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대산문화재단
대산문화재단 30주년 기념원고
대산문화재단 30주년 기념원고 / 아시아대장정
동북아대장정과 함께 한 나의 이십 대
정대준 / 초등교사, 2013 대학생동북아대장정 대원
우연히 잡지에서 보게 된 ‘동북아대장정.’ 형에게 이야기를 꺼내 보니 작년에 지원했다가 떨어졌다고 한다. “이번에 같이 지원해볼까?” 내 권유에 못 이기는 척 같이 지원했고, 초심자의 행운일까 첫 지원에 덜컥 (나만) 1차 합격을 하였다. 2차 자기소개서, 3차 면접까지 거치면서 합격에 대한 마음은 점점 강해졌고, 최종적으로 합격하였을 때 대학에 합격한 것처럼 기뻐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스무 살, 첫 대외활동이 이렇게 시작됐다. 낯선 사람들과 며칠간 교보생명 계성원에 묵으면서 소개를 나누고, 팀 미션을 하고, 강의도 들으면서 차근차근 알아가는 시간을 가졌다. 그리고 각 대원에게 주어진 개인 미션. ‘나만의 대장정 미션’이라고 대장정 기간 동안 스스로 미션을 설정해서 달성하는 과정을 보여 달라고 하셨다.
이때 문득 떠올랐던 것이 ‘대원들 인터뷰’였다. 마침 동북아대장정에 합격하고 교보생명 프론티어기자단 활동도 함께 하고 있었던 터라 명분도 충분했다. 그래, 나를 제외한 99명의 대원들과 조금씩이라도 이야기를 나눠보자. 그렇게 버스 옆자리에 앉은 사람부터 이야기를 나눴다.

『안녕하세요. 저는 이번에 셀프미션으로 대장정에서 만난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를 담아보려고 해요. 혹시 간단한 인터뷰를 해도 괜찮으실까요?』

자칫 이상하게 여기지 않을까 생각했던 내 걱정과는 달리 대원들은 흔쾌히 내 인터뷰에 응해줬다. 처음에는 어떻게 동북아대장정을 알고 신청하게 됐는지에 대한 이야기와 면접 때 겪었던 경험 같은 이야기를 나누다가 점차 꿈에 대한 이야기까지 확장이 돼갔다. 한 명씩 이야기를 들으면서 점차 그들의 이야기에 빠져들어 갔다. 바르샤바에 교환학생을 갔다 온 형, 자전거로 대한민국 종주를 세 번이나 하고 신림에서 장사를 시작한 형, 중국에서 2년간 워킹홀리데이를 한 형, 해외봉사를 다녀오고 대장정을 하러 온 누나, 경찰이 꿈인 친구까지… 스무 살인 나에게는 신기하게만 느껴지는 이야기였다. 처음에는 그들의 이야기에 마냥 신기해하고 대단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오히려 칭찬과 격려를 받는 쪽은 나였다. 스무 살인데 벌써 이렇게 활동하고 있는 것을 보니 대단하다고, 무엇을 해도 잘할 것이 보인다고, 대장정이 끝나고도 꼭 연락하면서 지냈으면 좋겠다고 응원과 격려를 많이 받았다.
대장정을 마치고도 동북아프론티어클럽(NAFC), 교보생명 기자단 활동을 통해 대장정 기간 동안 만난 사람들과 인연을 꾸준하게 이어갔다. 교보생명과 대산문화재단이 만들어 준 소중한 인연과 기회는 나를 조금씩 성장시켰다. 자주는 아니어도, 아직도 그때 만났던 사람들과 종종 연락을 주고받고, 누군가는 서울에 들를 일이 있을 때마다 연락을 줘서 만나기도 한다.
대장정 시절, 스무 살인 나에게 어른으로만 느껴졌던 형, 누나들의 나이보다 지금 내 나이가 훌쩍 많아졌다. 누군가 인터뷰에서 내게 해줬던 이야기처럼, 20대의 기간 동안 정말 많은 일이 있었고 성장했다. 3천 명이 넘는 사람 앞에서 내가 살면서 느꼈던 생각을 나누기도 하고, 필리핀에 나가 초등학교 건물을 짓고 오기도 하고, 총 30곳에 가까운 나라와 도시를 여행하고 오기도 했다. 지금은 초등학교 교사로서 교실 안에서 사람을 긍정적인 방향으로 이끌어주는 일을 하고 있다. 아이들과 수업하면서 〈세계 여러 나라의 자연과 문화〉와 같은 교과 내용이 나올 때면 자연스럽게 동북아대장정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아이들은 똘망똘망한 눈으로 쳐다보면서 다양한 질문을 한다.
스무 살이었던 나에게 가장 많은 영향을 줬던 활동을 꼽으라면 단연코 동북아대장정이다. 나를 성장시켰고, 경험과 시야의 폭을 넓혀줬고, 더 넓은 세계로 나아갈 수 있도록 날개가 돼줬다. 이러한 깊은 인연이 20대 시절의 이야기로 끝나는 것이 아닌, 앞으로의 인생에서도 깊게 뿌리를 내려 더 소중한 인연이 됐으면 하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