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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의 문학, 노년의 문학

장년(壯年)을 넘기고서도 문학적 열정을 거침없이 쏟아내는 주변을 만나면 외경의 마음부터 솟아난다. 앞으로 더 나은 글로 보답하겠다는 원로급 문인들의 소회를 듣게 될 때, 나는 그 노익장에 탄복하다 못해 질릴 때가 가끔 있다. 얼마 남지 않은 생애를 통해서 지금 보다 더 나은 진경(眞境)의 창작을 선보이겠다는 의욕이야 가꿀수록 아름답고, 지나치다 해서 나무랄 일이 아니다. 애초에 과욕으로부터 출발하고 속된 포부까지 용납되는 그런 세계가 문학이 아니더냐. 강건한 의지, 뛰어난 상상력, 불타는 정열, 창조적 모험심 등이 문학 창작의 덕목이라면 나이를 초월하는 자리에 젊은 글쓰기가 있고, 나이와 상관없이 유지되는 것이 문학의 동력이기도 한 것이다.

  생각해 보면 문학사의 감동적인 장면들은 나이를 잊은 문학적 천재들이 범인들로는 결코 따라할 수 없는 열정과 예지로 우주와 인간의 심층을 작품화한 데 있을 것이다. 그 예가 드물지 않아서 여기 거명할 필요조차 없지만, 노경(老境)에 이르기까지 지치지 않는 상상력으로 독자를 황홀하게 만든 찬란한 성좌들은 그 다함없는 예술혼으로 시대를 건너뛰어 우리를 감동시킨다. 그렇다면 필경은 편견이고 말 나이에 대한 이런 하잘 데 없는 느낌은 어디에서 비롯된 것일까. 그것은 아마도 예감으로 들끓는 날카로운 감각과 뜨거운 열정은 주로 젊음의 속성이며, 세상의 이치를 사리에 맞게 분간해 내는 느긋한 관조와 지혜는 노년의 것이기 십상이라는 나의 고정관념 탓이리라. 아니면 근래 들어서 하루가 다르게 위축되어 가는 사정(私情)이 거기 비추어진 까닭이 아닐는지.

  그렇더라도 무엇이 장년을 넘어선 저들로 하여금 문학은 결코 지치거나 병듦이 없는 청년의 세계라고 굳게 믿게 하는 것일까. 창작 활동을 나이들수록 더욱 규모가 확장되어 가는 발전소쯤으로 생각하게 만드는 것일까. 넘치는 생의 에너지와 문학적 재능에 대한 나름대로의 확신이 바탕에 깔려 있는 도저한 믿음의 결과일까. 스스로에게 염력(念力)을 불어넣으려는 일종의 주술일까.

  사실 문학은 삶을 지혜의 자장(磁場) 속으로 끌어넣기보다는 오히려 감동 쪽으로 기울어지게 하는 것이므로, 머리로 이해되는 작품보다 가슴에 사무쳐 오는 경우가 더욱 생생하게 읽혀진다. 상상력의 세계 또한 촉촉한 물기로 젖어 있어야 비로소 윤택하다. 지혜는 삶의 이치를 분간하게 하지만 생의 촉기(燭氣)를 북돋우는 것은 가슴 벅찬 감동과 사무치는 정열이다. 그러므로 젊은이에겐 지혜의 세계는 수범의 대상일지언정 그대로 살아내야 할 내용은 아니다. 열정에 사로잡힘으로써 삶의 감동을 구가하고 실패하면서도 실천하는 것이 젊은이다운 모습이다. 문학의 세계는 영원한 젊음으로 아로새긴 아름다움이 지배하므로 거기에서 터득되는 지혜의 내용은 가외의 것이라고 믿는다면 나만의 그릇된 판단일까. 선배들이 만들어 놓은 기존의 관습을 돌파하여 새로운 미적 전통을 창조해 내는 것이 청년다운 문학일 것이다. 그렇다면 오늘 문학에 매진하는 젊은이들은 창작을 새롭게 체험하려는 정열로 가득 차 있어야 마땅하다.

  누구에게나 다 문학하는 까닭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절박함이 사라져 버린 글쓰기는 안타까움만 가중시킨다. 선배들의 작품이므로 험 잡을 수 없고, 후배들의 습관적 모방을 보고도 못본 체 한다면 문학에 더 이상 희망이 없다. 의례적으로 읽고 쓰는 그 되풀이로는 금새 시들해질 것이고 마침내 명맥만 남기고 만다.

  도통한 사람의 지혜쯤으로 문학을 착각하지 말자(스스로에게 하는 다짐이지만). 이순(耳順)을 넘긴 나이라 하더라도 그가 쓰는 작품에는 뿌리칠 수 없는 창조적 열정이 깃들어 있어야 한다. 분출하지 않고서는 못 배길 생의 절박함과 감동 때문에 글을 쓰고, 그렇게 혼신을 다한다는 자부심으로 창작의 긍지를 유지해야 한다. 승패를 이미 초월한, 두는 것 자체가 즐거움인 바둑판은 한가한 고수의 여가(餘暇)는 될지언정 진정한 프로의 몫은 아니다. 프로는 이미 판가름이 난 한판을 계속 이어가지도 않는다. 승패가 분명해진 바둑판을 끝까지 붙들고 너절하게 군다면 너무도 우스운 프로가 아니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