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산문화재단 30주년 기념원고 / 대산청소년문학상
그때 내게는 이 상이
박서련 / 소설가, 대산청소년문학상 2006년 동상, 2007년 금상 수상
“하지만 젊은 나에게는 그 상이 필요했습니다. 그건 내가 틀리지 않았다는 격려 같은 것이었습니다.”
- 구로사와 아키라
잘 알려져 있듯 대산청소년문학상은 투고 작품으로 예심을 치른 후 교보생명 연수원인 ‘계성원’에서 열리는 여름철 청소년 문예캠프 백일장으로 본심을 갈음한다. 나는 청소년 참가자로 두 번, 재단 장학생으로 한 번, 졸업생 모임인 ‘절정문학회’ 회원 자격으로 또 한 번 대산청소년문학상 본심 캠프에 갔다. 합쳐서 일주일이 좀 넘는 시간을 계성원에서 보낸 셈이다. 생애 전체에서 일주일은 그리 긴 시간이 못 되지만, 내게는 아직도 의지가 되는 강렬한 기억들이 그 짧은 나날들 사이에 수없이 만들어졌다.
처음 캠프에 갈 때까지만 해도 나는 고향인 철원을 벗어나 본 적이 별로 없었고 세상에 글을 쓰는 열여덟 살짜리는 나밖에 없는 줄로 착각하고 있었다. 운 좋게 캠프 참가 자격을 얻어 출발지인 서울, 그중에서도 종로 1가 1번지라는 교보빌딩에 들어서자 아무도 뭐라 하지 않았는데 주눅이 들었다. 전국에서 모여든 수십 명의 또래들은 그들이 제치고 온 수백, 수천 명의 글 쓰는 아이들을 상상하게 만들었고 그 틈에 겨우 낀 나는 한없이 초라해지는 것 같았다. 잘 쓰고 싶다, 이 중에서 제일 잘 쓰고 싶다. 아무도 소리 내 말한 적 없지만 나 말고도 모두가 지니고 있었을 욕심이 내게서도 싹트기 시작했다.
캠프에 참가한 첫해에는 4위에 해당하는 동상을, 이듬해에는 2위에 해당하는 금상을 탔다. 금상부터는 재단 장학금을 지원받게 되었고 그 때문에 보호자와 함께 장학금 설명 간담회에 참석해야 했다. 서울로 가는 차 안에서 아버지는 나 때문에 일을 쉬어서 보게 된 손해에 대해 내내 불평했고 어머니는 지긋지긋하다는 듯 입을 다물고 있었다. 나는 부모님과 나의 촌스러운 차림새가 부끄러웠으며 간담회가 열리는 회의실 안으로 들어가서는 부모님을 두 분 다 모시고 온 수상자가 나뿐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그만 죽고 싶어졌다. 그런 와중에, 이윽고 간담회를 시작하며 재단 관계자분이 이렇게 말했다.
“지금 여기에 있는 청소년들은 전국에 있는 그 또래 중 가장 글을 잘 쓰는 사람들입니다. 그 사실에 대한 자부심을 갖기를 바랍니다.”
부모님은 내가 선생님이 되기를 바랐다. 이도 저도 아닌 소설 같은 건 집어치우기를, 공부나 열심히 해서 교원 자격증을 딸 수 있는 과에 가기를 바랐다. 그런 부모님 앞에서 누군가 내 재능에 대해 말해준 것은, 나에게는 역사적인 사건이었다.
이후로 20년 가까운 시간이 흘렀다. 그 사이 나는 책을 내고 책 낸 김에 인터뷰도 종종 하는 사람이 되었다. 종종 하는 인터뷰에서 또 종종 대산청소년문학상에 대한 질문이 나오곤 한다. 한참 어릴 때 받았던 상이 여전히 언급된다는 것이 조금 민망하기도 하지만, 그 상이 아니었다면 지금의 나도 없었을 거라는 생각을 진지하게 한다. 어린 내게는 그 상이 필요했고, 그건 내가 어떤 사람이 될 것인가를 일러준 예언 같은 것이었다. 지금도 그 상과 캠프가 있다는 것에 감사하고 감사한다. 어렴풋한 열정을 막 싹틔우기 시작했으나 아직 자기가 무엇이 될지 모르는 어떤 청소년, 말하자면 대략 스무 해 전의 나 같은 사람에게 이 상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를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