전쟁 이데올로기 (4) 민족적 허무주의 내지 식민사관 이데올로기 (5) 문학 예술에서의 순수미학과 유미주의, 기교주의 이데올로기 (6) 반공주의 이데올로기 (7) 일본 중심적 동양주의 사상에 바탕한 반 서구, 반 기독교 이데올로기 (8) 반 자본주의 이데올로기 등의 구조식을 지니고 있다. 친일예술작품은 이 8종의 이념성 중 몇가지를 복합적으로 지니고 있거나 유독 한가지만 강조하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 그러나 (1)에서 (3)까지는 제국주의 일본의 국체로서 분리될 수 없는 같은 뿌리를 지니고 있기에 한 작품에서 동시에 자동적으로 발현하도록 되어 있다. (4)는 '민족개조론'으로 상정되듯이 민족적 허무주의 일체와 일제의 선진성 찬양 및 동조동근론을 포함한다.
여기까지가 내향적 친일 이데올로기라면 (5)는 예술적 가치관으로서의 친일 이데올로기에 속한다. (6), (7), (8)은 다분히 외향적이며, 친일예술인 중에서도 식견이 높은 경우에만 나타나는 고도의 이념적인 단계에 속한다.
우리가 친일파를 청산해야 될 가장 중요한 원인도 바로 친일행위 그 자체가 아니라 사상사적인 이데올로기의 위력 때문이다. 사상사적으로 보면 친일은 전쟁범죄로 다뤘던 뉘른베르크 재판의 이념에 따라 (1) '고유의 전쟁범죄'를 저지른 것 말고도 (2) '평화에 대한 전쟁 범죄'와 (3) '인도에 대한 전쟁범죄'까지 다뤄야 할 것이다. (1)은 전쟁에 참여 또는 동원된, 혹은 전쟁을 독려한 단순 범죄일 수도 있다. 우리는 지금까지 주로 친일파라면 이 점만 부각시켜 조사 연구해 왔다. 곧 전쟁에 협력한 행위 그 자체만 중시한 것이다.
그러나 (2)는 그 전쟁으로 말미암은 평화의 파괴 사상을 추궁하도록 만든다. 사실 친일문학은 전쟁 찬양시, 곧 침략 미화와 약탈의 합리화에 다름 아니다. 바로 이데올로기적인 문제가 아닐 수 없다. (3)은 인도주의에 역행한 범죄로 가장 끔찍한 반문학적인 행위에 다름 아니다. 살육과 약탈과 인권 침해를 정당화한 작품이 친일문학이고 보면 반인도주의 문학이 곧 친일문학임을 느끼게 된다. 예컨대 같은 친일문학작품이라도 농촌에 들어가 생산 독려 이야기를 쓴 소설과, 학도병으로 자진 입대할 것을 독려하는 이야기는 다를 수밖에 없는데, 전자는 (1)의 단계에도 못 이르는 수준이라면 후자는 분명 (3)의 단계까지 넘나드는 이데올로기적인 문제일 터이다.
3. 참회론과 청산론
드골은 문학예술인에 대해서는 어떤 탄원이나 구명운동도 외면하기로 유명했는데 그 이유를 그는 "그들이 도덕과 윤리의 상징적 존재"이기 때문이라며 이렇게 말했다. "예술가가 가장 위대하다고 하는 것은 선에 대해서와 마찬가지로 악에 대해서도 강력한 영향을 미친다고 여겨지기 때문이다. 반대 진영을 선택한 작가들에 대해서 우리는 그들의 자극적 웅변술이 어떠한 범죄와 어떤 벌에 해당되는지를 너무나 잘 보고있다"(이상 프랑스 항목은 주섭일 著 『프랑스의 대숙청』, 중심출판사, 참고 및 인용).
벤야민은 『독일 파시즘의 이론』에서 당대적인 혹독함 앞에서 소극적인 저항이나 도피의 상징으로 번창했던 자연 경관을 다룬 작품에 대해서조차도 현실 호도의 혐의가 짙다고 힐난하고 있다(볼프강 보이틴 외 지음, 허창윤 옮김, 『독일 문학사』, 사명사, 참고).
경제적인 OECD 가맹이 자랑스러운 게 아니라 정신적인 소아병적 우익 이데올로기가 수치스러운 것이다.
사르트르는 독립 프랑스에서 「협력자란 무엇인가」란 글을 썼다. 그는 나치 점령 아래서 친독 협력을 했던 지식인, 정치인, 종교인들을 분석하면서 치밀하게 그들을 관찰했더라면 훨씬 먼저 그들의 정체를 알 수 있었을 것이라고 말한다. 이어 그는 친독 협력자의 정신사적인 맥락을 멀리 프랑스대혁명까지 소급하여 혁명 반대의 국왕 옹호 보수주의자를 거론하고 있다. 민주주의에 대하여 체질적인 반감을 가지며, 온갖 개혁과 개방과 진보를 외면하는 정치인, 지식인, 종교인들이 결국은 정신사적으로 파시즘 - 외세 의존적 특권 향유 이데올로기를 신봉할 수밖에 없다는 논리는 설득력을 가진다.
독일도 예외가 아니어서 "(1920년대 말기의) 상황 전개가 지식인, 작가, 예술가들에게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당시 주의 깊은 사람이라면 늦어도 1929년"에는 알아차렸어야 했었다고 반성한다(위의 『독일 문학사』 참고).
한국 근현대사도 예외가 아니다. 일제 침략을 전후하여 청빈하게 개혁과 국권 수호를 주장했던 지식인들은 왕으로부터도 배척당한 채 재야에서 무수히 경고했다. 이후 민족운동에 투신했고, 권력의 측근에서 온갖 부정한 특권을 누렸던 세력들은 거의 친일파로 전락했음을 볼 수 있다. 친일파 문제는 이런 점에서 단순한 행위의 문제가 아니라 이데올로기의 문제일 수밖에 없으며, 그러기에 과거의 일이 아니라 바로 오늘과 내일의 민족적 이정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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