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산문화재단 30주년 기념원고 / 외국문학번역지원
‘세계문학’의 경계를 확장하다
- 대산세계문학총서의 시작을 돌아보며
김태환 / 서울대 독문과 교수, 2022~2023 외국문학번역지원 운영위원장
“반면 토비 삼촌도, 꼬치돌리개가 열두 번도 돌기 전에 잠들었습니다. - 두 사람이 편히 쉬기를 바랄 뿐입니다. - 닥터 슬롭은 산파와 함께 있었고, 어머니는 위층에 있었습니다. - 트림은 무릎 위까지 오는 낡은 잭부츠 한 켤레를 가지고 이듬해 여름 메시나 공략에서 사용할 박격포를 만들고 있었으며, - 바로 그때 그는 뜨거운 부지깽이 끝으로 점화 구멍을 뚫고 있었습니다. - 주인공들이 모두 내 손을 떠나- 이제야 좀 여유가 생겼으니- 이 참에, 서문을 쓸까 합니다.”(로렌스 스턴, 『트리스트럼 샌디』)
대산문화재단의 외국문학 번역지원 사업은 1999년에 시작되었다. 그 첫 결실이 대산세계문학총서라는 이름을 달고 문학과지성사에서 출간되기 시작한 것이 2001년 6월이니, 독자들에게 이 새로운 세계문학 시리즈가 선을 보인 지도 벌써 22년에 가까운 세월이 흘렀다. 그동안 시리즈의 첫 번째 자리를 차지한 로렌스 스턴의 장편소설 『트리스트럼 샌디』에서 가장 최근에 출간된 응우옌후이티엡의 단편집 『왕은 없다』에 이르기까지 188종의 도서가 출간되었다.
대산세계문학총서는 당시까지 한국 출판계에서 주종을 이룬 세계문학전집의 관행에서 탈피하여 대안적 세계문학 시리즈를 표방하면서 출범했다. 총서의 대안적 성격을 간단히 요약하면 첫째는 근대 영문학, 불문학, 독문학 등에의 편중 상태에서 벗어나 근대 이전 시기와 다양한 언어권의 탁월한 작품들을 아우른다는 점이고, 둘째는 초역을 원칙으로 함으로써 다른 세계문학전집에 거의 빠짐없이 들어 있는 작품들을 원천 배제한다는 점이다. 그래서 셰익스피어의 『햄릿』도, 괴테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도, 헤세의 『데미안』도, 스탕달의 『적과 흑』도,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도 포함되지 않지만, 그 대신 알레산드로 만초니처럼 한국에는 한 번도 번역 소개된 적이 없는 이탈리아 작가의 소설이 포함된 특별한 세계문학 시리즈가 탄생하였다.
이러한 기획은 어쩌면 무모한 것이었을 수도 있겠다. 특히 널리 읽힌 유명 작품을 재번역하지 않는다는 윤리적 구속을 스스로 부과한 것은 일정한 상업적 지분에 대한 포기를 의미했고, 총서가 전체적으로 대중적 인지도를 확보하는 데도 걸림돌로 작용하였다. 총서를 둘러싸고 이렇게 팔리기 어려운 작품까지 번역 출간해주는 데가 있다니 하며 반기는 소수 독자층의 반응과, 유명한 작품이 포함되지 않았기에 그 존재조차 잘 알지 못하는 보다 일반적인 독자층의 반응이 교차했다. 그럼에도 20년 훌쩍 넘는 세월을 버텨온 것은 대산문화재단과 문학과지성사의 문화적 사명 의식과 조화로운 협력 덕분이었을 것이다.
나는 독일문학과 비교문학 전공자로서 당연히 대산세계문학총서를 반기는 쪽이었다. 특히 근대 소설의 생성과 발전에 큰 관심을 가지고 있는 연구자이기에, 프랑수아 라블레의 『가르강튀아』와 『팡타그뤼엘』, 로렌스 스턴의 『트리스트럼 샌디』, 독일 바로크 소설의 대표작 『짐플리치스무스의 모험』 등, 좀처럼 접하기 어려운 근대 소설 초기의 중요한 작품들이 번역되어 나온 것은 내게는 무척 감격스러운 사건이었다. 『트리스트럼 샌디』에서 따온 위의 인용문도 나는 대산세계문학총서의 번역을 통해서 비로소 읽었다. 19세기 소설의 사실주의적 관습이 정착되기 이전 시기의 소설적인 자유와 유머, 심오함을 잘 드러내주는 저 구절 속에는 소설이, 혹은 문학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풍부한 해답이 함축되어 있다. 그 구절을 접하게 해준 것만으로도 나는 이 총서에 대해 깊은 감사와 애정의 마음을 지니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