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산문화재단 설립의 뿌리는 대산 신용호 교보생명 창립자의 민족관과 문화관, 그리고 출연기업인 교보생명이 ‘국민교육진흥’, ‘민족자본형성’이라는 창립이념을 구현해 나가는 과정에서 찾을 수 있다. 대산은 오늘이 있게 한 교보생명보험주식회사를 경영하며 큰 성공 속에서도 처음 출발했을 때의 초심을 잃지 않았고 교보생명의 창립이념을 지속적으로 구현해 나갔다. 청소년과 진학제도를 연계한 세계 최초의 교육보험 창안, 청소년과 지성인의 문화전당인 교보문고 설립, 산업화의 뒤안길로 낙후되어가는 농촌부흥을 돕기 위한 대산농촌문화재단 설립, 다양한 문화예술인 지원과 어린이와 청소년 지원 등에 이르기까지 대산의 관심과 행동은 일관되게 노정되었다.
대산은 문화가 곧 국가경쟁력을 의미하는 시대적인 흐름에 부응하고 기여할 수 있는 방안을 찾는 데 골몰하였다. 조사 결과, 우리 정신문화의 뿌리이자 문화의 근본이라 할 수 있는 문학분야를 중심으로 공익사업을 펼치면서 청소년 문화 조성과 육성에 이바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데 의견을 모았다. 1992년 6월 26일 준비위의 명칭을 가칭 ‘대산문예진흥재단 설립준비위원회’로 하고 보다 깊이 있는 조사와 연구를 진행하기로 하였다.
1992년 11월 23일 새로운 문화재단의 명칭을 일반인들이 친근감을 가지고 부르기 쉬우면서도 카네기재단, 록펠러재단과 같은 외국 유수의 재단과 같이 설립자의 뜻을 잘 반영할 수 있으며 세계적인 재단으로 발돋움하자는 의지를 담는다는 차원에서 ‘대산재단’으로 하기로 하였다. 또 문화 전반에 걸친 발전과 진흥을 돕는 것이 바람직하지만 범위가 너무 광범위하고 재원은 한정되어 있으므로 문학을 중심으로 한 창작문학 창달사업, 국제 문화교류사업, 한국문학과 문화를 걸머질 인재 양성을 위한 장학사업 등의 공익사업을 펼치는 것이 효율적이고 바람직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이는 교보문고 설립과 운영 등을 통해 “사람은 책을 만들고 책은 사람을 만든다”는 철학을 실천하는 연장선상에서 합당하다는 것이 중론이었다.
1992년 12월 7일 교보생명빌딩 회의실에서 역사적인 창립총회와 창립이사회를 가졌다. 이날 총회에서는 대산재단 설립취지문을 채택하였다. 그리고 대산 신용호 선생을 초대 이사장으로 추대하고 창립이사회를 구성하였다.
1992년 12월 29일 프레스센터에서 일간신문, 방송, 통신 기자들을 모아 기자회견을 갖고 대산재단의 출범과 설립과정 등을 알렸다. 그리고 주요 사업으로 국내 최대 최고의 대산문학상 제정, 신진작가 양성을 위한 창작지원, 한국문학 번역지원, 해외에서의 한국 및 한국문화 연구지원, 국제 문화교류, 장학사업 등을 펼칠 계획임을 밝혔다.
언론의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문화면 머리기사로 교보생명에서 출연하여 국내에서는 처음이자 최대 규모로 ‘한국문학의 발전과 세계화’를 위한 문화재단을 창립했다는 사실과 함께 창립의 의의, 취지 그리고 펼치게 될 주요 사업 등을 소개했다. 재단의 창립사실이 일반에 알려지자 문학계와 문화계에서도 대산재단의 창립과 그에 따른 지원사업과 운영방식, 참여인사 등에 비상한 관심을 가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