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산문화재단 30주년 기념원고 / 서울국제문학포럼
회상과 반추
-‘제3회 서울국제문학포럼’(2011)에 대한 추억
정과리 / 평론가, 2011 서울국제문학포럼 조직위원, 제13회 대산문학상 수상
‘제3회 서울국제문학포럼’이 개최되기 위해서 처음 모임을 가진 게 2009년 9월 18일이었다. 그 회의에서 김우창 교수님이 ‘조직위원장’으로 선출되셨고, 김 교수님의 일사불란한 지휘 하에 기획을 하고 토론을 하고 구성을 하고 인재를 구하는 일을 거듭해 나갔다. 포럼이 개최된 날이 2011년 5월 14일이니, 1년 8개월 동안 정신의 땀이 몸을 그윽이 적시도록 뛰었다.
12년 전 일의 세세한 장면들은 이제 거의 잊었으나, 청중들이 까마득히 모였던 광경은 지금도 생생히 남아 있다. 대산문화재단의 조직력이 워낙 탄탄히 밑받침하기도 했지만,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르 클레지오, 가오싱젠을 비롯, 포럼에 참가한 작가들의 문학적 성가가 드높았다는 게 가장 큰 힘이 되었다.
포럼의 큰 제목은 ‘세계화 속의 삶과 글쓰기.’ 20세기 말에 불어닥친 세계화 바람은 한국문학의 운명을 근본적으로 뒤흔들어 놓았다. 해방 후 20세기 말까지 한국문학은 쉽고 과학적인 언어인 자국어 문자, 한글에 뒷받침되어 순조롭게 생장할 수 있었다. 그러나 세계화와 더불어 한국문학은 더 이상 민족문학의 틀 안에 갇혀 있을 수가 없게 되었다. 세계문학이라는 더 큰 틀 안에 한국문학을 위치시키고, 세계문학의 능동적 공진화 요소로 기능할 수 있도록 한국문학을 재정의해야 할 필요가 발생한 것이다.
2011년은 그러한 대변동이 실질적인 효력을 막 개시하던 때라고 할 수 있다. 그 점에서 ‘서울국제문학포럼’은 이 근두운(筋斗雲)의 요동치는 안장 위에 한국문학을 바르게 올려놓을 ‘연동자’의 역할을 제대로 해야만 했다. 다른 한편, 한국문학의 위상 변동은 오로지 한국문학의 이익을 위한 것이 아님을 명심해야 했다. 우리의 변화가 곧바로 세계 문학 전체를 거대한 화합의 대양을 향한 명랑한 물살로 작용해야 할 터였다.
따라서 이중의 작업이 동시적으로 추진되었다. 한국문학사에 족적을 남길 수 있는 분들을 모셔 한반도로부터 퍼질 깊은 문학적 울림의 공명장을 조성하면서, 특정 강국의 문인들에 매달리지 않고 세계문학의 다양성을 증빙할 수 있는 분들을 모셔 다른 표현들과 다른 리듬들로 이루어진 말의 교향악을 연출하려고 하였다.
이 모든 사건들과 행위들이 세계 문인들의 친밀한 만남과 큰 화합, 그리고 궁극적으로 문학의 눈짓이 세계인들의 평화와 안식에 기여할 수 있기를 소망한 것은 국제적 규모의 행사를 진행하는 모든 사람의 공통된 마음일 것이다. 물론 당장 눈앞에서 벌어지는 축제는 모든 참여자들의 오감을 떨게 하였으니, 이 전율이 평화의 송가로 전화(轉化)되어 세계화의 양떼구름에 실려 온 누리에 퍼지는 게 합당한 일일 것이나, 이는 당장 실현된 게 아니라, 몸을 떤 당사자들이 고스란히 떠맡아야 할 책무가 되어야 마땅하리라.
한참 세월이 지난 지금, 그 맡은 일을 내가 제대로 수행했는지 되돌아보며 얼굴이 붉게 물든다.