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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내의 후진국 요소들

미국에 한번 다녀오지 않은 사람이 드물고 미국에 친척이나 친구 한명 두지 않은 사람이 드문 우리 현실에, 미국에 대한 여행기나 여행 인상을 쓰는 것은 무척이나 조심스럽다. 그러나 잠깐 지나친 사람이 핵심을 볼 수도 있다는 생각에 미국에 대한 느낌을 간단히 적어본다.
  미국 남서부와 북동부를 한달간 여행한 필자에게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빈부의 격차였다. 남서부의 황량한 대지에서 움막같은 집을 짓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북동부의 거대한 빌딩 숲 속에서 화려한 인생을 즐기는 사람들이 극단적 대조를 이루었다. 가난한 지역과 동부 부촌의 실제 개인 소득의 차이는 연간 수만불에 이른다고 한다. 이런 빈부격차는 유럽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현상이다.

  미국 남서부의 자연들은 웅장하면서도 다양하고 오밀조밀하여 수없이 보아도 지겨울 것 같지 않았다. 반면에 난민촌을 연상시키는 그곳의 옹색한 집들은 아름다움과는 전혀 상관이 없었다. 그렇다고 북동부 지역의 빌딩들이 꼭 아름답다고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건물의 기능만을 주로 고려했지 미적 요소들은 대개 배제되어 있었다. 아름다운 것 같지만 한번 더 살펴보면 뭔가 빠져 있어 허전한 느낌을 주었다. 미국의 아름다운 자연에 비해서 도시들은 미학이 무시된 썰렁함 그 자체였다.

  환경보호에 대한 관심은 중·북부 유럽과 일본에서는 생활 속에 깊이 뿌리내리고 있다. 그래서 자원의 절약과 재활용이 생활화되어 있다. 자신의 컵으로 자판기의 커피를 뽑아 마셔야 되는 곳이 적지 않은가 하면, 호텔에는 수자원 보호를 위해 가능하면 수건을 며칠간 더 사용해 달라는 스티커가 붙어 있다. 자동차 구입과 운행에도 경제성이 중요시된다. 그에 반해 미국은 어디가나 1회용품 천국이고, 잠시 정지한 차들은 시동이 켜진 채 있다. 적어도 환경보호 측면에서 보면 미국은 분명 후진국이다. 그래서 교토협약 체결에도 미국 정부는 소극적인가 보다.

  유럽과 일본에서는 어떤 지역이든 그곳의 고유한 음식과 술을 즐길 수 있다. 또 오후에는 맛있는 케이크와 델리케이트한 커피를 즐길 수 있는 카페도 쉽게 찾을 수 있다. 그러나 미국은 어디서나 어린아이 목욕탕만한 콜라잔과 더불어 패스트푸드를 먹고 있었다. 물어서 별미식당을 찾아봐도 양은 충분하지만 질은 수준 이하였다. 그곳에서 만난 독일인 요리강사의 말이 압권이었다. "미국 사람들은 주먹만한 크기의 치즈가 100달러도 할 수 있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미국에서는 어디서나 국기나 그 주의 깃발을 볼 수 있었다. 관공서는 물론이고 가정집에서도 우리나라 휴전선 근방에서나 볼 수 있는 커다란 국기가 걸려 있는 것을 드물지 않게 볼 수 있었다. 어떤 집에서는 여러개의 국기를 한꺼번에 걸어 놓기도 했고, 또 어떤 집은 그것도 모자라 여러개의 국기를 걸어놓고 그 위에, "신이여 미국을 축복하소서"라는 글을 크게 써 놓기도 했다. 이런 미국적 내셔널리즘의 표현은 유럽적 관점에서 보면 좀 유치하다. 그리고 다른 민족의 문화에 대해서 관대한 듯하면서도, 미국 '문화' 이외에는 인정하지 않으려는 듯한 오만함도 엿보였다.

  미국은 시민문화의 본산인 유럽을 떠나 새 삶을 시작한 사람들의 후손들이 사는 곳으로, 유럽의 부르주아 전통 문화가 상당히 약화된 사회다. 또 그것이 미국 문화의 특징이며 그 때문에 자유의 나라라는 말이 나왔을 것이다. 반면에 일본은 유럽 부르주아 문화를 가장 잘 내면화한 아시아 국가라고 필자는 생각한다. 전통, 질서, 절차 등을 형식이라고 하면, 유럽과 일본은 그 형식이 강하게 작용하는 곳이고 미국과 한국은 약화된 곳이라고 필자는 믿는다. 그래서 형식을 별로 존중하지 않는 한국인들은 유럽과 일본에서는 기죽어 살아가고, 우리 궁합과 맞는 미국에서는 활달하게 살아가는가 보다.

  유럽 부르주아 문화에서는 돈에 대해서 말하지 않는다. 그러나 미국 사람들은 돈에 대해서 연봉에 대해서 말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듯했다. 어린아이들도 연봉을 보고 미래의 직업을 결정하고 부모의 재정 능력에 대해서도 스스럼없이 말했다. 돈에 대해서는 흔히들 말하지만 삶의 질에 대해서 말하는 사람은 드물었다. 밝은 표정의 사람들은 드물고 대개 진지한 얼굴이었다. 환하게 웃으며 일하는 스페인 사람의 얼굴 표정은 찾아보기 드물었고, 차분히 침잠한 눈길의 인도인의 얼굴도 볼 수 없었다. 세계 최강국에 사는 그들의 삶도 무척 바쁜 듯했고 그리 행복해 보이지는 않았다.

  그렇지만 친절한 사람들이 많은 것은 정말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