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 수상작 리뷰 - 번역작품들이 추구해야 할 새로운 길 |
| |
오늘 아침 신문에 하버드, UCLA에 이어 예일대학교에서도 한국학 교과목을 정식으로 개설하기로 했다는 기사가 실렸다. 이러한 움직임이 시사하는 바가 많겠지만, 특별히 한국문학을 세계에 알리는 일에 관여된 사람들에게는 각별한 의미를 지닌다. 이제 우리가 번역하는 문학작품들은 타국의 대중에게 우리의 문화를 알리는 것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본격적으로 그 언어권의 인문학과 그것을 공부하는 젊은 지성인들에게 교과서 역할을 할 시대가 왔다는 것이다. 이 점에서 우리의 번역작업은 즐겁고도 두려운 작업이 되어진 듯 하다.
제 10회 대산 문학상(번역부분)을 차지한 『Everlasting Empire』는 원작 이해란 점에서부터 번역에 이르기까지 이러한 새로운 시대의 도래를 위해 잘 준비되어진 작품이라고 볼 수 있다. 역사소설과 추리소설이 어우러진 듯한 네러티브 스타일로 씌여진 『영원한 제국』은 우리에게 가장 잘 알려진 조선사의 한 부분을 『취성록』과 이인몽이라는 인물을 중심으로 다시 읽게 한다. 정조 24년(1800년) 1월 19일 하룻동안 규장각에서 일어난 의문의 살인 사건으로 시작하여 노론의 눈을 피해 영조의 금등지사를 정조에게 전하려던 이인몽이 노론측에서 보낸 자객의 공격을 받고 죽음은 면하나 그 후 30여 년의 방랑생활을 한 끝에 죽음을 맞이하게 될 때까지 독자가 이야기의 흐름과 전개를 하나도 놓칠 수 없게 만드는 박진감을 보여줌으로써, 잘 씌어진 추리소설의 매력을 그대로 지니고 있다. 또한 그 당시 정황이나 사상 뿐만 아니라 삶의 구석구석을 실감있게 그려낸 '문화소설'로도 손색이 없다. 그러나 이 작품의 깊이를 말하게 하는 요소는 저자가 책머리에 칼 구스타프 융을 인용하면서 암시하듯이 객관적인 사건들이 그것을 목격 내지는 경험하는 사람들의 내면, 즉 객관화될 수 없는 그들의 무의식 세계와 기묘하게 연결되고 있다는 점일 것이다.
이런 것들을 충실하게 소화해 낸 『Everlasting Empire』는 아주 잘된 번역작품으로 우리 문학성의 전달을 위한 학문적인 자료로써 쓰인다 해도 무난한 책이다. 역사학자의 서문에서부터 연대기, 등장인물 설명, 그리고 용어사전 등을 한결같이 전문가적인 솜씨로 다루었다. 또한 자칫 이질적일 수 있는 옛 시대의 여러 요소들을 아주 매끄럽게 처리한 것이 돋보인다. 이러한 성공적인 번역성 때문에 한국에 대해서 전혀 모르는 독자도 쉽게 매료될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번역 뒤에는 수많은 자료와 연구, 그리고 정리하는 과정이 따르는 것이라 역자의 수고가 번역 상으로나마 보상된다는 것은 참으로 기쁜 일이다.
굳이 '옥의 티'를 지적하라면 원작에서는 저자의 해설자적인 목소리가 이인몽을 비롯한 모든 인물들의 내면을 넘나드는 전지적인 '눈' 역할을 하는 반면 번역서에는 이러한 목소리가 많이 배제되었다. 종종 이인몽이 이 역할을 하면서 전체적인 이야기의 흐름을 잡아간다. 물론 역자는 이점도 "혼란스러움을 피하기 위해서"라고 역자서문에서 밝히고 있기는 하지만, 이것 때문에, 더 큰 것을 잃는 것이 아닌지 모르겠다. 이야기의 시초를 저자가 이인몽의 『취성록』을 우연히 동경의 고전서점에서 찾아든 것에서부터 잡고 있는 의도는, 그리고 그 '나'를 본문 속의 '나'인 이인몽의 목소리와 구분하여 3인칭 전지적 작가의 시점의 목소리에 투영하는 의도는 이야기 속의 이야기 그리고 그 속에 수많은 이야기들을 연결시키는 가운데 이야기같은 삶과 삶같은 이야기들을 마치 서로 마주 보고 있는 거울들처럼 제시하려던 것이 아닐까. 그래서 작가를 비롯한 대부분의 주요인물들에게 번역은 실제적으로 그리고 상징적으로 바로 생존과 연결되어 있는 문제가 아닐까.
『영원한 제국』의 작가는 그의 고백 그대로 "오랫동안 전해지던 이야기를 새롭게 다시 전하는 이야기꾼이다." 『Everlasting Empire』는 재미있는 이야기를 재미있게 풀어나간 원작의 이야기 솜씨를 잘 살려낸 번역작품이다. 이제 우리 번역의 수준이 원작에 대한 여러 면에서의 충실성, 즉 의미 전달은 물론이고 원작이 지니고 있는 톤이나 재치, 기교 그리고 저자만의 특유한 스타일이나 문학성을 추구하며 좀더 적극적이면서도 학문적인 면에서 '문화나누기'를 시도할 때가 왔다는 것을 잘 보여주는 번역이다.
|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