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7년 말 IMF라는 초유의 경제위기에 직면하기 전까지 한국사회는 3저 호황 등으로 경제적인 고도성장을 영위하였고 문화부분도 활발한 모습을 보였다. 재단은 문화재단으로서 보다 전문적이고 친근한 이미지를 주기 위해 재단 명칭을 대산문화재단으로 바꾸었다. 사업 역시 사회적 분위기에 발맞추어 더욱 활발히 진행하기 위해 국제 문학교류의 영역을 넓히고 활성화하였다. 또한 문학계의 다양한 학술문화행사를 지원하는 학술․문화행사지원 사업을 정기화하였다.
97년은 재단의 국제 문학 교류 사업이 본격적으로 활성화되기 시작한 해였다. 주한 프랑스대사관과 공동으로 전통적 의미의 소설을 부정하고 새로운 소설 양식을 제시하며 현대소설에 있어 큰 흐름을 창시한 누보로망의 창시자 알랭 로브-그리예를 초청하였다. 로브-그리예 초청은 한국문학이 세계문학의 주요한 흐름을 접하고 나아가 한국과 프랑스 간의 정기적인 작가교류를 시작하는 계기가 되었다.
또한 멕시코와 독일에서 개최한 한국문학 심포지엄과 작품 낭독회는 한국문학의 해외 진출을 본격화한 행사였다. 멕시코 3개 지역을 돌며 한국과 멕시코간의 문학교류의 물꼬를 텄다. 9월에는 독일 함부르크 주정부와 뒤셀도르프 하이네 기념관과 공동으로 한국문학 작품 낭독회를 가졌다. 한국 작가단은 함부르크 문학의 집과 뒤셀도르프 기념관에서 2차례에 걸쳐 독일어로 번역된 자신의 작품을 읽고 한국 현대문학의 흐름을 소개하였다.
97년에 가장 주목할 만한 일 가운데 하나는 전국청소년연극제의 창설이다. 영상시대를 사는 청소년들이 가장 관심을 갖는 공연예술을 직접 체험하고 희곡문학을 비롯한 문화예술 전반을 이해하며 자신들의 꿈과 재능을 마음껏 발산할 수 있는 장이자 연극계의 오랜 숙원이었던 전국청소년연극제가 출범한 것이다. 명실상부한 전국청소년연극제가 창설됨으로 인해 9개 시·도에서 지역 청소년연극제가 새로이 만들어지고 청소년 문화와 지방 공연문화에도 활력소가 되었다.
청소년 문예공모에 선발되어 문예캠프를 거쳐 간 장학생들의 문학동인모임 ‘절정’이 꾸준한 모임을 지속한 끝에 재단의 지원으로 동인지 《절정》을 처음 발간하는 결실을 맺었으며 96년 부분적으로 진행되던 학술․문화행사지원은 정례화 되어 상반기와 하반기 2차례에 걸쳐 지원을 하였다.
반면 1998년 개최를 목표로 준비해온 <서울국제문학포럼>은 1997년 말 IMF 통화체제 편입이라는 충격적인 경제위기를 맞으며 본의 아니게 중단되었다. 김우창(고려대) 교수를 조직위원장으로 하여 대주제와 부문별 주제를 정하고 부문별 참가 작가를 선정, 일부 해외작가들이 초청을 수락했으나 한국의 경제·사회적인 여건상 이듬해 개최를 강행하는 것은 적절치 못하다는 판단에 따라 2년을 미룬 2000년에 개최하는 것으로 조정하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